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2,30; 23,6-11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알라반의 말씀사랑
오늘 미사의 말 오늘 미사의 말씀이 던지는 화두는 "하나 됨"입니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요한 17,20).
예수님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 기도의 지향은 미래의 신자들,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즉 그들의 증언을 받아들여 새로운 길에 들어선 이들의 행렬은 이천 년을 지나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지요. 이미 이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겁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예수님께서 반복해 청하시는 "하나 됨"은 참 미묘한 가치인 것 같습니다. 우선 그것은 소수의 의견과 다수의 맹목적 추종으로 움직이는 외형적 단일체를 가리키지 않을 겁니다. 또 모든 구성원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공산품들처럼 똑같은 모습과 사고와 이념을 공유하는 획일화도 아니지요.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채 저마다 고유한 영혼과 육신으로 창조된 우리에게 주님께서 바라시는 "하나 됨"은 과연 무엇일지 묵상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예수님은 "하나 됨"을 위해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갖추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하나 됨"을 위해 이미 하나이신 성삼위 하느님 안에 우리를 끌어안으려 하십니다. 그 완전한 사랑의 관계 안에 들기에 너무도 굼뜨고 불결하고 모자라는 우리를 두 팔 가득 끌어안으심으로써 하나를 이루려 하시는 겁니다.
같은 하느님을 고백하면서도 인종, 문화, 빈부, 배움, 지향과 선호가 너무도 다른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성삼위 하느님 안에서 그 유대 안에 머무를 때 주어집니다. 즉 우리 각자가 주님 안에 머무르고, 또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심으로써 가능해집니다.
감사하게도 그럴 수 있는 길을 이미 주님께서 남겨 주셨지요. 바로 말씀과 성체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경청하고 되새기고 실천함으로써, 말씀이 우리 안에, 우리가 말씀 안에 머무르는 상태를 이어갑니다. 또 같은 빵을 쪼개어 나눠 먹음으로써 같은 주님을 모시고, 그로써 주님의 일부가 되지요. 이렇게 우리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형제자매들과 말씀으로, 성체로 하나를 이룹니다.
같은 아버지의 자녀로서 같은 믿음을 고백하고 같은 사랑을 나누는 우리는 예수님 기도의 열매로 하나를 이루어 살아갑니다.
제1독서는 하나 됨의 반대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사도 23,7).
유다교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두 분파는 부활, 천사, 영의 존재와 관련해 견해를 달리합니다. 사실 바리사이 측에서 새로운 길에 들어선 바오로가 썩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활의 가능성 측면에서는 바오로를 인정하며 사두가이와 맞서게 됩니다.
한 하느님을 소유한 이들 안에서도 교리와 이념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면 갈등이 일어나고 분열을 초래합니다. 단순한 결별 정도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증오와 공격으로 이어지는 비극도 비일비재하지요.
"하나 됨"은 다름, 다양성을 끌어안고 성삼위 하느님 안에 함께 들어갈 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이 세상 우리 모두의 다름이나 다양성보다 성삼위의 품이 훨씬 더 크고 넓고 깊지요. 우리 모두 충분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연대가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도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하나이시니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머무르는 주님께서 한 분이시니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을 이루는, 작지만 소중한 지체인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