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소나타 / 박정자
시민회관 챔버홀에서 베토벤 소나타 연주가 있는 날이다. 지정석을 찾아 앉으며 사방을 둘러보니 뒷좌석에 둘째 사위가 보였다. 아내의 연주가 있을 때마다 모든 일을 뒤로하고 참석한다. 연주 장면을 녹화하려는 모습이다.
둘째 딸 피아노 담당 교수가 정년퇴임 기념으로 제자들과 베토벤 소나타 32개의 전곡을 8회에 거처 연주한다. 오늘은 4회째 연주일이다. 딸은 30여 년간 퇴임 교수와 함께 피아노 활동을 했다. 그동안 힘든 일 즐거운 일을 겪으면서 총애를 받았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애쓴 이야기를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며 어떤 사람은 개인 일 뒤로하고 우선순위로 따라 주어서 고마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었다며 스트레스로 체중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무대 조명이 밝아졌다. 곱게 차려입은 연주자들이 멋스럽게 인사했다. 오늘은 피아노 소나타 15번부터 18번까지 연주한다. 32곡 중 29곡은 제자들이 연주하고 나머지는 퇴임 교수가 한다. 15번 곡 연주자는 몸매도 예쁘고 피아노 치는 자세도 진지했다. 16번 곡은 현 학생으로서 교본을 치는 느낌이다. 17번 곡 피아니스트는 자세가 노련했다. 음악 속에 푹 빠진 모습이다. 나는 순간순간 지루하여 속히 끝났으면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곡을 감상하기보다 연주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18번 연주 순서가 되니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모두 어깨와 팔을 들어낸 연주 복을 입었는데 딸은 반소매에 허리선도 넉넉한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체중이 늘었다고 하소연하더니 평소에 즐겨 입던 분홍색 드레스가 아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자 잠시 손을 모아 기도하더니 손수건으로 건반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의자를 움직여 자세를 가다듬고 피아노 건반을 치기 시작한다. 온몸이 음악의 흐름 따라 몸짓이 흐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관중은 숨을 죽이고 고요하다. 그때도 그랬다, 11월 첫눈이 내리던 날 서울 조선일보 빌딩에서 전국 피아노 경연 대회가 있었다.
유치원생 딸을 데리고 피아노 경연 대회에 출전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참석해 강당 안에 가득 찼다. 어린아이가 무대에 올라서자 나는 차마 무대를 바로 보지 못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잿빛 하늘에서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피아노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고 간절한 기도가 되어 마음속으로 흘러나왔다. 실수하지 않게 하소서!
딸의 피아노 전공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좁은 아파트에서 피아노 연습이 더 힘들었다.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중등교사는 노골적으로 불평했고 때론 등교하는 아이에게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피아노 치는 방을 방음 설치하고 페달을 내려놓고 쳤지만 교사는 밤잠을 설쳐 수업에 지장이 있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딸은 대학입시를 앞둔 처지에 연습은 불가피한 시기였다. 결국 그 교사는 이사를 가고 말았다. 지금도 그 일이 미안하고 마음 짠하다.
이웃집만 불편했던가 엄마인 나도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피아노 연습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니라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는 까닭에 소음일 뿐이다. 딸은 첫 아기를 낳고 유학을 가는 바람에 남편의 외조 또한 힘겨웠다.
그는 어릴 때 모차르트 곡을 좋아하고 잘 친다는 칭찬을 받았다. 베토벤 곡은 손이 큰 사람이 연주하기 좋다는 말을 했다. 자기는 새끼손가락이 엄마 닮아서 짧다고 말하면서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았다고도 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했을 것 같다.
교수는 대학교에서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마음을 담아 제자들과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준비했다고 하며,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의 인생 역경을 응집한 음악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고, 여정을 끝내고 순수하고 투명한 구원의 세계로 가는듯하다는 말과 청력장애를 극복하고 역경을 예술로 승화시킨 음악을 통하여 우리 영혼도 치유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토벤 소나타 18번 곡은 역경의 시간을 끝내고 예술로 승화시킨 즐거움의 곡이라고 한다. 딸은 지금 그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의 연주 속에는 자신의 피아노 삶을 돌아보며 은사의 노후를 축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