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지욕【胯下之辱】
한신은 어려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으나 마음속에는 항상 큰 뜻을 품고 있었다. 젊어서 한신은 항상 칼을 차고 다녔는데, 어느 날 고향【회음】장터거리에서 이 모습을 업신여긴 동네 불량배가 그에게 겁쟁이라 놀리며 사람을 죽일만한 용기와 배짱이 있으면 그 칼로 자신을 찌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보아하니 덩치도 크고 무예도 꽤나 능한 자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니던데, 나와 한번 겨루어 보지 않겠느냐, 키는 8척이나 되는 놈이 배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네, 이런 일에 겁쟁이처럼 벌벌 떨다니, 나와 대적을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 보라고 하며 불량배는 저잣거리 가운데서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섰다. 두 사람의 오고 가는 고성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심한 모욕에 더는 참을 수 없어서 한신은 손으로 보검을 꽉 잡고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저 자를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신세를 망칠 것이 분명하며, 죽을죄를 면치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명예나 체면을 지켜서 무엇 하겠는가 라고 생각을 했다. 한신은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이내 납작 엎드려 그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가게 되고, 그 일로 시장 사람들은 한신을 겁쟁이라 놀리며 비웃게 되었다.
그러나 훗날 크게 성공하여 초나라의 왕이 된 한신은 그 불량배를 찾아 과거의 일을 보복하기보다는 그를 사내대장부라 치켜세우며 순찰을 하는 중위라는 벼슬까지 준다.
과하지욕【胯下之辱】의 수치를 겪은 이유는 그때 그를 죽일 힘은 있었다. 그러나 한신 자신이 만일 그를 죽이고 살인자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면 지금 이런 큰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큰일을 위해서는 굴욕을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굴욕은 사람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며, 깊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편안한 삶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교훈을 몸소 체험하게 해 준다. 굴욕을 인내하면 더 깊은 현실체험을 통해서 모든 사물과 사회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을 갖고 광활한 창조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