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날마다 싸워야 할 전쟁
11/13수(水) 갈 5:16-23/ 롬 7:15-25/ 눅 9:23-25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갈 5:17).
바울은 자기 속에 있는 어둠의 인격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외에 모든 유익한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 어둠의 인격은 결정적인 순간이 이중인격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득 생각해보면, 내 정신이 아닌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후회하는 일, 이런 일들은 거짓 자아가 한 일입니다. 내 속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롬 7:17). 죄는 또 다른 나(육신), 현상이 아니라 뚜렷한 어둠의 인격입니다.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롬 7:23). 내 마음의 법이 대부분 죄의 법에게 지고 있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4) 나의 몸은 사망의 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의욕도 기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지옥에 갑니다.
신앙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성령은 이 상태를 육신, 옛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을 믿지 않고 그냥 사랑하셨습니다.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 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갈 5:19-21). 육체의 일, 어둠의 정체가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이 없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무엇이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줄 모르느냐?”(마 15:17)
음식이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음식은 먹은 후 배설되기 때문에 우리의 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마 15:18).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러운 것입니다. 입으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마 15:19-20).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들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악한 것은 내 속에 들어있는 어둠입니다. 내가 아닌 사단이 주인 된, 또 다른 나(거짓 자아)입니다.
기독교에서 어둠의 정체는 현상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어둠은 악한 인격입니다. 이것들은 십자가 보혈로 씻어 내야 합니다.
And...
악한 인격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든 주체는 ‘나’입니다. 모든 일에 ‘내가’ 들어갑니다. 내가 ~을 했다는 것, 이것은 어둠입니다. ‘나’(거짓 자아)는 예수님과 원수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절대 듣지 않고 자기 고집만 피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인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든 것입니다. 무언가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이 선물로 주신 것이므로 우리가 할 일은 감사뿐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비판, 공로주의입니다.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율법주의는 죄입니다. 율법주의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웁니다. 내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 나는 지킬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지켰다면 그것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신 일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그 일을 하도록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율법주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내가 지키기 때문에 너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한 일입니다.
악한 인격의 특징은 세속적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것, 세속적인 것들은 악한 인격의 부산물입니다. 이것은 거짓 자아에 속은 것입니다. 날마다 싸워야 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내가 죽고 예수가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 안에 악한 인격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부인으로 ‘마음’은 진정한 내가 아니므로 기분에 따라 살지 않아야 합니다. 내 속에서 진정한 자아가 울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거짓 자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우울, 슬픔, 이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고 부인하면 됩니다. 이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라고 과감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 자아를 구별할 수 있어야 부인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나는 이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내 십자가는 내게 온 환경입니다. 그 십자가를 이미 주님께서 짊어지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따를 것이라’
예수님이 주인이시니 예수님의 생각이 어떤지 묻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같은 방향으로 가려면 기도로 주님의 생각을 물어야 합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인간은 변해야 하는데 스스로는 절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깨달을 때 변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에 좁고, 멸망의 길은 넓습니다. 예수 믿으면 반드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때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인간 안에는 진정한 자아와 거짓 자아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이 보이지 않고, 주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이것은 거짓 자아입니다. 내 속에 들어있는 어둠입니다. 거짓 자아인 어둠의 인격은 세상 양식을 먹고 삽니다. 거짓 자아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는데 내가 날마다 양식을 주기 때문에 살아나고 있습니다. 진정한 나, 예수 생명은 커지면 커질수록 이곳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진정한 나와 거짓 나, 날마다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거짓 자아가 죽고 진정한 자아가 살아나는 이 싸움은 내가 죽고 예수가 살아갈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참 자아와 거짓 자아의 싸움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로 살리
https://youtu.be/18DsGHHU97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