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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벽화 '尋牛圖'의 의미는?
심우도의 한장면 '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라고 부르는 법당 벽화는. 견성에 이르는 과정을 열 단계로 간명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송의 보명(普明)이 그린 목우도(牧牛圖)와 송의 곽암(廓庵)이 그린 십우도(十牛圖)가 있는데, 전자는 검은 소에서 점점 흰 소로 나아가는, 곧 오염된 성품을 점점 닦아 청정한 성품으로 나아가는 점오(漸悟)의 과정이고, 후자는 검은 소에서 바로 흰 소로 되어버리는, 곧 등을 돌림으로써 보지 못한 청정한 성품을 돌아서서 단박에 보는 돈오(頓悟)의 과정이므로 목우도는 묵조선(默照禪)을, 십우도는 간화선(看話禪)을 반영하고 있다. 곽암은 임제종 양기파이다. 곽암의 《십우도송(十牛圖頌)》을 옮기고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10번째 그림 '입전수수(入廛垂手)'
메고 있는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주로 포교(布敎)의 목적으로 그려진 심우도는 그 종류가 10여종이 넘으나 우리나라에는 송나라 때 제작된 곽암본(廓庵本)과 보명본(普明本)이 전래되어 조선시대까지는 이 두 가지 그림이 법당 벽면을 장식하였다.그러나 근래에는 주로 곽암의 십우도가 법당 벽화로 많이 묘사되고 있다고 한다.
보명(普明)의 것은 소를 길들인다는 뜻에서 목우도(牧牛圖)라고 부르며 곽암(廓庵)의 것은 소를 찾는 것을 열 가지로 묘사했다고 하여 십우도라고도 하는데 각 장면의 내용은 비슷하나 장면에 붙인 제목이 서로 다르다
♣ 곽암본廓庵本 심우도의 10단계 ♣
심우도의 대체적인 내용은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선종의 최고 이상향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곽암의 심우도를 각 단계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심우(尋牛:소를 찾아 나서다)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모습이다.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써 공부에 임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아득히 펼쳐진 수풀 헤치고 소를 찾아 나서니
물 넓고 산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힘 빠지고 마음 피로해 찾을 길 없는데
단지 들리는 건 늦가을 단풍나무의 매미 소리뿐.
② 견적(見跡 : 자취를 보다)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수행자는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으로 상징한 것이다.
물가 나무 아래 자취 어지러우니
방초 헤치고서 그대는 보았는가?
설령 깊은 산 깊은 곳에 있다 해도
하늘 향한 그 코를 어찌 숨기리.
③ 견우(見牛 : 소를 보다)
동자가 멀리서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모습이다.
이는 수행자가 사물의 본성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노란 꾀꼬리 가지에서 지저귀고
햇볕 따사하고 바람 서늘한데 언덕엔 푸른 버들
더 이상 빠져 나갈 곳 없나니
위풍당당한 쇠뿔은 그리기가 어려워라 .
④ 득우(得牛 : 소를 잡다)
동자가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즉 이제 본성을 찾았지만 아직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더욱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때의 소는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아직 삼독(三毒: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이라는 뜻에서 소의 빛깔을 검정색으로 표현하였다.
온 정신 다해 그놈을 잡았으나
힘세고 마음 강해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느 땐 고원(高原)에 올라갔다가
어느 땐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 머무누나.
⑤ 목우(牧友 : 소를 길들이다)
동자가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三毒: 탐.진.치)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선에서는 이 목우의 과정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그 까닭은 한번 유순하게 길들이기 전에 달아나 버리면
그 소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데서 특별히 주의를 준 것이다.
즉,깨달음 뒤에 오는 방심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때의 소는 길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차츰 검은색이 흰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채찍과 고삐 잠시도 놓지 않음은
제멋대로 걸어서 티끌 세계에 들어갈까 봐.
잘 길들여서 온순해지면
고삐 잡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 따르리 .
⑥ 기우귀가(騎牛歸家:소를 타고 집으로 가다)
흰소에 올라탄 동자가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드디어 망상에서 벗어나 본성의 자리에 들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때의 소는 완전한 흰색으로서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게 된다.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가노라니
오랑캐 피리 소리 저녁놀에 실려 간다.
한 박자 한 가락이 한량없는 뜻이려니
곡조 아는 이라고 굳이 말할 필요 있겠는가.
⑦ 망우존인(忘牛存人: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지인 심원(心源)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본각무위(本覺無爲)로 돌아왔으나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교종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소를 타고 이미 고향에 이르렀으니
소 또한 공(空)하고 사람까지 한가하네.
붉은 해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
채찍과 고삐는 초가에 부질없이 놓여 있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소도 사람도 모두 잊다)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 빈 원(圓)상만 그려져 있다.
즉, 정(情)을 잊고 세상의 물(物)을 버려 공(空)에 이르렀다는 것을 비유한 것.
채찍과 고삐, 소와 사람 모두 공하니
푸른 허공만 아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구나.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雪]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조사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 .
⑨ 반본환원(返本還源:근원으로 돌아가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다.이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즉 그의 본심은 본래 청정하여 아무 번뇌가 없어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보게되며
있는 그대로를 볼 수있는 참된 지혜를 얻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본래 자리 돌아와 돌이켜보니 헛수고만 했구나.
차라리 그냥 장님이나 귀머거리로 있을 것을 .
암자 안에 앉아 암자 밖의 사물 보지 않나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⑩ 입전수수(入廛垂手: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육도중생의 시장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맨가슴 맨발로 저자에 들어가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얼굴 가득 함박웃음
신선의 비법 따윈 쓰지 않아도
당장 마른 나무에 꽃을 피우는구나.
포항 오어사 대웅전 외벽의 벽화 "심우도"
오어사 벽화 중의 騎牛歸家(기우귀가)
흰소에 올라탄 동자가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 곽암본(廓庵本)과 보명본(普明本) 심우도의 장면별 소제목 비교 ♣
그림순서 보명의 목우도 곽암의 심우도
1 未 牧(미목) 尋牛(심우)
2 初 調(초조) 見跡(견적)
3 受 制(수제) 見牛(견우)
4 廻 首(회수) 得 牛(득우)
5 馴 伏(순복) 牧 牛(목우)
6 無 碍(무애) 騎牛歸家(기우귀가)
7 住 運(주운) 忘牛存人(망우존인)
8 相 忘(상망) 人牛俱忘(인우구망)
9 獨 照(독조) 返本還源(반본환원)
10 雙 泯(쌍민) 入焉垂手(입원수수)
♣ 보명본普明本 목우도의 10단계 ♣
生獰頭角恣咆哮 (생영두각자포효) : 머리에 뿔 달고 방자하게 울부짖어
분走溪山路轉遙 (분주계산로전요) : 시냇가 산으로 분주히 돌아다니네.
一片黑雲橫谷口 (일편운흑횡곡구) : 한 조각 검은 구름 동구를 가리니
誰知步步把佳苗 (수지보보파가묘) : 걸음마다 좋은 싹 밟아 대는지 누가 알리.
我有芒繩驀鼻穿 (아유망승맥비천) : 나에게 고삐가 있어 코를 콱 꿰서
一廻奔競痛可鞭 (일회분경통가편) : 한 번 잡아 다니고 아프게 채찍질했네.
從來劣性難調制 (종래열성난조제) ; 전부터 버릇이 나빠 조복(調伏)받기 어려웠는데
猶得山童盡力牽 (유득산동진력견) : 산동(山童)이 오히려 잘 끌고 다니네.
漸調漸伏息분馳 (점조점복식분치) : 점점 조복(調伏)을 받으니 바쁘게 설치는 것 쉬었네
渡水穿雲步步隨 (도수천운보보수) : 물을 건너 구름을 헤쳐도 어디든지 따라와
手把芒繩無少緩 (수파망승무소완) : 손에 쥔 고삐 조금도 늦추지 않지만
牧童終日自忘疲 (목동종일자망피) : 목동은 하루 종일 피곤함 잊었네.
日久功深始轉頭 (일구공심시전두) : 오랫동안 공력(功力)이 깊으니 비로소 머리를 돌이켰네
顚狂心力漸調柔 (전광심력점조유) : 미치고 뒤바뀐 마음 점점 다스려 부드럽게 되었네.
山童未肯全相許 (산동미긍전상허) : 산동(山童)은 아직도 미덥지가 않은지
猶把芒繩且繫留 (유파망승차계유) : 잡고 있던 고삐를 또 매어 놓았네.
綠楊陰下古溪邊 (녹양음하고계변) : 녹양 그늘 아래 옛 시냇가에
放去收來得自然 (방거수래득자연) : 놓아 먹이고 거두는 것 자연스러워
日暮碧雲芳草地 (일모벽운방초지) : 날 저물어 푸른 구름 방초(芳草) 언덕에
牧童歸去不須牽 (목동귀거불수견) : 목동은 오고 가도 고삐 끌 일 전혀 없네.
露地安眠意自如 (노지안면의자여) : 노지(露地)에서 편히 자니 뜻이 자유로워
不勞鞭策永無구 (불로편책영무구) : 채찍질하는데 힘들지 않으니 정말 편하네.
山童穩坐靑松下 (산동온좌청송하) : 산동(山童)은 푸른 솔 밑에 앉아
一曲昇平樂自餘 (일곡승평락자여) : 한 곡조 부르는 이 즐거움이라니.
柳岸春波夕照中 (유안춘파석조중) : 버들 늘어진 언덕에 봄물결 석양이 비치고
淡烟芳草綠茸茸 (담연방초녹용용) : 맑은 연기 속에 방초(芳草)가 우거졌네.
饑찬渴飮隨時過 (기찬갈음수시과) : 시장하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형편 따라 지내네
石上山童수正濃 (석상산동수정농) : 바위 위에 산동(山童) 깊은 잠에 빠졌네.
白雲常在白雲中 (백운상재백운중) : 흰 구름 항상 흰 구름 속에 있듯이
人自無心牛亦同 (인자무심우역동) : 사람도 무심이요 소 또한 그렇다네.
月透白雲雲影白 (월투백운운영백) : 달이 흰 구름 뚫으니 구름 그림자가 희고
白雲明月任西東 (백운명월임서동) : 흰 구름에 밝은 달이 동서로 한가롭네.
牛兒無處牧童閒 (우아무처목동한) : 소가 없으니 목동은 한가로워
一片孤雲碧장間 (일편고운벽장간) : 한 조각 외로운 구름이 푸른 뫼에 걸쳤네.
拍手高歌明月下 (박수고가명월하) : 박수 치며 밝은 달 아래 노래 불러도
歸來猶有一重關 (귀래유유일중관) : 집에 돌아가자면 오히려 한 관문 남았다네
人牛不見杳無종 (인우불견묘무종) : 사람과 소가 보이지 않고 아득히 자취 없네.
明月光寒萬象空 (명월광한만상공) : 차디찬 밝은 달빛 만상은 텅비어
若問其中端的意 (약문기중단적의) : 만약 그 가운데 단적한 뜻을 묻는다면
野花芳草自叢叢 (야화방초자총총) : 들꽃이 방초(芳草) 언덕에 함초롬히 피었다 하리
첫 번째 그림 '미목(未牧-길들이기 전의 모습)'
첫댓글 감사합니다...
여여하시지요
오랫만입니다. 12월 초에 상경하여 방콕하고 있습니다.
심우도를 보면서 불가의 수련과정을 뜻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각 그림의 의미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사해서 정리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착실하게 공부가 되거든요.
벽화의 의미를 풀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많이 궁금했는데 그저 스쳐지나고 말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