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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0:4-6>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어제 읽은 1절 말씀에서 힘 센 다른 천사가 등장했고, 2절에서 오른 발은 바다를, 왼발은 육지를 밟고 있고, 3절에서처럼 그 천사가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는데 그 때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우레 소리가 그냥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들렸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 첫 부분에 보면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 하다가’ 뭔가 알아들을 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록하려 했겠지요.
그런데 곧바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4절 중반부에 보면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지 말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기록하고 인봉했다면 어느 때인가는 그 인봉을 열고 기록된 것들을 보게 되겠지요. 그런데 인봉하지 말고 기록하지 말라는 것은 지금 일곱 우레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 메시지는 미래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제공하지만 그 요리에 대한 비법은 본인만 알고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은 거죠.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어 말했다는 것은 천상의 세계에서는 어떤 계획과 뜻이 있어서 이 역사를 주관해가고 있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고 우리 인간들은 알 필요가 없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 세상 종말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역사의 시작이 있는 것처럼 역사의 종말은 분명 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하나님께서만 아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단종파에서는 자기들 교주는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비밀을 자기 교주는 안다고 하면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몇년 몇월 몇일이라고 주장해 왔지요. 물론 그럴 때마다 다 부도가 나고 결국 사기행각이 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지금도 그런 시한부종말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참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지요.
나는 앞으로 부자가 될까요? 아니면 모든 것을 다 잃고 쪽박차는 신세가 될까요?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건강할까요? 아니면 병에 걸려 고생하게 될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까 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다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죠. 부자던 가난하던, 50살을 살던 100살을 살던, 건강하던 병에 시달리던 우리는 때가 되면 죽습니다. 죽음 앞에서 부자 가난한 자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의 삶에 주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고, 그 미래적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부자가 될지 가난한 자가 될지, 몇 살까지 살지, 건강할지 병들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5절 말씀을 봅니다.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1절부터 등장한 힘 센 천사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고 하지요. 뭔가 맹세하려는 행동을 보입니다. 6절에서 그 맹세의 내용이 이어지지요. 6절을 보면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지요. 하나는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 그리고 또 한가지는 창조주시라는 겁니다. 특히 창조주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에 그 가운데 있는 물건 즉 모든 사물들을 창조하셨다고 말하지요.
하나님에 대한 이런 표현들이 여러 성도님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지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창조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이 피조물 세계 속에서 역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창조주에 대한 막연한 인식은 가질 수 있어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는 완벽한 인식도 완전한 지식도 가지는 게 불가능하지요. 마치 내가 내 어머니의 뱃속에서 출생되었지만 내 기억력으로는 어머니 뱃 속에 있었던 시간들이나 내가 출생하는 모든 과정에 대한 기억도 지식도 전혀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어서 인간은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한 개념은 있지만 영원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인식과 이성과 과학적인 시각에만 갇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영원성도 부정해 버립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부정해 버리면 이 세상과 역사와 내 인생에 대한 어떤 답도 깨달을 수 없지요.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어디에선가 행복이 다가오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부정하면 이 세상의 신비로운 것들이 저절로 드러나거나 깨달아지겠습니까? 하나님을 부정하면 우리 인간이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멋있고 위대한 삶을 살게 되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과학은 인공지능을 비롯해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만큼 최첨단으로 나아가지만 그런 발전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거나 우리의 삶을 더 위대하고 훌륭하게 하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이 세상의 모든 비밀과 신비를 다 알고 계시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부분적인 시간과 인생 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