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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3년 4기 – 하나님의 선교- 나의 선교>
제9과 권세자들을 향한 선교
<11월 25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상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친절한 애정과 형제 우애로 찾아야 한다. 실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뛰어난 발명력과 과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과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과 현시대에 대한 특별한 진리를 받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이 초청의 기별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 이 초청의 말씀이 주어져야 한다. …
세상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들과 재물과 직업적인 면에 명망이 뛰어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들의 구원 문제를 말해 주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많은 그리스도인 교역자가 이러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하면 그가 변호사나 상인이나 혹은 재판관이라고 해서 우리가 수수방관하고 그가 죽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낭떠러지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지위나 직업에 상관하지 않고 즉시 뒤로 물러나도록 소리칠 것이다. 이같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저희 영혼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경고를 지체 없이 말해 주어야 한다.(실물, 230)
◎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와 연합시키기를 원하시는 …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상과의 유대 관계가 그들을 굳게 붙들어 매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들어가려면 도덕적 용기가 필요하다. 책임과 사회적 교제 때문에 큰 위험에 빠져 있는 그 영혼들을 위해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외면당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외면당한 부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은 부유층을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세속적 영광에 눈이 멀고 현혹되어 영원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그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기 위해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수많은 부자가 경고를 받지 못한 채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부자들 가운데도 외관상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나 영혼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치료, 209-210)
◎ 부유한 사람들이 특별히 당하는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 … 세상에는 부하게 살면서 일반적인 부도덕에는 빠지지 않았더라도 부를 사랑함으로 멸망을 초래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가장 운반하기 어려운 잔은 빈 잔이 아니고 가득 찬 잔이다. 가장 주의 깊게 균형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그런 잔이다. 고난과 역경은 실망과 슬픔을 가져온다. 그러나 영적 생애에 가장 위험한 것은 번영이다. …
우리는 질병과 역경 중에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부유함과 영향력이 위탁된 사람들에게도 매우 필요하다. …
이른바 높은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하여 그들의 높은 지위 때문에 큰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장 큰 위험에 놓여 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넘어질 것이다.(치료, 211~212)
<11월 26일/일, 느부갓네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죄를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주심으로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멸망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멸망 당할 것이다. 사람의 교만심은 그가 구속의 경륜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사람의 공로는 영혼을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게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그분의 나누어 주시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로 행함이나 혹은 행복한 느낌들에 신뢰를 둘 수는 없다. 그러므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택함을 받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라고 말씀하셨다. 회개하는 죄인이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이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께 올 때, 그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의지함으로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높은 부르심, 78)
◎ 다니엘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열망은 모든 동기 중에서 가장 강력했다.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 앞에 설 때 하나님을 지혜의 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불충실한 청지기로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왕, 방백, 정치가들 앞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끊임없이 인정함으로 그의 영향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다니엘이 그 앞에서 자주 하나님의 이름을 존경했던 느부갓네살 왕은 마침내 완전히 회심하여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존경하는 법”을 배웠다.
바벨론 나라의 보좌 위에 있는 왕은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를 따뜻하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말로 간증하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다. 그의 간증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의와 평강을 경험하고 있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화잇주석, 단 4:37)
◎ 그런 계층의 사람들[부자와 권세자]을 위한 사업에는 낙심되는 일이 많을 것이고,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분은 돈 버는 일에 생애를 바친 사람들의 마음에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으며, 역사하실 것이다.
참된 회개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이적, 곧 지금은 분별 되지 않는 이적이 있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도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범위 밖에 있지 않다. 만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충실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의무를 감당했다면 그분께서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곧 지성과 영향력을 갖춘 사람들을 회개시키실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많은 사람은 거룩한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지도될 것이다.(치료, 215-216)
<11월 27일/월, 나아만>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선언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충분히 깨닫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슬퍼하는 사람들과 범죄 한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라고 선언하신 다음, 그분의 청중의 마음을 지배한 교만과 불신을 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분의 선민을 그들의 불신과 반역 때문에 버리시고 하늘의 빛을 거절하지 아니한 이교의 나라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나타내신 것을 상기시키셨다. 사르밧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은 모든 일에 저희가 받은 빛을 따라 살았으므로 그들은 그분을 배반하고 편의와 세상 명예를 위하여 원칙을 희생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보다 더욱 의롭다 함을 받았다. (행적, 416)
◎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상류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에 적합하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과 접촉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되, 단순히 그들과 피상적으로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고 개인적 노력과 산 믿음을 통하여 그들에게 영적 필요를 깨우쳐 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그대로 알려 주기 위해 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상류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하려면 생활 방법과 활동 방식이 그들의 까다로운 취미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외양, 값진 건물, 비싼 의복과 가구와 환경, 세상 관습과의 조화, 사교계의 인위적 세련미, 전통적 교양, 세련된 언어 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세속적 수단에 속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상류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데 사용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그들과 효과적으로 접촉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끈덕지게, 그리고 사심 없이 제시하는 것이다.(치료, 213-214)
◎ 진리는 거룩한 기지와 부드러움과 예의 바름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은 부드러워지고 동정적으로 된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 자아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시들은 식물들을 소생시키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지 않은 온당치 못한 격한 말들을 내뱉지 않도록, 하나님과 밀접한 교통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다. 영혼을 구원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의 말이 부드럽게 하라. 거룩한 원천으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가 되실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온유와 두려움으로 말할 채비를 항상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신 한 영혼이라도 잘못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우리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그리하여 기회가 올 때, 때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사업을 이런 식으로 수행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대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성령께서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발해진 말씀을 적용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감화로 전해진 진리는 살리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6증언, 400)
<11월 28일/화,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니고데모>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복음 사업의 성공은 유식한 답변이나 웅변적인 논증이나 심오한 이론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별의 단순성과 생명의 양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것을 주는 데 달려 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이것이 곧 영혼의 요구이다.
사람들은 매우 단순하고 겸손한 방법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지성적인 사람들 곧 세상에서 가장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한 남녀들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대하여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흥미를 갖는 사물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단순하고 솔직한 말로 인하여 감동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실물, 231-232)
◎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이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목격했을 때 이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확신이 굳어졌었다. 니고데모는 너무 교만하여 그 갈릴리 선생을 동정하면서도 공공연히는 인정하지 못하고 은밀하게 회견하고자 했었다. 예수께서는 이 회견에서 그에게 구속의 경륜과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명을 나타내셨으나 여전히 니고데모는 주저했었다. 니고데모는 진리를 그의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으므로 삼 년 동안 표면적인 결과는 거의 없었다. …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니고데모는 감람산에서의 밤중의 회견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요 3:14)라고 하셨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깨달았다. …
이제 유대인들이 어린 교회를 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때에 니고데모는 그 교회를 보호하려고 나섰다. 니고데모는 더 이상 조심하거나 의심하지도 아니하였고, 제자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유지하는 일을 돕고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그의 재산을 사용했다. 이전에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고 핍박하였으므로 그는 이 세상 것에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는 흔들리지 아니하였다.(행적, 104-105)
◎ 아덴의 철학자들을 만났을 때 사도 바울의 경험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복음을 증거하던 중 논리는 논리로, 과학은 과학으로, 철학은 철학으로 대항하였다. 그의 청중들 중 제일 현명한 사람도 놀라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의 말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노력의 결실이 적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바울은 활동 방법을 바꾸었다. 그는 복잡한 논쟁과 이론적 토론을 피하고, 사람들에게 죄인들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단순하게 가르쳐 주었다. …
상류계층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천사들이 그들의 동료임을 기억하고 참된 위엄을 간직해야 한다.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으로 충만한 정신과 마음의 보고(寶庫)를 언제나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귀중한 말씀들을 기억의 보고에 넣어 두라. 그것들은 금이나 은보다 더 가치가 있다.(치료, 214~215)
<11월 29일/수, 부자를 향한 선교>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부자들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은 하늘의 선물을 위탁받은 자로 저희의 책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실 자와 반드시 회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부자들을 위해 일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부자들은 자기의 재물만을 믿고 닥쳐올 위험을 생각지 않는 경향이 너무도 크다. 그들의 마음의 눈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에 이끌리도록 할 필요가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라고 하신 참된 행복의 원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실물, 230)
◎ 이 [젊은 부자 법관]은 그리스도를 훌륭하게 보았다. 그의 마음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으나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보다 재물을 선택했다. 그는 영생을 원했으나 그의 심령 속에 생명이 되는 이기심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근심하면서 그리스도를 떠나갔다.
그 청년이 돌아갈 때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랐다”(막 10:24~26). 그때 그들은 자신들도 이 엄숙한 경고를 받아야 할 사람 중에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구주의 말씀의 빛으로 권력과 재물을 사모하는 그들의 속마음이 드러났다. (실물, 393~394)
◎ 사람이 정직하게 재물을 획득하면 성경은 어떤 사람도 부자가 되는 일을 정죄하지 않는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아니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사람에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재물이 하나님의 청지기로 행동하는 사람의 손에서 이기심 없이 사용될 때, 재물은 그것을 소유할 사람과 세상에 축복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세상의 보화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하나님의 요구와 동료 인간들의 필요에 무감각해진다. 자신의 부를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가옥에 가옥을, 토지에 토지를 더해간다. 그들은 주위에 온통 불행과 범죄, 질병과 죽음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집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채우고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애를 자기 이익을 위해 바치는 사람들은 그들 속에 하나님의 속성을 계발시키지 않고 악한 자의 속성을 계발시키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이 필요하다. 그들은 헛된 물질로부터 눈을 돌려 영원한 보화의 가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주는 기쁨, 곧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이 되는 축복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치료, 212-213)
<11월 30일/목, 권세자를 향한 선교>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제자들을 돕기 위하여 왔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빌라도와 잘 아는 사이였다. 두 사람 다 재산과 세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영광스럽게 장사 지내기로 결심하였다.
요셉은 담대히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간청하였다. …
요셉과 니고데모 어느 한 사람도 구주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그분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축출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산헤드린 의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통해 예수님을 보호하기를 바랐다. 한동안 그들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저희가 그리스도께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 교활한 제사장들은 그들의 계획을 꺾어 버렸다. 그들이 없을 때 예수께서는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준 바 되셨다. 이제 예수께서 돌아가셨으므로 그분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소망, 773)
◎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이르러 와서 근면과 진지한 믿음을 가지도록 우리를 분기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받고 영광의 소망인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믿음과 사랑의 거룩한 대상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그리스도께,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백성 앞에 그분의 기적, 그분의 자아 부정, 그분의 자아 희생, 그분의 고난, 그분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그분의 부활과 승리의 승천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모든 마음에 사랑과 강렬한 열정을 일깨우는 영감적인 복음의 주제들이다. …
예수님을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산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경험과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살아 있는 개인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으며 우리 속에 머무는 능력을 거룩한 성실함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백성들은 그리스도께 이끌려야만 한다. 그분의 구원 능력이 두드러져야 한다.
참된 제자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우리 구주께서 발하시는 진리의 귀한 보석을 발견하며 그것들의 귀중함을 분별하고 그 가치를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겸손하고 가르침을 잘 받는 자가 됨에 따라 점점 더 그들의 이해력은 그분의 율법으로부터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도록 열리게 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것들을 명명백백하게 제시하셨기 때문이다.(3기별, 186-187)
◎ 예수님께서 세상에 복음의 씨를 뿌리시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는 일을 잠시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크신 일꾼이신 주님의 정신을 본받아라. 죄로 병든 영혼들에게 어떻게 봉사해야 할지 죄인들의 친구이신 그분께 배우라. 그분은 늘 인간들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신다. …
하나님의 종들은 상류계층을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세상의 존경받는 자들과 연대 관계를 맺어 저들에게서 힘을 빌리고 성공을 의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종종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이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분을 떠나면 능력 대신 허약함만 드러나게 된다.(하늘을 향하여, 330~331)
<12월 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장사 지냄” (살아남는 이들, 227–229)
요한은 사랑하는 주님의 시체를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거칠고 무식한 군인들이 함부로 예수님의 시체를 거두어 아무 데나 욕되게 매장할 것을 생각하고 매우 근심하였다. 요한은 자기가 유대 나라의 당국자들에게서 아무런 호의도 받지 못하고 빌라도에게서도 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난처한 입장에서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타나 도와주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둘 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고 또한 빌라도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세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정중하게 장사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요셉은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 주라는 공식적인 명령을 내렸다. 제자 요한이 사랑하는 주님의 귀한 유해에 대하여 매우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아리마대 요셉이 총독의 위임장을 가지고 왔다. 니고데모는 빌라도와 요셉의 회견 결과를 예측하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근 가량이나 마련해 가지고 왔다.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죽었을 때도 예수만큼 더 존귀한 대우를 받은 일은 없었다.
그들은 정숙하고 공손하게 자기들의 손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서 찔리고 상하신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고 피 묻은 흔적을 씻기면서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 요셉은 자기를 위하여 준비해 두었던 돌을 파서 만든 새 무덤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무덤이 갈보리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것을 예수님을 위하여 즐겨 제공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는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를 넣어 가는 베로 싼 후에 세 제자가 함께 아직 사람을 장사하지 아니한 새 무덤으로 고귀하신 저희 구주를 모셔갔다. 그들은 찢어지고 상한 수족을 거두고 상한 손을 박동이 그친 가슴 위에 접어드렸다. 갈릴리 여인들은 사랑하는 저희 스승 예수님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나를 보려고 무덤에 가까이 왔다가 무덤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은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속에 누워 계신 줄을 알고 돌아갔다. 이 여인들은 최후까지 십자가 앞에 있었고 또한 최후까지 그리스도의 무덤에 있었다.
유대의 관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악마적인 목적을 달하긴 했으나 그들의 우려는 진정되지 않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질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복수했다는 통쾌감과 함께 요셉의 무덤에 누워 있는 그리스도의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 무덤에서 나오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마 27:62-64). 빌라도 역시 유대인들처럼 예수께서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벌하시려고 권능을 가지고 무덤 가운데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빌라도는 제사장의 요구에 따라 무덤을 지키도록 군사를 보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마 27:65~66).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킬 군사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무덤 문을 막은 돌에 인봉하여 아무도 몰래 그 무덤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며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 유혹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다. 그러나 유대인의 모든 계획과 수단은 다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개선의 기쁨을 더욱 완전하게 하였고 그 사실을 더욱 확증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살아, 227-229)
◎ “복종하는 의지”(높은 부르심, 105)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17).
하나님께 저들의 의지를 복종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수양을 받은 자들이다. … 저들은 순종하는 습관과 하나님께 봉사하는 습관을 연단하였다. 우리들은 도덕적 본성이 없는 피조물들이 아니다. 복음은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우리는 이 복음을 지적으로만 관련을 시켜, 마치 수학 공식, 또는 어떤 책을 연구하듯이 연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복음의 목적은 마음의 변화이다. 이 복음은 우리의 도덕적인 본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또 의지에 관하여 취급하고 있다. 이것은 상상력과 하나님의 지식을 대적하여 그 자신을 높이는 모든 높아진 것들을 내던지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한다.
영혼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것은 고집 센 마음이다. 구속의 과학을 배우려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온순한 학생이 됨으로 그 영혼의 전이 가장 거룩하신 분의 거처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려 하면, 모든 교만을 제거하여 영혼을 비움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에 그분의 형상을 각인시키실 수 있다.
그리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희생의 감명을 가지게 됨으로 영혼은 겸비하게 되고, 부드럽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유리한 기회가 있을 때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우리를 구속하신 분께 감사와 헌신을 나타내도록 성령께서 열렬한 욕망이 생기도록 하신다. 모든 봉사에서 충성과 사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영혼을 온순하게 할 것이요, 영혼이 그의 감정을 죽이고 하늘 앞에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과 자비하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진리에 동의하는 길들여지고 일상적인 동의로 억누를 수 없는 은혜를 가지고 있다.
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 얼마나 더 안전한가! 오직 하나님의 제단에서만 인간이 신성한 횃불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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