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회_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커피 팟캐스트 <커피 읽어주는 남자>
“안녕하세요. 커피 읽어주는 남자, 구대회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로 자전거로 6대륙을 횡단한 자전거 여행가, 이호선님을 모시고 자전거 여행 과 커피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운영 중인 커피 팟캐스트, 〈커피 읽어주는 남자(이하 커피남)〉의 시작 멘트 중 하나다. 2013년 3월부터 커피에 대한 상식, 카페 창업과 운영, 그리고 커피 전문가 인터뷰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커피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고자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보고 배운 커피 상식과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커피에 대한 소회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 이후로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성공한 카페 사장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창업과 운영에 관한 노하우, 자전거 한 대로 전 세계 6대륙을 횡단한 여행가의 커피 에피소드, 뇌과학 전문 기자가 본 커피가 우리 몸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 등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커피를 소재로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커피남〉을 시작한다고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그렇듯이 극명하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것은 해서 뭐하려고?” “그거 하면 카페 영업에 도움이 되나?” “하루 종일 카페 일을 하면서 어느 시간에 하려고” 등 괜히 시간과 돈만 쓰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낸 쪽이 지배적이었다. 소수이기는 했지만, 일부는 “아, 그거 재미있겠다” “너의 재능을 살릴 수 있겠는데 사람들이 커피에 관심이 많으니까 잘만 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 등 긍정적인 마음으로 응원을 해주었다.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방송의 기획부터 섭외, 녹음, 편집에 이르기까지 1인 다역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야 좋아서 하는 일이니 다른 것은 힘든 줄 모르고 신이 나서 하겠는데, 출연자 섭외가 항상 문제다. 팟캐스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아직 내 방송이 매스컴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출연자 섭외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방송사와 단체의 지원을 받는 상위 팟캐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최근 들어 아이튠스와 팟빵에서 인기 팟캐스트로 선정되는 등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에피소드 중 하나는 연일 올라오는 수많은 방송 가운데 2주에 한 편씩 선정하는 추천 에피소드로 뽑혀 지금도 꾸준한 조회 수를 기록하며 청취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잠시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목 : 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안녕하세요. 커피 읽어주는 남자, 구대회입니다. 오늘은 카페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중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말, 사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 네 분이 카페로 들어왔습니다. 자리에 앉고서는 한 분은 이미 커피를 마셨다며 아메리카노 세 잔을 주문했습니다. 커피 세 잔을 손님에게 서빙했습니다. 잠시 후 손님 중 한 분이 빈 잔을 하나 줄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빈 잔은 커피를 드시지 않는다던 한 분에게 전달되었고, 다른 한 분이 커피가 좀 많다며 빈 잔에 덜었습니다. 커피 한 잔 값을 아끼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지요.
한참 후 손님들은 커피를 다 마시고는 뜨거운 물 한 잔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손님에게 뜨거운 물을 서빙했습니다. 잠시 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님 중 한 분이 핸드백에서 커피믹스 한 개를 꺼내더니 커피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제조한 후 서로 맛있게 나눠 마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순간 몸이 굳었습니다. 표시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카페 커피 맛이 좋지 않았다면 커피를 남기고 커피믹스를 꺼냈을 것인데, 손님들은 잔의 바닥이 드러나도록 완전히 커피를 비운 뒤였습니다. 그분들은 내년 봄 해외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대화를 했었습니다. 제발 해외 카페에서는 오늘 같은 일을 하지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카페에서도 지켜야 할 커피 매너가 있지요. 지금까지 커피 읽어주는 남자, 구대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경우, 청취자 수와 조직력에 의한 프로그램의 완성도 그리고 인지도 측면에서 여간해서는 주파수를 가진 라디오를 넘어서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다. 팟캐스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커피라는 소재를 가지고 1년 내내 방송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분기에 한 번 정도 소재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어느 방송국에서도 커피를 매일 다루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팟캐스트 〈커피남〉은 1년 내내 커피를 소재로 무쳐서 먹고 볶아서 먹고 삶아서 먹을 수 있다 방송이다. 이것이 바로 팟캐스트 커피남의 경쟁력이다. 앞으로 청취자 수가 더 늘고 인지도가 올라가면 〈커피남〉은 무척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페를 창업하고 싶은 예비 창업자는 방송을 참고해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을 것이고, 출연한 전문가들을 바탕으로 훌륭한 커피 교육자를 선택할 수 있고, 창업에 관한 도움을 선택적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커피 입문자의 경우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면 커피에 관한 기초 지식뿐 아니라 심도 있는 커피 정보를 언제든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커피를 소재로 각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무분별한 바리스타 자격증 발급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 제로 바리스타 시험을 주관하는 업계 출제위원장과 시민단체 담당자를 방송에 초청해 찬반토론 및 개선 방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요즘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면, ‘방송에서 어떤 주제를 다룰까’를 생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예전 같으면 지루했을 법도 한 시간인데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
만약 내가 이 일을 좋아하지 않거나 회사에서 부여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어땠을까? 무척 스트레스를 받아 아마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즐겁다. 매번 방송을 마치고 나면 별것 아니지만, 성취감에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삶에서 재미있는 놀이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놀이에 동참해 인생이 조금 더 즐겁도록 지금보다 더 참신하고 완성도 높은 방송을 만들고 싶다.
맛있는데 왜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