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돋보기] “내일 내가 가겠다.(Ero cras)” - 대림 시기 전례에 숨겨진 메시아의 대답
푸르고 동그란 대림환에 하나씩 하나씩 촛불이 밝혀진다.
동시에 우리들의 마음도 점점 더 아기 예수님의 오심에로 기우는 아름답고 설레는 대림 시기의 12월이다.
두 가지 성격
대림 시기는 대림 제1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와 12월 17일부터 주님 성탄 대축일까지 두 시기로 나뉘며
주제 또한 다르다.
대림 시기하면 아기 예수님 성탄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림 시기 전반부에는
승천하신 예수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에 대한 기다림, 즉 세상의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의 자세를 가다듬는 시기이다.
이때 바치는 ‘대림 감사송1’은 이러한 전례 시기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 …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대림 감사송1)
우리가 세상 마지막 때에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깨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조금 더 엄중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대림 시기를 보낸다.
반면 12월 17일부터 시작되는 대림 시기 후반부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설레임과 기쁨 속에
직접 준비하는 시기이다.
메시아의 오심이라는 긴장이 고조되는 중요한 일주일이기에 이 기간 동안 주일을 제외하고
‘대림 O주간 O요일’이라 하지 않고 지정된 날짜의 전례 기도문들이 준비되어 있다.(예를 들어 12월 17일 미사,
12월 18일 미사 등) 또 이 기간에 고정된 ‘대림 감사송2’는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라며 성탄의 준비를 직접 언급한다.
특별한 간청과 응답
성탄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기간인 12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 로마 전례는 아름답고 특별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 저녁기도의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의 후렴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부르는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는 성모님이 엘리사벳의 인사를 듣고 성령이 충만 해 부른 노래(루카 1,46-55)로
저녁기도 때마다 바치는데, 이 노래 앞뒤에 부르는 후렴은 그날 전례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대림 시기의 마지막 기간의 후렴에서 교회는 ‘오’라는 감탄사와 함께 메시아를 뜻하는 다양한 호칭으로
그분을 부르며, 그분이 어서 오시기를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이 기간 미사의 ‘알렐루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월 17일, 오 지혜(Sapientia), 지극히 높으신 이의 말씀이여, … 오시어 저희에게 현명의 도를 가르쳐 주소서.
12월 18일, 오 주여(Adonai), 이스라엘 집안을 다스리는 이여, … 팔을 펴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12월 19일, 오 이새의 뿌리여(Radix Jesse), … 더디 마옵시고 어서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12월 20일, 오 다윗의 열쇠여(Clavis David), 이스라엘 집안의 홀이시여, … 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를 그 결박에서 풀어 주소서.
12월 21일, 오 동녘에(Oriens) 떠오르는 영원한 빛, 찬란한 광채, 정의의 태양이시여, … 오시어
어둠과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어 주소서.
12월 22일, 오 만민의 임금이여(Rex gentium), 모든 이가 갈망하는 이여, … 오시어 흙으로 몸소 만드신 인간을
구원하소서.
12월 23일, 오 임마누엘이여(Emmanuel), 우리의 임금이시요 …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우리 주 천주여.
이렇게 교회는 시간 전례와 미사에서 이 후렴을 통해 메시아의 오심을 바라는데,
이 일곱 후렴 안에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숨어 있다.
이 후렴들을 다 부르고 나면, 오시기로 한 메시아의 응답이 마치 힌트를 조합해 보물 상자를 연 것처럼
드러나게 된다.
위의 일곱 후렴의 라틴어 첫 알파벳을 12월 23일부터 17일까지 거슬러 배열을 하면
‘EROCRAS(에로 끄라스)’가 된다.
라틴어로 ‘ Ero’는 ‘나는 … 이다.’라는 동사의 미래형으로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뜻이고 ‘cras’는 내일이다.
그러면 7일 동안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부르고 난 뒤에 드러난 문장은 “내가 내일 있을 것이다.”
곧 “내일 내가 가겠다.”로 해석이 가능하다.
12월 23일 이 문장이 드러나게 되고 24일,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이다.
이 숨어 있는 전례의 흥미로운 요소를,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을 예수님은 언제나 저버리지 않으심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생각하면 어떨까?
올해도 우리들 곁에, 우리들의 가장 아프고 외롭고 힘든 마음의 그늘에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성탄절 맞으시길 기도한다.
[월간빛, 2023년 12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