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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로 감사하는 예배. 初穂で感謝ささげる礼拝。(2024년 7월 7일 주일예배)
본문- 시 136:1~9
시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恵み深い主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2. 神の中の神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3. 主の中の主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4. ただひとり/驚くべき大きな御業を行う方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5. 英知をもって天を造った方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6. 大地を水の上に広げた方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7. 大きな光を造った方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8. 昼をつかさどる太陽を造った方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9. 夜をつかさどる月と星を造った方に感謝せよ。慈しみはとこしえに。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이란 한 해의 농사 중에 가장 먼저 추수하는 첫 열매인 보리를 거두고 난 것으로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교회가 지켜 오는 독특한 교회력이면서, 동시에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칠칠절(七週祭), 즉 맥추절의 의미를 떠올리며 지키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번의 절기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첫째, 유월절(過越祭). 둘째, 오순절(五旬祭)이라고도 하는 칠칠절(七週祭), 그리고 수장절(収穫祭)이라고도 하는 초막절(仮庵祭)입니다. 각 절기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과정과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시기에 역사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로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절기로 지켜 왔지요.
그 세 절기 중의 두 번째가 바로 ‘칠칠절’입니다. 그리고 출23:16에서는 칠칠절을 맥추절로 지키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너희는 너희가 애써서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 ... (출23:16a)
그런데 이 칠칠절과 오순절은 같은 절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에서부터 일곱 주간(7번의 7일)을 헤아려서 지킨다고 하여 칠칠절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시기가 이스라엘은 전반기 농사인 보리의 수확을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첫 열매를 수확한 기쁨과 감사에 대한 고백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즐거움을 나누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은 오순절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우리 기독교회의 역사에서 오순절에는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령강림의 사건이 있었던 날로서,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독교회는 칠칠절인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서 지키면서 또한 맥추절도 기억하며 지킵니다. 이에 대한 적지 않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교회의 전통은 이 맥추절을 지킴으로 한 해의 전반부를 돌이켜보고, 감사의 마음과 그 고백으로 그 해의 후반부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특별히 보릿고개(春窮期)라는 경제적으로 잔혹할 정도의 궁핍과 고통의 시기를 경험했던 한국교회는 그 가난과 굶주림이라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주시고 믿음으로 그 역사적인 경제의 고난을 이겨내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로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족하고 가난과 궁핍으로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겪는 이들이 소수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기에 맥추감사주일의 감동을 실감 나게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과 고난이 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도 내면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궁핍하고 고난스러운 일들은 계속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지난 주간에 여러분에게 올해의 전반기에 감사할 것을 찾아보자고 권유해 드렸습니다. 그 감사의 제목들을 주님께 올려 드리며 함께 예물을 드리자고 또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혹시 지난 주간에는 찾지 못하셨다면 이번 주간에는 꼭 찾아서 감사의 제목만이라도 꼭 주님께 봉헌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감사할 것을 찾아보자고 권유하면 감사할 것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일, 곤란한 일, 답답한 일, 우울한 일, 고난스러운 일, 고통스러운 일, 불편한 일, 불행한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쉽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에 관한 책을 쓰신 어떤 분이 이런 내용을 쓰셨습니다.
“1차원적인 감사는 조건부(If) 감사이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거나 더 많이 갖게 되면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항상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을 불평하는 어린아이 수준의 감사일 뿐이다.
2차원적인 감사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Because) 하는 감사이다. 이러한 감사는 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리는 감사다. 상대방과 비교하되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이 받은 것을 감사하는 단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3차원적인 감사는 불행을 당해도, 힘들고 어려워도, 일이 안 되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하는 감사이다. 이
여러분 모두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시다면 이 구절이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할 고백들을 구하며 기도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도무지 감정적으로는 감사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고백하고 마지막에 주님께 감사합니다..로 마무리 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마음 속에 감동과 확신의 음성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하는 방법을 매일 하루의 은혜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시간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전도서는 인생이란 그 자체로는 정말 허무한 것이고, 아무런 유익도 즐거움도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인생에 대해서 무척이나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느껴지는데요. 실상 우리의 인생이란 정말 무상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인생을 가장 소중하고 알찬 축복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요. 바로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 믿음의 토대 위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의 반석 위에 서서 살 때 우리는 보석처럼 빛나며 영원히 변함이 없는 가치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영생의 가치로 사는 존재일 때 비로소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부유하고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초기 기독교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1:2-3)
이러한 인사를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성도들이 복음의 약속을 믿고 그 확신 가운데 사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동시에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도 구원의 확신을 삶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로 취하고 살아갈 때 모든 일들이 다 감사할 이유가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구약의 잠언서에도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1:7)
또한 성경은 가난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사는 이가 더욱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28: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잠19:1)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복음을 믿고, 구원의 확신 위에 사는 삶은 그 어떤 어려운 형편이라도 형통하며, 구원을 믿지 않는 이들의 삶은 그 어떤 성공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반석 위에 서서 사는 삶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구원의 확신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바로 감사할 것을 찾아내는 눈을 떴는지의 여부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성경이 가르쳐 주셨으니, 모든 일을 감사로 고백할 가치관, 즉 시선이 열려야 하는 것이지요.
특별히 예배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위입니다. 한 주간의 첫날을 구별하여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고백으로 이 시간과 이 마음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일주간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는 간절함을 갖게 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의 구원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구원은 확신은 어떤 감정이나 기분, 혹은 지식이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내가 어떤 신앙적인 헌신을 한 것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을 체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인정하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 희생에 대한 자그마한 상징이 예배당에 걸어 놓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단지 거룩한 장소를 구별하기 위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내가 어떤 행위를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믿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먼지 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믿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이나 하나님께 빌고 또 빌어서 내가 욕망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정성을 드리고 또 드려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저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는 것이 감사밖에 없음을 믿고 고백하는 모든 일상과 선택이 믿음인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며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보며 감사할 제목을 생각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실은 매일 매일 하루를 마감하며 그날에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한 것을 기록해 놓고 돌이켜 읽으며 감사해야 할 시간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맥추절은 첫 열매에 대해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으로 얻은 첫 열매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지만, 대신에 더욱 분명한 첫 열매에 대한 감사제목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드리신 것을 기억하고 믿으며 감사하는 예배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0)
구약의 관점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에게 독특한 재능과 재물 얻을 힘을 허락해 주셔서 거둔 첫 번째 열매를 구별하여 드리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맥추절을 지킨다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구원의 확신을 취하는 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첫 열매가 되어 희생제물로 드려지신 것을 기억하며 내 삶의 첫 열매와 같은 예물로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을 받으실 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찢으신 몸과 흘리신 보혈을 믿음으로 취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렇게 나를 구원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나의 부활과 영생을 예정하시고 확증하신 주님의 약속인 복음을 스스로에게 선포하며 구원의 확신을 취하는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며 자원하여 예물을 기쁨으로 드리는 이 귀하고 복된 마음에 주님께서 마음껏 부으시고 채우시며 응답하시는 놀라운 간증과 체험이 풍성하게 임하시길 아울러 열망하며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없이 크고 놀라운 주님의 은혜로 올해의 상반기를 보내고 이제 하반기를 시작하는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불분명한 인생은 아무리 잘 살고 성공하고 즐겁고 재미가 넘쳐도 허무함의 결론을 향해 삭아 없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 구원의 확신을 붙들고 사는 삶은 그 자체로 이미 풍성하고 풍요로운 인생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쌓여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제목들을 예물과 함께 드리는 우리의 고백과 기도는 올해의 하반기에 풍성한 열매로 자라날 씨앗인 것을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찬을 받을 때 분명한 구원의 약속과 복음을 스스로에게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에게 유리한 것이든 불리한 것이든, 그야말로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눈이 열리고, 믿음이 자라나길 축복합니다. 영생과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모든 순간과 선택이 곧 영원토록 변함없이 밝게 빛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보석처럼 별처럼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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