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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을 향한 믿음의 공고화(鞏固化)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교무부
도전님께서 “강세하신 강증산(姜甑山)께서 구천상제이심을 분명히 일깨워 주어야 한다”01라고 하셨다. 대순진리회의 신앙을 바르게 깨쳐 나가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상제님을 향한 믿음의 공고화다. 상제님께서 “부디 마음을 부지런히 닦고 나를 깊이 생각하라”02고 하셨다. 예시 88절의 ‘앎이 있은 연후에 깨닫게 된다’는 선지후각(先知後覺)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역(逆)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상제님을 깊이 생각하고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 믿음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마음을 정(定)한 바엔 이익과 손해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偏僻)과 의지(依支)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며 만고(萬古)를 통하되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만겁(萬劫)을 경과하되 강하(江河)와 산악(山岳)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하고 기약(期約)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 하고 한도(限度)가 있어 정(定)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精誠)하고 또 정성(精誠)하여 기대한 바 목적에 도달케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03
이것은 대순진리회의 교리에 있어서 신조의 삼요체 중 신(信)에 대한 설명이다. 이 신(信)을 시종(始終)으로 나누면, 처음(始)은 한마음을 정함이고, 끝(終)은 기대한 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먼저 한마음을 정한다 함은 활을 쏘는 사람이 과녁의 정중앙(正中央)을 겨누듯, 천지의 중앙(中央)인 내 마음은 상제님에 대한 일념(一念)을 간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대한 바의 목적에 도달한다 함은 수도의 목적인 도통(道通)에 이름을 말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도(道)에서 신앙의 대상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님이시다. 상제님께서는 이 우주를 총할(總轄)하시는 가장 높은 위(位)인 구천(九天)에서 우주 삼라만상을 삼계대권(三界大權)으로 주재 관령하시며 관감만천하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느님이시다.04 한마음을 정한다 함은 상제님을 향한 일념을 뜻하고 상제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자각(自覺)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자각이란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따르는 게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깨닫는 것’을 뜻한다. 도전님께서는 “자각이 없으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05고 하셨다. 이 자각을 위해서는 내적으로 수도(修道)와 진리 연구를 해야 하고, 외적으로는 포덕·교화를 하여야 한다.
첫째 내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수도를 보면, “수도는 심신(心身)을 침잠추밀(沈潛推密)하여 대월(對越) 상제의 영시(永侍)의 정신을 단전(丹田)에 연마(鍊磨)하여 영통(靈通)의 통일(統一)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至誠)으로 소정의 주문(呪文)을 봉송(奉誦)한다.”06라고 하였다. 이 수도에는 시학·시법의 공부가 있고, 수련(修鍊)과 평일(平日) 및 주일(主日)기도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삼일신고』의 내용을 참고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은 나의 중심에 존재하는 하나(一神)님이다.”07, “자성(自性)에서 하나(一神)님의 씨를 구하라 너의 머릿골에 내려와 계시니라.”08라는 것이다. 또 “하늘의 법은 하나요 그 문이 둘이 아니다. 너희는 오로지 순수한 정성이 하나같아야 하며, 이로써 너희들의 중심에서 하나(一神)님을 보게 되리라.”09고도 하였다.
이들 내용을 종합하면, 한 마디로 자성(自性)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위의 수도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예로부터 단전은 하단전(下丹田), 중단전(中丹田), 상단전(上丹田)이 있다 했고, 이는 오직 순일(純一)한 성지우성(誠之又誠)의 성(誠)이라야만 연마가 된다고 하였다. 특히 상단전과 관련하여 뇌(腦)는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통제관장하는 모든 신경계의 중추(中樞)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도전님께서 “성(誠)은 사람의 정(精) 기(氣) 신(神)의 합일(合一)의 진성(眞誠)이다”10라고 하셨다. 고대부터 선가(仙家)에서 하단전은 정(精)과, 중단전은 기(氣)와, 상단전은 신(神)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왔다. 단전은 흔히 삼망(三妄)의 악·탁·박(惡·濁·薄)의 삿됨을 제거하고 삼진(三眞)의 선·청·후(善·淸·厚)의 본연(本然)으로 환원(還元)될 때 실제로 연마가 된다고 하였다. 단전은 반드시 하단전을 근본으로 하여 중단전과 상단전으로 연마되어야 하고 무욕청정(無慾淸淨)한 인간의 본질(本質)로 돌아감이 목적이지 신비한 능력이나 술(術)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진리 연구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모든 도인들은 믿음이 근본이니 믿음을 바르게 하도록 항상 배우고 『전경』의 말씀을 많이 읽도록 하라”11고 하셨다. 아울러 『대순지침』에 훈시(訓示)의 대지(大志)를 보면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고 하셨다. 게다가 『전경』을 보더라도 모든 일에는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다고 하였다.12 그 누구도 대순진리에 대해 바르고 확고하게 알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행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례로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이순신(李舜臣)에게 왜 두보(杜甫)의 시(詩)를 천 번 읽으라고 했을까?13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 하듯, 아무리 뜻이 어려운 글이라도 자꾸 되풀이 읽으면 나중에는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고 했다. 아울러 성인(聖人)의 경전(經典)은 진리와 동시에 천연(天然)의 마음인 그 진심(眞心)을 구하고자 함이라고 하였다.14 온갖 잡념에 휘둘리는 수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전경』은 내용이 매우 어려워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여 가까이 하기보다는 잘 안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래로부터 경전은 끊임없이 읽고 쓰고 궁리하여 터득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중용(中庸)』에는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사리를 분별하고 돈독히 행하라”15고 하였다. 이 다섯가지를 부연 설명하여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대 능하지 못하거든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물을진대 알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할진대 결말을 얻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분변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변할진대 분명하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대 독실하지 못하거든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를 천 번을 한다. 과연 이 호학역행(好學力行)의 도(道)에 능하게만 되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반드시 현명해지며, 비록 유약한 자라도 반드시 강건하게 된다.”16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참고하여 우리는 대순진리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순진리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진리로 먼저 바르게 알지 않고는 올바르게 닦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고 본다. 이러한 진리 연구는 진리토론회로 연결되어야 하고 여기서 기탄없이 서로 묻고 답하고 서로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도전님께서 도인을 진리로써 육성하기 위해서는 진리토론회를 통한 진리 연구에 힘써야 한다고 하셨다.17
둘째 외적으로 포덕·교화가 있다. 먼저 포덕은 상제님께서 천지신명들의 하소연에 따라 이 땅에 오셨고, 진멸지경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셔서 영원한 복록이 있는 후천선경으로 갈 수 있도록 해 놓으셨고, 이에 맞추어 수도를 함으로써 큰 운수(運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덕을 할 때 편법(便法)이나 구차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 당당하게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알려 상제님을 믿고 수도에 참뜻을 가진 사람에게 입도(入道)를 권해야 한다. 포덕 숫자나 늘리듯이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도를 믿고 도가 좋은 것을 알고 참다운 도인이 되어가며 상제님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화는 상제님·도주님·도전님의 종통(宗統)과 종지·신조·목적을 비롯하여 기본 교리를 상대에게 알기 쉽게 이해시켜 진리를 확신케 하는 일이다. 도전님께서 “임원들은 수반 도인에 대한 교화를 할 때, 인정이 넘치고 신뢰가 감돌아 허세(虛勢)를 부리지 말고, 안색은 화기롭게 편안한 장소에서 안정한 시간을 택하여 부담이 없는 대화로써 신앙심을 높여 진리 도통의 진경(眞境)에 이르도록 계도하여야 한다.”18고 하셨다. 교화는 신앙심을 높이는 길잡이가 되므로 진실하게 하여 전폭적으로 믿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교화를 듣는 사람이 해원상생의 진리에 바탕한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도리를 행하여 완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과 같이 이를 위해서는 특히 상급 임원(任員)이 언행(言行)과 처신·처사를 잘 해서 본받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상급 임원은 항상 도리에 어긋나 편벽(偏僻)된 처사가 없도록 하고 모든 일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고 무편무사(無偏無私)하게 함으로써 수반 도인들에게 신임을 받고 그 결과 심복(心服)이 되게 함이 방면 사업의 핵심이다.
이 포덕·교화를 종합하여 도전님께서는 “포덕하여 도인을 만든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도록 도인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도통은 신명이 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은 바르게 닦은 사람에게 응하게 됩니다. 바르게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一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통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수도가 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잘 깨우쳐 도통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교화가 필요합니다. 항상 상대방에게 진리를 잘 이해시켜 주어야 합니다.”19라고 하셨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진리에 의한 종교적 법리(法理)가 우리 사업(事業)인 포덕·교화·수도의 근본 바탕이다. 이 사업에는 선정부(宣正部)·교정부(敎正部)·정원부(正院部)가 있는데, 이러한 조직체계는 상하(上下)·상호(相互) 간에 도리를 바로 가르치고 배워 조화를 이루어 상급 임원부터 일반 도인까지 심정(心情)을 통해 하나가 됨이 그 생명이다. 이것이 화합단결(和合團結)이자 융화단결(融和團結)이며 동심일체(同心一體)이다. 이것이 되지 않고 ‘너는 너, 나는 나’의 관계라면 도통할 수 있는 도인으로 완성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위에서 우리는 상제님을 향한 믿음을 공고화하기 위해 내적으로 수도와 대순진리의 연구, 외적으로는 포덕·교화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상제님께서 “나를 잘 믿으면 해인(海印)을 가져다 주리라.”20고 하셨는데 이 해인은 어떤 물체가 아니며 자기 장중(掌中)에 있다고 도주님께서 밝혀 주셨다. 이 장중의 사전적 의미는 ‘장악중(掌握中)’으로써 ‘움켜 쥔 손아귀 안’이나 ‘자기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권한이나 그 세력이 미치는 범위의 안’을 의미한다. 우리가 해인을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음을 지칭한 게 아닐까? 라고 추정해 본다. 상제님께서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21라는 말씀을 전제할 때, 내적으로 수도와 대순진리에 대한 연구, 외적으로 포덕·교화가 모두 다 마음으로 귀결된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상제님을 향한 믿음의 공고화는 잠심지하(潛心之下)가 그 핵심이라 하겠다. 잠심지하는 그 방향이 바다 표면에서 깊은 심연(深淵)으로 들어감과 같아, 내 의식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이 우주가 하나라는 초의식에 이르는 것이다. 심연으로 들어갈수록 수압이 배증되듯 이 과정은 심우도(尋牛圖)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오직 외길이다! 이 외길은 오직 상제님을 깊이 생각하고 자성(自誠)으로 법방을 실천하는 그 한길로 잠심지하가 될수록 도주님의 유법(遺法)과 도전님의 유훈(遺訓)이 아니면 불가능함을 스스로 절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경』을 보면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였다.22 잠심지하가 될수록 보이지 않는 바에도 경계·근신하고 들리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하기에 재물욕·허영·야망·자존·자만·탐음진치(貪淫嗔癡) 등등의 모든 사심(私心)을 훌훌 털고 무욕청정(無慾淸淨)한 인간의 본질(本質)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우주 삼라만상에 아무 막힘도 걸림도 없는 본연(本然)의 그 마음이다. 대순(大巡)은 막힘이 없고 걸림도 없이 둥근 것이다. 둥글다는 것은 무극(無極)이고 근본자리로 걸리고 꺾이고 막힐 것 없이 통하는 자리다. 이는 자력(自力)으로 되는 게 아니고 상제님을 향한 믿음을 공고화하며 덕화(德化)를 모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모든 도문소자는 상제님을 깊이 생각하고 포덕·교화·수도 공부의 기본사업을 올바르게 하여 마음을 부지런히 닦으면 누구나 일심(一心)이 될 수 있음을 명심(銘心)하고 또 명심하여야겠다.
01 『대순지침』, p.17.
02 교법 3장 25절.
03 『대순진리회요람』, p.17.
04 같은 책, pp.6~7 참조.
05 『대순지침』, p.53.
06 『대순진리회요람』, p.18.
07 최동환 해설 ,『삼일신고(三一神誥)』, (서울: 지혜의 나무, 2002), p.327. “天下大本在於吾心之中一也.”
08 최민자 주해, 『천부경(天符經)』,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06), p.153. “自性求子 降在爾腦.”
09 최동환 해설, 『삼일신고(三一神誥)』, (서울: 지혜의 나무, 2002), pp.327~328. “天範惟一 弗二厥門 爾心惟誠一 爾心乃朝天.”
10 『대순지침』, p.51.
11 같은 책, p.77.
12 교운 1장 35절 참조.
13 행록 1장 32절 참조.
14 교운 2장 33절, 「각도문(覺道文)」참조.
15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辯之 篤行之.”
16 도올 김용옥, 『중용』, (서울: 통나무, 2013), p.254~257.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참조.
17 『대순지침』, p.18 참조.
18 같은 책, p.45.
19 《대순회보》 35호, 「도전님 훈시」.
20 교운 1장 62절.
21 교법 2장 10절.
22 교법 3장 2절 참조.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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