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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법계월
불기2558년 12월 22일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옥불보전 4층 대법당에서는
동지이자 11월 초하루 기도법회에 동참한 많은 신도님들이 운집한 가운데
포교국장 대륜스님의 감로법문을 들었습니다.
늘 기도정진하고 경전공부하고 하심하여 봉사하고 당당하게 포교하는 불자로서
반야지혜로 마음밭을 맑히라는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더욱 더 신심을 굳건히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륜스님 11월 초하루, 동지기도 특별법문♦
네. 반갑습니다.
오늘 무슨 날입니까?^^
화면에 보니까 각 도량에 평소보다 열 배는 많네요.
평소에는 텅텅 비어있던데 오늘은 꽉차계시네.
다들 어디 갔다 오셨을꼬...^^
서울도량, 포항도량, 칠곡, 경산, 구미...늘 이랬으면 좋겠는데...
오늘 진짜 무슨 날이에요?
“초하루”
또...?
뭐하는 날입니까?
“기도하는 날”
초하루 신중기도도 그렇고요. 요즘 세상이 그렇잖아요.
마음적으로 힘들 때 혼자서 감당 안 되는 인연들을 기도의 힘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기도예요.
신장의 힘을 빌지요.
원리를 한 번 생각해 봐요.
자기가 힘든 것을 얼음으로 비교해 보면 우리가 업장을 녹인다. 그래요.
자기가 기도를 통해서 어떤 업장을 녹인다고 하는데 그게 나무야.
조그마한 나무를 쥐고 기도를 가지고 있는 거요.
여기다 불을 붙여서 태산만한 업장을 녹이려고 하면 잘 녹겠어요? 잘 안 녹지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조그마한 나무를 가지고 한 자리에 모였지요.
다 같이 그 나무를 모아서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요? 대단하지요.
자기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다 녹아버려요. 그러면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도 녹지요.
거기다가 금상첨화라. 신장의 에너지까지 붙여지는 겁니다.
다 녹아버려요. 그래서 기도를 혼자 하면 안 돼요. 혼자 하면 작은 불밖에 안되잖아요.
거기에 1더하기 1은 2지만 2의 불은 내 하나보다 힘이 더 커지요.
각자가 서로 나눠 가지는 거지요.
1더하기 1... 1더하기 1....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서 같이 큰목소리
로 합송을 하면 그 에너지가 본인의 작은 불을 더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기도는 함께 해야 돼요.
업장이 두터운 중생의 업장을 녹일 때는 불보살의 외연과 도반들의 힘을 빌어서 같이 해야
작은 나무들이 모여서 큰불이 되는 거지요.
오늘 신중기도를 했는데...뜻을 알고 하세요?
그냥 읽으라고 하니까 읽었지요.
원래 초하루하고 동짓날이 중복되는 날이 잘 없어요.
오늘은 윤달이 있어서 중복이 되었는데 법요집 69페이지 한 번 보세요.
예적 대 원만다라니
穢迹 大 圓滿陀羅尼
우리가 이걸 읽음으로서 예적금강穢迹金剛이란 신장이 우리의 원을 다 채워주는 겁니다.
우리가 뜻을 알고 읽으면 좀 더 좋겠지요.
‘계수稽首’라는 것이 뭐냐면 ‘나무’ 우리가 합장하고 절할 때 머리를 숙인다.는 공경해서 절하는 것을
계수라고 해요.
‘예적금강’ 금강역사를 말해요.
신장이나 역사를 절에서 보살이 말하는 이런 것이 마구니를 깨뜨리는 힘을 가진 존재를 말해요.
신장, 신중, 역사 다 같은 말이에요.
그것은 전부가 서가모니부처님께서 화현, 변화해서 나타난 거예요.
내가 어려울 때 금전적으로 정말 힘이 들 때 누가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면 그것도 서가모니부처님께서
화현한 거지요. 변화해서...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으로...이웃 아주머니의 모습으로...자식의 모습으로...남편의 모습으로...
경비아저씨의 모습으로...
그런 사람들이 신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내가 잘못 살면 도와줘요. 안 도와줘요.
요즘 뉴스에 크게 회자되는 어떤 사람 있지요.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왔을 때 그런 일이 넘어와요.
우리가 지금 사는 것이 조금 고달파도 내가 힘든 일이 생겨서 간절히 기도하는 힘이 있으면
신장이나 주위의 불보살이 도움을 줍니다.
평소에 기도를 해야 되는데 실컷 있다가 동짓날 팥죽 주는 날만 오면 그게 힘이 있겠나?
그래도 안 오는 것 보다는 낫지요.^^
자 보세요.
서가화현금강신釋迦化現金剛身, 서가모니부처님이 바뀐 금강의 몸, 그 몸의 모양이 고정화된
것이 아니죠. 무서운 역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거요.
그런 사람은...머리가 몇 개요?
삼두노목아여검... 삼두三頭 머리가 세 개, 노목弩目아주 부릅 뜬 눈, 아여牙如 어금니는 칼같고...
아주 날카롭다는 거지요. 상상이 되지요.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 무서움은 무서운 것이 아니고 서가모니부처님이 변해서 나를 도우려고
나타난 거예요.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업식으로 보잖아요.
저 사람은 딱 무서운 사람이다. 저 사람은 하얗고 눈도 크면 예쁘다고 속도 안보잖아요.
첫눈에 뿅 가는 것이 다 그런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지요. 진실성, 에너지를 봐야 되지요.
팔비개집항마구...팔비八臂 팔이 여덟 개, 그 손에 뭐예요.
다 뭘 쥐고 있지요. 항마구降魔具 마구니를 항복받는 어떤 것들...
사경을 열심히 하는 붓을 쥐고 있으면 그게 항마구요.
내가 내 마음자리 항마구를 항복받으려고 하는 거니까 항마구가 되고 여러분이 목탁을 치면
그게 항마구요. 그걸 돈을 벌려고 하면 항마구가 아니겠지요.
이걸 한 번 더 생각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밥을 펄 때도 가족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퍼면 이 주걱도 항마구입니다.
글자에 귀속시키지 말고 생활패턴 전반에 확장시켜서 이해를 하셔야 돼요.
지금 빨리 끝나고 팥죽 먹어야 되는데 하지 말고...^^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여기는 법당이에요. 법당...
여기까지 이해가 가시죠.
오늘은 동지니까 해주는 거요. 서비스로....^^
독사영락요신비...독사毒蛇 뱀이지요. 영락瓔珞은 진주목걸이 같은 보석을 말해요.
관세음보살님도 목에 걸고 계시죠. 저것이 영락이에요.
우리는 보석이라고 하면 금, 은 보석만 보석으로 보는데 독사도 결국은 무섭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맑은 중생을 다 보호하는 마음으로 독사를 걸치면 독사도 신장이 됩니다.
요신비繞身臂영락을 몸과 팔에다가 두르고 있는 거예요.
그게 돈자랑 하려고 두른 것이 아닙니다.
돈자랑 하려면 금, 은만 하지만 독사도 걸치잖아요. 다 중생보호 해주려고...
우리가 이걸 보면서 내 분별이 좋고, 나쁨으로 갈라져 있는 거지요.
독사라고 하면 무섭고 금, 은, 진주목걸이 하면 좋아하잖아요.
그러나 역사나 신장들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삼매화륜자수신...삼매의 불꽃받기가 늘 몸을 따라다닌다.
이것이 무엇이겠어요.
우리 사는 세상은 삼계화택입니다. 번뇌가 일어나요.
그 속에서도 역사, 신장들은 삼매를 유지합니다.
평상심이 도란 말이에요.
복권되었다고 들뜨고 사법고시 되었다고 들뜨는 것이 아니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담담하니 평상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몸을 가진 것이 신장이요.
나도 그렇게 살면 금강역사고 예적금강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본인들은 안 그렇잖아요.
금강역사에게 빌기만 하지 내가 그렇게 되어야지는 안하거든요.
영락은 몸에 두르는 것은 좋아하고 독사 두르는 것은 기겁을 하지요. 그러니까 중생의 몸이다
말이요.
역사들은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된다.
절에도 가면 좋은 자리 가방 던져놓고 자리 잡아 놓지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천마외도급망량...천마天魔 우리가 말하는 귀신이지요.
외도外道 다른 종교, 삿된 무리들, 망량魍魎은 뿔달린 도깨비지요.
문설신주개포주...설하는(초하루기도) 이런 것을 듣고 모두 두려워서 도망갑니다.
이래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먹습니다.
붉은색의 팥죽, 붉은 색깔로 경면주사를 써서 부적을 문 앞에 붙이기도 하지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보면 공공씨의 자식이 아주 망나니였는데 아주 몹쓸 짓을 하다가 죽어서
도깨비가 되었어요.
살아서 편식을 많이 했는데 팥을 많이 싫어해서 도깨비가 되니까 팥으로 죽을 쑤어 먹으면
도깨비들이 안 붙는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것은 민간신앙이에요. 그래서 동지 팥죽을 먹거든요.
그것은 중국의 민간신앙이고 우리는 그런 마구니들도 신주神呪기도로서 부처님의 법으로서
다 해결이 되는 거요.
우리는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서 악귀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매월 매일 기도하시고 공부를 하시잖아요.
그러면 팥죽의 의미는 그냥 맛있게 드시면 되고 팥죽 먹었다고 귀신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귀신은 벌써 도망가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기도하시는 분들은 마구니가 못들어옵니다.
사실은 오늘 팥죽 안 드셔도 돼요.^^
오시는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봉사만 해도 돼요. 이치가 그렇다고...
그것을 인식은 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기도를 하시지 않는 분들은 동짓날 팥죽 먹고 액운을 막아야지
하는 분들에게는 어떤 방편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런 신주를 늘 읽고 하면 천마나 외도 망량들이 듣고 무서워서 다 도망을 가게 돼요.
괜찮아요. 우리는 기도하는 불자니까...
여러분들이 수업할 때 이것을 읽습니다.신信, 해解, 행行, 증證
신信.... 늘 기도 정진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기도하고 계시잖아요. 이러면 천마나 외도나 망량이 붙을 자리가 없습니다.
띄엄띄엄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조금 약하지요. 신장의 에너지가...불보살의 에너지가...
어떤 힘든 일이 왔을 때 바로 안된다고 속상해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자기 힘이 약해서 그렇지요. 더 간절하게 정성껏 하셔야 돼요.
자기 앞에 닥치면 하는데 평상시는 잘 안 해요.
그래서 불교가 발전을 못하는 거예요. 기복으로 흘러가지요.
답답할때만 비는 거예요. 평상시에 하는 축척된 힘이 늘 하는 힘이 평상시 그런 것들을 막고
있는 줄 모르고 무방비로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고서야 기도를 하는 거예요.
천마나 외도나 망량은 내가 늘 기도하는 그 신주의 힘에 의해서 평상시에 도망을 가는 겁니다.
내가 흐려지니까 들어오는 거지요.
자나깨나 기도하셔야 돼요.
기도하는 것이 번거로우면 염주를 들고 차안에서라도 ‘관세음보살’
정근이라도 하셔야 돼요.
그러면 평상시에도 다 막아줍니다. 여기 책에 다 나와 있잖아요.
평상시에는 기도를 안 해요.
또 12월 달에는 송년회다 망연해다 해서 기도를 안해요.
사고는 12월이라고 안납니까? 1월이라고 안 나요?
시공간이 조금만 틈이 나면 들어오는 거요.
그래서 기도는 습관적으로 하셔야 돼요. 제가 안타까워서 그래요.
평상시는 잊고 있다가 무슨 날이면 왔다가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나면 “스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걸 스님한테 왜 물어요.
평상시에 자기에게 힘이 다 있는데...불보살들이 다 지키고 있는데...
도와주려고 stand by하고 있는데...습관적으로 기도하면 가정에 안녕이 보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남에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면 돼요.
자기 마음을 밭이라고 생각해 봐요.
농부라고 생각하면 그 밭을 가만히 버려두면 농사가 돼요.
수시로 거름 주고 갈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잖아요.
마음도 그런 거요.
씨를 심으려고 하는데 땅이 말랐는데 거기서 뭐가 날 거요.
욕심만 꽉 차서 고마워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면 그 밭에 불성종자를 심은들 나겠어요.
절에 다니면 좀 바뀌어야지요.
문설신주...이 설하는 신주를 듣고 다 도망가고...
원승가지대위력...부처님의 위신력에다 내속에 있는 불성을 더하면
속성불사무상도...부처님의 일과 위없는 도가 바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원해야 돼요.
뭘 믿습니까?
자기 불성을 믿으십시오.
내 불성종자가 자라서 정말 일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큰 마음이 나인데 조그만 종자기 같은
마음으로 살면 매일 종자기처럼 살거든요. 기도하면서 내가 부처님을 믿는 거지.
신信...비는 것은 기도잖아요.
우리가 수행이라고 하지요.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불보살 외에 신장들에게 빌어요.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부처님을 믿으라고...
아직까지 내가 인식이 얇아서 마음씀씀이가 얇아서 내 마음밭에 씨를 뿌려도 자라지 않는 터전이
되었으니까 이 터전을 잘 가꾸어서 일체중생에게 나눠주겠다는 그것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가지란 말입니다. 원을 하나 더 붙이라고...
신주기도를 하면서 원승가지...덧붙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의 대위신력, 내 마음이 불성인 것을 하나 더 믿고 붙이라는 거예요.
‘스님, 그러니까 중생 아닙니까?’ 그런 것 붙이지 말고
‘이 시간부터 ‘나는 부처다.’
동지冬至가 뭐예요?
절기적으로 밤이 끝나고 낮이 길어지는 거예요.
중생의 무명업장의 번뇌 그 어둠이 이제 서서히 줄어들고 반야지혜가 점점 증장되는 겁니다.
불교적에서는...
기도를 통해서 내 마음속에 있는 불성, 반야지혜를 밝히시라고...
내 속의 불편한 마음들, 답답한 마음들, 좀생이 같은 마음들을 자꾸 버리면서 맑은 마음을 자꾸 키워요.
원승가지, 내 속에 있는 에너지는 무한합니다. 신통장입니다.허공장이며 무량장이에요.
무량심이에요. 대자대비심이고 청정심이에요.
이걸 뭐요? 믿으라고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속성불사무상도...그러면 깨달을 수 있고 중생제도의 힘도 갖출 수 있고 내 가정의 안녕도 스스로
보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평상시에 늘 기도하셔야 돼요.
우리 한국불교가 깨달은이가 가르치고자 하는 가르침이 이런 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포교하실 분들을 이런 날 좀 모시고 오시죠?
상 줄려고 했는데...^^
일반 사찰 다니시는 분들 이런 날에 모시고 와서 많은 도반들과 같이 하는 기도에너지를 느끼게 해야지요.
다음 해解는 뭡니까?
해解...경전공부를 부지런히 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경전공부 하셔야 돼요.
오늘은 동짓날이라고 그냥 기도하러 오신 분도 계시겠지만 죽을 때 까지 해야 돼요.
태어나도 해야 되고 죽어도 해야 되고 살아도 해야 되고 무조건 해야 돼요.
불교佛敎잖아요. 교敎는 믿는 것이 아니잖아요.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잖아요. 불교...
절에 가서 절하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절에 가는 사람이고 불佛의 가르침, 경을 늘 학습하는
사람을 불교, 종교가 불교라고 말해요.
듣기만 하면 어떻게 돼요.
의사가 의서를 많이 읽잖아요. 환자치료는 안 해요.
돼요? 안 돼요?
의사가 의서를 공부하고 난 다음 환자치료를 해야 되잖아요.
어설프게 몇 마디 듣고 치료하는 것은 잠깐은 할 지 모르지만 큰일나요.
수많은 의사들의 임상실험을 통해 축척된 정보, 데이터를 가지고 다시 약을 만들고
그것을 환자들에게 적용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역대 전등되어 온 조사와 종사들이 축척된 그 논장과 율장과 경장들이 그 삶의 지혜가
이천년, 삼천년 동안 축척된 것이 경전이에요.
그걸 통해서 학습을 하고 보살회향심으로 회향을 하는 거예요.
모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그냥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업을 짓는 것은 알고 하는 거다 말입니다.
사람 살리는 것도 지혜가 있어야지요.
사람 살리는 것도 내가 좋은 의도로 했는 것도 결과는 나쁜 쪽으로 갑니다.
지혜가 없으면...
불면증 걸린 사람 치료해준다고 시간되어서 약을 먹여야 한다고 이 사람이 어느 날 푹 자고 있는데
간호사가 약 먹을 시간이라고 깨웁니다. 그것은 지혜가 없는 거지요.
우리가 지혜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경전공부는 반드시 해야 돼요.
화엄경공부 하셨어요?
화엄경에 보면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이렇게 나오지요.
그것이 7처9회인데 1처는 보리도량에서 6품을 설하고 2처 보광명전에서 6품을 설하거든요.
열 번째가 뭐냐 하면 ‘보살문명품’이요. ‘광명각품문명품’ 화엄경약찬게 할 때 하셨지요.
보살문명품에 보면 열 번째 품에 문수보살이 법수보살에게 묻습니다.
‘부처님정법을 잘 듣고 마음에 수지하면 되지 그렇게 받아 지니는 사람들이
왜 사는 것이 힘들고 욕심 부리고 짜증내는 마음을 왜 일으킵니까?‘
하니까 거기서 법수보살이 얘기합니다.
[여인수타보 如人數他寶 자무반전분 自無半錢分 어법불수행 於法不修行 다문역여시 多聞亦如是]라.
어떤 사람이 돈을 매일 남의 보배를 헤아리고 있어요. 자기 것은 있어요?
남의 것을 헤아리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많이 듣기만 하는 것도 돈만 헤아리고 있는 거예요.
수행을 해야 된다. 법에 있어서도 듣기만 하고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남의 사람들 돈 많이 헤아리고
있어도 자기 것이 안 되는 것하고 똑같다는 겁니다. 절에 다니면서 기도는 열심히 하고 공부는 안 해요.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공부하러 왔지 이런 거 하러 왔나’ 이래요.
이런 경전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요.
공부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양쪽을 다 해야 돼요. 그것이 불교佛敎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공양 맛있게 즐겁게 드세요.
내가 봉사를 못하면 나가시면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어제부터 새알비비고 밤새도록 삶고 그르고 잠도 안자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 먹이려고... 그런데 그냥 먹고 가면 안되겠지요.
그런데 먹어주는 사람이 또 있어야 되잖아요.
잔칫상 아무리 잘 차려놓으면 뭐해요. 손님 없으면...
많이 와서 맛있게 드셔주시면 고맙잖아요.
맛있게 드셔 주셔야 돼요. 새알이 적니, 많니...그러면 안 돼요.
팥이 묽다...빡빡하다. 이거 안 돼요. 고맙게 먹어야지요.
그게 공부해서 많이 공부된 사람이 펼쳐야 될 마음입니다. 작용이요...
그래서 경전공부를 해야 돼요.
한 몇 년 지나면 옛날에 많이 했다고 안 해요.
옛날에 밥 먹었다고 지금 안 먹습니까?
이게 안타깝습니다. 절대 그런 말 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공부를 해서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공부하는 것이지요. 법을 들어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경전공부를 부지런히 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하잖아요.
절대 치우치면 안 돼요.
기도만 해서도 안 돼요. 그것도 혼자 하는 기도는 힘이 없어요.
각자는 조그만 나무인데 한데 모아서 불을 붙이면 폭발적인 열이 나거든요.
나가 아닌 나와 너 우리 전체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요.
여기서 기도가 안 되면 우주 어디를 가도가 안 됩니다.
여기서 기도가 되어야 진짜 기도가 되는 사람이에요. 그래야 가피도 받고요.
반드시 도반들의 힘과 눈이 있어서 서로가 옆길로 가면 누군가가 막아주고 더 힘을 받을 때
보태주는 힘들이 있잖아요.
1년 365일 여기는 기도가 이루어지잖아요.
언제, 어디든지 도반들이 어떤 기도를 하고 있지요.
스님들도 상주하고 계시면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궁금하면 물을 수 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곳이잖아요.
다른 곳에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어떤 장소를 찾아가지 말고 이런 기도처에서 기도의 힘을
붙여서 어디든지 가서 해도 돼요.
중요한 것은 반드시 공부를 해야 돼요.
어렵다. 쉽다. 가 아니에요.
여기 와서 부처님 전에 삼배올리고 앉아서 듣는 그 자체가 기도이고 수행이고 그것이 공부입니다.
두 개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경전공부를 부지런히 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다음은 뭐지요?
행行... 하심下心하여 봉사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어떻게요?
‘하심’
불교를 반야심경 모르고 천수경 모르고 화엄, 법화 아무것도 몰라도 됩니다.
‘하심‘만 알면 끝입니다.^^
하심...될까요. 우리 마음이 얼마나 좀생이 같아요.^^
말 한마디에 자기도 모르게 변하거든요.
오늘이 초하루 같으면 끝을 내려고 했는데 동지까지 겹쳤으니까 하심에 대해서 확실히 이야기해
드릴게요. 하심한다는 것이 내가 저 사람한테 좀 져줘야지.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덕산스님이라고 화엄경의 대가이신 스님이 나중에 회상을 꾸려서 많은 수승납자들이 와서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 중에 ‘설봉 의전’이라는 아주 눈이 맑은 스님이 계셨어요.
설봉스님을 불러서 대중이 많아서 내가 감당이 안 되니 사찰소임을 좀 맡아서 해달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설봉스님은 안한다고 하니까 고생스럽지만 이것도 대중을 위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래서 살림을 맡게
되었어요. 살림을 맡게 되고 보니까 먹을 것이 없어요.
스님들 공부 할 수 있도록 시봉을 하는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나요.
대중들이 와서 덕산스님께 와서 일러바치는 거요.
없는 말 만들어 내고 눈에 보이는 자기 식대로 이야기하잖아요.
“스님, 요즘 설봉스님이 이상합니다. 소임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일러요.
밥먹을때는 안 들어오고 자기 혼자 펄펄 끓여서 먹는다 하고 모두가 그런 얘기를 해서 소문이 다 났어요.
원래 어른스님들이 개인 방을 안 봅니다.
소문이 나고 이상하다고 하니까 방에 가보니 국을 펄펄 끓여서 먹고 있는 거요.
‘네가 귀신이가, 사람이가“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했어요.
스님이 조실스님이 오시니까 깜짝 놀라서 일어났어요.
덕산스님께서 혼자서 뭘 먹고 있느냐고 하면서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어요.
썩은 냄새가 나고 해서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맛이 이상했어요.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어요.
“제가 소임을 맡고 덕도 없는 사람이 대중들을 위해 살피려고 하니 음식으로 대중들을 살피려고
한 끼라도 덜려고 하다 보니 공양하고 남은 음식 찌꺼러기들을 걸러서 삶아 배를 채우는 거요.
그냥은 먹지 못하니까 삶아서 대중들에게 안보이려고 방안에서 먹었는데 모르는 중생들은
욕을 하는 겁니다.
스님이 보고 고개를 끄떡끄떡 하시며...
눈 푸른 스님 한 분이 삼천대천세계 중생을 다 먹여 살린다. 이럽니다.
여기 하심이란 말이 들어가 있어요? 없어요?
글자는 없어요.
어디에도 하심이란 말이 없어요.
수행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하심이요.
그렇게 하는 것이 봉사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지요.
동짓날 봉사 좀 하라고 하면 다른 사람은 팥죽 먹는데 나는 왜 봉사하는데 이럽니다.
그러면서 그걸 참는 것이 하심이다 그렇지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절에서 말하는 이런 언어들은 우리 인식을 뛰어 넘는 언어들입니다.
내 인격만큼 내 불격만큼 와 닿는 것이 언어예요.
자기 식대로 보잖아요. 내식대로 해석을 해버리거든요.
하심이라고 남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하심이라는데 그래서는 하심이 안됩니다.
언제든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속옷처럼 옷 밖으로 튀어 나오거든요.
정말로 수행을 해서 맑아지고 맑아져서 부처님 경전을 읽고 맑아져서 마음에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그 마음으로 행동할 때 그것이 봉사가 되는 거요.
설봉스님처럼 표도 안 나게...자기가 수장으로 있으면서도 가장 낮추어서 남에게 전혀 불편을
끼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연처에서 도울까 하는 마음, 일어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봉사요.
하심하여 봉사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말입니까?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은 해요. 안 해요.
안 하고 있지요. 그런데 못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불능은 아니잖아요.
코끼리가 알 낳는 것은 불능이에요.
우리는 안 하고 있지요.
부처님에 대한 인식, 자기 마음을 정말 수행을 통해서 내 불성을 드러내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거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쓰는 마음이 내 마음이라는 잘못된 생각 속에 살아가는 겁니다.
깨달은 이가 깨닫고 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전부가 불성을 가지고 있는 부처다. 이 말이요.
불성이 아닌 것이 없어요. 단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걸 일러 주신 분이 서가모니부처님이에요. 일대사 인연....
그 인연으로 저를 포함해서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든 생명체에서 내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일러
주기 위해서 왔다는 거예요.
서가모니부처님 오신날 우리가 등을 공양하고 찬탄하는 이유가 그 분이 높기 때문에 공양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이 고마워서 내 부처를 일깨워주고자 나타나신 그 분의 인연이 고마워서 우리가 찬탄하면서
기도하면서 또 많은 사람에게 부처의 불성을 일으키게 하려고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 거지요.
이보다 더 좋은 자긍심이 어디 있어요.
나는 뭐다. 부처다 이 말이요.
앵무새가 가수다 이러면 가수가 됩니까?
앵무새가 불효자라고 하면 불효자의 느낌을 알까요? 아니지요.
진짜 온 마음으로 행동으로 액션으로 표현이 되어야 되잖아.
중생하고 부처하고 차별이 없어요.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분명히 차별이 있어요.
부처님은 우리가 아무리 달라고 해도 365일 싱긋이 웃고 계신데 우리는 하루만 해도 삐져서
말도 안한다. 그게 무슨 부처야.
동지기도에 해가 길어진다는 것은 세간적으로 학문으로서 그렇고 우리는 내 무명의 어둠이 걷히고
반야지혜를 점점 더 밝히는 거지요.
실제로 생활이 번뇌로 가득차면 어두워서 답답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야가 들어와서 마음이 편안해지면 길이 다 보여요.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영화 보셨어요.
나는 평생 영화 한 번도 안봤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극장에 처음 들어가면 어둡지요.
가만히 있으면 서서히 밝아지지요. 그러면 살살 가잖아요.
그러면 내가 들어왔다고 영사 기기사가 불을 더 밝게 켰습니까?
똑같아요.
처음에 들어가면 어두운 것이 보이더라 이 말입니다.
일상생활 속에 어둠이 와도 내가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지켜보면 보이는 겁니다.
어두울 때는 무명이 작동하는 것이고 보일 때는 반야지혜가 작동하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내가 지금 들떠서 정신을 못차리고 남의 얘기만 듣고 이상한 소리(묫자리 잘못 썼다. 집안에 액운이
끼었다.)만 듣고 혼란스러우면 번뇌 어둠 무명이 작동하는 거예요.
그래서 힘든 거예요.
그것을 없애는 것이 뭐지요?
내 속에 있는 반야지혜를 드러내는 거지요. 밝음...
기도를 통해서.... 가만히 기도를 하면 어둠이 사라지면서 보여요.
그러면 그 길로 가면 돼요.
자기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두워지면 물으러 갑니다....작두장군, 칠성동자....^^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스님들께서 방편으로 경면주사에 써서 줄 때도 있지만 거기에는 의미를 주지요.
기도를 반드시 하게끔 하잖아요.
동지기도도 하고 초하루기도 하고 기도를 하면서 드리는 건지 그것만 붙이니까 액운이 물러간다는
것은 없어요.
내가 살면서 세상에게 인연지은 사람에게 내 마음밭을 맑게하는 기도와 하심해서 봉사를 통해서
내 마음밭이 튼튼해지면 거기는 뭘 심어도 잘 큽니다.
옥수수를 심어도 잘 크고 고구마를 심어도 잘 커요.
밭이 좋으니까...본인의 마음밭이 척박하면 뭘 심어도 잘 안됩니다.
그러면 제일 급한 일이 뭐예요.
밭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되잖아요. 밭주인이 누구요?
내가 하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마음밭을 잘 가꿔놓으면 어떤 인연이 와도 풍성한 과를 맺지요. 이게 불교의 원리라고요.
하심하여 봉사해야 되겠지요.
다음은 뭡니까?
증證...당당하게 포교하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위축이 아니고 당당하게 포교하는 불자...
깨달은이의 가르침을 널리 전해주는 불자가 되자 이 말입니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요.
농부가 좋은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야 그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칼국수 주인의 기분이 좋아야 그 칼국수 맛이 맛있게 나와요.
칼국수 주인의 마음이 맑아야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을 주는 거요.
그런데 칼국수 주인이 이익에 눈이 멀어 음식을 만들어 주면 나도 안좋지요,
칼국수 주인이 마음이 맑으면 나도 맛있게 먹지요.
옆집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사는 거요.
우리는 어떻게 해요.
옆집하고 경쟁을 해요. 잘 사는 걸 못 보지요.
자기가 조금 높으면 밑에 사람을 아래로 보고 싶고...경비원아저씨에게도 아파트 지켜주면 감사해야
되는데 함부로 말하고 그러면 안되지요.
그것이 잘못된 중생들의 업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흠집을 내지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서로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고 서로 칭찬하고
공경하고 찬탄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힘든 사람들에게 자기 불성을 일으키게끔 도와주면 얼마나 좋아요.
부모를 공경하고 동네 노인들을 공경할 줄 알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고 하면 좋지요.
부모는 다른 아이들하고 공부를 비교하고 하지요. 불교공부가 제일이지.^^
영어, 수학해서 공부 잘하는 것 보다 조금 못해도 착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공경하는 아이들이 귀엽지.
서로 도울 수 있는 인격적인 사람들이 많아져야지요.
지금처럼 밤에 사람 따라 올까봐 겁나고 집에 벨소리만 나도 살펴야 되는 이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우리가 어릴때만 해도 밥없으면 언제든지 옆집에 가서 밥먹고 그랬어요.
명절되면 동네할아버지 할머니 다 찾아다니면서 인사드리고 그랬어요.
세뱃돈 받으러 간 것이 아니라 동네 어른이기 때문에 인사드리러 갔지요.
초등학교 선생님도 하늘같이 생각하고 선생님 집에 오신다고 하면 긴장되고 이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죄인입니까? 존경받지를 못해요.
누구나 다 늙어 가는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존경받지를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지극히 공경하고 아버지, 엄마에게 효도하는 그런 인성을 길러주고 우리는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이런 것이 연기예요. 얽혀있다는 겁니다.
너와 내가 같이 연결되어 있다. 끊어지면 못살거든요.
불교는 인간학이거든요. 학문적으로 보면...
제가 늘 말씀드렸잖아요.
지혜...우리가 공부해서 반야지혜를 드러낸다. 마음의 불성을 드러낸다.
그것이 반야지혜다. 밝음이다 하는데 보살이고 중생이고 어떻게 알아요.
저 사람이 보살인지, 지혜가 있는지 아는 것은 그 사람이 마음 쓰는 거예요.
평상시에 다른 이를 위해서 어떤 마음을 쓰는가가 보살인지 중생인지 알 수 있는 거지요.
번뇌, 무명이 작동하는가? 반야지혜가 작동하는가는 그 사람이 이웃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마음을
베푸는가?
시부모님 공경하고 친정부모님 은혜알고 이웃경비아저씨 고마운줄 알고 동네세탁소아저씨 고마움 알고
내가 돈주고 한다고 해서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택시타도 그 기사들한테 고마워하고 학교가면 학교선생님에게 고마워하고
학원가면 학원선생님에게 고마워하고 유치원가면 유치원선생님에게 고마워해야 되고 잘 커는
자식들 귀여워해줘야 되고 장난꾸러기 옆집아이도 귀한 줄 알아야지요.
그런 마음들이 퍼져야지 세상이 맑아지지 법을 아무리 만들어 봐요.
대학교 나오고 대학원 나온다고 세상이 맑아지겠습니까?
뉴스에 나오는 안 좋은 일 봐요.
그런 나쁜 사람들에게도 불성이 있거든...
포교를 해서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알려줘야 알지.
옛날에는 벨을 누르면 살피지 않고 그냥 문 열었어요.
문이 열렸으면 그냥 들어갔어요.
자기 집에 들어가는데 비밀번호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그럼 나는 책임이 없어요. 이 시대에 같이 살고 있잖아요.
그럼 우리만 그렇게 살면 되겠어요.
다른 사람이 너무나 많이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가 힘이 달려서 거센 물이 흘러가는 데는 맑은 물도
휩쓸려 가버려요.
그러니까 맑은 물을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포교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냥 사람을 끌어 모으자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러줘서 그들 각자가 맑아져서 각자 서로 도우자는 세상을 만들자는 겁니다.
부처는요 할 수 있는 일이 딱 두 가지 입니다.
제가 송년의 밤 할 때 문구를 썼잖아요.
[바른 깨달음의 성취와 온 세상의 정토구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세상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하면...
모두가 자기 불성을 깨닫도록 가르쳐서 그 사람들이 세상의 나쁜 것을 다 치우는 사람으로 마음을
내는 거지요. 그러면 세상이 정토가 돼요.
여기는 썩었는데 내가 죽어서 좋은 일 해서 깨끗한 땅에 가는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각자 일어나서
도량을 깨끗이 청소하면 이 도량은 깨끗해집니다.
아무도 청소는 안하면서 버리기만 하면서 청소도 안하냐고 하면 누가 청소해요.
돈 준다고 다 깨끗해질까요?
내부터 청소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하면 이 도량 그대로가 정토예요.
여기 들어오니까 좋으네요. 하고 서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면 여기가 바로 극락이지요.
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집에는 오백만원 버는데 왜 우리 남편은 백만원밖에 못버노... 이런 마음이면 지옥이 되는 거예요.
돈하고는 관계없지요.
수많은 60억이나 되는 인연중에서 남남이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이 인연이 얼마나 고마워요.
다리가 부러져도 고맙고 코가 비뚤어져도 고맙지요.
살아가는 그 자체가 감사하잖아요. 그 인연이....
그렇게 귀하게 생각하고 살면 내 집이 천국이지...
온도가 30도라고 해도 마음이 싸늘하면 그건 지옥입니다.
물질이야 가지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많다고 다 행복합니까?
마음이 맑지 못하면 물질은 다 독이 됩니다.
여유가 되면 보시도 하시고 꼭 절에 보시 안 해도 돼요.
내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에게도 나눌 수 있는 인연도 마련하시고 절에 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격려해주고 동짓날 팥죽 끓여 주시는 분들에게 잘 먹었다고 고마움을 가지는 것도
보시잖아요.
법화경에도 종불구생從佛求生, 종법화생從法化生이란 말을 합니다.
입을 통해서 부처되는 거요.
남에게 자꾸 꽈배기처럼 꼬면서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쓸데없는 말을 하는 순간 빨리 자각해서 좋은 경전의 말을 옮겨야 돼요.
칭찬해야 되고 격려해야 되고 서로서로 이웃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고 그런 기도의 힘으로 안되고
지치고 힘들때는 이런 도량에 와서 불보살의 외연에 초하룻 신장들에게 또는 불보살님께 힘들고
아프니까 좀 도와주세요. 하면 그 외연의 가피는 반드시 있습니다.
이 수 많은 스님들과 여러 도반들이 허망하게 지나게 놔두지 않습니다.
공부하시면서 봉사하시고 기도하시면 이제 새로운 작은설이잖아요.
지금부터 신정, 설날로 이어지는 내년 을미년 한해까지 포함해서 하루하루가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가 부처님 가피 속에 있다. 라고 사유하면서 늘 기도정진하시고 늘 맑은 날,
밝은 날 스스로 어둡게 만들지 마십시오.
힘들때는 우리 관음사를 인연해서 열심히 기도정진하시고 늘 포교하시고 늘 봉사하시고
늘 경전공부를 부지런히 하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