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님의 話頭訣 (뜻(법의 이치)이 있는것이다.)
화두는 반드시 명확한 뜻(법의 이치)이 있는것이다.
그런데 이 화두를 實參해서 實悟해 보지 못한 분상에서 남들이 억지(말과 글을 빌려 假設)로 近
似하게 해놓은 말이나 글을 통해서 막연한것을 나름대로 이런것이라고 定義를 해 살림을 차려놓
고 급기야는 반드시 그러한 것이라고 아는체하고 우기는 참으로 억지들을 쓰는 이들이 非一 非
再한 현실이다.
웃지 못할일은 "화두에는 답이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꿰어 맞춘답으로 公案의 道理
라 하여 "생활이 법 아님이 없다"는 말에 국집해서 마당앞에 잣나무가 있기에 "마당앞에 잣나무
라" 했으며 차마시고 밥먹고 똥싸는것이 불법 아님이 없어 "똥막대기요" "차나한잔 마시라" 했다
고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것은 이 화두의심을 통해서 비유컨데 두마리 토끼를 잡게 되는 것이니,
어째서냐? 疑團이 定하여 本性의 實相(眞如)에 計合하므로 見性이요, 깨달아들어 證得하게 되
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화두를 擧揚함에 禪問答이라해서 格外句(말 밖의 소식:말을 超越한 道理 )를 쓴다.
그러니 모르는 이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말하리만치 알지 못할 어렵고 奇想
天外한 소리처럼 생각하고 "어렵다"하며, 나는 透得할수 없는 영역으로 포기 또는 건드려 볼 엄
두도 내지 못하고 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하려들지않고, 간절하지 않으며, 끈질긴 노력을 하지않으며, 바르게 배우고, 바르
게 공부지어 나가지 못함이 이러한 것으로 轉落 顚倒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견성은 참선공부가 가장쉬운 수행방편인 것이니, 어째서인가?
간경 주력 기도로써 확철대오한 이들은 많지 않아도 참선 공부로 깨달은 분은 수 없이 많음은 이
를 立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看話禪 공부길을 徑절門(깨달아 듦에 지름길)이라하는 것이다.
스스로 실참해서 大悟를 證得할 생각은 하지않고 남들이 뱉아놓은 實이 아닌 말만을 익혀서 불
법을 운운하고 많이 알고 깨달은 양 말재간을 부리며 남의 말이나 비판하려들며, 나도 건지지 못
할 識見으로 남들을 가르치려드는 참으로 통탄할 불교현실이다.
어찌그리도 말로써 아는 것이 많아 잘도 말재주를 부리며 큰소리들을 치는 걸까?
참으로 깨달아 아는 이는 禪과 敎에 막힘이 없는 것이며, 격외라해서 몰라서 듣고 씀에 어렵거
나 禪門인 平等門이 差別 敎門과 어긋남이 없는 眞理임을 분명하고 똑똑히 알게되는 것이다.
다만 저어하는 바는 아는 것은 좋은 일이나 자칫 그 아는 것이 病이되어 實다운 究竟을 證함에
障碍가 되니, 이것이 오히려 막힌바 되어 생각과 말과 行함이 일치되지 않아, 도리어 無明과 業
因만 더하니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어째서 그렇게 어렵게 생각케되고 그렇게 佛法을 아는 듯하면서 참으로 실다운 불법을 등지고
멀어지는 것일까? 槪歎스럽고 통탄스럽도다.
말과 글로서는 그렇게 많이 알고 해 마친듯하면서도 진작 법리를 물으면 둥군구멍을 모난막대기
로 막으려고 말재간 만을 그럴싸하게들 부리나 하나
쓸모없는 재주요, 말 잔치일 뿐, 법리에 어긋난 말재주로 여러불자들을 어지럽히고 불법을 誤導
하여 자기를 속이고 佛祖를 속이며, 뭇중생을 속여 業緣을 더하는 愚를 범하고들 있으니, 이 어
찌 痛恨을 금치 않을수 있겠는가?
불자들이여 佛恩을 언제 갚으려하며? 生死를 언제 뛰어 넘으려 하는가?
깨달음이 기다려주지 않으며, 四大肉身이 항상 머물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하나 佛과 法이 어서 契合(合一)하여 하나되기를 고대하고 있음도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화두는 어느것이나 그 하나를 확철하게 깨닫게되면 일체의 禪과敎를 모두 깨닫게 되므
로 "일체종지를 증득한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몰록 일체를 깨닫기도하고, 깨달음의 깊이가 얕아 한소식 정도의 얕
은 깨달음으로 차별이 있으니, 일체를 頓悟한 이는 막힘이 없는 보리지를 증득하는것이나, 근기
가 낮은 이는 화두 하나로 깨달음이 확철하지 못하므오써 宗師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서 교묘
한 선지식의 시험에 걸려 그 걸린 공안을 다시 뚫어야 하다보니 공안을 여러게 들게 되는 것일뿐
이다.
따라서 어떤화두이건 그가운데 일체의 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니, 이 뜻을 모르면 화두 몇
개를 했느니, 또는 모든 화두를 들어 뚤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다" 하는 것이다.
고로 생각으로 화두를 알아 맞추려 하지말고 의심으로써 사유하여 그 깊고 큰 의단가운데서 큰
깨달음을 證하시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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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유 게시판 입니다.
話頭訣- 장군죽비님의 훈교와 경책의 말씀 중에서.
定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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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15 14:41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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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만나네요^^ 방갑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마음 공부하시는 모습 보여주시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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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스님, 감사합니다^^. ()()()
그러나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몰록 일체를 깨닫기도하고, 깨달음의 깊이가 얕아 한소식 정도의 얕 은 깨달음으로 차별이 있으니, 일체를 頓悟한 이는 막힘이 없는 보리지를 증득하는것이나, 근기 가 낮은 이는 화두 하나로 깨달음이 확철하지 못하므오써 宗師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서 교묘 한 선지식의 시험에
걸려 그 걸린 공안을 다시 뚫어야 하다보니 공안을 여러게 들게 되는 것일뿐 이다.
흐미, 지 말하고 계시네요. 지는 하근긴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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