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형제)를 향한 사랑, 이 두 가지가 율법의 대大강령임’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형제를 위해 이 강령(사랑, 자비, 긍휼)을 행한 사람이 있었다. 사울 왕을 피해 도망가고 있는 다윗과 그의 일행에게 진설병을 준 제사장 ‘아히멜렉’이었다. 이 고사古史를 두고 주님께서는 ‘진설병을 준 아히멜렉’과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다윗과 그의 일행’을 “의식법을 어긴 죄인들”로 정죄하셨는가? 아니면, “무죄하다.” 하셨는가? 물론, “무죄하다.” 하셨다.(마 12:1~7)
이처럼 사랑(자비, 긍휼)의 법法은 의식법에 우선하는 법法으로서 가장 큰(大) 법法이다. 그러함에도 ‘{종말론 강의}(1993)’에서 “예수에게서 율법을 범하는 일이 예사로 진행됐다.” 하셨던 서철원 목사님이 ‘2011년 2월, 예장 합동 이대위 세미나’에서 개혁 교회 정통 교리인 ‘그리스도 능동(율법준수) 순종과 그 의의 전가 교리’를 이단시하며 그 근거로 내세우신 것이 “예수는 안식일을 범하셨다.”는 것이었다. 서철원 목사님 {성경}에는 마태복음 12장 7절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했으리라.”가 없고,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비(인애仁愛)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호 6:6) 하신 뜻, ‘율법의 근본정신인 율법의 대강령’을 모르는 예장 합동 꼴뚜기(서철원) 파 목사들이 ‘그리스도 능동(율법준수) 순종’을 부정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게 있다.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를 만지시고, 손으로 관과 시체를 만지시고, 혈우병 여인과 접촉하셨다는 것이다. 예장 합동 꼴뚜기 파 목사들, 그들은 지극히 자비하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성결하신 주님을 부정(더러운)한 죄인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족속들인 것이다. 주님을 죄인으로 몬 바리새인들과 같은 족속들이다. 형식주의의 바리새주의에 사로잡혀 주님께서 지극한 자비로 깨끗하게 하신 일을 “더럽다.”고 말하는(행 10:15 참고) 족속들이다.
이웃을 살리기 위한 “선한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건만, 이단몰이가 주특기인 그들은 라합에게 “목숨을 위해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굵은 빨대 노릇을 했던 기생”이라며 돌팔매질할 족속들이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 생명을 구한 사람을 “부정한 죄인”으로 단죄할 족속들이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통으로 삼킨 바리새인(마 23:24)들과 같은 족속들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주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앞장선 바리새인들과 같은 족속들, 참 한심한 족속들이다. ㅠㅠ
PS: 아래 링크 글에서 “서철원 목사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Wolf이철은 “피 흘리시는 여자가 다가와서 자기 몸을 만진 것을 아셨는데, 예수님은 율법대로 물러가서 정결례를 행하시지 않고 자가격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신 것입니까?” 말한다. 열왕기상 17장 17절~24절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면서 했던 행동을 보면, 손으로 시체를 만진 정도가 아니다. 그리고 과부의 아들을 살린 뒤 엘리야 선지자가 민수기에 적힌 정결례(민 19:11~19)를 행했다는 기록도 없다. 열왕기하 4장 18절~37절을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엘리사 선지자 역시 마찬가지다. 의식법인 정결례를 행한 기록이 없으니, 그들은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힌, 부정한 자들이었을까?
{바른 믿음} 정이철 <복음을 허무는 사이비 개혁주의 놀음 이제 그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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