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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union), 연합(mingling), 합병(incorporation)에 대한 이해
(사단의 방법과 대비하여)
이번 2008년 여름 훈련 집회는 참으로 풍성하고 유익하였습니다. 우선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풍성하고 뛰어난 메시지들이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으며, 그 중에서도 누가복음과 희년의 메시지를 연결하여 선포한 부분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연결, 연합, 합병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의미 깊었습니다.
연결, 연합, 합병 그 중에서도 연합과 합병과 같은 표현은 일반 기독교계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오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특별히 소위 신학자들은 그 개념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경청하려고도 하지 않고 비판의 잣대를 들이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만큼 폭발력이 큰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사람’ 놀라우며, 은혜롭고 나아가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이 실재를 표현함에 있어 연결, 연합, 합병의 이 표현은 그나마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부족하지만 최선의 개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생명의 인식이 부족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에 대한 조망이 없는 그들이 이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하기야 예수님께서 핍박받고 죽기까지 한 가장 큰 이유도 신성모독에 관한 부분이었으니 오늘날 회복된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사람’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이해를 얻는다는 것이 마찬가지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연결’은 생명에 있어서의 하나에 관한 것이고,
‘연합’은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에 관한 것이며,
‘합병’은 인격들이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하는 것을 가리킴
1. 연결(union)
이번 미니스트리의 1번 메시지는 『‘연결’은 생명의 하나에 관한 것 / Union concerns oneness in life』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인간에 있어 그 어느 것보다 절실하고 근원적인 문제이지만 그 누구도 만족할만하게 정의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만큼 생명은 신비한 것입니다.
국어사전은 “생명은 대체로 살아 있는 것(생명체, 생물)과 살아 있지 않는 것(無生物)을 분간해 주는 기준, 즉 목숨을 의미하며, 생물의 생활 현상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일반적 개념” 정도로 현상을 기술할 뿐이지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접근하고 있지 못합니다.
과학적으로 몇 가지 제시된 정의에는 ①生理的 정의 ②代謝的(metabolic) 정의 ③유전적 정의 ④생화학적 정의 ⑤熱力學的(thermodynamic) 정의 등이 있으며, 생명이 이 세상의 질서의 근원이라는 정도로 현상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정의도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예외적 현상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지극히 유물론적 관점의 정의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생명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생명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생명의 인식’ 참조)
- 요한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성경의 이 두 구절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오직 그 분의 생명만이 생명이며 그 외의 다른 어떤 생명도 생명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어 상으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생명은 ‘조에’로 표현되며, 영생은 ‘조에’에 ‘영원한’을 의미하는 형용사 ‘아이오니오스’가 첨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에’만이 생명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생명,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이 바로 ‘연결’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육체 되심을 통해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시고 하나님을 사람 되게 하심을 통해 생명에 있어 사람이 그 분과 하나 되게 하는 길을 여셨는데 이것을 '연결 Union'이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하나 됨 곧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접붙임’입니다. 돌 감람나무인 우리가 참 감람나무인 아들에게 접붙여짐으로써 참 생명 곧 ‘조에’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 생명이 아닌 우리가 잘려져서 참 생명인 그 분에게 접붙여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우리가 그 분의 생명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그 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생명에서 먼저 잘려져야 하고 그 분에게 붙여져야 하는 것이지, 그 분이 잘려져서 우리의 생명에 접붙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로마서 11: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 로마서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 ”
- 로마서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이런 접붙임의 두 가지 핵심 포인트는 바로 잘려짐과 원 가지로부터의 공급입니다. 생명이 연결되려면 먼저 잘려짐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원래 피조된 생명들에 있어서도 접붙임은 같은 종류의 생명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물며 피조된 생명과 영원한 생명의 접붙임을 통해 하나 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롬11:23이 말하는 것처럼 접붙이실 능력이 바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우리가 그 분의 긍휼로 그 분에게 접붙여지면 그 분의 진액의 공급 곧 하나님의 생명의 공급이 있게 되며 이로서 우리는 그 분과 생명에 연결(Union)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곧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입니다. 또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의 잘라짐과 그 분의 몸 안에서의 공급을 누려야 합니다.
※ 생명에 관한 사단의 전술전략 ※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이 참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 곧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보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사용하여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추구하는 한 가지 핵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자각토록 속이는 것에 있습니다. 즉 생명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 앞에 대면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생명마저도 인간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교만을 자극하여서 그 알량한 자존심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것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 창3:3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세상을 구원할 자 그 이름 예수, 그 아들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지금도 바로 이 사단의 유혹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 인간의 문화와 철학, 사상, 종교 등을 의지하고 위안 삼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대담하게도 자신의 교만을 가지고 생사를 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연합(Mingling)
미니스트리 메시지는 『‘연합’은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에 관한 것 / Mingling is related to the divine and human natures』라고 말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사람인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것(그러나 이 연합 안에서 두 본성은 구별된 채로 있다)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을 통해 금실과 베실, 곧 신성과 인성이 함께 짜여 연합되었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됨으로 인해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신성을 담을 수 있는 그릇 곧 역량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 빛, 의, 거룩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의 미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신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소위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비공유적 속성인 자존성, 무한성, 영원성, 편재성(omnipresence), 전지성(omniscience) 과 같은 것들인데 이런 속성들은 인간 세계에서 그 어떤 유비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가 원형(prototype)이 되어서 이 놀라운 신비인 신성과 인성을 한 몸 안에서 연합(mingling)의 방식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며, 또한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이 입었던 에봇의 예표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들이 어깨받이와 가슴받이와 같은 것들을 부착할 수 있도록 입는 조끼와 같은 것인데, 그것이 금실과 베실로 짜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예표를 통해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사실을 예표로 볼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 안에 있는 놀라운 신성과 인성의 연합 곧 내 안에 함께 있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비록 우리가 이 예표를 통해 그 신비를 인식하고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 비밀은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곧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또한 이러한 연합에 있어서의 두 가지 핵심은 첫째 ;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이루어지되 이 연합 안에서 두 본성이 구별된 채로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 신성과 인성이 연합하되 제 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또한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개념의 논리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일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논리 안에 맞추어 이해하려고 하는데서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으며, 여전히 사단은 오늘도 이런 것으로 사람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가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
연합에 있어 주님과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 방식에 있어서 주님은 먼저 독생자로서 신성을 가지신 그 분이 인성을 입으심으로써 이 놀라운 연합의 원형을 이루셨고, 반대로 우리는 그 분이 두드릴 때 우리가 문을 열어 그 분을 우리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인성이 그 분의 신성과 연합된 것입니다.
※ 연합에 있어서의 사단의 전술 전략 ※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놀라운 연합을 이루시기 위해 그 분은 자신을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단은 어떠할까?
사단의 본성은 속이는 자임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단도 하나님을 흉내 내어 자신의 사악한 본성을 인간의 인성과 연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악한 영적인 세계에 관한 지식을 가진 분이라면 사단의 이런 시도가 지금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빛과 진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일한 방법 즉 빛과 진리를 가장한 방법으로 사람에게 접근하여 잘못된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특별히 영적인 욕심을 가진 사람의 그 욕심과 사단의 유혹이 맞아 떨어질 때 많은 경우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빛 인줄 알고, 하나님이 주신 대단한 은사인 줄 알고 받지만 사실은 사단의 속임에 빠져서 처음에는 놀라운 활동을 하지만 그 말로가 비참한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이 자신의 악한 본성을 사람의 인성과 연합시키는 가장 기초적인 전략은 첫째는 사람의 욕심을 이용하는 것이며, 둘째는 각종 혼적 방법을 통해 사람을 수동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들에게 거짓 빛과 능력과 이해력을 체험토록 하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것을 가장한 혼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들이 계속적인 노예의 상태에 머물게 하고 결국은 비참은 종말을 주는 것입니다.
사단의 연합의 방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이 연합하되 그 독립성을 유지하고 제 삼의 본성을 낳지 않는 인격적인 방식을 취하는데(금실과 베실이 교차하여 짜이되 금실과 베실이 그대로 남아 있음) 반하여 사단은 그 독립성(사람의 인성과 개성)을 점점 잃게 하고 완전히 노예 상태로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과 연합된 자들은 처음에는 대단한 능력을 행할지 모르지만 결국 인성이 점점 죽게 되고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성적 타락을 하는 등 결국 도덕적으로도 비참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즉 사단의 방법은 한 마디로 비인격적이고, 기계적이며, 강제적이며, 속이는 방법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단의 이런 몇 가지 중요한 행동 원칙만 안다고 해도 사단의 궤계에 빠지는 어리석은 자가 결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몸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각자 개인주의 개별 주의로 나가는 것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복의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야 하는 우리의 시대적 소명은 매우 큰 것입니다.
3. 합병(Incorporation)
미니스트리 메시지는 『‘합병’은 인격들이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 Incorporation denotes persons coinhering in each other』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육체 되신 그리스도는 삼일하나님과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합병체이셨으며, 하나님은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하나의 합병체이시다. 또한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상호 내재하시고 하나로서 함께 일하심으로써 하나의 합병체 안으로 합병되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합병’이라는 단어가 가장 소위 신학자들의 주목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의 신비를 알지 못하고는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 말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합병의 원형은 삼일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삼일 하나님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상호공존하시고 함께 거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상호 관통하는 방식으로 서로서로 내주하시고 또한 일하십니다.
그리고 육체 되신 그리스도는 이 삼일성의 합병의 원형을 인성 안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즉 그 분은 아버지-아들-그 영-사람이 되셨으며, 그 분의 이런 사역 안에서 우리 또한 교회생활을 통해 단체적인 삼일 하나님-사람의 재생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이 합병과 관련된 신비 또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이해로는 한 사람의 인격이란 오직 한 사람의 고유성을 의미합니다. 두 존재가 한 인격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몸은 하나인데 머리는 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서로가 상호내재 한다는 것 또한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불리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의하면 세계를 규정하고 인간을 규정하는 선험적 두 틀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가 공간의 절대성입니다.
상호내재라고 하는 것은 이 절대적 선험적 틀인 공간의 절대성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상호내재하시며, 나아가 함께 일하십니다. 예수께서 일하실 때 아버지께서도 일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인간적으로 말해 한 인격은 또 다른 인격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놀라우신 주님의 사역의 결과 우리는 신성한 영역 안에서 완결되신 하나님의 인격과 거듭난 믿는 이들의 인격이 서로 내주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 모두 이의 간증자입니다. 이 어인 영광인가요!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런 합병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급한 생각입니다. 한 인격이 다른 인격 안에 공존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격이라 함은 독립성과 자유의지가 완전히 보장될 때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독립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이 다른 인격 안에서 자신을 주장할 때는 반드시 마찰이 일어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상호내주와 함께 일하심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삼일하나님이라고 하시더라도 삼일성 안에서 상호 내재함에 있어서는 끝없는 자기부정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단 한순간도 자신의 뜻대로 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비록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스스로 종이 되셨으며, 자기 임의대로 자의대로 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말 그대로 그 분은 십자가에서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서 그 분을 번제로 남김없이 드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합병은 끝없는 사랑과 자기부정과 온전한 헌신과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 교회생활에서 온전히 합병이 되지 않고 분열이 생기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합병의 뒤에 있는 이런 원칙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 가운데서 지체 상호간에 이런 합병의 훈련을 통해서 점점 새 예루살렘의 보석이 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 합병에 있어서의 사단의 전술전략 ※
주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격이 상호거주하는 이 놀라운 합병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사단은 속이는 자의 천재입니다. 사단도 하나님을 흉내 내어 인간과 합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귀신들린 자들의 사례와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의 사례들은 바로 사단의 이런 인간과의 합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실은 이런 귀신들의 인격에 사로잡혀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한 최고의 이상에 속하는 이 합병의 신비를 사단은 인간을 사로잡아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데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약 20년 전에 일시적으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의 놀라운 체험은 하나님께서 제게 영적인 실제에 대한 놀라운 이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 제 몸에 시커먼 덩어리가 옆구리를 통해 들어오고 일시적으로 제가 정신이상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분명히 제 인격이 있고 판단이 있었지만, 내 안에 들어온 또 다른 악한 인격에 의해 헛소리를 하고 미친 사람처럼 되는 것을 분명히 경험했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사람의 인격 안에 들어와서 그 한 인격을 지배하고 조종하려고 하는 끊임없는 시도를 합니다. 오늘날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의 많은 경우도 이런 것에 해당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이런 인격의 합병 역시 원칙이 있는데, 그것 또한 사람이 수동적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심한 원한을 마음에 품는 경우와 같이 정상적인 인격으로의 삶을 살아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놓을 때 침입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문을 두드려도 우리가 열지 않으면 결코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강도와 같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내적인 충격이나 외적인 심한 압박과 환경으로 자신을 놓고 문을 열어놓으면 불법으로 침입하여 그 사람을 조종하고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사람이야말로 가장 정상적이며 인성의 미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에 의해 영적 지식이 조금만 많아지거나 영적 지각이나 은사가 있을 경우 스스로를 신비스럽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로 영적인 사람은 가장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며, 누구나 함께 하고 싶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첫댓글 깊고도 풍성하고 귀한 글이군요.
형제님 글에 처음 답글을 씁니다. 제가 교회 생활을 소홀히 하던 97년 경에 이 말씀이 선포되기 시작해서 뒤늦게 합병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어요. 이 말을 소화해서 설명해 주는 지체가 부족했고,실재를 사는 사람이 부족했습니다.주님의 축복으로 각지에 훈련이 시작되면서 훈련을 통과하고 나온 지체들 도움으로 이제는 분명해졌지요.그리스도와 합병된 인격을 사는 것이 최고수준의 도덕성을 이 땅에서 표현하는 길이며, 이 인격만이 하나님의 만족임을... 옛 나를 버리고 합병된 인격을 오늘도 살기 원합니다.
아멘
최근 모 방송국에서 귀신들림같은 신비현상을 오락성과 겸비해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박윤철님이 일시적으로 겼은 그런 어두운 부분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합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도 교회가 새로운 사람을 형제로 받아들일 때 악한 세력들과 절연하는 기도와 의식을 반드시 거쳤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채 교회에 받아들여지면 많은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인간과의 연합과 합병에 대한 주님의 계획을 자기식으로 모조해 어떤식으로든 인간의 죄를 통해 파고들어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깨뜨리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교회안에서 영적세력들에 대한 보다 많은 인식과 대적, 제어 같은 부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명 가운데 깊어지는 경험은 때론 영적 대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찌 할 수 죄성과 옛 생명으로 인한 좌절은 그 뿌리가 어두운 영적 영향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성 가운데 긴 시간을 통해 파쇄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 뿌리가 악한 영들과 아직 절연되지 않아서 비롯된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내쫓는 기도로 해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윗트리스 형제님이 쓰신 책 가운데 인성에 대한 언급에서 왜 어떤이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라지 않는가라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일정 부분 제가 위에 언급한 내용 가운데 답이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