리차드 위트컴 장군 제44주기 추모식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군수 지원은 물론
전후 부산의 복구와 재건에 헌신했던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부산에서 열렸다.
ㅇ일시 : 2026년 7월10일
ㅇ장소 :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
ㅇ참석 : 국내외 주요 인사 200여명
유엔기념공원서 추모식…
"국민을 위한 것이 진정한 승리"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시민을 먼저 생각했던
그의 인도주의적 리더십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국가보훈부 부산지방보훈청은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리차드 위트컴 장군 제44주기 추모식이
위트컴희망재단과 유엔기념공원,
유엔평화기념관 공동 주최·주관으로 개최
이남일 부산지방보훈청장,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 부산대학교 총장, 부산 남구 국회의원,
부산시 행정부시장, 남구청장, 주부산미국
영사관 수석영사, 육군군수사령관, 유엔평화
기념관장 등 주요 기관장과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행사는 유엔기념공원 묘역 헌화를 시작으로
위트컴 장군의 생애와 업적 소개, 추모사와
감사 인사, 유엔평화기념관 내 위트컴실·유엔군
참전기념실 관람 순으로 진행됐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1894∼1982)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2군수사령관으로 복무하며
군수 지원을 총괄한 인물이다.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부산의 복구와 지역사회
재건에도 적극 나서며 '부산의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부산역전 대화재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
했을 당시 군수물자를 긴급 지원했다.
이후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 지원 경위를 묻는
말에 "전쟁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라고 밝힌 일화는 지금까지도 전쟁 속 인도
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한다.
이남일 부산지방보훈청장은 추모사에서
"위트컴 장군을 비롯한 유엔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헌신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오늘의
부산을 있게 한 소중한 역사"라며
"부산지방보훈청도 그들의 희생과 봉사 정신이
국민과 미래 세대에게 올바르게 계승될 수 있도록
다양한 보훈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023년11월11일 부산시민의 모금으로 세워진 동상
리차드 위트컴 장군(Richard S. Whitcomb)과 대한
그의 부인 한묘숙 여사의 전설적인 실화이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
그는 당시에 미군 군수사령관이었다.
1952년 11월 27일,
부산 역 건너편 산 판자촌에 큰 불이 났다.
판자집도 변변히 없어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피난민들은 부산 역 건물과 인근에 있는 시장 점포 등이
유일한 잠자리였는데 대화재로 오갈 데가 없게 됐다.
입을 옷은 커녕 먹을 것조차 없었다.
이때 위트컴 장군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열어 군용 담요와 군복,
먹을 것 등을 3만 명의 피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연방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갔다.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책에 장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미군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이 주둔하는 곳의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돕고
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입니다.
주둔지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이기더라도 훗날 그 승리의 의미는
쇠퇴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뒤 장군은 휴전이 되고도
돌아가지 않고, 군수기지가 있던 곳을 이승만
정부에 돌려주면서 "이곳에 반드시 대학을
세워달라"고 청하였다.
부산대학이 설립된 배경이다.
그러나 부산대 관계자도, 교직원도, 졸업생도
재학생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거의 모른다.
그리고 장군은 메리놀 병원을 세웠다.
병원기금 마련을 위해 그는 갓에 도포를 걸치고
이 땅에 기부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장군이 체신없이 왜 저러느냐'고 쑤근
댔지만 개의치않았고 온 맘과 힘을 쏟았다.
전쟁 기간 틈틈이 고아들을 도와온 위트컴 장군은
고아원을 지극 정성으로 운영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이 전쟁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연유다.
그리고 그는 부인에게 유언했다.
''내가 죽더라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처 못 데리고
나온 미군의 유해를 마지막 한 구까지 찾아와 달라''고...
부인 한묘숙 여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북한은 장진호 부근에세 길죽길죽한 유골만 나오면
바로 한묘숙 여사에게로 가져왔고, 한 여사는 유골
한 쪽에 300불씩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렇게 북한이 한 여사에게 갖다 준 유골 중에는
우리 국군의 유해도 여럿 있었다.
하와이를 통해 돌려 받은 우리 국군의 유해는 거의
대부분 한 여사가 북한으로부터 사들인 것들이다.
한 여사는 한 때 간첩 누명까지 쓰면서도 굴하지
않고 남편의 유언을 지켰다.
남편만큼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장군의 연금과 재산은 모두 이렇게 쓰였고,
장군 부부는 끝내 이 땅에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은 채 40년 전에 이생을 달리 했다.
부산 UN공원묘원에 묻혀 있는 유일한 장군
출신 참전용사가 바로 위트컴 장군이다.
끝까지 그의 유언을 실현한 부인 한묘숙 씨도
장군과 합장되어 있다.
이 땅에는 이러한 장군을 기리는 동상
하나가 없다. 부산에도, 서울에도 , 아니
부산대학교에도 메리놀병원에도 물론 없다.
그런데 오늘, 장군이 떠난지 꼭 40년 만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위트컴 장군 조형물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국가 예산 말고,
재벌 팔을 비틀지도 말고, 70여 년 전 수혜를
입었던 피난민 3만명, 딱 그 수만큼 1인당
1만원씩 해서 일단 3억을 마련하기로 했다.
브라보!
민주주의의 생명은 참여다.
보은도 십시일반, 참여해야 한다고.
오늘 그 첫 결의를 했다.
1만원의 기적을 이루어보자.
70년 전, 전쟁고아들을 살뜰하게 살피던
위트컴 장군을 생각하면서, 메리놀 병원을
세워 병들고 아픈 이들을 어루만지던 장군의
손길처럼, 대학을 세워 이 땅에 지식인을 키우
려던 그 철학으로, 부하의 유골 하나라도 끝까지
송환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며 각자
내 호주머니에서 1만원씩 내보자.
딱 커피 두 잔 값씩만 내보자.
1만원의 기적이 한국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마 이 땅에 1만원씩 낼 사람이
30만 명도 안 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니 또 내 마음은 두둥실,
하늘을 날 것만 같다.
그리고 정부는 장군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한다는 소식이다.
너무 늦었지만 감사한 일이다.
정말 기쁜 날이다.
2023년 11얼11일 평화공원에 장군의 동상이
건립되어 부끄럽지 않는 부산사람이 되었다.
장군의 44주기 추모식에 그 뜻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