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봄빛이 무르익어 온 세상에 꽃이 만발한 백화난만의 계절이다. 찬란한 봄날의 초대를 받아, 우리 6반 교우들은 자연과 역사가 호흡하는 은평한옥마을과 천년고찰 진관사로 여정을 떠났다. 지하철 3, 6호선이 교차하는 연신내역 3번 출구를 나서, 버스에 몸을 실은 지 15분 남짓, 창밖으로 아득히 보이던 현대의 빌딩 숲이 걷히고, 거짓말처럼 고풍스러운 한옥마을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2014년 겨울, 수도권 최대 규모로 조성되었다는 은평한옥마을은 전국의 어느 한옥마을보다 웅장한 자연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을 뒤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북한산의 원효봉, 의상봉, 향로봉의 기암괴석과 능선들은 마치 한옥들을 포근히 감싸안은 거대한 수묵화 같았다. 과연 북촌과 서촌을 제치고 '로컬 100'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한옥 대상'을거머쥔 곳 다웠다. 발길 닿는 곳마다 지역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로컬'이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교우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은평한옥마을의 골목은 그 자체로 제8경이라 불릴 만큼 빼어났다. 골목의 선을 따라 시선을 올리면 현대식 2층 한옥의 다채로운 지붕 너머로 푸른 북한산이 머리를 내민다.
집집마다 걸린 희담재, 다온정, 자험헌 같은 대문 명패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현판처럼 멋스러웠다. 대만이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골목마다 멈춰서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모습조차 마을의 풍경이 되었다. 알록달록한 한복을 무료로 빌려주는 너나들이센터를 지나 국내 유일의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내부 공사 중이라 내부는 둘러보지 못했지만, 외부 계단을 통해 3층 한옥전망대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한옥마을의 기와 물결과 북한산의 비경은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전망대 건너편에 자리한 정자 '용출정'에 서서 그 이름의 주인인 북한산 용출봉을 마주하니, 옛 선비들이 누렸던 풍류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싶다. 옛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제각말문화공원의 나무데크 길로 향했다. 습지 위로 이어진 길 끝에는 수령 120년에서 22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 노거수 네 그루가 묵묵히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원을 버텨온 나무의 운치에 차분해질 때쯤, 삼각산금암미술관과 전통찻집 다락방이 나타났다. 마당과 통창 너머로 한옥의 정취를 품고있는 그 열린 공간들은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머믎'의 미학을 선물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항일운동의 혼이 깃든 백초월길을 따라 진관사로 향했다. 일제강점기, 이곳 진관사에 머물며 은밀히 독립의 염원을 키웠던 백초월 스님. 몃 해 전 칠성각 해체 보수 과정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빛바랜 태극기는 스님의 잊혔던 어적을 세상에 눈물겹게 알렸다.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이 깃든 길을 걷는 발걸음에 은은한 숙연함이 번졌다.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꼽히는 진관사는 북한산 자락과 맑은 계곡을 품은 천혜의 도량이었다. 고려 현종이 자신을 구해준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는 천년의 역사. 조선 태조 이성계가 국행수륙제를 실행하고,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을 보내 비밀리에 한글을 연구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구석구석에 스며있었다. 일주문과 해탈문 사이에 적힌 '마음의 정원, 진관사'라는 글귀처럼, 이곳은 불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종교를 넘어 누구나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평온의 쉼터였다. 마당 가득,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며 빼곡히 매달린 연등들이 오색 빛깔로 일렁였다. 불자 교우들은 대웅전에서 경건하게 공양을 올렸고, 우리는 사찰의 고즈넉함을 눈에 담은 뒤 전통찻집 연지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은한 약재 향이 감도는 쌍화차와 대추차, 달콤한 팥빙수를 앞에 두고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났다.
차 향 가득했던 시간을 뒤로하고,하나고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연신내역 근처의 고기집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1시 반, 식당은 오롯이 우리들만의 독무대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겹살과 생목살을 상추에 싸서 마늘과 쌈장을 얹어 입에 넣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여기에 정겨운 술잔이 오가며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대화는 이리저리 꼬리를 물며 끝날 줄을 몰랐다. 이어 문성기 교우의 안내로 찾은 카페에서 달콤한 팥빙수를 나누며,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건강'으로 흘러갔다.
나이가 들면 몸 이곳저곳에서 적신호가 켜지기 마련이다. 큰 병이 되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지론 속에, 문득 내 어지럼증과 수면무호흡증 이야기도 나왔다. 매달 양압기 대여로를 지불하며 평생을 동반자처럼 지내야 하는 삶이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고 다스려야 할 내 인생의 일부이리라. 진료를 통해 건강을 지키는 지헤임을 서로 권하며 , 우리는 나이 듦의 여정을 숙연하면서도 유쾌하게 나누었다. 불교의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처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은 꼭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법이다.
우리는 오는 6월에 만남을 약속하고 연신내역에서 각산진비하였다. 완연한 봄날, 은평한옥마을과 진관사에서 보낸 시간은 우리 고유의 전통과 역사를 호흡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교우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마치 시간을 뒤돌려 순수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해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맑고 단단해 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우정'이 아닐까. 노년에 우정만큼 소중하고 값진 재산은 없다. 그리운 6반 교우들이어,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