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영남일보
조선시대엔 윗사람 앞에서 안경 쓰면 결례
헌종때 이조판서 지낸 조병구 안경 썼다가
임금이 크게 나무라자 스스로 목숨 끊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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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력이 나빴던 정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안경을 쓰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안경을 쓰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해 채널 CGV에서 방영한 '정조암살미스터리-8일'의 한장면(왼쪽). 서재필도 안경를 낀 채 고종을 알현했다가 심한 책망을 들어야 했다. |
예의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안경을 착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나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연령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잡았다. 또 노안(老眼)으로 착용하는 것이 안경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사회에서 젊은 사람이 안경을 착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사람들 앞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자체가 큰 결례로 받아들여 진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군주였던 정조(正祖·1752~1800)는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바로 나빠진 시력 때문에 착용하던 안경이 문제였다.
안경을 착용한 채 신하들 앞에서 국정을 논해야 하는 상황이 예의에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국왕이라는 자리가 신하들보다 높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안경을 착용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것을 정조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안경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어 국정을 올바로 펼 수도 없었다.
정조실록 51권에는 "평소에 내가 읽는 책은 선인과 현인들이 남기신 경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점점 눈이 어두워지더니 올 봄 이후로는 더욱 심하여 글자의 모양을 분명하게 볼 수 없다. 정사의 의망에 대해 낙점을 하는 것도 눈을 매우 피곤하게 하는 일인데, 안경을 착용하고 조정에 나가면 보는 사람들이 놀랄 것이니, 6월에 있을 몸소 하는 정사도 시행하기가 어렵겠다"라고 적혀 있다.
정조가 안경을 착용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왕이 이 정도로 조심했으니 신하들이나 일반 백성들의 안경착용에 대한 어려움과 예의는 더 컸을 것이다.
임금 앞에서 안경을 낀 채 나타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조선시대 안경과 관련된 예(禮)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26대 임금이었던 헌종(憲宗·1827~1849)은 외숙이자 이조판서를 지냈던 조병구(趙秉龜·1801~1845)가 안경을 착용한 채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을 두고 "아무리 외척이라고 하지만 목에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헌종은 자신이 어리다고 신하가 자신을 무시해 안경을 착용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헌종의 한마디에 조병구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헌종은 조대비(신정왕후, 조병구의 친 여동생)를 만난 자리에 조병구가 또 다시 안경을 착용한 채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책망했다. 조병구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날 자신의 집에서 음독자살하게 된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조병구는 친동생 앞에서 안경을 써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국왕의 입장에서는 용서가 안 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조선조 말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徐載弼·1864~1951)도 안경을 낀 채 고종을 알현했다가 당시 신하들로부터 심한 책망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대역무도(大逆無道)한 자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편하게 착용하는 안경이지만 불과 100여년전만 해도 함부로 착용하고 다니기 어려웠던 게 바로 안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