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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최가진이다..
엄마가 옛날 어떤 드라마의 여주인공 이름으로 나왔던 가진이라는 이름이 예뻐서
나중에 딸을 낳으면 꼭 가진이라고 지어주어야 겠다고 다짐했었다는데..
첫째에다 딸로 태어난 덕분에 가진이라는 이름은 내 차지가 되었다.
그에 반해 내 동생 이름은 현겸이다.
그것도 엄마가 좋아하는 만화책의 남자 주인공이름이라나?
그렇다 해도 현겸이라는 이름은 뭔가 특이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대체 내이름은 마음에 들지 안는다..
가진이가 뭐냐? 가진이가... 흠..
난 푸름이라는 이름을 갖고 싶다.
내가 초록색을 좋아 하는 것도 있지만 넓고 푸른 바다처럼 깊고 넓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도 줄 수있고..
[푸름...] 얼마나 좋은 이름이냐? 거기다 한글이름이고...
기왕이면 성이 최씨가 아니고 정씨면 더 좋을 것 같다.
정푸름...
나는 꼭 정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서 푸름이라는 이름을 지어 줄 것이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미라가 내 옆구리를 툭치며 식판을 내 맞은편으로 내려 놓고 앉았다.
"아무것도.. 흠..."
떡볶이 하나를 입속이 넣으며 우물거렸다.
미라가 식판을 식탁 가운데로 밀어 놓고는 내 떡볶이를 하나 집어 먹었다.
"나도 떡볶이 먹을 걸 그랬나?"
"저기..."
굵은 목소리가 우리들의 식사에 끼어 들었다.
나와 미라는 거의 동시에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학생.. 부탁할게 있는데..."
"뭔데요?"
난 또랑 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말을 걸어 올 땐 꿀리지말고 도도하게 굴어야 한다..
누가 심어 준 건지 모르지만 난 남자 앞이라고 수줍게 군다거나
잘보이려고 애교를 떠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안았다.
"제가 알바로 과외를 하나 시작했는데 교제가 좀 필요해서요. 잠깐만 참고 하면 되는 거라
새로 책을 사긴 그렇고 해서.. 혹시.. 수학 정석 있으면 필릴수 있을까요?"
"뭐.. 그러세요. 저희도 점심 먹어야 하니까 음... 1시쯤 여기로 갖다 줄께요."
"아.. 네. 고마워요.. 그런데 이름이..."
"정푸름이요!"
난 조금도 망설이지 안고 최가진이 아니라 정푸름이라고 말해 버렸다.
미라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바라 보기에 씽긋 웃으며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네.. 푸름씨.. 그럼 1시에 뵐께요!"
남자는 다시 사라졌다.
"너 왜그랬어?"
"뭐 어때? 나두 가명하나쯤 갖고 싶었는데.. 잘 됐지 뭐.. 이렇게라도 써 먹어야 진짜 내이름 같지..."
"그렇다고 성까지 바꿀 필요는 없잖아."
"솔직히 최푸름 보다는 정푸름이 더 이쁘잖아!"
"칫.. 기집애.."
"얼른 먹어. 교실가서 책가지고 다시 나올람 시간 모질라겠다.. 아우~ 도대체 보충수업은 왜 하는 거냥~"
고등학교 시절을 마지막 여름방학을 그렇게 잡아 먹고 있는 보충수업을 그렇게 원망스럽게 읖조리며 한탄했다.
#
"넌 어디 갈꺼야?"
"갈데 없어."
"그럼 옷 갈아 입고 너희 집으로 갈께.."
"그래!"
늘 그렇게 방과후가 되면 나는 미라네 집으로 가서 공부 한다는 핑계로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왔다.
대입이라는 문제가 코앞에 다가 왔지만 난 별로 심각하지도 안았다.
그에 반해 미라는 정말 열심히 하는 듯 했지만 난 늘 빈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침대위에서 디굴 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징~~하고 몸을 떨었다.
"어? 미라야.."
"왜?"
"엊그제 나한테 문제집 빌려간 남자 생각나?"
"엊그제? "
"응.. 근데 왜?"
"그 남자가 고맙다고 책 돌려 주면서 밥이라도 사준다는데?"
"그래?"
미라가 관심을 보였다.
미라나 나나 19살이 되도록 남자 한번 못 사귀어 본 쑥맥들이긴 마찬가지 인지라
남자가 먼저 밥을 먹자고 부르는 일에는 만사 제쳐 두고 달려 갈 만큼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같이 갈래?"
"언제.. 갈건데?"
"우리가 편한 시간 잡아서 연락 달라는데?"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지뭐.."
"진짜? 너 진짜지?"
공부 한다고 뺄 줄 알았더니 선뜻 같이 나간다고 하는 미라의 반응에 난 적잖이 놀랍기도 했지만
혼자 나가서 앉아 있어야 하는 뻘쭘함이 없어 좋기도 했다.
나는 서둘러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몸을 뒤집어 천장을 보고 누었다.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남자.. 근데 잘생겼지?"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치.. 잘생긴거 같지?"
미라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너? 너.. 그남자 한테 관심있지?"
"아니.. "
"그럴 줄 알았으면 니꺼 빌려 주는 건데..."
"뭘.. 그렇게 까지.."
"흥.. 지지배.. 관심있으면서 내숭은.. 킥킥.."
내가 놀리듯 말하자 미라의 얼굴이 붉어 졌다.
하긴 정말 잘생기긴 했었다.
나이는 우리들 보다 꽤 들어 보이긴 했지만 제법 큰 키에 말끔한 옷차림과 생김새가
지나가다 봤어도 한 번쯤 돌아 보게 만들 법한 외모였다.
"그런데.. 여친 있지 안을까?"
"글쎄..."
"뭐.. 그럼 어때. 뺏으면 돼지.."
"야.. 그건 너무 했다.."
"그런가?"
나는 혀를 낼름 거렸다.
내가 갖고 싶다고 마음대로 뺏을 순 없지...
내가 아무리 정푸름이 되고 싶다고 해도 난 어쩔 수 없이 최가진인 것처럼
그가 이미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 받은 사이라면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뺏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분명히 누군가는 상처 받게 될 것이니까...
나는 엎드려서 작은 수첩에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들을 끄적 거렸다.
"또 시쓰는 거야?"
"시라기 보다.. 그냥. 낙서지 뭐.."
"그래두.. 너 그런거 참 잘써.. 좋은거도 몇개 있어."
"진짜?"
"응.. 너도 나중에 시집한번 내봐!"
"나두 원태연님 처럼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응.. 원태연 보다 더 좋은 시인이 될 거야."
"아웅~ 나의 우상 원태연님~~"
작은수첩을 가슴에 안고 침대를 대굴거렸다.
"그럼 그때는 시집에 [정푸름]이라고 필명을 쓸거야. 그럼 더 이상 가짜 이름이 아니잖아?"
"그래.. 니 말처럼 바다처럼 넓고 푸른 마음을 가진 시인이 될거야!"
"헤헤~"
#
우리는 피자집으로 들어 갔다.
라지 사이즈 피자 한 조각을 접시에 놓고 나이프로 썰어서 먹는 미라와는 달리
난 한 조각을 손으로 덥썩 집어 입에 구겨 넣었다.
"피자를.. 그렇게 드세요?"
"왜요? 이렇게 먹으면 안돼요?"
"아. 아니.. 처음 만난 남자 앞에서 그렇게 손으로 덥썩 집어 먹을 줄 몰랐거든요."
"왜요? 이게.. 안돼나요?"
"아.. 아니요.. 보기 좋아요.. 아주.."
남자는 흐뭇하게 웃었다.
동시에 미라의 얼굴은 내가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일그러졌다.
순간 난 뭔가 잘못 되어 간다는 생각에 찜찜한 기분이 되었지만 미라도 내색하지 안았고
더욱이 미라가 맘에 있어 하는 그 남자 때문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모르는척 넘어 가버렸다.
피자집에서 신나게 피자를 먹고 나왔을 때도 저녁때까진 꽤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냥 헤어지긴 시간이 좀 많이 남았는데.. 노래방이라도 갈래요?"
난 미라와 남자를 엮어 줄 마음에 동의 했고 미라도 싫지 안은 눈치였다.
피자집에서 가까운 노래 방으로 들어 갔고 난 언제나 처럼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한 손엔 마이크를 쥐고 한 손엔 책을 들고 노래를 찾아 번호를 눌렀다.
1시간 동안 미라와 남자는 겨우 다섯곡정도를 불렀고 나 혼자 거의 내 콘서트를 하는냥 신나게 노래를 불러 댔다.
난 따로 즐겨 부르는 장르가 없으리 만치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렀다.
트로트에서 부터 팝까지 내가 부르 수 있는 노래를 다 불러 제껴 댔다.
그러다 내가 "she's gone"을 불렀을 때 남자는 거의 침이 떨어 지기 일보 직전까지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 보았다.
아둔한 나는 그게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 보는 듯 여겨 졌고
미라의 눈에는 [뿅!!!]하고 큐피드의 화살에 꽂힌 거의 정신줄 놓으신 표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설마.. 하며 부인했지만 미라의 말을 듣고 나니 웬지 나도 자꾸만 남자에게 관심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라를 생각해서 그런 내색도 안했을 뿐더러 생겨나는 관심을 끊어 내려고 속으로 무던히도 애를 썼다.
몇칠이 지나고 그가 책을 돌려 준다며 다시 문자를 보내 왔고 나는 미라를 대신 내 보내는 것으로
그와 미라가 어떻게든 잘 연결이 되서 좋은 사이가 되기를 기도 했다.
책을 받아 온 미라는 별 이야기 없이 내게 책을 건네 주었고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훑어 내다가
하얀 종이하나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와중에도 미라가 보지 못하 도록 신경쓰면 슬그머니 반듯하게 두번 접힌 종이를 들고 화장실로 숨어 들었다.
말그대로 숨어 들었다.
혹여나 누군가 나의 행동을 보고 미라에게 말 할까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나도 그에게 관심이 있음을 그 순간 여지 없이 드러 내고 있던 것이었다.
생긴 것처럼 곱상하고 반듯하게 적은 편지엔
나에게 관심이 있으며 또 한번 만나고 싶다는 내용과 이번엔 단둘이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는 화장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 참동안을 서성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친한 친구가 염두해 두는 남자 인데..
미라나 나나 서로 관심만 두고 있을 뿐 아무 내색도 없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오랜 고민 끝에 미라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와의 약속 장소로 나갔다.
깨끗하게 빨아서 피죤으로 정성스럽게 마무리하여 널었던 교복에선 은은한 향기가
나를 말해 주고 있는 것처럼 풍겨 져왔고 조심 스럽게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 달콤 했다.
더욱이 [푸름씨..]하고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 거부 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은 정말 내가 최가진이라는 이름을 날려 버리고 진정으로 푸름이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긴 속눈썹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내가 푸름이라는 예명을 본명으로 갖고 싶어 했던 그 때처럼..
푸름이라는 이름안에 바다를 담을 때의 그 순간 처럼...
나는 순수해지고 착해지고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내 이름이 정말 정푸름이 아니라 최가진이라는 이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숨통을 조여 오는 것처럼 나를 옭아 메고 있었다.
거기다 하나뿐인 내 친구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 더해 졌다.
그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 갈 수록 그의 앞에선
한없이 착하고 순수하고 맑은 나였지만
그와 헤어진 후에 몰려 오는 죄책감과 가증 스럽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 견딜 수 없이
경멸스러워졌다.
"너.. 요즘 이상해.. 말도 잘 안하고.. 우리집에도 잘 안오고... 무슨 일 있어?"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모르고 나를 걱정하는 미라에게 퉁명스럽게 말하고 돌아 섰다.
보충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간의 짧은 진짜 방학을 보내고 나면 나는, 아니 나와 미라는
정신 없이 바빠질 것이다.
수능과 대입이라는 코 앞에 다가 온 산을 넘기 위해 막판 스피드를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할 시기가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라와 나의 관계는 소원해 졌고 더불어 그를 대하는 것 또한 점점 불편해 졌다.
그를 향한 마음이 커질 수록 난 점점 죽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푸름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바다처럼 넓고 푸른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깊이를 알수 없는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개학을 하루 앞둔 어느날 그가 말했다.
"난 다음학기가 되면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질거야. 내년이 되면 취직을 할테고..
넌 대학생이 되어 있겠지? 그렇게 우리는 네가 다가오면 내가 더 멀리 가게 되는 듯
보이지 안는 갭이 생겨서 서로에게 뭔지 모르게 딴세상에서 헤메다 만나게 되는 것처럼
겉돌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우리가 나이차이가 조금 난다는 것 말고는
우리 사이에 거리를 느끼지 못하게 될 시간이 꼭 올라고 믿어...
난 그때까지 너와 함께 하고 싶은데... 내 옆에 있어 줄 수 있겠니?"
그가 내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프로포즈를 하고 있었다.
난 대답 할 수가 없었다.
미라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렇게 끝까지 가다 보면 내 이름이 정푸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 할 시기가 오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 눈이 젖어 들자 그가 자신의 크고 따뜻한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누가 지어 주셨는지 정말 이름 한번 잘 지으신것 같다..
너 아니면 누가 푸름이라는 이름을 갖을 수 있을까? 넓고 깊고 푸른 바다...
요 작은 몸에 그렇게 큰 바다를 품은 눈을 갖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 말고 또 누가 알고 있을까..."
그의 말에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 버렸다.
살며니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소리내어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생각 좀... 해 볼께요.."
아마도 내가 아직 어린 탓이리라 생각했는지 그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 듬어 주었다.
그리곤 아무말 없이 서로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대문앞에 다다라선 서로 먼저 가라고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까지 했다.
결국 내가 그의 뒷 모습을 보아 주는 것으로 그가 먼저 내 눈에서 멀어 져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난 심 호흡을 한 번 하고는 문 안으로 들어 섰다.
순간 내 두 발이 모두 대문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내 이름을..
정푸름이 아니라 최가진이라는 내 진짜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지는 것을 느끼며 돌아 보자 미라의 모습이 보엿다.
"너...."
난 아무 말도 못하고 주저 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보다는 미라가 더 놀라고 어의가 없었을 터인데 정신 없이 쏟아 내는 눈물에
미라가 내게로 달려 왔다.
"가진아.. 왜 그래? 울지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어.. 나도 정말 힘들었어.. 미안해.. 미안해..."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되풀이 하며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어느 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하늘이 붉어지니 웬지 조금씩 마음이 진정 되는 기분이었다.
집 근처의 놀이터에 앉아 그동안의 길고 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미라는 조용히 내 말을 들어 주었다.
중간에 자르거나 추임새를 넣지도 안고 조용히 그리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 보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긴 이야기 끝에 미라가 입을 열었다.
난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라는 보았다.
"난 괜찮아.!"
미라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 내 마음이 편안해 졌다.
"글쎄.. 모르겠어. 그 사람은 나랑 끝까지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난.. 난 이름부터 속였잖아..."
"정말 좋아 한다면 그쯤은 이해해 줄 거야. 너도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라면
늦기전에 사실을 고백해야할거야. 거짓말은 영원할 수 없어. "
"알아.. 그런데...내가 변할거 같아.."
"언젠가는 헤어 지게 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야.. "
"그럼..."
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고 미라는 내 침묵을 기다려 주었다.
"나.. 그 사람이 '푸름아~!'하고 불러 주면 내가 그이름을 지었을 때 처럼 정말 내가 태어날 때부터
푸름이 인것 처럼 아니 영원히 푸름이일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마음도 맑아 지는 것 같고 착해지고
순수해 진다는 착각이 들었어. 난 절대로 나쁜 짓도 하면 안돼고 푸름이인 시간 만은 푸름이안에서
사는 것 같았어.. 내말.. 이해 하겠어?"
"음.. 좀 어렵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데.. 그 사람이 '가진아~' 하고 부르면 더 이상 푸름이라고 불릴 때 마음으로 살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최가진으로... 내 안에 푸름이라는 다른 사람이 있어서 '푸름아~'하고 부르면 그사람이 살다가
다시 가진이가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야.. 알겠니?"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것도 같아."
"내가 가진이가 되면 그 순간 부터 난 푸름이였을 때 그 사람은 만난 게 아니라 가진이가 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그 사람은 나를 오해 할거야. 그동안 거짓말을 숨기려고 자기를 속여 왔다고...
그러니까.. 푸름이도 나고 가진이도 난데 그 사람은 푸름이라는 이름으로 내숭을 떨고 가진이가 되면서
본색을 드러낸다고 볼거아니야? 나한테 실망하고 나를 멀리 하게 될거야..
그사람이 내 얼굴을 감싸고 내가 푸름이라서.. 그이름이 나한테 얼마나 잘어울리는지 얘기 했을때
난 정말이지... 난... 난..."
난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또 울고 말았다.
미라는 가만히 나를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그와 만나지 안은지 한달이 넘었다.
그동안 그는 수도 없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메세지를 남겨 두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없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 지는 고통이 느껴져 왔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에 울 수도 말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 내가 푸름이가 아니라 가진이었음을 말할 용기는 더욱 없었다.
작은 거짓말이 나를.. 그리고 그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푸름이가 아닌 가진이가 되어서는...
푸름이의 마음이 아닌 가진이의 마음으로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진실을 말하고 나서 그가 가진이인 나를 받아 준다해도
내 스스로 그 앞에서 푸름이가 아님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갔다.
날씨가 추워졌고 수능을 보았고 미라와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난 더 이상 푸름이라는 이름을 쓰지 안았다.
처음 한달은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하고 문자와 메세지를 보내던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횟수가 조금씩 줄어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흐지부지 그와의 관계는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 첫사랑을 그런 식으로 만나왔던 것에 대한 죄책감일지
스스로에 대한 벌이랄지 난 대학에 입학 한 후에도 그는 물론이고
다른 남자도 만나지 안았다.
다행히 미라와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대학에 진학을 해서
외롭지 안게 대학 생활을 했다.
난 입학과 동시에 취업에 대학 준비를 함께 시작했고 졸업을 한학기 앞두고 있을 때 쯤엔
내 이름으로 된 작은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내 소망대로 그제서야 [정푸름]이라는 필명을 떳떳하게 갖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비로소 최가진이며 정푸름이 되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억세게 운이 좋은 덕이었는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 사인회까지 하게 되었다.
커다란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던날
내 소중한 친구이자 내 소울메이트가 되어준 미라가 함께 해 주었다.
시집이 유명해 지면서 생긴 팬카페의 회장이 직접 캠코더를 들고와 영상을 담으면서
간단한 인터뷰도 해 주었다.
떨리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사인회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오랜만입니다! 정!푸름!!씨...책 잘 봤습니다!!"
익숙한 음성으로 인사를 하며 더욱이 내 필명을 강조해 부르며 책을 내미는 사람의 손을
보고 어쩐지 덜컹!!하고 심장이 내려 앉는 기분이 들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가 다시
"윤서화라고 합니다.[내 소중한 사람 서화에게..]라고 사인을 받고 싶은데요.."
난 손에든 매직을 떨어 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나를 향해 웃으며 서 있었다.
다시는.. 영원히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가...
다시 만나면 화를 낼 줄 알았던 그가 웃으면서..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망설이듯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 보다가 눈꺼풀을 씰룩 거리자
무언가에 홀린 듯 [내 소중한 사람 서화에게 바칩니다. 정푸름..]이라고 적으며 사인을 했다.
그리곤 의자에서 일어나 책을 집어 들고 그에게 건네 주었다.
"잘 있었니? 정푸름?"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정말 반가워하는 그의 표정엔 원망이나 미움같은 건 없었다.
그가 내민 시집엔 분명 최가진이라는 본명과 정푸름이라는 필명이 함께 써 있었다.
그는 내가 정푸름이지만 정푸름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이젠 알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
그렇다..
지금 나는 정푸름이다.
그러면서 최가진이기도 하다.
정푸름도 나이고 최가진도 나다.
누구에게도 떳떳이 말 할 수 있고, 내 시집을 본 사람이라면
내가 정푸름이라고 하건 최가진이라고 하건 이의를 제기 할 사람은 없다.
나는 떳떳한 정푸름이 되었고 그를 만났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시작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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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작가에 응모 했던 작품인데... 역시..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떨어 졌습니다...ㅋㅋ
첫댓글 힘내세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