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지역의 가장 오래된 절,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12번지 연악산(淵岳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수다사는 통일신라시대에 하동 쌍계사를 중창한 진감국사 혜소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도리사와 더불어 선산 지역의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계속해서 법등을 이어왔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승군이 결집하여 호국법회를 열었던 호국사찰이다. 경내에는 고로쇠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등 나무와 꽃이 가꾸어져 있고 정원이 수수하며 아름답다.현재 다양한 법회를 통해 지역주민과 함께 하고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명부전을 비롯하여 전부 4점의 지방지정문화재가 있다.
* 유래 * 수다사(水多寺)란 많은 중생의 청정법계도량(淸淨法界道場)이라는 뜻이니 여기서의 ‘수’는 관음보살의 감로법수(甘露法水)를 말한다. 감로는 관음의 모든 중생의 고통과 징악한 병고와 위급할 때에의 구세수(救世水), 곧 감로수를 의미한다. 절 주변에는 무을의 안곡지(安谷池)를 비롯해서 상주의 청상지(淸上池), 선산의 대원지(大圓池) 등 못이 특히 많은 것도 절 이름인 ‘수다’와 일맥상통하고 있어 신비롭다. 연악산 정상이 연화지지로 최고의 명당이나 화재가 잘나서 수다水多 라는 이름을 썼다고도 합니다.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연악산에 자리한 수다사(水多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신라 문성왕 때에 우리나라에 불교음악 범패(梵唄)를 최초로 전한 진감국사 혜소(慧昭)가 연악산(淵岳山) 봉우리인 미봉(彌峯)에 흰 연꽃(白蓮)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 967년(광종 18)에는 화재로 인해 극락전과 청천료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185년(명종 15)에 각원(覺圓)이 금강문 등 3문(門)을 세우고 극락전과 청천료를 옮겨지었으며, 비로전·나한전·시왕전·미륵전·봉황루와 방사(房舍), 수선사(修禪社) 등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 때 42성관음대법회를 9,000일 동안 개설하고 『법화경』을 강론하였는데, 승속 수만 명이 참여하였다.
1273년 대수해로 극락전·시왕전·청천료만 남고 모두 유실되었다. 특히 조선의 과거시험 승과(僧科)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는 승군을 일으켜 위태로웠던 조선을 구한 사명대사께서 주지로 있을 때인 1572년에는 극락전을 중수하여 대웅전이라 개칭하였다. 또 만세루와 안심료, 9개의 대방(大房)을 신축하고 모든 중생의 고통과 병고로 위급할 때에 한 방울만 마셔도 구세수(救世水)인 감로수(甘露水)를 의미하는 수다사로 사명(寺名)을 개칭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의승(義僧)이 모여 의국법회(義國法會)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1704년의 화재로 현존하는 건물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1185년에 각원이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유형문화재)이 봉안되어 있다. 또 명부전 안에는 각원이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상(十王像)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81년에 보수하였다.
대웅(大雄)이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하는데서 유래된 부처님의 덕호이며, 대웅전이란 천지간의 대웅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 놓은 집이란 뜻이다.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법화신앙에서는 대웅전은 지혜를 실어 나르는 배 또는 중생을 고통없는 극락의 세계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로 비유한다. 즉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 건물이 중생을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해 가는 반야용선임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법당 정면 어간문 좌우 기둥 머리의 용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선수(船首, 뱃머리)를 상징한다. 하지만 수다사 대웅전의 어간문 양쪽 주두 위에는 용두 대신 연화(蓮花)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대개 대웅전에는 본존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수다사 대웅전에는 협시보살이 없는 독존의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본존불 뒤쪽의 후불탱화는 석가모니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다.
사찰측에 의하면 원래 삼존상이었으나 양 협시는 외부로 반출되어 대세지보살상은 구미 원각사에 봉안되고 있고, 관세음보살상은 대구 누봉암에 옮겨 봉안되었다. 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 유물은 도난 당하였지만, 구미 원각사 대세지보살상의 복장에서 불상 조성기가 확인되었는데, 아미타여래좌상의 조성연대 기록에 의하면 순치(順治) 6년(1649년) 9월에 일선부의 서쪽에 위치한 연악산 수다사에서 아미타불과 두 협시보살의 삼존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약간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다. 이 불상은 미술사적 측면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명부전 부처님 입멸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무불시대에 일체중생을 제도하도록 부촉(咐囑)받은 지장보살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시왕을 함께 봉안한 법당이다.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삼존상으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다. 무독귀왕은 『지장경』에 보면 지옥을 안내해 주는 지옥의 귀왕으로 등장하며, 사람의 악한 마음을 없애주는 분으로, 지장보살의 전생시절에 안내자였던 재수보살의 전신이다. 지장삼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열 분의 명부시왕이 자리하고 있다.
구미 수다사 영산회상도(보물)
원래 수다사 대웅전 본존불 뒤에 걸려 있었던 불화(佛畵)였으나 현재는 이 불화의 모사본을 대웅전에 걸어 두었다. 이 불화는 1731년에 조성된 영산회상도로서 도익(道益) 등 4명의 화승이 제작한 석가모니후불도이다. 8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사천왕, 8금강 일부, 타방불 등이 본존인 석가모니를 둘러싸고 시립하였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권속들이 작게 묘사되어 자연스럽게 본존에게로 보는 이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18세기 전반기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영산회상도의 하단에 기록된 화기(畵記)에는 雍正九年辛亥五月二十四日 善山府西淵岳山水多寺大雄殿後佛幀奉爲, 主上殿下壽萬歲, 王妃殿下壽齊年, 世子低下壽千秋, 婆蕩施主(파탕시주), 供養施主(공양시주), 布施施主(포시시주), 彩色施主(채색시주), 黃金施主(황금시주) 등의 재가자 이름과 비구의 법명이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