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물장수와 어머니
-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은퇴한 지 오래된, 무척 존경하는 선배 교수 님께 들은 이야기다.
20대 초반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 캠핑을 하면서 전국을 주유하던 중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오후 늦게 강가에 텐트를 치며 하루를 묵을 채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초로의 촌노(村老)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하루를 자고 떠날 요량이라고 했더니, 펄쩍 뛰면서 우리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을
어찌 한 데서 재우느냐며 빨리 텐트를 걷고 따라 오라 하시더란다.
실랑이 끝에 못 이기는 체하고 따라갔더니 마을 공회 당(公會堂) 넓은 방에 묵게 해 주고,
저녁까지 차려 주며 ‘없는 찬이 나마 든든히 먹으라’고 호의를 베풀더라는 것이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땐 그랬어, 요즘처럼 야박 하지 않았거든. 꼭 그 마을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날도 늦었는데, 그냥 자고 가소”
이 이야기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데도 그 날 일은 너무나 또록 또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느 날 오후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머리에 이고 왔던 보퉁이를 펼치자 색 실이며 바늘, 골무, 참 빗 따위가 있었다.
(이런 여성을 ‘방물 장수’라 부른다는 것을 안 것은 또 한참 뒤의 일이다).
다른 물건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또 어머니가 그 방물 장수에게 무엇을 샀는지도 전혀 기억이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심심하다고 치마 꼬리를 붙잡고 칭얼대는 나를 다독여 달래면서
어머니가 방물 장수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은 물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희한하게도 꼬맹이의 기억에 ‘대동아 전쟁’과 ‘육이오’란 단어 만은 지워지지 않고
똑똑하게 남아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방물 장수와 어머니는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자신이 견뎌내었던 고단한 삶에 대해
경쟁하듯 말했을 것이다.
방물장수는 물건을 파는 것을 잊어버리고 아예 무당이라도 된 듯 넋두리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모처럼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털어놓을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정 일어서려는 방물 장수를 자꾸 말렸을 것이다.
기운을 잃은 해는 서쪽 산에 반달이 되어 걸려 있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하고 방물 장수가 보퉁이를 싸서 일어서려 하자,
어머니는 방물 장수를 붙잡았다.
“가긴 어딜 가요. 날도 늦었는데, 그냥 자고 가소.”
가벼운 실랑이 끝에 방물장수는 주저앉았고 어머니는 재빠른 손으로 저녁상을 차려 왔다.
방물장수는 마당 건너 따로 떨어져 있는 작은 방에 묵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했지만,
아버지 역시 방물장수라고 하는 어머니 말에 “그래?”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기 까지다.
다음 날 방물 장수가 우리 집을 떠나던 장면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타인에 대한 호의와 배려가 있는 사회.
학교 출근하는 길 곳곳에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다.
단독 주택을 헐고 30층, 40층 말쑥한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집은 모두 아파트로 변했거나 변하고 있다.
이제 아파트로 무엇을 팔러 오는 사람도 없거니와 있다 해도 집안으로 들일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밥을 먹이고 재워서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마을 어귀에 청년들이 와서 텐트를 치는 것을 보고, 이럴 수 없다며 데려다 공회당에 재우는 일도 더더욱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런 호의는 당연히 근대의 산물은 아니다.
벌써 50년 전의 일이니, 그것은 아마도 전 근대 사회의 유물일 것이다.
나는 전 근대 사회를 긍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분 제와 유교적 가부장제, 경제적 빈곤만 들더라도, 전 근대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회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전 근대를 벗어던지고 만든 이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오직 화폐로만 매개될 뿐이다.
이 사회가 정말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사회인가 궁금하다.
혹 근대로 달려오면서 전 근대의 쓸 만한 가치들을 모두 일괄하여 폐기해 버린 것은 아닌가.
조선 후기 사회의 개혁을 고민했던 다산(茶山)이 다시 살아난다면
화폐 만으로 매개 되는 이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타인에 대한 호의와 배려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옮긴 글>
첫댓글 황혼에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독일의 작가요 철학자인
괴테(Goethe/1749~1832년)는
노년에 관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노인의 삶은 상실(喪失)의 삶이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통상적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힙니다.
첫째 ; 건강,
둘째 ; 돈,
셋째 ; 일,
넷째 ; 친구,
다섯째; 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이 되어가면서,
괴테의 말을 음미(吟味)하면서,
준비를 소홀(疎忽)히 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든 황혼에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노인(老人)이 되지 마시고,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갑시다.
김종승 님! 괴테가 산 삶의 길이가 우리와 다를 바 없는데 괴테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가르침의 말씀을 남겼는지요.
우리가 인용하는 말씀 중 '공자' 님도 계시지요. '공자 가라사대..." 참으로 이런 분들이 세상에 계셨기에 우리가
나아갈 길에 지침이 되고 따르지요.
여기에 우리 조상 님들은 어떻습니까? 배운 게 없으셨는데 남긴 가르침은 배웠다는 현대인 보다 훨씬 큰 가르침의;
말씀이 많은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