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절. 나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도다 (누가복음 2장 8-14절)
----------------------------------------------------------------------------------------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아기 예수 탄생이 있을 것임을 예고해 주는 장면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을 지칭하기를,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구주 예수 그리스도”,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라고 말을 합니다. 제일 먼저 말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말을 인용해서 한자로 복음(福音, 명사로 기쁜 소식, the Gospel), 영어로는 ‘좋은 소식(good news)이라고 말합니다.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라고 하나님을 찬송한 후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날이 역사적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나누어지는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참고적으로 B.C(before Christ, 주전)는 주님이 태어나기 전이라는 뜻이고, A.D(Anno Domini 라틴어)는 그리스도의 해라고 합니다. A.D를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줄인 말인 ‘서기’(西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 사람들이 지어낸 말로 개념상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전, 주후라고 구분해서 말하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것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라고 하니 더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두셨고, 하나님이 직접 땅에 오셔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려는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계획을 세우셨을까? 상당한 의문을 품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냥 죄 안 짓게 해서 평안히 살게 하시면 되지 왜 그렇게 일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셨을까? 참 난해하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죽음도 불사하고 자신을 인간에게 다 내어 주시려고 작정한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왜 그렇게 무모한 계획을 세우셨어요?” 라고 물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죄 짓는 것을 방조하거나, 함정을 만들어서 죄에 빠지도록 유도했다는 것은 인간이 생각해 낸 억지이고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지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죄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불행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죄와 악함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과,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악에 물들어 있는 이 세상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을 하고 계셨는데, 그것이 바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내려 보내 주려는 계획이셨습니다.
세상의 문제, 인간들의 문제, 그리고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천사들의 합창처럼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깃드는 날입니다. 그런데, 매해 반복되는 성탄절이라 감동도 없고, 관심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교회들은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트리나 전구 장식들을 많이 하지 못합니다. 지자체들도 예산 절감을 이유로 대형 트리들은 설치를 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주전, 주후라는 말이 너무 특정 종교 편향적이라고 반대해서 학술용어에서는 년도 표기를 BCE(Before Common Era, 공통시대 전)와 ACE(After Common Era 공통시대 후)라고 표기합니다.
이단들은 성탄절인 12월 25일이 로마의 농신축제일이라고 해서 성탄절을 지키는 것이 우상숭배의 연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단들의 논리대로라면 석가탄신일에 예배드리면 석가를 숭배하는 것이 되고, 달(月) 신에게 제사하는 1월 14일에 예배드리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우상숭배가 됩니다. 이단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억지 일 뿐이고, 일고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성탄절은 로마 당시에 이교도들이 벌이는 큰 축제일인 12월 25일에 믿음의 성도들이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예수님의 탄신일로 바꾸어서 예배드린 것이 출발입니다. 날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탄절의 의미와 아기 예수 탄생을 맞이하는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데 집중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탄절은 축제일이기도 하지만 “아기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을까?”는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왜 오셨을까? 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앞으로 나의 신앙생활의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들이 왜 11월 달 까지 결산을 마치는 줄 아십니까? 일주일의 하루가 주일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일 년의 한 해도 12월 기준이 됩니다. 바로 12월 달에 성탄절이 있기 때문이며, 모든 교회 절기는 대림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계주 달리기 시합에서도 출발 반응속도가 좋아서 스타트를 잘 끊는 사람이 일번주자로 나섭니다. 성탄절은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일 년 농사를 반 이상 잘 지은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선포되는 말씀 속에서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그 답을 묵상하며 하늘에서 주시는 평안가운데 성탄절을 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왜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까? 라는 첫 번째 해답은 오늘 말씀 11절에 나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기 예수님은 너희, 우리, 곧 나를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구원자,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과 내가 도킹(Docking, 서로 결합하는 일)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접촉하지 않으면 성탄절이 일 년 365일 계속 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이 나를 만나 주시려고, 나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나는 죄인이요 예수님은 나의 그 죄를 벗겨내 주시고 덮어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나는 사망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존재였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사망권세를 이기게 하시고, 내가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고백하십시오. 믿으신다면 감사 하심시오. 믿으신다면 그 믿음 영원히 변치 마십시오. 내가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 하나만 붙잡고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의문과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이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는 말 속에는 심판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강한 반어적 느낌이 듭니다. 오히려 심판 받아 마땅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세상에 나를 대입해 보면,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데, 나를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것이 확실합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 말은, 일방적으로 받는 것, 곧 수동적인 상황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구원의 은혜라고 합니다. 오직 은혜로(거저 주시는 선물)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면, 구원을 받아야죠? 1+1 할인 행사, 반 값 세일 할 때는 발 디딜 틈이 없으면서,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구원을 선물로 주시려고 왔다는데 자리가 썰렁하다면 하나님은 크게 실망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탄절에 스스로 다짐 하십시오. 나는 심판과 구원의 갈림길에서 구원의 길로 인도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고 믿음으로 선포 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구원받은 자가 됩니다. 은혜 안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나 때문에 오셨다”,“나를 구원 받게 해 주시려고 오셨다”, “나는 더 이상 심판아래 있지 않고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라고 확신하면서 선포 하십시오. 사람들 많은데서 말하기가 부끄러우면, 오늘이 가기 전에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서, 구원자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고, 은혜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올려 드리십시오. 00교회 모든 성도가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나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도다”라는 사실을 굳게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을까? 두 번째 해답은 12절 말씀입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이 구유(여물통, a manger, a trough)에서 태어나시도록 상황을 만드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 중에 가장 비천하고, 나약하고, 힘없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시려고 햇습니다. 그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경험하고 확인하게 위해서 가장 낮은자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동화(同和, assimilate)되기 위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느끼기 위함입니다. 표적이 되었다는 말은 옷에 붙어있는 이름표처럼 표시(mark)를 해 놓은 것이고, 앞으로 되어 질 일의 징조(sign)를 미리 보여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한번 오신 예수님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증거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부자나 고관대작의 집의 자손으로, 아니면 왕자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처지를 제대로 알기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셨는데, 이러한 질서를 파괴하여,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고, 억압하는, 이른바 갑질 사회 구조를 원래 위치로 돌이키기 위해서 자진해서 약자의 편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역 삼각형의 꼭지점이 되셔서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를 들어 올리셔서 세상과 분리시켜 놓고 그 무게를 계속 감당하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고작 먼지와도 같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위해서 이러한 배려와 희생을 감수하신다는 것이 정말 감동 되지 않습니까? 정말 평생을 감사해도 그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 나사렛 동네가 다름 아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뉘어 있었던 말구유가 바로 우리 집 안방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 놓인 것을 목격한 목동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이 예수님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처 많으시죠? 삶의 무게가 힘들다고 느끼시죠? 불평등한 사회 현상에 대해 분노 하시죠? 아이들 교육, 노후 준비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쌓여 가시죠? 몸이 연약해서 항상 지치고 힘드시죠? 이런 질문에 동감 하신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우리의 삶의 모습을 ‘흑암에 갇혔다“라고 합니다.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어둠의 공간에 갇혀서 미래의 소망이 하나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나였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제가 과거형으로 “나였었다”고 말씀드린 것은 예수님이 빛으로 내 마음에 오셨다면 흑암에 갇혀 있던 우리가 흑암에서 벗어나 빛이 비추어지는 환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흑암속의 과거에 그대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흑암을 물리쳐 내 마음 안에 빛이 되어주시고, 나의 슬픔과 걱정의 위로자 되어주시고, 근심과 불안에 짓눌려 있는 내 안의 모든 문제들의 해결자가 되어주시기 위해서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빛이시고, 위로자되시고, 해결자 되시는 분이 구유에 누어계신 아기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믿기는 하는 것 같은데 현실감이 떨어지죠?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을 받아들였는데 왜 계속 문제투성이와 현실의 불안감이 떠나지 않습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도 바뀌고 변화 되는 게 없는데 무슨 그런 거창한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당장 변화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허다합니다. 왜 그럴까요? 새 차 사주고 기름 가득 채워졌는데 차가 안 굴러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운전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운전자가 차에 시동 걸고 운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차도 깡통 고철에 불과합니다. 새 차 되시는 예수님을 선물로 주었고, 기름 되시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셔 계신데도 운전 안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모습니다.
성경의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권면과 명령과 부탁의 말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베테랑 운전사가 되어서 여기저기 다녀봐야 좋은 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곳곳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문제를 해결 받는 소중한 체험이 축적되는 겁니다. 아기 예수님이 성장해 가며 사람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이루어 갔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년 수가 지날수록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가면서 계속 성장하고 굳건해 져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친다하여도 내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도록 예배와 기도 생활에 더욱더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위로해 주시고 내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아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마음껏 활용하십시오. 신앙생활의 참 뜻을 알아가고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경험 하면서 행복하고 기쁘게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두 가지에 대한 해답을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받아들이시고 선포 하십시오. 그리하여 나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앞으로는 절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내 안의 문제들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십시오. 주님을 찾고, 부르시고,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우리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기쁨과 평안의 주님으로 찾아오실 겁니다. 00교회 모든 분들이 이 두 가지의 해답을 내 것으로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린 해답 두 가지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하시면서 행복하고 평안이 넘치는 성탄절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나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도다” 고백하여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 속에 거하게 하시고,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과 영원토록 동행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소원을 드리며, 그대로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