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장,
지민이는 엄마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을 한다.
금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등학교 수료증을 받고 대학 입시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공부에만 신경을 쓴다.
지아 또한 회사 일과 때때로 회사에서 하는 회식으로 인해서 일찍 집에 귀가하는 날이 흔치가 않다.
장경숙은 이래저래 혼자일 수밖에 없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지민이를 위해서 식탁을 차리지만 지민이는 먹는 것이 늘 시원치가 않고 밥을 잘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민아!
공부도 좋지만 네 건강이 더 우선이야!
밥을 제때에 먹고 공부를 하면 안 되겠니?“
”엄마!
배가 고프지 않고 밥 먹을 생각도 없어!
먹고 싶으면 내가 가서 차려먹을 것이니까 엄마는 나에게 신경을 쓰지 말고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하면 어때요?“
”그래!
엄마가 노력을 해 볼게!“
장경숙은 지민이의 그런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지민이의 말처럼 취미생활을 생각해 보지만 지금까지 무엇하나를 해 본 기억이 없이 살아온 삶이었다.
그저 할 줄 아는 것은 여행이고 그것이 삶의 전부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자식들이 크고 나서 여행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금전적인 것도 그렇지만 지아나 지민이는 여행을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친정엄마에게 도움이 끊기고 나서 마음 놓고 여행을 가 본 기억도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곳을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잠시 다녀올 뿐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해외여행을 아이들은 떠나기 싫어한다.
아이들을 두고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의미가 없고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엄마와 언니만 있으면 더 이상 필요한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장경숙이다.
이제 그나마 엄마도 언니도 멀리 떨어져 보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든가?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이다.
엄마는 이미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신지도 몇 년이 지나 잊어져 버렸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고 혼자 고립된 시간들을 보내려고 하니 비로소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예전의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남편과 함께 살아가면서 엄마와 언니와 여유롭게 해외여행을 즐기며 살아가던 그 시간들이 너무나 그립다.
이제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하는 그 시간들이다.
이제 지아나 지민이도 때로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들만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은 잊어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장경숙은 딸들을 이해하려기보다는 딸들이 자신을 따돌린다는 생각에 서운함이 자꾸만 쌓여간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술병으로 손이 간다.
조금만 아니, 한모금만 마시자고 시작을 하면 어느 사이에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잠이 드는 장경숙이다.
지아는 그런 엄마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다.
행여 알콜 중독이면 어쩌나 하는 근심스러움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엄마로 인해서 웬만한 회식자리는 피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오는 지아다.
집안은 늘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만 흐른다.
“지민아!
저녁은 어떻게 했니?“
지민이 방문의 열고 들여다보면서 말을 한다.
“저녁?
글쎄 별로 생각이 없어!”
지민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한다.
그대로 방문을 닫고 엄마 방으로 간다.
오늘도 여전히 술에 취해서 침대에 아무렇게나 잠이 들어 있는 엄마 모습이다.
집안은 엉망이다.
소파에 엄마 옷가지들이 널려있고 주방역시 설거지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지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집안을 치운다.
세탁실에 빨래가 밀려있는 것을 구분을 해서 세탁기를 돌리며 엄마가 일어나서 드실 술국을 끓인다.
더 이상 엄마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집안일을 해 나간다.
엄마는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가시고 나면 잠에서 깬다.
자정이 넘어서야 엄마가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온다.
지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준비해 놓은 술국을 떠서 식탁을 차린다.
“식사하세요.”
“엉? 그래, 고맙다.”
장경숙은 지아를 보기가 미안하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지아하고 약속을 한 것아 몇 번이었던가?
그때마다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탁으로 가서 지아가 준비해 놓은 술국을 먹는다.
지아는 엄마 앞으로 앉아서 엄마가 먹는 것을 바라본다.
“미안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게!“
“.............................”
지아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장경숙은 지아가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모른 척 술국에 밥을 말아서 다 먹고 나서 거실로 나간다.
지아는 주방을 치우고 차를 준비해서 엄마에게 간다.
“차를 마셔요.”
“안 줘도 되는데................”
“엄마!
이젠 엄마하고 약속을 하지 않을래요.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엄마도 하지 마세요.“
“아니야!
이번에는 정말이야!
정말 더 이상은 내가 술을 마시면...............“
“마시면 뭐요?
왜 말을 하지 못해요?
엄마가 왜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인지 엄마 속을 털어놔 봐요.“
“그냥..............
안 그런다고 아니, 딱 한잔만 하려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오늘부터는 이 집안에 술을 모두 없애려고 합니다.
만일 엄마가 다시 술을 사 오신다면 난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오지 않겠어요.“
“안 돼!
네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야!
엄마가 술을 끊을게!“
”엄마의 약속 믿지 않습니다.
다만 또 다시 술이 이 집안에 있는 것을 보면 난 바로 집을 나갑니다.
두 번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
술을 절대로 사오지 않겠다.“
장경숙은 자신 스스로에게 약속을 한다.
그렇게 지아는 엄마와 약속을 하고 긴 한숨을 내 쉰다.
분명 지켜지지 않을 약속임을 안다.
그러나 한동안 엄마는 그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술을 마시지 않고 집안살림에 전념을 한다.
지민이에게도 더욱 신경을 써가며 음식을 새롭게 마련하고 모든 것을 챙겨주려고 노력을 하는 장경숙이다.
자신이 술을 마시면 지아가 집을 나간다는 말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지아는 한 번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하고 마는 성격이기에 자신을 누르고 또 누르는 장경숙이다.
온 집안에 술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마시고 싶어도 술이라고는 그림자도 없기 때문에 참고 또 참는다.
자신의 손으로 술을 사오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아는 그런 엄마가 조금은 안쓰럽지만 모른 척을 한다.
이래서 엄마가 술을 끊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한다.
술로 인해서 지민이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아빠가 아니었으면 지금 지민이는 자신들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엄마마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정도 엄마가 안정을 찾아가는 것만 같다.
“엄마!
나 오늘 좀 늦을 겁니다.“
“왜?
일이 바쁘니?”
아침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다.
“오늘 회식이 있는데 늘 내가 빠지니까 우리 팀장이 나를 좋지 않게 봐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빠져나간다고 화를 내니까요.“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다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일에 충실해!“
“엄마, 정말 고마워요!
조금만 더 참아주시면 내가 엄마에게 잘 해 드릴게요.“
“그래!
엄마는 우리 두 딸들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
그렇게 지아는 기분 좋게 출근을 한다.
회식자리도 회사 일을 연속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친목을 다지고 더욱 잘 하라는 격려와 서로의 믿음과 신뢰가 쌓이는 시간이다.
지아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회식에 빠지려고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편안한 마음이 되어 일과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장경숙은 모든 집안 일이 끝나고 나서 마트에 다녀올 생각을 한다.
싱싱한 반찬거리와 집안에서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민아!
엄마 마트에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니?
잠시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는 것이 좋지 않겠어?“
“엄마, 미안하지만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
부지런히 해서 금년 목표를 달성해야 하니까요.“
“그래!
엄마 혼자 다녀올게!“
장경숙은 집 앞에 있는 마트에 다녀오기로 한다.
사야 할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혼자서 차를 끌고 멀리까지 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선다.
생각을 했던 것들을 구입을 하고 나서 장경숙은 술 코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술병들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술 한 병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계산대로 가서 술병을 보고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마시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값을 지불한다.
집에 와서 술병을 지아가 보지 못하는 곳에 감추어둔다.
지아의 눈에만 뜨이지 않으면 한잔씩은 마셔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한잔씩만 마시면 아무런 표시가 나지도 않는다.
장경숙은 저녁을 하기 전에 안방에서 술병을 따서 한잔을 마신다.
어차피 오늘 지아가 늦게 들어올 것이다.
또 한잔을 마신다.
달콤하고 기막힌 향이 자꾸만 유혹을 한다.
그러나 석 잔을 마시고 나서는 술병을 옷장 속에 감추어 두고 나와서 저녁을 준비한다.
기분이 매우 좋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
지민이도 엄마가 술을 마셨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장경숙은 기분이 좋아진다.
지아가 늦게 들어오는 날은 이렇게 술을 눈치껏 마시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지아는 생각보다 조금 늦게 귀가를 한다.
집에 들어오면서 행여 엄마가 또 술을 마신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지만 엄마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즐거워진다.
“엄마, 아직 안 주무셨어요?”
“네가 와야 잠을 자지.
생각보다 많이 늦었구나!“
”네!
다음에는 내가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알았다.
피곤할 테니 어서 씻고 자거라!“
“네, 안녕히 주무세요.”
지아는 이제 엄마에 대해서 안심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려고 준비를 한다.
지아가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문을 노크하면서 지민이가 방문을 연다.
“언니, 들어가도 돼지?”
“그래, 어서 와!
이 시간에 네가 웬일로 내 방에 와?“
”언니!
실은 아빠 전화를 받았는데 언니하고 다시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네.“
“그래?
넌 어때?
갈 시간이 있겠어?“
”토요일에 내가 언니 회사근처로 가서 함께 내려가면 어떨까 싶은데....“
“그럼 버스타고 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엄마 승용차를 이용하면 아무래도 엄마가 알 것만 같아서 그래!”
“허긴 그렇다.
매번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보통 일도 아니고.........
그래, 그렇게 해 보자.
이번 토요일은 마침 일찍 나올 수가 있으니까 버스타고 내려가 보자.
저녁을 먹고 아빠에게 태워다 달라고 하면 되니까!“
지아와 지민이는 다시 아빠 집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운다.
지민이가 원하는 일이라면 지아는 무엇이라도 다 들어주고 싶다.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동생인 것이다.
둘은 서로 만나서 함께 어디를 다녀온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아는 또 다시 퇴근이 늦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출근을 한다.
이제 장경숙은 지아가 늦게 퇴근하는 날은 몰래 술을 마시는 것에 이력이 붙는다.
또 다시 동네 마트에 가서 술을 사 온다.
물론 지민이가 알 턱이 없다.
지민이는 공부를 하다 점심 전에 외출준비를 하고 나온다.
“어디를 가려고?”
“엄마!
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좀 할게요.
챙겨봐야 할 책도 있고...........“
“많이 늦을 거니?
저녁은 어떻게 하고?”
“공부하다 배고프면 간단한 음식을 사 먹을게요.”
장경숙은 그런 지민이에게 돈을 준다.
“돈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어야 한다.
돈 아끼려고 싸구려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것 알지?“
“네!
그럴게요.“
그렇게 지민도 집을 나선다.
이제 장경숙은 눈치를 볼 딸들이 없다.
그래도 많이 마실 생각은 아니다.
그저 한 잔 두잔 마시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또 다시 술 한 병을 다 마신다.
장경숙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지아와 지민이는 아빠 집에 도착을 해서 서로 반가움을 나타낸다.
“승용차도 없이 오느라고 고생을 했겠구나!”
“괜찮아요.
버스를 타고와도 올 만한 거리고요.“
”지아야!
이참에 아빠가 차를 한 대 구입을 해주고 싶은데 어떠니?“
”고맙습니다만 아빠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빠가 차를 사 주신 것을 알면 엄마가 우리가 아빠에게 다니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마음 편안하게 오지 못할 것입니다.“
영후는 지아의 말을 이해가 된다.
자신만의 딸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장경숙임을 잘 안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