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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영 미륵도 용궁사 원문보기 글쓴이: 용왕님의 나라
초대 대통령 장로 이승만 & 조계종 탄생 비화 |
인터넷 법보신문(2013-10-24) “불교계, 역사왜곡 유영익 위원장 불편”이란 제하의 기사를 보면 조계종 총무원장을 방문한 한광옥 국민통합위원장에게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이 “(초대 대통령 장로 이승만의 대한민국 개신교 국가화의 공훈을 높이 찬양한) 유영익 역사편찬위원장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불교계가 불편해 하고 있으니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하였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 추진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유영익 역사편찬위원장이 고백한 그대로다. 그 이유인즉, 초대 정부 출범식부터 목사의 축도로 시작되었다든지, 군종병과를 군승과로 명명해놓고는 군목부터 받아들이고 불교는 배제한 사실.... 등등에서, 또한 비록 이승만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 시작된 성시화운동, 성국화운동이 민족종교 진영의 격렬한 규탄과 항의에도 아무 중단없이, 아무 장애없이 정부의 방조와 묵인 하에 지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는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보아진다. 그러기에 "유영익 역사편찬위원장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으니 시정을 요구한다"는 조계종의 입장에 대해 나 또한 강력히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역사적 진실이 있다. 이승만의 유시에 의해 시작된 이른바 '불교정화'가 사실은 정화가 아니라 불교를 무력화시키고 그 공백에 기독교를 심으려는 음흉한 계략에서 작동된 매우 안타까운 법난이었다는 점이다. 좀 더 소상하게 살펴보면 이러하다. 당시 국민들로부터 큰 귀의를 받고 있던 불교 교단을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불교 와해 공작 차원에서 3번에 걸쳐 "불교를 정화하라"는 유시를 발표했고, 이 유시로 촉발된 불교 교단 내의 대충돌이 이른바 ‘불교정화(사실은 법란)’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더 깊게는 이승만의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 계략의 파생물로 탄생된 종단이 바로 조계종이란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기독교 장로 이승만은 조계종 탄생의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조계종은 이승만을 찬양한 유영익 역사편찬위원장의 임명에 불편해 하기에 앞서 역설적으로, 이승만에게 감사(?)의 마음부터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 말기부터 시작된 소위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을 지나오면서 불교를 숭상하고 지켜오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께서는 그 격변의 시기(조선말기~일제 치하. 그리고 해방을 맞이하기까지)를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애쓰면서 다가올 미래의 시대, 곧 오늘날을 대비하여 역동적인 인재양성 사업을 펼쳤으니, 당시 사찰 토지의 소작농 자제들 중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 득도시켜, 해외(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로 유학을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지식인 승려 양성 교육 불사에 매진함으로써 찬란한 불국토의 꿈을 다시 꽃 피울 풍부한 인재들을 갖췄다. 이와 더불어 예로부터 전해온 조상 전래의 물적 자산은 든든한 토대가 되어 불국토 재건의 꿈은 점점 구체화, 현실화되어 왔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미군정으로부터 정부를 이양받은 초대 대통령 장로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기 위해 비상한 계획을 세웠던 바, 이 계획의 실현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불교계의 엄청난 인적 물적 자산이었다. 따라서 장로 이승만은 불교계의 이러한 인적 물적 자산을 와해시키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의 소망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하였던 것이고, 그리하여 그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대한민국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른바 위헌적 발언, 즉 불교계의 자중지란과 자멸을 유도하는 대통령 유시를 3번에 걸쳐 발표하였던 것이다.
영국이나 부탄처럼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정교일치 국가라면 몰라도,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하는 정교분리 국가가 아닌가? 따라서 아무리 국가원수라 할지라도 종교 내부 문제에 관여하거나 더욱이 교리나 계율의 해석 차이에서 발생하는 쟁의(諍議)에 대하여 결정하거나 심판할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초대 대통령 장로 이승만은 자기가 무슨 부처님이나 되는 것처럼 "대처승은 중이 아니다"라는 계율상의 심판적 발언을 하였던 것이다. 초대 대통령 장로 이승만은 그러면 왜 그러한 유시를 발표했던 것일까? "이승만은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에 목표를 두고 정치를 했던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한다"고 역사편찬위원장 유영익은 증언에서, 우리는 장로 이승만의 불교 정화 유시의 분명한 목적과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의 불교 정화 촉구 대통령 유시는, 승가 공동체의 대충돌을 유도하여 자멸하기를 바라는, 그리하여 불교가 무너진 그 자리에 기독교 국가화를 손쉽게 추진하려는 감출 수 없는 음모와 계략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 그리고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 격변의 시기에 우리 불교계가 구축해온 탄탄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산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화가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판단 위에 그런 유시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음모와 계략을 숨긴 채 불교 정화를 촉구하는 유시, 곧 정교분리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위헌적 망언(불교 내부 문제 관여)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하여야 할 점은 이승만의 불교 정화 촉구 대통령 유시는 "불법에 대처승 없다. 대처승은 왜색불교다. 우리나라 불교에 왜색을 척결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과연 이승만이 유시에서 적시하고 있듯이, 불법에 대처승 없고, 진실로 대처승은 중이 아닌 것일까? 아함경 첫머리에서 보면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 7불에 아들(부인)이 있음을 열거하고 있고, 팔만대장경을 2/3이상 한역한 구마라지바 스님은 무려 10명의 부인을 두었고,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와 결혼하였고, 고려시대의 결혼한 스님들이 국경을 지키며 호국의 사명을 감당했던 이른바 재가화상들이 있었으며, 불교유신론을 쓴 독립운동가요 시인이요 사상가인 한해 한용운 스님에게는 2명의 부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불법에 대처승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왜색불교 척결을 앞세워 불교 교단 내부의 충돌과 자멸을 유도했던 것이다. 과연 대처승이 왜색불교의 표상인가? 만약 이승만의 말처럼 대처승은 중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들(부인)이 있는 과거 7불은 무엇이며, 10명의 부인이 있는 구마라지바 스님은 무엇이며,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설총을 둔 원효대사는 무엇이며, 고려시대의 그 많은 재가화상은 무엇이며, 부인이 2명이나 되는 만해 한용운 선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처승을 몰아내고 독신 수도승 교단을 구성했다는 오늘날의 조계종마저 이 분들을 '거사'라고 부르거나 승려가 아니라고 내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만 보더라도 이승만의 유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망언'이 분명하고, 그 유시로 촉발된 법난에 의해 탄생된 조계종은 바로 그 '망언의 결과물'일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백년 양보하여 이승만의 유시가 부처님 법에 비춰볼 때도 문제가 없고 왜색불교를 청산하는 것이 당시의 지상 과제였다고 한다면, 이승만의 유시와 비호 속에 탄생된 조계종은 어찌하여 선대의 그 무수한 '대처승'을 공경봉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 가사장삼(녹나의홍가사)은 내다버리고 일본 조동종의 밤색가사를 취하고 있는지 대한 설득력있는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전통 가사장삼인 녹나의홍가사는 태고종에서 이어가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소위 이승만의 유시에 의한 독신 수도승들의 '왜색불교 청산'은 사실상 거짓된 명분에 근거한 가짜 정화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하겠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거듭 지적하거니와, 이승만의 <불교 정화 촉구 유시>가 가지는 숨은 함의(含意)이다. 이승만의 유시에서 시작된 불교 법난의 진행과, 그 결과물로 생긴 오늘날의 조계종..... 발생에서부터 진행과정, 그리고 그 종결점에 이르기까지 인과관계가 너무나 분명한 그 때의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보자.
해방 직후 우리나라 스님들 숫자는 총 1만명이었다. 이 가운데 9,500명은 유학파 지식인 대처승이었고 나머지 500명은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무식인 독신 수도승이었다. 유학파 지식인 승려 9,500명은 그러한 와중에도 잃어버린 불국토 재건을 꽃 피우기 위해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기업을 일으키는 등 갖은 애를 쓰면서 불교 부흥의 꿈을 위해 와신상담하며 헌신 노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비호를 받아 소위 불교를 정화한답시고 들고 일어선 대처승 이청담을 필두로 한 무식인 독신 승려들은 이러한 불국토 재건을 위해 헌신하는 지식인 유학파 대처승들을 몰아내기에 혈안이었고, 이들은 분규 과정에서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술책의 하나로, 부통령 이기봉 사단의 종로 깡패들을 불러들여 야합, 작당함으로써, 전국 사찰 절뺏기 싸움에 피비린내나는 폭력이 난무하였고, 이들 이청담 휘하의 깡패출신 폭력승들이 주야로 전투에 골몰한 결과, 마침내 전국 대부분의 사찰을 완벽하게 접수하여 탄생된 종단이 바로 오늘날의 조계종이었던 것이다.
진실로 우리 불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이 과정에서 불교는 폭력과 법정공방으로 풍부한 인적, 물력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이러한 불교계의 어이없는 싸움질을 지켜보던 순박한 불심의 우리 국민들은 불교계에 크게 실망,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으며 결국 이러한 국민들의 반불교적 정서라는 절호의 기회를 타고서 개신교는 그야말로 어부지리로 기독교 국가화의 길을 손쉽게 걸어올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이승만의 불교 정화 촉구 유시가 가지는 함의(含義)의 진실을 직시한다면, 지금의 조계종단 탄생의 지대한 공로자는 다름 아닌 장로 대통령 이승만이니, 조계종은 이승만에게 조석으로 지심공경례를 올릴지언정 감히 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통한의 심정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이승만의 개신교 국가 획책으로 빚어진 불교분규 조장의 음모로 탄생되어진 오늘날의 조계종과 관련하여 한 마디만 더 하겠다.
불교 종단들이 연합한 가운데, 불교를 믿고 봉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신심과 피땀어린 보시로 이룩된 불교학교(동국대학교), 불교방송(불교티비, 불교라디오), 군불교(군종교구) 등등.... 이 모든 불교기관들이 모두 특정종단(조계종) 산하로 묶어져 있다. 이는 어느 한 종단 소유물이 아닌 불교계 전체 공동의 것이므로 마땅히 불교종단협의회 산하기관으로 귀속시켜 모든 불교 종단, 모든 불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관리, 유지 및 발전되어짐이 마땅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세히 살펴보라! 최근은 물론 과거로부터 불교종단협의회가 아닌, 특정 종단 산하에 묶여져 있는 여러 불교기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시끄럽지 아니한 것이 있었던가를.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장로 이승만의 기독교 국가 추진프로그램의 과정에서 발표되어진 대통령 유시에 의한, 불교 와해 분규 속에 탄생되어진 종단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나는 본다.
그런 까닭에 해당 종단은 한국불교 대표종단이란 명함에 어울리지 않게 탄생 이후 오늘날까지 어느 해도 조용했던 적 없이 각종 분규, 쟁투, 타락 등으로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되어 왔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 불교 믿는 국민들이 눈을 떠서, 특히 여러 불교 종단 지도부에서는 이 문제의 엄중함을 직시하여 특정종단의 산하기관으로 묶여있는 불교기관들을 불교종단협의회 공동 기관으로 재편하여 제대로 관리, 유지, 발전시켜야 하리라고 본다.
아아~ 우리 민족의 환인하느님이시여! 민족을 보우하고 불교를 외호하는 모든 호법성중들이시여! 바라옵건대 찬란한 불국토 부흥의 꿈을 무참히 짓밟고 국민의 가슴에 불심을 지워낸 불교계의 철천지 원수 - 이승만을 벌하여 주시고, 민족의 불교가 다시 일어나 삼천리 금수강산이 불정국토로 아름답게 꽃피어날 수 있도록 또 한 번 재기의 기회를 갖게 하소서. 나무석가모니불! |
첫댓글 통영미륵도에 바른눈이 사시는 구려-- 100% 공감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