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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한 번 이 수제(首題)를 봉창(奉唱)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自身)의 법성(法性)의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顯出)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느니라. 예(例)컨대 새장 속에 있는 새가 울 때, 하늘을 나는 많은 새가 동시(同時)에 모이는데 이를 보고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이에 우인(愚人)이 이르되, 수제(首題)의 공덕(功德) 묘법(妙法)의 의취(義趣)는 지금 듣고 보니 소상(昭詳)하외다. 다만 이 취지(趣旨)는 틀림없이 경문(經文)에 이것이 실렸느뇨, 어떠하뇨. 성인(聖人)이 가로되, 그 도리(道理)가 밝혀진 이상은 경문(經文)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청(請)에 따라 이를 밝히리라. 법화경(法華經) 제팔(第八)·다라니품(陀羅尼品)에 가로되 「그대들 단지 능(能)히 법화(法華)의 이름을 수지(受持)하는 자(者)를 옹호(擁護)하는 복(福)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이 문(文)의 의(意)는 부처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겠다고 맹세함을 칭찬하여 그대들이 법화(法華)의 수제(首題)를 갖는 사람을 수호(守護)하겠다고 맹세하는 그 공덕(功德)은 삼세요달(三世了達)의 부처의 지혜(智慧)도 역시 미치기 어렵다고 설(說)하셨느니라. 불지(佛智)가 미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으리요마는 법화(法華)의 제명(題名)을 수지(受持)하는 공덕(功德)만은 이를 모른다고 말했느니라. 법화일부(法華一部)의 공덕(功德)은 오직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속에 들어 있느니라. 일부팔권(一部八卷) 문문(文文)마다 이십팔품(二十八品)이 생기(生起)는 다를지라도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동등(同等)하니라. 비유컨대 일본(日本)의 이자(二字) 중(中)에 육십여주(六十餘州)·섬 둘 들어가지 않는 지방(地方)이 있겠는가, 포함되지 않는 군(郡)이 있으리요. 비조(飛鳥)라고 하면 하늘을 나는 것이라 알고 주수(走獸)라 하면 땅 위를 달리는 것으로 아는데, 일체(一切) 이름이 중요함은 대체로 이와 같으니라. 천태(天台)는 명전자성(名詮自性)·구전차별(句詮差別)이라고도 명자대강(名者大綱)이라고도 판정(判定)함은 이 뜻이니라. 또 명(名)은 사물(事物)을 불러들이는 덕(德)이 있으며 사물(事物)은 명(名)에 응(應)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법화제명(法華題名)의 공덕(功德)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8~9쪽나의 멸후(滅後)·정상二천년(正像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에 이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만을 홍통(弘通)하는 자(者)가 출래(出來)하리라
각기(各其) 나의 제자(弟子)라고 자칭(自稱)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겁내지 말지어다.
각자(各自)는 결단을 내리시라. 이 몸을 법화경(法華經)과 바꿈은 돌을 금(金)으로 바꾸고 분(糞)을 쌀로 바꾸는 것이니라.
부처의 멸후(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 동안 가섭(迦葉) 아난(阿難) 등(等) 마명(馬鳴) 용수(龍樹) 등(等) 남악(南岳) 천태(天台) 등(等) 묘락(妙樂) 전교(傳敎) 등(等) 조차도 지금까지 홍통(弘通)하시지 않았던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 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말법(末法)의 초(初)에 일염부제(一閻浮提)에 홍통(弘通)이 되실 서상(瑞相)으로서 니치렌(日蓮)이 앞장섰느니라법화경(法華經)은 일법(一法)이지만 기(機)에 따라 시(時)에 따라 그 수행(修行)은 만차(萬差)이니라. 부처가 기록(記錄)하여 가로되 「나의 멸후(滅後)·정상二천년(正像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에 이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만을 홍통(弘通)하는 자(者)가 출래(出來)하리라, 그 때 악왕(惡王)·악비구(惡比丘) 등(等)·대지미진(大地微塵)보다도 많아서 혹(或)은 대승(大乘), 혹(或)은 소승(小乘) 등(等)으로써 다툴 것인데 이 제목(題目)의 행자(行者)에게 책망(責望)당하여 재가(在家)의 단나(檀那)들을 꾀어서 혹은 욕하고 혹(或)은 치고, 혹(或)은 옥(獄)에 가두고 혹(或)은 소령(所領)을 몰수하고 혹(或)은 유죄(流罪) 혹(或)은 참수(斬首)한다는 등(等) 위협하여도 퇴전(退轉)함이 없이 홍통(弘通)한다면 원적(怨敵)이 된 자(者)들은 국주(國主)는 자중지난(自中之亂)이 시작(始作)되어 아귀(餓鬼)와 같이 서로를 해치고 내종(乃終)에는 타국(他國)으로부터 침공(侵攻)당하리라. 이는 오로지 범천(梵天)·제석(帝釋) 일월(日月) 사천(四天)등(等)이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인 나라를 다른 나라로 하여금 침공(侵攻)하시게 함이라」고 설(說)하여져 있느니라. 각기(各其) 나의 제자(弟子)라고 자칭(自稱)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겁내지 말지어다. 부모(父母)를 생각하고 처자(妻子)를 걱정하며 소령(所領)에 미련을 두지 말지어다. 무량겁(無量劫)부터 지금까지 부모자식(父母子息) 때문에 소령(所領) 때문에 목숨을 버린 일은 대지(大地)의 미진(微塵)보다도 많았으나 법화경(法華經) 때문에는 아직 한 번도 버리지 않았었다. 법화경(法華經)을 많이 수행(修行)하였지만 이러한 일이 출래(出來)하였으므로 퇴전(退轉)하고 말았느니라. 비유(譬喩)컨대 물을 끓여서 냉수(冷水)에 붓고 부시를 치는데 이루지 못함과 같으니, 각자(各自)는 결단을 내리시라. 이 몸을 법화경(法華經)과 바꿈은 돌을 금(金)으로 바꾸고 분(糞)을 쌀로 바꾸는 것이니라.
부처의 멸후(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 동안·가섭(迦葉)·아난(阿難) 등(等)·마명(馬鳴)·용수(龍樹) 등(等)·남악(南岳)·천태(天台) 등(等)·묘락(妙樂)·전교(傳敎) 등(等) 조차도 지금까지 홍통(弘通)하시지 않았던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말법(末法)의 초(初)에 일염부제(一閻浮提)에 홍통(弘通)이 되실 서상(瑞相)으로서 니치렌(日蓮)이 앞장섰느니라.
나의 동류(同類)들은 이진삼진(二陣三陣) 이어져서 가섭(迦葉)·아난(阿難)보다도 수승(殊勝)하고 천태(天台)·전교(傳敎)보다도 월등(越等)할지어다. 조그마한 소도(小島)의 국주(國主) 등(等)의 위협(威脅)을 두려워 한다면 염마왕(閻魔王)의 책망을 어찌 하리오. 부처의 사자(使者)라고 자칭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은 하열(下劣)한 사람들이라고 타일렀느니라.
사도초(佐渡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910~1쪽 별칭 : 本名 種種 御振舞御書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여래(如來)란 삼계(三界)의 중생(衆生)이며, 이 중생(衆生)을 수량품(壽量品)의 눈을 뜨고 보면 십계본유(十界本有)라고 여실(如實)히 지견(知見)했느니라, 삼계지상(三界之相)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이며 본유(本有)의 생사(生死)라고 보면 무유생사(無有生死)이다, 생사(生死)가 없으면 퇴출(退出)도 없고 다만 생사(生死)가 없음이 아니니라. 생사(生死)를 보고 염리(厭離)함을 미(迷)라 하며 시각(始覺)이라 한다, 그리고 본유(本有)의 생사(生死)라고 지견(知見)함을 오(悟)라고 하며 본각(本覺)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 때 본유(本有)의 생사(生死) 본유(本有)의 퇴출(退出)이라고 개각(開覺)하느니라. 또 가로되, 무(無)도 유(有)도 생(生)도 사(死)도 약퇴(若退)도 약출(若出)도 재세(在世)도 멸후(滅後)도 모두가 본유상주(本有常住)의 거동(擧動)이니라. 무(無)란 법계동시(法界同時)에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거동(擧動) 이외(以外)는 없느니라. 유(有)란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이 있는 그대로 십계본유(十界本有)의 묘법(妙法)의 전체(全體)이니라. 생(生)이란 묘법(妙法)의 생(生)이므로 수연(隨緣)이요, 사(死)란 수량(壽量)의 사(死)이므로 법계동시(法界同時)에 진여(眞如)이고, 약퇴(若退)인 고(故)로 멸후(滅後)이며 약출(若出)인 고(故)로 재세(在世)이니라, 그러므로 무사퇴멸(無死退滅)은 공(空)이고 유생출재(有生出在)는 가(假)이며 여래여실(如來如實)은 중도(中道)이니라. 무사퇴멸(無死退滅)은 무작(無作)의 보신(報身)이요, 유생출재(有生出在)는 무작(無作)의 응신(應身)이요, 여래여실(如來如實)은 무작(無作)의 법신(法身)이니라. 이 삼신(三身)은 나의 일신(一身)이며, 일신즉삼신명위비(一身卽三身名爲秘)란 이것이니라. 삼신즉일신(三身卽一身) 명위밀(名爲密)도 이 의(意)이니라, 그러므로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당체(當體)의 연화(蓮華)의 부처란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 등(等)이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보호(寶號)를 수지(受持)해 받들기 때문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53~4쪽제목 :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당체(當體)의 연화(蓮華)의 부처란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 등(等)이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보호(寶號)를 수지(受持)해 받들기 때문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 때 본유(本有)의 생사(生死) 본유(本有)의 퇴출(退出)이라고 개각(開覺)하느니라.
또 가로되, 무(無)도 유(有)도 생(生)도 사(死)도 약퇴(若退)도 약출(若出)도 재세(在世)도 멸후(滅後)도 모두가 본유상주(本有常住)의 거동(擧動)이니라.
무(無)란 법계동시(法界同時)에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거동(擧動) 이외(以外)는 없느니라. 유(有)란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이 있는 그대로 십계본유(十界本有)의 묘법(妙法)의 전체(全體)이니라.
생(生)이란 묘법(妙法)의 생(生)이므로 수연(隨緣)이요, 사(死)란 수량(壽量)의 사(死)이므로 법계동시(法界同時)에 진여(眞如)이고, 약퇴(若退)인 고(故)로 멸후(滅後)이며 약출(若出)인 고(故)로 재세(在世)이니라제목 : 법(法)을 듣고 환희(歡喜)하여 찬탄(讚歎)하고 내지(乃至) 일언(一言)을 발(發)하니 즉 이는 이미 일체삼세(一切三世)의 부처를 공양(供養)함이니라
이제 이 삼계(三界)는 모두 이는 나의 유(有)이며, 그 중(中)의 중생(衆生)은 모두 이는 나의 자(子)이니라. 게다가 지금 이 곳은 여러 환난(患難)이 많으나 오직 나 일인(一人)만이 능(能)히 구호(救護)를 함《나는 한방울 빗방울이 되어》
비가 내립니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문득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내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곳이 어디가 되면 좋을까
시궁창에 떨어지면 떨어지는 순간 바로 악취를 풍기는 내가 되고말겠지만 그래도 결국 흐르고 흘러서 한바다로 향해가겠지
심심계곡 청정수에 떨어지면 떨어지는 순간 곧 바로 청정수가 되어 계곡을 따라 흥겹게 여행을 하다가도 한순간에 진흙탕물을 만나기도 하겠지
태평양 한 가운데 떨어지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곧 거대한 생명의 탄생지인 대양이 되고
비록 단 한방울의 미약한 빗방울, 민물이고 약간의 불순물도 섞여있지만 태평양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곧 바로 바닷물이 되고 대양인 태평양이 되겠지
내가 곧 태평양이고 태평양이 곧 내가 되는 순간은 떨어지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시궁창에 떨어진 오염수나 심심계곡에 떨어진 청정수나 하늘에서 바로 바다에 떨어진 빗방울이나 결국에는 예외없이 한바다와 하나가 되어가겠지
부처는 법화경 수량품에서 ‘약퇴약출(若退若出)’이라고 설하면서 생명이란 혹은 나왔다가 혹은 물러나기도 하는 것, 즉 생(生)은 생명의 현재화이고 사(死)는 생명의 잠재화라고 명쾌하게 구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TV의 전파는 영상과 소리를 담고있지만 잠재화되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신기에 주파수를 맞추면 그 소리와 영상이 현재화되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보이는 상태를 색(色)이라하고, 보이지 않는 상태를 공(空)이라고 합니다.
색이라는 것은 겉으로 표출되어 존재가 인식되는 상태 즉 생(生)이고, 공이라는 것은 명복(冥伏)되어 인식하기 어려운 잠재화된 상태 즉 사(死)입니다.
그러면 공이라는 것도 결국 무(無)가 아니고 유(有)가 됩니다.
단지 표출되지 않고 잠재화되어 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색과 공은 똑같은 실체가 단지 그 존재 형태만 달리해서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석존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경에 설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이요, 생사불이(生死不二)라는 말입니다.일체중생(一切衆生)의 복(福)은 일모(一毛)와 같이 가볍고 부처의 복(福)은 대산(大山)과 같이 무겁도다. 일체(一切)의 부처의 복(福)은 범천(梵天) 삼수(三銖)의 옷이 가벼운것과 같다. 법화경(法華經)의 일자(一字)의 복(福)이 무겁기는 대지(大地)가 무거운것과 같다. 인(人)이 가볍다고 함은 부처를 인(人)이라 하고 법(法)이 무겁다고 함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대저 법화이전(法華已前)의 제경(諸經) 및 제론(諸論)은 부처의 공덕(功德)을 칭찬하였으니 부처와 동등(同等)하니라. 이 법화경(法華經)은 경(經)의 공덕(功德)을 칭찬하였으니 부처의 부모(父母)와 같으니라. 화엄경(華嚴經)·대일경(大日經) 등(等)이 법화경(法華經)보다 열등(劣等)하다 함은 일모(一毛)와 대산(大山), 삼수(三銖)와 대지(大地)와 같다.제목 :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 이는 여래(如來) 한 사람의 고(苦)이니라
니치렌(日蓮)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동일고(同一苦)는 남김없이 이는 모두 니치렌(日蓮) 한 사람의 고(苦)라고 말하느니라.
사람들은 사백여년(四百餘年) 동안에 죽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면 그 후(後) 타방세계(他方世界)에서 태어나 또 죽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다. 그와 같이 떨어지는 자(者)는 대지미진(大地微塵)보다도 많으니 이는 모두 삼대사(三大師)의 죄과(罪科)로다, 이것을 니치렌(日蓮)은 많이 보면서 거짓으로 못 본 체하고 말하지 않으면 함께 타지옥(墮地獄)의 자(者)가 되어서 일분(一分)의 죄과(罪科)도 없는 몸이 시방(十方)의 대아비옥(大阿鼻獄)을 두루 거칠 것이니 어찌 신명(身命)을 버리고서라도 외치지 않을소냐.
지금의 삼대사(三大師) : 고보(弘法)·지카쿠(慈覺)·지쇼 등(智證 等)의 방법자들묘락(妙樂) 가로되 「네가지가 같지 않다 해도 법(法)으로써 본(本)으로 한다」 운운(云云). 구계(九界)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부처에 상대(相對)해서 이것을 헤아려보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복(福)은 일모(一毛)와 같이 가볍고 부처의 복(福)은 대산(大山)과 같이 무겁도다. 일체(一切)의 부처의 복(福)은 범천(梵天) 삼수(三銖)의 옷이 가벼운것과 같다. 법화경(法華經)의 일자(一字)의 복(福)이 무겁기는 대지(大地)가 무거운것과 같다. 인(人)이 가볍다고 함은 부처를 인(人)이라 하고 법(法)이 무겁다고 함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대저 법화이전(法華已前)의 제경(諸經) 및 제론(諸論)은 부처의 공덕(功德)을 칭찬하였으니 부처와 동등(同等)하니라. 이 법화경(法華經)은 경(經)의 공덕(功德)을 칭찬하였으니 부처의 부모(父母)와 같으니라. 화엄경(華嚴經)·대일경(大日經) 등(等)이 법화경(法華經)보다 열등(劣等)하다 함은 일모(一毛)와 대산(大山), 삼수(三銖)와 대지(大地)와 같다. 내지(乃至) 법화경(法華經)의 최하(最下)의 행자(行者)와 화엄(華嚴)·진언(眞言)의 최상(最上)의 승려(僧侶)와 비교(比較)하면 제석(帝釋)과 원숭이, 사자(師子)와 토끼와의 승렬(勝劣)이니라. 그런데 백성(百姓)이 왕(王)이라 떠들면 반드시 목숨이 없어지며, 제경(諸經)의 행자(行者)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보다 뛰어났다고 말하면 반드시 나라도 망(亡)하고 지옥(地獄)에 들어갑니다.
보경법중사(寶輕法重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474~5쪽지금의 삼대사(三大師)의 교화(敎化)에 따라서 일본국(日本國) 사십구억구만사천팔백이십팔인(四十九億九萬四千八百二十八人)이 혹(或)은 가로되, 일본기(日本紀)에 교키(行基)가 인수(人數)를 말하되, 남녀(男女) 사십오억팔만구천육백오십구인(四十五億八萬九千六百五十九人) 운운(云云)의 일체중생(一切衆生) 또 사십구억등(四十九億等)의 사람들은 사백여년(四百餘年) 동안에 죽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면 그 후(後) 타방세계(他方世界)에서 태어나 또 죽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다. 그와 같이 떨어지는 자(者)는 대지미진(大地微塵)보다도 많으니 이는 모두 삼대사(三大師)의 죄과(罪科)로다, 이것을 니치렌(日蓮)은 많이 보면서 거짓으로 못 본 체하고 말하지 않으면 함께 타지옥(墮地獄)의 자(者)가 되어서 일분(一分)의 죄과(罪科)도 없는 몸이 시방(十方)의 대아비옥(大阿鼻獄)을 두루 거칠 것이니 어찌 신명(身命)을 버리고서라도 외치지 않을소냐.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 이는 여래(如來) 한 사람의 고(苦)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니치렌(日蓮)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동일고(同一苦)는 남김없이 이는 모두 니치렌(日蓮) 한 사람의 고(苦)라고 말하느니라. 교화(敎化)에 따라서 일본국(日本國) 사십구억구만사천팔백이십팔인(四十九億九萬四千八百二十八人)이 혹(或)은 가로되, 일본기(日本紀)에 교키(行基)가 인수(人數)를 말하되, 남녀(男女) 사십오억팔만구천육백오십구인(四十五億八萬九千六百五十九人) 운운(云云)의 일체중생(一切衆生) 또 사십구억등(四十九億等)의 사람들은 사백여년(四百餘年) 동안에 죽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면 그 후(後) 타방세계(他方世界)에서 태어나 또 죽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다. 그와 같이 떨어지는 자(者)는 대지미진(大地微塵)보다도 많으니 이는 모두 삼대사(三大師)의 죄과(罪科)로다, 이것을 니치렌(日蓮)은 많이 보면서 거짓으로 못 본 체하고 말하지 않으면 함께 타지옥(墮地獄)의 자(者)가 되어서 일분(一分)의 죄과(罪科)도 없는 몸이 시방(十方)의 대아비옥(大阿鼻獄)을 두루 거칠 것이니 어찌 신명(身命)을 버리고서라도 외치지 않을소냐.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 이는 여래(如來) 한 사람의 고(苦)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니치렌(日蓮) 가로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동일고(同一苦)는 남김없이 이는 모두 니치렌(日蓮) 한 사람의 고(苦)라고 말하느니라.
간효팔번초(諫曉八幡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587쪽
어서 쉽게 찾아 보는 법
신심의 자세를 배우는 어서 〈2〉
(4)신심의 자세를 배우는 어서
◆지용의 보살의 사명을 가르치다◆
◇사자후란 사제 함께 묘법을 부르는 것 어의구전 748쪽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자는 모두 지용의
보살 어의구전 751쪽
◇나의 동류들은 이진삼진 이어져서 천태·전교보다 월등하여라 사도초 911쪽
◇목숨은 한이 있나니 아끼지 말지어다. 원해야
할 것은 불국이다 도키입도전답서 955쪽
◇니치렌과 동의(同意)라면 지용의 보살이다
제법실상초 1360쪽
◇니치렌의 제자 단나는 지용의 보살이다
제법실상초 1359쪽
◇법화경에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겨라
제법실상초 1360쪽
◇과거의 숙연에 따라 이번에 니치렌의 제자로
생사일대사혈맥초 1338쪽
◇법화경의 법문을 말하는 사람은 과거의 숙연이 깊다 시지시로 전어서 1448쪽
◇불법을 일구(一句)라도 말하는 사람은 여래의
사자 시지시로전어서 1448쪽
◇쇠는 두드리면 검(劍)이 되고 현성(賢聖)은
매리하여 시험하느니라 사도어서 958쪽
◇수지하는 법이 제일이면 수지하는 사람도
제일이다 지묘법화문답초 465쪽
◇전지(傳持)하는 사람이 없으면 목석(木石)의
현불미래기 508쪽 의발(衣鉢)을 가진 것과 같다
◇니치렌을 따르며 제인(諸人)에게 말하는 것은
유통하는 사람 시조깅고전답서 1117쪽
◇보살이란 불과를 득(得)하는 하지(下地)다
어의구전 738쪽
◆사제(師弟)의 자세를 가르치다◆
◇사제가 상위하면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
화과성취어서 900쪽
◇근원의 스승을 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소야전답서 1055쪽
◇법화경의 적을 책(責)하지 않으면 사단(師檀)
함께 지옥으로 소야 전답서 1056쪽
◇사제가 되고 사단(師檀)이 되는 것은 삼세의
맹세 아키모토전답서 1070쪽
◇사제가 되는 것은 과거의 숙습이다
사이렌보답서 1340쪽
◇니치렌의 제자라면 니치렌과 같이
수행하시라 사보살조립초 989쪽
◇니치렌의 제자라면 대난이 있어도 놀라지 마라 제자단나중에의 어장 177쪽
◇당체연화(當體蓮華)의 부처란 니치렌의 제자
단나를 말한다 당체의초 512쪽
◇니치렌의 일문(一門)으로서 신심을 관철하라
제법실상초 1360쪽
(5)절복·홍교에 대해 배우는 어서
말법은 절복의 때라고 가르치다
나만 믿을 뿐 아니라 타인의 잘못도 훈계하리라 입정안국론 33쪽
저 만기(萬祈)를 수행하기 보다 이 일흉을
금하시라 입정안국론 24쪽
몸에 희열이 넘치기 때문에 난감하여 자찬(自讚) 한다 법화취요초 334쪽
보살계란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타인을 중히
여기는 사람 십법계명인과초 433쪽
희(喜)란 자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니라
어의구전 761쪽
현재에 눈앞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 설하면 믿는
사람도 나온다 호렌초 1045쪽
사지(邪智)·방법(謗法)의 자가 많은 때는
절복을 우선으로 한다 개목초 235쪽
방법의 자를 향해서 법화경을 설한다
교기시국초 438쪽
독고의 연으로 하기 위함이다
말법에는 법화경을 굳이 설해 듣게 할지어다
법화초심성불초 552쪽
일승유포(一乘流布)의 때는 실교(實敎)에서
권교(權敎)를 책하라 여설수행초 503쪽
자비 없이 거짓으로 친한 것은 그 사람의
원적이다 오타전허어서 1003쪽
법화경의 적을 보면서 꾸짖지 않으면 무간지옥은
의심 없다 소야전답서 1056쪽
나의 문제(門弟)는 순연(順緣)이고 일본국은
역연(逆緣)이다 법화취요초 336쪽
불법의 섭수(攝受)와 절복은 시(時)에 따라야
한다 사도어서 957쪽
제종(諸宗)의 인법(人法)을 함께 절복하면
여설수행초 504쪽 삼류의 강적이 닥쳐온다
절복의 마음가짐을 가르치다
법화경의 공덕은 칭찬하면 더욱 공덕이 더한다
묘미쓰상인어소식 1242쪽
그 나라의 풍속을 어기지 않는 수방비니라는
계(戒)의 법문으로 월수어서 1202쪽
젊은 귀하가 있다면 불법을 말해야 할 것이다
우에노전답서 1507쪽
법은 스스로 홍통되지 않는다. 사람이 법을
홍통한다 백육개초 856쪽
정법을 홍통하는 일은 반드시 지인에 의한다
시조깅고전답서 1148쪽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도 밝아진다
식물삼덕어서 1598쪽
대원(大願)이란 법화홍통이다 어의구전 736쪽
이 사바세계는 이근득도(耳根得道)의 나라다
일념삼천법문 415쪽
사의(邪義)의 파절 방법을 가르치다
독기심입(毒氣深入)의 자란 권교방법의 집정(執情)이 깊은 자 어의구전 755쪽
염불은 무간의 업(業) 등, 사개격언으로 제종을
파절 아키모토어서 1073쪽
방법(謗法)이란 법화의 마음에 위배하는 자를
말한다 니이케어서 1439쪽
달마의 사법(邪法)과 염불의 애음(哀音)이라는
두 가지의 요괴 염불자추방선지사 96쪽
염불종은 망국의 악법이다 우에노전답서 1509쪽
정리(正理)를 제일로 삼아야 하며
성우문답초 493쪽
사람이 많은 것을 근본으로 하지 마라
기심(己心)의 법을 일부분 설한 것이 권대승경 등 몽고사어서 1473쪽
선종은 대사법(大邪法)·염불종은 소사법· 진언은 대악법 소야전답서 1064쪽
비학장(非學匠)은 이치에 맞지 않는 암증(暗證) 의 자 제종문답초 380쪽
두파작칠분(頭破作七分)이란 심(心)파작칠분을 말한다 사도초 924쪽
지역 광포·적광토를 가르치다
아부쓰보는 북국의 도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부쓰보어서 1304쪽
그 지방의 불법(佛法) 유포는 귀하에게 맡긴다
다카하시전답서 1467쪽
묘법을 부르는 자가 머무는 곳은 전부 적광토다 어의구전 781쪽
다쓰노구치는 니치렌의 목숨이 머물렀기에
적광토 시조깅고전어소식 1113쪽
지옥과 부처는 우리들의 오척 몸 안에 있다
십자어서 1491쪽
국토가 어지러워질 때는 먼저 귀신이 문란하다
입정안국론 19쪽
니치렌이 뜻을 세운 곳은 태어난 곳<아와>이다
벳토보답서 901쪽
니치렌이 억제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안온하였다 사도초 919쪽
니치렌의 제자 단나의 주소(住所)는 영추산이다 어강문서 811쪽
영산(靈山)이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자의
주소 어의구전 757쪽부처와 부처만이 철저히 구명한 제불(諸佛)의 지혜는 ‘제법의 실상’이고,
실상이란 구체적으로는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 •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의 ‘십여시’라고 밝혔다.
제법실상의 ‘제법’은 십계의 정보(正報: 주체)와 의보(依報: 환경),
다시 말해 모든 중생과 그 환경세계이다. 삼라만상, 모든 사물과
현상을 말한다. 또 ‘실상’은 문자 그대로,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제법실상’이란, ‘온갖 현상의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상'의 내용을 밝힌 것이 다음에 이어지는 십여시이다.
그러므로 이 경문을 "십여실상(十如實相)"의 경문이라고 한다.
십여시란 무엇인가
먼저 십여시 각각의 의미를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여시상 = 외견상의 모습
여시성 = 내적인 성질
여시체 = 상 • 성을 합친 전체
여시력 = 잠재적인 힘
여시작 = 힘이 외부로 작용하는 작용
여시인 = 사물(事物)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
여시연 = 인(因)을 돕는 간접적인 원인과 조건
여시과 = 인(因)과 연(緣)으로 생기는 결과
여시보 = 결과가 사실이 되어 외부로 나타나는 것
여시본말구경등 = 첫째의 상(相)에서 아홉째의 보(報)까지
서로 관계하여 일관하고 있는 것
이 가운데 상 • 성 • 체의 삼여시는 제법의 ‘본체’이다. 역 • 작 •
인 • 연 • 과 • 보의 육여시(六如是)는 제법의 ‘작용’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상'에서 '보'까지 구여시(九如是)의 일관성을
본말구경등이 나타낸다.
물론 각각에 ‘여시(如是: 이와 같은)'라는 말이 붙어 있듯이, 본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처의 지견(知見)을, ‘굳이 말로 나타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를 들어 말하면, 당신 자신이라는 존재는
‘제법(諸法)’의 하나이다.
당신의 얼굴과 몸매 등은 제법인 당신의 ‘여시상’이다.
또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 예를 들면
‘성미가 급하다'든지 '성미가 느긋하다.’든지 ‘상냥하다.'든지
'얌전하다.’든지의 여러 성격과 성분은 당신의 ‘여시성’이다.
이 여시상과 여시성으로 이루어진 심신(心身)의 전체,
말하자면 당신 자신이 ‘여시체’이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은 갖가지 힘(여시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밖으로 향해서 갖가지 작용(여시작)을 일으킨다.
또 그러한 당신 자신의 생명이 원인(여시인)이 되고, 내외(內外)의
조연(助緣: 여시연)이 더해져, 당신 자신의 생명에 변화가
일어나고(여시과), 그것이 이윽고 현실의 과보(여시보)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아홉개가 일관해서 빠짐없이 당신이라고 하는 생명,
당신이라는 경우(境遇: 경애)를 만들고 있다(여시본말구경등).
이것이 당신의 '십여실상(十如實相)'이다.
앞에서 그대가 권교(權敎)·권종(權宗)의 사람은 많고 이 종(宗)의 사람은 적으니 어찌 다(多)를 버리고 소(少)에 따르겠느냐고 했는데 반드시 많음이 거룩하고 적음이 천(賤)함은 아니로다. 현선(賢善)의 사람은 드물고 우악(愚惡)의 자(者)는 많으니라. 기린(麒麟)·난봉(鸞鳳)은 금수(禽獸) 중의 기수(奇秀)이지만, 이는 매우 적으며 우양(牛羊)·오합(烏鴿)은 축조(畜鳥)의 졸비(拙卑)인데 이는 매우 많으니라. 반드시 많음이 거룩하고 적음이 천한다면 기린(麒麟)을 버리고 우양(牛羊)을 취하며 난봉(鸞鳳)을 제쳐놓고 오합(烏鴿)을 취할 것인가. 마니(摩尼)·금강(金剛)은 금석(金石)의 영이(靈異)인데, 이 보(寶)는 적고 와력(瓦礫)·토석(土石)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의 지극(至極)인데 이는 또한 매우 많으니라. 그대의 말과 같다면 옥(玉) 등을 버리고 와력(瓦礫)을 취할 것인가, 어리석고 어리석도다.앞에서 그대가 권교(權敎)·권종(權宗)의 사람은 많고 이 종(宗)의 사람은 적으니 어찌 다(多)를 버리고 소(少)에 따르겠느냐고 했는데 반드시 많음이 거룩하고 적음이 천(賤)함은 아니로다. 현선(賢善)의 사람은 드물고 우악(愚惡)의 자(者)는 많으니라. 기린(麒麟)·난봉(鸞鳳)은 금수(禽獸) 중의 기수(奇秀)이지만, 이는 매우 적으며 우양(牛羊)·오합(烏鴿)은 축조(畜鳥)의 졸비(拙卑)인데 이는 매우 많으니라. 반드시 많음이 거룩하고 적음이 천한다면 기린(麒麟)을 버리고 우양(牛羊)을 취하며 난봉(鸞鳳)을 제쳐놓고 오합(烏鴿)을 취할 것인가. 마니(摩尼)·금강(金剛)은 금석(金石)의 영이(靈異)인데, 이 보(寶)는 적고 와력(瓦礫)·토석(土石)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의 지극(至極)인데 이는 또한 매우 많으니라. 그대의 말과 같다면 옥(玉) 등을 버리고 와력(瓦礫)을 취할 것인가,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성군(聖君)은 드물어서 천년(千年)에 한 번 나오고 현좌(賢佐)는 오백년(五百年)에 한 번 나타나며 마니(摩尼)는 헛되이 이름만 들을 뿐이로다. 인봉(麟鳳)은 누가 실물(失物)을 보았느뇨. 세간(世間)이나 출세간(出世間)에도 선자(善者)는 적고 악자(惡者)는 많음이 안전(眼前)의 사실이니라. 그러므로 어찌 억지로 적음을 천하게 여기고 많음을 존귀(尊貴)하다 하느뇨. 토사(土沙)는 많지만 미곡(米穀)은 귀하고 목피(木皮)는 충만(充滿)하지만 포견(布絹)은 사소(些少)하니라. 그대는 오직 정리(正理)를 가지고 제일로 삼아야 하며, 특히 사람이 많음을 가지고 근본(根本)으로 하지 말지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3쪽제목 : 그대는 오직 정리(正理)를 가지고 제일로 삼아야 하며, 특히 사람이 많음을 가지고 근본(根本)으로 하지 말지니라.보살계란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타인을 중히
여기는 사람 십법계명인과초 433쪽
희(喜)란 자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니라
어의구전 761쪽부처와 부처만이 철저히 구명한 제불(諸佛)의 지혜는 ‘제법의 실상’이고,
실상이란 구체적으로는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 •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의 ‘십여시’라고 밝혔다.
제법실상의 ‘제법’은 십계의 정보(正報: 주체)와 의보(依報: 환경),
다시 말해 모든 중생과 그 환경세계이다. 삼라만상, 모든 사물과
현상을 말한다. 또 ‘실상’은 문자 그대로,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제법실상’이란, ‘온갖 현상의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상'의 내용을 밝힌 것이 다음에 이어지는 십여시이다.
그러므로 이 경문을 "십여실상(十如實相)"의 경문이라고 한다.
십여시란 무엇인가
먼저 십여시 각각의 의미를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여시상 = 외견상의 모습
여시성 = 내적인 성질
여시체 = 상 • 성을 합친 전체
여시력 = 잠부처와 부처만이 철저히 구명한 제불(諸佛)의 지혜는 ‘제법의 실상’이고,
실상이란 구체적으로는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 •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의 ‘십여시’라고 밝혔다.
제법실상의 ‘제법’은 십계의 정보(正報: 주체)와 의보(依報: 환경),
다시 말해 모든 중생과 그 환경세계이다. 삼라만상, 모든 사물과
현상을 말한다. 또 ‘실상’은 문자 그대로,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제법실상’이란, ‘온갖 현상의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상'의 내용을 밝힌 것이 다음에 이어지는 십여시이다.
그러므로 이 경문을 "십여실상(十如實相)"의 경문이라고 한다.
십여시란 무엇인가
먼저 십여시 각각의 의미를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여시상 = 외견상의 모습
여시성 = 내적인 성질
여시체 = 상 • 성을 합친 전체
여시력 = 잠재적인 힘
여시작 = 힘이 외부로 작용하는 작용
여시인 = 사물(事物)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
여시연 = 인(因)을 돕는 간접적인 원인과 조건
여시과 = 인(因)과 연(緣)으로 생기는 결과
여시보 = 결과가 사실이 되어 외부로 나타나는 것
여시본말구경등 = 첫째의 상(相)에서 아홉째의 보(報)까지
서로 관계하여 일관하고 있는 것
이 가운데 상 • 성 • 체의 삼여시는 제법의 ‘본체’이다. 역 • 작 •
인 • 연 • 과 • 보의 육여시(六如是)는 제법의 ‘작용’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상'에서 '보'까지 구여시(九如是)의 일관성을
본말구경등이 나타낸다.
물론 각각에 ‘여시(如是: 이와 같은)'라는 말이 붙어 있듯이, 본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처의 지견(知見)을, ‘굳이 말로 나타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를 들어 말하면, 당신 자신이라는 존재는
‘제법(諸法)’의 하나이다.
당신의 얼굴과 몸매 등은 제법인 당신의 ‘여시상’이다.
또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 예를 들면
‘성미가 급하다'든지 '성미가 느긋하다.’든지 ‘상냥하다.'든지
'얌전하다.’든지의 여러 성격과 성분은 당신의 ‘여시성’이다.
이 여시상과 여시성으로 이루어진 심신(心身)의 전체,
말하자면 당신 자신이 ‘여시체’이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은 갖가지 힘(여시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밖으로 향해서 갖가지 작용(여시작)을 일으킨다.
또 그러한 당신 자신의 생명이 원인(여시인)이 되고, 내외(內外)의
조연(助緣: 여시연)이 더해져, 당신 자신의 생명에 변화가
일어나고(여시과), 그것이 이윽고 현실의 과보(여시보)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아홉개가 일관해서 빠짐없이 당신이라고 하는 생명,
당신이라는 경우(境遇: 경애)를 만들고 있다(여시본말구경등).
이것이 당신의 '십여실상(十如實相)'이다.
더욱더 신심(信心)을 면려하시라. 불법(佛法)의 도리(道理)를 남에게 말하는 자(者)를 남녀승니(男女僧尼)가 반드시 미워하리라. 좋다 미워하려면 미워하라, 법화경(法華經)·석가불(釋迦佛)·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장안(章安) 등(等)의 금언(金言)에 몸을 맡길지니라.얕은 죄(罪)라면 내스스로 용사(容赦)하여 공덕(功德)을 얻게 하여라. 무거운 죄과(罪過)라면 신심(信心)을 격려하여 소멸(消滅)케 할지어다. 이부인(尼夫人)의 몸으로서 방법(謗法)의 죄(罪)의 천심경중(淺深輕重)의 의(義)를 물으시는 일은 참으로 드문 여인(女人)이시니라. 용녀(龍女)보다 어찌 차하(差下)지겠는가. 「나는 대승(大乘)의 교(敎)를 열어서 고(苦)의 중생(衆生)을 도탈(度脫)하리라」란 이것이니라. 「그 의취(義趣)를 묻는 것은 이는 즉 어렵다고 함」이라고 해서, 법화경(法華經)의 의리(義理)를 묻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고 설(說)해졌소이다. 기필코 명심(銘心)하여 힘이 있는 한(限)은 방법(謗法)을 책(責)하실지어다. 니치렌(日蓮)의 의(義)를 도우시는 일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 생각하나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 생각하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아부쓰보니부인답서(阿佛房尼夫人答書)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308쪽악세말법(惡世末法)의 시(時)·삼독강성(三毒强盛)한 악인(惡人)들이 모여 있을 때 정법(正法)을 잠시(暫時)라도 믿고 수지(受持)하는 자(者)를 천인(天人)이 공양(供養)하리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조금이라도 방법불신(謗法不信)의 죄과(罪過)가 있으면 무간대성(無間大城)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만약(萬若) 또 이 경전(經典)을 수지(受持)한 자(者)를 보고 그 과악(過惡)을 들춰 내리라. 혹(或)은 사실(事實)이거나 혹(或)은 사실(事實)이 아니거나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 백라병(白癩病)을 얻으리라, 내지(乃至) 여러 가지의 악중병(惡重病)이 있으리라」 또 가로되 「마땅히 세세(世世)에 눈이 없으리라」 등(等) 운운(云云). 묘신(明心)과 엔치(圓智)는 현실(現實)에 백라(白癩)를 얻었고, 도아미(道阿彌)는 무안(無眼)의 자(者)로 되었다. 국중(國中)의 역병(疫病)은 두파칠분(頭破七分)이니, 벌(罰)을 가지고 덕(德)을 짐작하건대, 나의 문인(門人)들은 복과십호(福過十號)는 의심(疑心)없는 것이니라.
사신오품초 四信五品抄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 341~2쪽 별칭 : 本代法華行者 位並操心事탁수(濁水)는 마음이 없어도 달빛을 받아서 스스로 맑아지고, 초목(草木)은 비를 만나 어찌 지각(知覺)이 있어서 꽃을 피우는고,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경문(經文)이 아니고 그 의(義)가 아니며, 오직 일부(一部)의 의(意)일 뿐이라, 초심(初心)의 행자(行者)는 그 뜻을 모를지라도 그러나 이를 행(行)하면 자연(自然)히 그 의(意)에 부합(符合)되느니라.칭찬하는) 그 복덕이 뛰어나다”라고. 묘락대사는 “(법화경을 수지한 사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머리가 일곱으로 깨지고, 공양하는 자는
열가지 존칭을 갖는 부처의 몸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커다란 복덕을 얻는다”라고. 전교대사도 “찬탄하는 자는 복덕을 수미산처럼
크게 쌓고, 비방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짓는다”라고.
묘락대사의 말은 어본존 좌우의 상부(上部)에도 도현돼 있다.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도키전에게 편지를 이렇게 계속하신다.
“또 가로되 ‘그 복이 또한 그보다 더함’ 묘락(妙樂) 가로되 ‘만약 뇌란(惱亂)하는 자는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지고, 공양하는 일이 있는 자는 복이 십호(十號)보다 더함’
전교(傳敎)대사도 ‘찬자(讚者)는 복을 안명(安明)같이 쌓고, 방자(謗者)는
죄를 무간(無間)으로 연다’
등 운운.”(어서 978쪽)
또한 “(석존에게 일겁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무수한 언어로 칭찬하는 것보다도
법화경을 수지한 사람을
칭찬하는) 그 복덕이 뛰어나다”라고. 묘락대사는 “(법화경을 수지한 사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머리가 일곱으로 깨지고, 공양하는 자는
열가지 존칭을 갖는 부처의 몸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커다란 복덕을 얻는다”라고. 전교대사도 “찬탄하는 자는 복덕을 수미산처럼
크게 쌓고, 비방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짓는다”라고.
묘락대사의 말은 어본존 좌우의 상부(上部)에도 도현돼 있다.묻건대, 당신의 제자(弟子)로서 일분(一分)의 해득(解得)도 없이 다만 한 마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그 위(位)는 어떠하오. 답(答)하되 이 사람은 다만 사미삼교(四味三敎)의 극위(極位)와 이전(爾前)의 원인(圓人)보다 초과(超過)할 뿐 아니라, 혹(或)은 또한 진언(眞言) 등(等)의 제종(諸宗)의 원조(元祖)·외(畏)·엄(嚴)·은(恩)·장(藏)·선(宣)·마(摩)·도(導) 등(等)보다 수승(殊勝)함이 백천만억배(百千萬億培)이니라. 청(請)컨대 국중(國中)의 제인(諸人)들이여, 나의 말제(末弟)들을 경시(輕視)하지 말지어다. 나아가서 과거(過去)를 살피건대 팔십만억겁(八十萬億劫)에 공양(供養)한 대보살(大菩薩)이니, 어찌 희련일항(熙連一恒)의 자(者)가 아니리오, 물러서서 미래(未來)를 논(論)하건대, 팔십년(八十年)의 보시(布施)를 초과(超過)하고 오십(五十)의 공덕(功德)을 갖춤이라, 천자(天子)가 강보(襁褓)에 싸여 있고, 대룡(大龍)이 처음 출생한 것과 같으니 멸여(蔑如)하지 말지어다, 멸여(蔑如)하지 말지어다. 묘락(妙樂)이 가로되 「만약(萬若) 뇌란(惱亂)하는 자(者)는 두칠분(頭七分)으로 깨지고 공양(供養)함이 있는 자(者)는 복십호(福十號)보다 더함」이라고. 우타연왕(優陀延王)은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를 멸여(蔑如)하여 칠년내(七年內)에 몸을 상실(喪失)하였고, 소슈(相州)는 니치렌(日蓮)을 유죄(流罪)하여 백일내(百日內)에 병란(兵亂)을 당하였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만약(萬若) 또 이 경전(經典)을 수지(受持)한 자(者)를 보고 그 과악(過惡)을 들춰 내리라. 혹(或)은 사실(事實)이거나 혹(或)은 사실(事實)이 아니거나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 백라병(白癩病)을 얻으리라, 내지(乃至) 여러 가지의 악중병(惡重病)이 있으리라」 또 가로되 「마땅히 세세(世世)에 눈이 없으리라」 등(等) 운운(云云). 묘신(明心)과 엔치(圓智)는 현실(現實)에 백라(白癩)를 얻었고, 도아미(道阿彌)는 무안(無眼)의 자(者)로 되었다. 국중(國中)의 역병(疫病)은 두파칠분(頭破七分)이니, 벌(罰)을 가지고 덕(德)을 짐작하건대, 나의 문인(門人)들은 복과십호(福過十號)는 의심(疑心)없는 것이니라.
사신오품초 四信五品抄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 341~2쪽 별칭 : 本代法華行者 位並操心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