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전 통일부장관·인제대 교수의 이 칼럼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글 앞부분은 집필하는 책의 서문에 넣고 싶을 정도이다. 아래 내가 색깔과 진하게, 밑줄 등을 친것과 같이 많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영감을 주는 좋은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 민족주의적 통일론이 설득력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두개의 국가론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에 대해 난 동의하기 어렵다. 나도 김 전 장관과 얼마전까지 이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중립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주장의 근거를 보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 한반도 중립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과 북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일단은 1민족 2국가로 존재하게 된다. 아울러 외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체제로 인한 갈등이 없기 때문에 체제로 인한 갈등과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난 본래 이런 한반도 중립화 방안에 대해 아래 김 전장관의 의견대로 반대했었다. 그러나 한반도 중립화 방안은 한국이 한국의 공식통일방안인 낮은 단계의 국가 연합을 통하여 미래 통일국가를 이룬다는 통일방안과 차이가 없다 할 수 있다. 즉, 두 국가론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영원한 두 국가의 지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부터 취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뒤, 남북의 합의와 투표 등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하자는 방안이다.
한국 사람들이 좀처럼 하기 싫은 말을 김 전장관이 시원스럽게 한 마디 했다. " 남북 모두에서 통일이 사라졌다!"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교육학 박사
원문보기 : [김연철 칼럼] 남북 대결 시대의 새로운 통일론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민족주의적 통일론이 설득력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두개의 국가론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과 전후의 질서는 남북 양자관계가 아니라, 국제적 힘의 충돌과 협력으로 결정되었는데, 민족 내부 관계의 특수성을 부정하면 과연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분단 현실을 망각한다고 분단체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왼쪽)이 지난달 28일 오전 10시30분 정부서울청사 6층 통일부 기자실에서 남북 회담·교류협력·출입 업무를 맡은 조직을 통폐합하고 ‘납북자 문제 대책반’을 신설하는 것을 뼈대로 한 통일부 조직·인력 대폭 감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남북 모두에서 통일이 사라졌다. 지난 7월 현정은 현대 회장이 통일부에 방북을 신청했을 때, 북한의 외무성이 나서 사전에 ‘거부’했다. 우리 통일부에 해당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019년 8월의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하는 담화 이후 휴업 중이고, 위원장도 장기 공석이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부 폐지에 착수했다. ‘통일’이 길을 잃었다.
전후 70년의 세월에서 이런 ‘대화 부재’의 장기화는 처음이다. 이전에 가장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된 적은 1980년 8월부터 1984년 4월까지 약 3년8개월이었다. 2018년 12월 남북 체육 분과회담이 마지막이니, ‘물 위의 대화’가 사라진 지 4년8개월이 넘었다. 앞으로 상당 기간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도 없다. 언젠가 물밑의 대화를 재개할 수 있겠지만, 물 위의 대화가 없으면 지속할 수 없다. 물 위의 대화를 담당하는 통일부가 아니라, 물밑의 대화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에 의존하는 방식은 시대착오다.
김정은 체제에서 ‘통일의 실종’은 남북 관계 악화를 반영한다. 김정일 체제에서 민족을 강조했다면, 김정은 체제는 국가를 강조한다. 김정은 체제에서 국가를 강조하는 노래를 보급하고, 국가 상징을 만들고, 국가 체육을 강조하는 ‘국가 제일주의’는 통일론과 충돌한다.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통일론으로서의 민족 담론도 사라졌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이 사라진 지는 오래전이다.
북한의 통일 방안은 전통적인 고려연방제에서, 1991년 ‘느슨한 연방제’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꾸준히 변화했다. 다른 분단국의 사례를 보면, 국력이 약한 쪽이 대체로 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주장하고, 국력이 강한 쪽이 통합 수준이 높은 연방제를 주장한다. 약자는 흡수의 위협 때문에 문턱을 높이고, 강자는 흡수할 자신감으로 통합의 문턱을 낮추려 한다. 남북한의 국력 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상황에서 북한이 연방제에서 연합제에 가까운 통일 방안으로 전환하고, 통일을 덜 언급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에 비해 한국의 보수가 연방제를 주장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인식은 1950년대에 멈추어 있다.
분단의 세월 동안 보수 세력은 자주 통일 논의를 국내 정치적으로 악용했다. 박정희 정부는 7·4 남북공동성명을 유신체제 추진의 배경으로 삼았고, 김영삼 정부는 대북 정책을 보수 결집의 기회로 활용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는 대북 적대 정책이 만들어낸 공백을 ‘흡수통일론’이라는 이념으로 메꾸려 한다. 흡수라는 이념과 달리, 대결 정책은 반대로 두 국가의 실존을 증명한다. 이념과 현실의 모순이고, 남는 것은 통일 문제의 국내 정치적 악용뿐이다.
대결의 시대가 길어지면서, 두개 국가론이 유행처럼 등장했다. 이웃 나라로 국가와 국가로 살면 문제가 해결될까? 남북 관계를 국가 간 외교로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민족 내부 관계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서 특수관계는 ‘두개의 국가’라는 현실과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명의 이중성이다. 두 개념 사이의 균형점이 새로운 통일론의 핵심 과제다.
독일의 사례가 시사점을 준다. 1973년 바이에른주 정부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통일의 사명을 적시한 기본법에 위헌이라고 소송을 제기했을 때,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조약이 “성질상 국제법적 조약이나 내용상 내적 관계”라고 하면서, ‘재통일의 사명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분단국가의 특별한 이중성을 고려했다. 헬무트 콜 총리가 1982년 취임 연설에서 “독일에는 두개의 국가가 있지만, 하나의 독일 민족이 있다”고 선언한 것도 역시 잠정 협정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민족주의적 통일론이 설득력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두개의 국가론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분단 극복 없이 두개 국가의 정상 관계가 가능하겠는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과 전후의 질서는 남북 양자관계가 아니라, 국제적 힘의 충돌과 협력으로 결정되었는데, 민족 내부 관계의 특수성을 부정하면 과연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통일부를 폐지한다고 통일의 사명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분단의 현실을 망각한다고 분단체제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