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2)(없음)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3)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설교
복음서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모습에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나, 모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태복음 앞부분에서 살펴봤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지나고, 광야를 40년 떠돌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애굽에 내려가셨다가,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받으셨죠.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부르시고 지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는 출애굽기의 한 사건을 떠올립니다. 바로,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던 사건입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7장 앞부분에서,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셨죠. 거기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우리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우리의 머리로 다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 내려와서 보는 광경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이 병든 사람을 고치지 못해서 예수님께서 답답해하셨습니다. 14절에 보시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왔는데, 그 사람의 아들이 간질로 아주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 산에 올라가지 않은 제자들이겠죠. 제자들을 찾아왔는데,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얼마 전에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게 하셨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0장에 기록되어 있죠.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산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라” 그 후에 예수님은 아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알고 보니, 그 아들에게는 귀신이 들려 있었고,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셔서 병을 고쳐주십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으셔야 할 것은, 모든 병이 귀신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병든 사람이 귀신에 들렸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정말로 큰 오해입니다.
이 일 후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만일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당시에 겨자씨 한 알은 사람 눈으로 보기에 가장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믿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주셨을 때, 잠시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들을 고쳤지만, 그들의 믿음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믿음이 없었다는 말일까요?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또, 믿음은, 한두 번의 기적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믿음은,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고 시간이 조금 지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언제 어디서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실제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아픈 아들을 낫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없으니 불안해하며 금송아지를 만들려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계시는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불안해하며 참된 믿음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예수님이 당장 곁에 계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했는데 말이죠. 제자들의 믿음이 산을 옮기듯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그런 대단한 일을 하신다는 것이죠. 실제로 산을 옮기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됐던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이르시는 말씀이 따라 나옵니다. 22절, 23절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23절 뒤에서, 제자들이 매우 근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자들에게는 참된 믿음이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씀하셨고, 예수님 자신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이미 말씀하신 적이 있죠. 그런데 제자들은 부활을 제대로 믿지 못합니다.
24절부터 27절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지금으로 치면, 세금 같은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으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참된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렇다고, 산을 옮기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치면, 여태껏 산이 옮겨진 적이 없으니, 아무도 작은 믿음을 갖지 못한 거겠죠. 오늘 말씀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만큼 대단한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주지 않으셨더라도,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또, 그저 마지막에 몸이 다시 사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믿음이 전혀 없던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던 말과 행실이 변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으로,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 고민하시고, 참된 믿음을 갖도록 기도로 구하시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