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세이셸(Seychelles)은 낯설고도 신비스러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생태계로 주목받는 곳이다. 세이셸을 찾은 여행자들은 화강암석이 놓인 해변에 누워 이국적인 낭만에 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연생태계에 관심 많은 여행자라면 에덴의 정원이라 불리는 정글 속에서 신비로운 야자열매를 발견하거나 멸종위기에 놓인 코끼리거북이나 사람에게 친근한 제비갈매기를 관찰하며 생애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세이셸은 작은 섬나라이자 국민 9만2,000명을 지닌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케냐와 탄자니아 해안지대로부터 약 1,500km 떨어져 있으며 마다가스카르, 코모로스 등 인도양 섬나라의 북쪽에 자리해 있다. 세이셸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에 속하며 정치·외교적으로도 아프리카 유니언에 속해 있다. 세이셸은 11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요 섬으로는 수도인 빅토리아(Victoria)가 자리한 마헤(Mahe)섬과 프랄린(Praslin)섬, 라 디그(La Digue)섬이다.
- ▲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의 프랄린.
- 빅토리아에서 소박한 일상을 만나다
빅토리아는 인구가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섬나라에서 가장 인간적인 풍경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의 대다수는 흑인이지만 연한 초콜릿빛의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 한눈에 봐도 이들의 생김새가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세이셸은 18세기 후반 7명의 유럽인과 120여 명의 흑인 노예들로 시작한 나라인데, 그 후 아랍, 중국, 인도 등지에서 상인들이 오가며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은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들의 문화를 크레올(Creole) 문화라 부르는데, 크레올은 세이셸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일반적으로 크레올은 프랑스인과 프랑스 식민통치하의 카리브해 도서국가의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나 그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크레올 문화는 이들의 여유롭고 낙천적인 생활 풍습 속에 만들어진 음악, 무용, 요리 등 다방면의 전통 문화를 가리킨다. 이곳 사람들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배우지만 자신들 고유의 크레올어를 좀더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매년 10월 말에는 빅토리아에서 크레올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이 축제기간에는 카니발 스타일의 퍼레이드를 비롯해 음악공연, 미술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빅토리아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건축물은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작은 도시이지만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시대에 세워진 오래된 2층 건물이 아직 남아 있고, 좁은 도로 사이로 행인들과 꼬리를 무는 차량들이 오가는 분주한 일상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 ▲ 쿠쟁섬 해변에서 가이드가 방문객들에게 제비갈매기를 보여 주고 있다.
- 이곳의 관광 포인트는 바로 이곳 사람들의 느리지만 여유로운 일상을 둘러보는 일이다. 이러한 모습은 시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빅토리아에서 가장 소박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의 중앙시장으로 불리는 셀윈 클라크 마켓(Selwyn Clarke Market)이다. 우리의 재래시장과 비슷한 형태를 띤 이 방대한 시장에는 다채로운 열대 과일과 야채, 각종 생선과 해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세이셸의 문화적 특색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빅토리아 시내에 자리한 선 스트로크(Sun Stroke)라는 아트 갤러리가 있다. 이 아트 갤러리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1층에는 장신구, 목조장식품 등 다양한 민예품과 전통 문양이 들어간 파레오(Pareo : 손으로 나염한 천을 허리에 둘러 해변가 등지에서 스커트로 입는 의상)가 진열되어 있고, 2층에는 주인이 손수 그린 회화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 주인은 크레올 페스티벌 기간에 스태프로 참여해 장식과 미술 부분을 담당했다고 한다.
- ▲ 프랄린섬의 선착장.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마이 자연보호구역
프랄린섬은 마헤섬에서 페리로 고작 1시간 거리다. 거리로는 45km 떨어져 있다. 37㎢의 면적을 지닌 프랄린 섬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조류 관찰로 유명한 쿠쟁(Cousin)섬으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 바닷가에 면해 있는 숙소로 찾아온 모터보트에 몸을 실었다.
한참을 달린 뒤 보트는 그냥 섬 위의 모래 위에 철컥 기계적 힘을 빌어 육중한 몸체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섬에서 새들을 관찰하는 투어는 매일 지정된 시간에 진행된다. 따라서 미리 예약을 통해서만 방문이 가능하다. 오전 9시경 이 섬에 모인 방문객 수는 20~30명 정도 되었고, 이 섬에서 투어진행자로 일하는 전문 가이드인들이 6~7명 되어 보였다. 팀을 나누어 조류 탐사를 시작했다.
- ▲ 엉킨 나뭇가지에 걸려 날지 못하는 작은흑제비갈매기(Lesser Noddy)를 도마뱀의 일종인 세이셸 스킹크가 바라보고 있다.
- 먼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검은제비갈매기(Noddy)를 발견했다. 그 다음에 육중한 몸으로 어슬렁거리는 알다브라 터틀(Aldabra Turtle)이 시야에 들어왔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코끼리거북이라고도 불리는 알다브라 터틀은 성인 남성 다섯 명이 달려들어도 결코 들어올리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 보였는데, 실제 평균 몸무게는 무려 120kg에 달한다고 한다.
미니 도마뱀이라 불리는 세이셸 스킹크(Seychelles Skink)도 볼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보호색을 띠고 있어 거무튀튀한 나뭇가지 더미 속에 묻혀 그 형태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오직 세이셸에만 서식하는 독특한 생물이다. 소라게도 볼 수 있었다. 이 소라게들은 주로 야자열매를 갈아 먹는다. 세이셸에는 모두 32종의 바닷게가 서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 식용으로 널리 쓰이는 바닷게를 프랄린 라치오 해변가(Anse Lazio)에 자리한 로컬 레스토랑에서 맛보았다.
조류 탐사는 두 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작은 흑제비 갈매기(Lesser Noddy)가 가시덤불 같은 엉킨 나뭇가지에 다리와 꽁지가 걸려 날지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파닥거리다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주변에 가시덤불이 많아 이러한 상황에 처한 새들이 종종 있는데, 대부분 굶어 죽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 ▲ (위) 쿠쟁섬에서 만날 수 있는 알다브라 터틀. 코끼리거북이라고도 불린다. (아래) 그루터기에 앉아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 제비갈매기.
- 이번 조류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그루터기 같은 고목의 아랫부분에 둥지를 트고 알을 부화하는 바닷새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섬의 새들은 방문객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한 쌍의 흰제비 갈매기(Fairy Tern)가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명장면 중 하나였다.
프랄린섬의 또 하나의 명소인 마이 자연보호구역(Vallee de Mai Nature Reserve)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프랄린섬의 중앙부에 자리해 있다. 이 지역은 야자수로 뒤덮인 울창한 숲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에 이 섬에서 가장 큰 산인 373m 높이의 폰드 아조레(Fond Azore)가 자리해 있다. 지질학적으로 이곳의 토양은 화산암이나 산호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세이셸의 모든 지역과 동일하게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1930년대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처녀지였다. 1966년이 되어서야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야생조류 보호지로 설정했다. 그리고서 1979년에 좀 더 나은 보존과 관리를 위해 국립공원으로 승격시켰고 프랄린국립공원이라 명했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오늘날까지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면적을 지닌 세계자연유산이다.
- ▲ 마헤섬을 바라보는 뷰가 일품인 생탄 아일랜드 리조트의 아웃도어 풀.
- 이곳이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코코 드 메르(Coco de Mer)라는 희한하게 생긴 거대한 야자열매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열매의 무게는 무려 18kg에 달한다. 코코 드 메르 나무는 길이가 보통 7~10m 정도로 엄청나다. 또한 이곳에는 코코 드 메르 외에도 다섯 종류의 이 지방 고유의 야자수가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식생 외에도 이곳에는 세이셸 블랙 패럿을 비롯해 게, 달팽이, 도마뱀 등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데, 이곳의 상당수의 생물은 태곳적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잔존생물로 여겨지고 있다.
에덴동산만큼이나 신비롭고 낯선 아름다움 선사
혹자는 이곳을 에덴의 정원이라 부른다. 어느 누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인위적으로 만든다 해도 이보다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으랴? 거대한 야자수와 희귀식물로 울창한 정글 숲은 조물주의 작품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에덴의 정원이라 부르기에는 필자가 방문했을 시기의 이곳은 너무 축축하고 어두웠던 게 사실이다. 이곳이 어둡고 축축한 이유는 높은 야자수가 너무 울창하게 분포해 있어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을 한두 시간 거닐어보니 태초의 정글과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방문자의 설렘을 압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군 육군대장이었던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은 1881년 군사적 목적으로 프랄린 섬을 방문한 후에 마이 자연보호지역을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같다고 열렬히 선전했는데 그때부터 프랄린섬의 마이 자연보호구역이 서구사회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 ▲ (위부터)생탄아일랜드의 오션뷰 레스토랑. / 쿠쟁섬 해변가 인근에서 발견한 바닷게. 세이셸에는 32종의 바닷게가 서식하고 있다. / 빅토리아의 셀윈 클라크 마켓의 가판대에서 상인이 인도양에서 갓 잡은 생선을 팔고 있다.
- 심지어 찰스 조지 고든은 이곳에 있는 거대한 야자수가 ‘선악과 나무’라는 설명을 더하며 마이보호구역이 에덴동산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선악과는 코코 드 메르인 셈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쾌히 날려버린 것은 와틀리 에스트릿지(Watley Estridge) 작가가 지적한 사항 때문이었다. 그는 코코 드 메르의 무게와 두께를 감안하면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코코 드 메르를 혼자가 쪼개 맛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 보면 매우 일리 있는 말이다. 일반 여성들은 최고 42kg까지 무게가 나가는 코코 드 메르를 들기도 벅찬 게 사실이다. 진실이야 어떠하든 마이 자연보호구역은 이처럼 에덴동산만큼이나 신비롭고 낯선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요 속의 휴식처
세인트 앤 아일랜드 리조트 Sainte Anne Island Resort
일정상 프랄린섬과 라 디그섬을 방문한 뒤 세이셸을 떠나기 전 마헤섬의 생탄 아일랜드에서 하루 더 머물렀다. 마헤섬에 머무는 동안 특별한 휴식과 다이닝 체험을 원한다면 필자가 머물렀던 마헤섬 인근에 자리한 생탄(Sainte Anne)섬의 생탄 아일랜드 리조트를 추천한다. 87개의 프라이빗 빌라로 이루어진 이 리조트는 땅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화려한 진분홍빛의 부겐빌레아와 무궁화처럼 화사한 붉은 히비스쿠스로 치장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고요한 분위기는 자칫 휴식이 명상 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줄 정도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해변을 거닐거나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정말 최적의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프라이빗 비치와 프라이빗 아웃도어풀을 지닌 빌라에 머물면서 클래린스(Clarins)에서 운영하는 풀서비스를 갖춘 스파에서 다양한 트리트먼트 서비스를 받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이곳에 머무는 여행객들은 하이킹을 통해 주변의 기막힌 오션뷰를 내려다보거나 카야킹을 즐기면서 섬 주변의 바다 풍광을 감상하며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이 리조트만의 특색 있는 공간은 바로 해변에 놓인 러스틱풍의 아웃도어 다이닝 스폿이다. 가히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와서 만들었을 법한 공간 속에서 목재의자에 누워 해질 무렵 낙조를 바라본다면 마헤섬의 산 너머 노을이 불타는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소원을 이룬 셈 치자.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안식을 누리고 싶다는 그 오래된 염원이 이곳에 와서 이루어질 것이다.
- ▲ 원시적 정글형태의 모습을 잘보존하고 있는 마이자연보호구역.
- 여행팁
1 가는 길
세이셸로 가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에티하드 항공을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해 아부다비를 경유, 세이셸의 마헤국제공항까지 가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아부다비까지는 10시간40분, 아부다비에서 세이셸까지는 4시간 35분 소요된다. 참고로 에어세이셸은 에티하드와 아부다비-세이셸 구간을 공동 운항한다. 문의 에티하드항공 서울사무소 02-3483-4888 (www.etihad.com.ko-kr)
2 세인트 앤 아일랜드 리조트 St Anne Island Resort
국내 최대 휴양지 전문 여행사인 드림아일랜드(http://dreamisland.co.kr)에서는 세인트 앤 리조트를 비롯해 세이셸의 주요 리조트 상품을 제공한다. 세인트 앤 아일랜드 리조트의 경우 신혼부부 및 남녀 커플로 예약할 때 식사와 음료가 포함되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숙박 및 트랜스퍼 비용 및 항공요금(세금 포함)을 모두 포함한 1인 여행경비(현지 4박 기준)는 2~7월 기준으로 1인당 약 330만 원, 8~10월 기준으로 1인당 약 340만 원이다. 문의 드림아일랜드 여행사 02-566-3612.
3 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관광목적으로 비자 없이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4 환율
세이셸의 화폐단위는 루피(Rupee)이며, 1루피는 한화로 약 78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