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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일 대림절 둘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9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4:1-11절(신402)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
오늘이 교회력의 신년인 대림절의 시작입니다. 대림절(Advent)은 ‘도착’을 의미합니다. 공항에서나 기차역에서 오기로 약속되어있는 사람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과 같이 주 예수의 임재(그의 재림과 현재의 임재)를 성탄절까지 4주 동안 기다리며 사모하는 절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천국에 갔다가 온 사람들의 간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간증도 조금 참조할 필요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에 대한 더욱 확실한 요한의 환상이 있습니다. 그의 환상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성경(요한계시록)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한은 “우리의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1:9)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요한과 우리가 한 몸(성도의 교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는 요한의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늘 보좌의 광경을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기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1:1).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요한의 환상(그의 둘째 환상의 시작)을 통하여 하늘에서 온 우주와 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과 그의 주위를 살펴보시고 큰 확신 가운데서 경배와 찬송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1, 하늘로 요한의 초청(1-2a)
세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신 우리 주 예수는 다시 요한을 하늘로 초청하십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라는 표현은 계시 문학의 일반적 관용구로서 첫째 환상이 끝나고 새로운 환상으로 넘어가는 전환의 신호입니다(7:1, 9; 15:5; 18:1).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고,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라’라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은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1:10)이므로 일곱 촛대(교회) 사이에 계신 우리 주 예수(1:12-13)의 음성입니다.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은 ‘곧 성령에 감동되어서’(2a) 신비한 방법으로 하늘에 올라가 모든 광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4:1-16:21).
주 예수는 그에게 ‘이리로 올라오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요한에게만 해당하기에 교회의 휴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에 ‘휴거’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리로 올라오라’를 교회의 휴거(살전4:16-17)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환난 전 휴거설)이 우리 사이에 너무 만연해 있어, 방심하면 위험하기에 조금 길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전 인류의 일곱 세대(경륜) 동안에 인간을 각각 다르게(타락 이전은 무죄, 타락부터 노아까지는 양심,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인간 통치,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는 약속,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는 율법, 교회 시대는 은혜, 그리고 천년왕국 시대) 다루신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일곱 교회의 각 시대(2-3장)가 ‘이리로 올라오라’(1), 즉 ‘큰 환난’ 전에 모든 성도가 하늘로 올라가(휴거) 끝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고 나면, 요한계시록의 남은 부분은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상관이 있게 됩니다. 그들은 구약 예언이 문자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성취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천년왕국(20:1-6)은 구약의 신권정치, 희생 제도, 그리고 율법이 복원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휴거 된 성도들은 하늘에서 6장부터 19장까지 묘사된 모든 일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나는 것을 다만 구경할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이론은 진실한 성도는 ‘큰 환난’ 전에 휴거가 될 것이기에 ‘큰 환난’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많은 호기심과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환난의 면제를 약속하지 않고 오히려 환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6:33절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처럼 우리는 환난의 면제를 약속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서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7:14). 요17:15절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우리 주 예수가 요한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신 이유는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라’입니다. 여기서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은 교회 시대의 전 역사를 의미하지만, 연대적 순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1:1, 19). 이는 이후의 장들에서 묘사되는 사건들의 중에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는 과거에 이미 죽으셨고(5:1-13), 12:1-6절도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건들의 묘사입니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반드시 일어날 사건들의 순서가 아니라, 다음에 주어지는 환상(묵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2. 요한이 환상으로 본 하늘의 보좌 광경입니다(2b-8a).
1) 하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2b-3).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에서 ‘보좌’와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이’를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아 계신 이’는 만물의 창조주요, 주관자요, 통치자이신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보좌’는 하나님의 왕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계시록에서 38번이나 나와서 요한계시록에서 그 중요성을 차지합니다. 이것은 ‘서울의 봄’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이 불의가 정의를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우리 주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시103:1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그러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어떤 모습인가요? 여기서 두 번 나오는 ‘모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본문의 ‘호모이오스(같은) 호라세이(외모)’라는 어구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여 광채와 빛이 나는 보석들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이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기에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거나 묘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벽옥’은 하나님의 순전함과 거룩함의 상징이며, ‘홍보석’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보좌를 두르고 있는 녹보석 모양의 무지개’(3)는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심(창9:8-17)을 상징합니다.
2)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이십사 보좌와 장로입니다(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이십사 장로’는 누구일까요? 장로들은 열두지파 및 열두 사도들과 동일시되는, 즉, 구원받은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하늘의 영적 존재들입니다. 22:9절입니다. “그(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그러므로 장로들은 곧 영화롭게 되고 보좌에 앉게 될 ‘나라와 제사장들’(1:6)인 교회를 대표하는 하늘의 존재들로서 계속 하나님을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10-11, 7:11-12),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사역(5:8)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도들과 같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왕권)을 쓰고’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3) 보좌로부터 나고 있는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입니다(5a). 이것은 하나님의 현현(출19:16)을 의미하며, 일곱 심판의 결론들에 등장합니다(8:5, 11:19, 16:18). 이는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의 근원이심을 암시합니다(19:20, 20:9-10, 21:8).
4)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입니다(5b).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이것은 성령을 가리키며, 성령이 하늘에도 계시면서 동시에 일곱 촛대인 교회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5)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입니다(6a).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보좌의 바닥에 해당하는 하늘 궁창의 형상입니다. 겔1:22절입니다.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여기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수정 같은 우리 바다’로 변형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변형은 창1:7절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특히 하늘 성전을 반영하는 솔로몬 성전에 ‘놋으로 부어 만든 바다’(왕상7:23-26)가 있었습니다. 이 바다의 용도는 번제에 속한 물건을 씻거나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대하4:6). 그러므로 솔로몬 성전의 정결함을 위한 용도인 바다와 같이 ‘수정과 같은 바다’는 하늘 성전의 거룩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6)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입니다(6b-8a).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여기 ‘같고’는 우리가 아는 생물들과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네 생물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겔1장의 네 생물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여기는 여섯 날개를 가진 생물인데, 에스겔서는 네 날개를 가진 생물입니다(겔1:6).
그들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하늘의 영적 존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찬양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만물을 대표해서 그들이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입니다(8, 5:8, 7:11, 19:4).
또한,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표하는 하늘의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지혜로운 존재로서 하나님에게 봉사하며, 여섯 날개를 지녔다는 것은 재빠른 신속성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요한의 환상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의 초대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의 이것들을 분명하게 보시면서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이 세상에서 위로를 받으시고, 정의가 불의를 반드시 이긴다는 우리 주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3. 창조주 우리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경배입니다(8b-11).
1)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의 찬양입니다(8b-9).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먼저 그들의 찬양의 자세입니다(8b).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창조주 우리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제 그들의 찬양의 내용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양합니다. 곧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는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과 같지만 창조주 우리 하나님은 변함없이 항상 거룩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사6:1-3).
그들은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합니다. 즉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라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당시 황제 예배에서 사용한 칭호 ‘우리 주요, 하나님’이라는 찬양에 대항하는 표현입니다. 즉 로마 황제가 주 하나님이 아니며, 창조주 하나님이 ‘주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이’로서 장차 황제를 심판하실 ‘주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찬양합니다. 즉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고 찬양합니다(1:4).
그들의 찬양을 요약하면, 그들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찬양한 것입니다(9).
2) 구속받은 하나님 백성을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의 찬양입니다(10-1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왜냐하면)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먼저, 그들의 찬양의 자세입니다(10). 첫째로 그들은 우리 주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겸손하게 절대로 복종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관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우리가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의 것을 그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즉 내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과 존귀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찬양의 내용입니다(11).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주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찬양합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찬양합니다. 그들은 ‘(왜냐하면)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찬양합니다. 즉 주가 창조자이시기에 그들의 찬양에 합당하시다는 것입니다. 특히 만물은 창조되기 전에 이미 주의 마음과 뜻 안에 존재하였고, 그의 뜻(목적)에 따라 창조되었기에 창조주만이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이 하늘에 올라갔을 때만 아니라 지금도 하늘에는 그들의 찬양과 경배가 밤낮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예배)와 찬양을 하여야 할까요? 우리도 그들과 같이 우리의 존재의 목적이 우리 주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모든 교회)의 예배가 하늘에서 그들의 경배와 찬양에 참여하고 그들과 같이 전심으로 우리 주 하나님을 경배와 찬양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의 환상을 통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하늘에서 온 우주와 모든 역사의 창조주, 주관자, 그리고 통치자이신 우리 주 하나님과 그 주위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의 결론은 우리 주 하나님이 하늘에서 항상 거룩하시며, 영광과 존귀와 능력으로 불의가 공의를 이기게 보이는 악한 세상을 그의 뜻대로 통치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사실에 먼저 위로를 받으시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시고, 이 사실에 근거한 확신과 소망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가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천지가 요동하여도 우리 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새 언약대로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복음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찬송 8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