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 페이스풀
강인한
간절하면 이루어지나 봐요, 마리안느
미안해요 당신을 간밤 꿈속에서 만났어요
나랑 둘이서 피나콜라다를 마시기 위해
구석진 카페에 앉았는데
안타깝게도 어둠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그 어둑한 두 그림자가 졸아들어
촉촉한 슬픔의 촉을 올려 오늘 내 가슴 속 어딘가
키 작은 제라늄 꽃나무로 돋아나고 있어요
당신은 낯선 곳에 가서도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꽃들의 하염없이 작은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는
착한 여인, 깊은 눈빛 아름다운 여인
나는 당신의 발가벗은 몸에 장미 꽃다발을 바쳐요
장미꽃으로 앙증맞은 당신의 가슴을
장미꽃으로 간지럼을 기다리는 당신의 배를
장미꽃으로 당신의 허벅지를 다리를
가볍게 가볍게 두드려요
나를 보는 당신은 가을하늘 새털구름, 셀로판지 같은
웃음을 던져주고
마리안느, 당신의 깊은 눈동자 속에 장미꽃
장미꽃 한 잎의 꽃잎에 작은 물방울
물방울에 갇히고 마는 오토바이 한 대
지금 내 귓속에는 작은 새처럼
당신이 날아오는 안개 낀 새벽
오토바이의 길고 긴 폭음이 눈부신 금빛으로 붕붕거려요
이제 턱 밑에서부터 지퍼를 내가 열게요
신비로운 당신의 가슴골과
비밀스레 떨고 있는 아랫배까지 열어갈게요
검정 가죽슈트를 한숨에 열어서 당신의 흰 알맹이를
꺼낼 거여요
그리하여 내 입에 머금은 피나콜라다를
당신에게 부어주고 싶어요, 마리안느
예쁜 제라늄 화분에 물을 주듯이
성당의 성수대에 성수를 흘려 넣듯이
—시집『입술』(시학, 2009)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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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폭음
<작은 새 This little bird> 노래를 부른 영국 가수 겸 배우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청춘 시절과 마약으로 찌든 중년 시절, 그리고 영락한 만년의 슬픈 인생 유전. 그녀는 잘 나가던 청춘시절 프랑스의 인기 스타 알랭 들롱과 함께 영화에도 출연한 바 있습니다. 그 영화는 1968년 잭 카디프 감독의 영화 <Girl On A Motorcycle>, 우리나라에선 〈그대 품에 다시 한번〉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였습니다.
원작은 프랑스 작가 망디아르그의 소설 <오토바이 La Motocyclette>며, 시나리오도 망디아르그가 직접 맡아서 각색했습니다.
꿈을 꾸다 일어난 레베카(마리안느 페이스풀)는 오월의 조금 쌀쌀한 새벽에 잠자고 있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남편 레이몽 곁에서 빠져나와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 옷은 위아래가 하나로 된 검정 콤비네이션이고 흰 모피가 안에 대어져 있습니다. 다소 투명해서 삼각형으로 난 거웃이 비쳐 보이는 나일론 팬티 이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기 몸을 그녀는 콤비네이션 안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지퍼 손잡이를 밑에서부터 위로 끌어올려 밀봉합니다. ‘내 몸은 양탄자를 덧댄 케이스 속의 바이올린 같아.’ 두건을 쓰고 검정 가죽장갑을 낀 레베카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차고에서 꺼내어 고속도로를 향해 나섭니다. 가까운 국경을 넘어서면서 그녀는 아우토반을 전력 질주합니다. 애인 다니엘(알랭 들롱)이 있는 곳 하이델베르크를 향해서 요란한 폭음을 울리며 질주하는 오토바이.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레베카의 머릿속에는 끊임없는 환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그때그때 나타나는 환상들은 그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 혹은 어느 길가 벤치에 누워 있을 때 또는 숲의 녹음 속에 파묻혔을 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사물들에서 나옵니다. 그녀가 본 사물 하나하나는 그녀 의식의 상태와 운명의 흔들림을 의미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리하여 시야에 들어온 사물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나고, 새로운 환상이 그녀의 내면을 뒤흔듭니다. 소설에선 이러한 기법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수법이라고 부릅니다. 영화에서는 현재의 모든 진행 장면은 컬러로, 그리고 레베카 마음 속 이미지의 환상 또는 불연속적인 흐름의 과거 일들은 모두 단색(모노크롬)으로 구분하여 표현돼 있습니다. 영화 관객들이 약간 난해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현실과 내면의 의식에 대한 구분을 하지 못함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후 다니엘은 원탁 위에서 장미꽃을 가져오더니 그것을 레베카의 발 사이와 두 다리가 갈라지는 곳에 배치했다. 그리고 몇 개를 모아 다발로 만들어 그 꽃다발을 가지고 연인의 나체를 가볍게 때리기 시작했다. 장미 가시에 허벅지와 옆구리와 여윈 배의 피부가 긁혀 상처가 났다. 꽃잎들이 침대 위로 비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그 구타는, 또는 애무는 계속 밑으로 내려가 발에도 상처를 입혀 갔다.
상처에서 약간씩 피가 배어나오고 최소한 장미 향기만큼 땀 냄새도 풍기는 그녀를, 그는 이윽고 풀어주었다. 그가 풀어주는 동안,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도 장미 가시의 상처가 아마도 오히려 그녀의 몸보다 더 많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미 꽃잎들이 흩어져 있는 침대 위에서 다니엘은 입고 있는 가운을 벗지도 않은 채 앞자락을 헤치고, 포도나무 햇가지 같은 것을 내보이며, 그녀가 예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정도의 난폭함을 가지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망디아르그,「오토바이」부분, 김붕구 번역, 현대세계문학전집 2 (신구문화사, 1968)
다니엘이 장미 꽃다발로 레베카의 나체를 때려 피가 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사디즘이지만 그러나 레베카에겐 정신적 구원의 추구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작가 망디아르그는 시, 평론, 소설 등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소설에 있어서 쾌락에 대한 세부 묘사는 약간 퇴폐적일 정도로 탐미주의 성격이 강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사랑, 죽음 등 그가 표현하는 세계는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정교하게 얽혀 탐미적인 활기가 넘칩니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잭 카디프는 원래 촬영기사로 출발하였기에 감독인 자신이 카메라를 잡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 못지않은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미는 1960년대 말 정말 독보적이었다 하겠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신혼 삼 개월째의 여주인공 레베카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나 내가 쓴 시는 그녀의 애인 다니엘의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것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여주인공이 꽃과 나무들 이름을 잘 알아서 식물과 대화를 한다는 부분이나 달콤한 우윳빛의 칵테일 피나콜라다를 입에 머금는다든지 하는 건 단지 허구의 창작임을 밝혀둡니다. 현실의 왜곡을 통한 시적 변형을 ‘변용變容(데포르마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당신의 깊은 눈동자 속에 장미꽃/ 장미꽃 한 잎의 꽃잎에 작은 물방울/ 물방울에 갇히고 마는 오토바이 한 대/ 지금 내 귓속에는 작은 새처럼/ 당신이 날아오는 안개 낀 새벽/ 오토바이의 길고 긴 폭음이 눈부신 금빛으로…
눈동자 속의 장미꽃, 꽃잎 속의 물방울, 물방울 속의 오토바이, 그리고 눈부신 금빛의 폭음. 점층적인 강조로 나아가다 공감각의 이미지로 도달한 금빛 폭음은 마침내 터져 나오는 환희의 함성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는지요. 그리고 마지막 시행은 세속적인 사랑을 좀 더 차원 높은 종교적인 경지까지 끌어올려 정화淨化시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