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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6:12절) 더 풍성한 신앙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달 항아리가 하나씩 다 있었습니다. 대개 이런 항아리는 마시는 물을 보관한다든지, 간장 같은 것을 넣어 두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무덤을 발굴했는데, 그 안에서도 달 항아리가 나왔습니다. 이 달 항아리는 한 번에 만들지 못하고,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서 붙여야 하므로 만들기 어렵고, 만들다가 실패해서 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도예(陶藝)가 중에서 백자 달 항아리를 만드는 분들이 계신데, 이들은 아주 높은 경지에 오른 분들이고, 그 항아리도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초보(初步)자와 최고의 경지로 오른 사람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겨우 아장아장 걷는 정도이지만, 어른 중에서도 운동선수들은 엄청난 속도로 뛰기도 하고, 공을 발로 차기도 합니다.
우리가 특히 유럽 프로축구 선수들이 공을 패스하거나, 골인시키는 것을 보면, 축구라기보다는 예술(藝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기초(基礎)교본을 겨우 따라 하는 정도에 불과 하지만, 세계적인 연주(演奏)자가 되면, 쇼팽이라든지, 유명한 음악가의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때 사람들은 감동의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우리 신앙에도 이런 경지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는 기독교의 교리(敎理)를 배우고, 지식이나 겨우 배우는 어린아이의 수준이 있다면, 나중에는 성경 안을 완전히 헤집고 다니면서 춤을 추는 어른의 경지 내지는 예술의 경지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처음에는 보행기를 타지만, 조금만 더 크면, 보행기 안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기에 갇히기보다는 서서 걸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크면, 씽씽 카를 발로 밀고타고 다니게 됩니다.
어떤 어린이는 유치원이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데, 엄청나게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면, 자동차를 운전하고, 나중에는 비행기 조종사나 자동차 경기에 나가는 사람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유대인 선생들이 진리(眞理)에 대하여 토론(討論)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어린아이와 전문가가 토론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함정(陷穽)에 빠트리기 위하여“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은지, 틀린지”질문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시고, 돈을 가져오라 하시고서는“이 얼굴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가이사의 것”이라고 하니까“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마22:15-22).
또 어떤 사두개인이“부활이 없다”고 믿고, 유대 율법에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제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試驗)합니다.
즉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큰 형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으니까 모두 그 형수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부인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하시면서“부활할 때에는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부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사람들이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말씀,“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마22:23-33).
유대인들은 밖에 나갔다 오면, 손을 씻어야 하고, 모든 것의 십일조(十一條)를 바쳐야 하고,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려고, 엄청 애를 썼지만, 예수님은“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마음대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성숙(成熟)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Ⅰ.하나님의 말씀의 초보
본문에서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갑자기“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5:1l-12절)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우리가 성경에서 멜기세덱에 대하여 알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입니다(창14:18).
그때 멜기세덱은 살렘 왕(王)이고, 하나님의 제사장인데,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 분의 일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멜기세덱에 대하여 받은 인상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 한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 번도 듣지도 못했던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역시 달랐습니다. 다윗은 당시의 제사장과는 다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그리스도를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110:4절)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한 멜기세덱이지만, 다윗은 멜기세덱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大祭司長)의 직분을 행하실 것을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豫言)하기를 또 다른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이 두 분 계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예수님의 생생한 육성(肉聲)을 자기 입으로 토해내었습니다.
즉 시22:1절)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였고, 행13:35절)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의 살이 썩지 않고, 부활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시24:7절)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는 8절)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聖經)을 보는 눈과 다윗이 성경을 보는 눈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5:12절)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여기서 “때가 오래되었으므로”라는 것은 히브리서를 읽는 사람들이 처음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 믿었고, 능히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이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제사장 출신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기 같은 단단한 음식을 먹어서 소화를 시킬 수 없으므로 젖 정도 밖에 먹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같은 수준(水準)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 수준이어서 아주 유치한 예화(例話)라든지, 세상 축복(祝福)이야기라든지, 듣기 좋은 성공(成功)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하지만, 단단한 음식은 먹지도 못하고,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좋은 교회는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젖을 주고, 설탕물을 주니까 맛이 있어서 종교 생활하려고 그리로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5:13절)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젖을 먹는 자는 모두 어린아이니, 단단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난(苦難)을 당해서도 이기고,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危機)에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며,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겨우 아프지 않고, 어려움 당하지 않고, 현상만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요즘 코로나 시대 어려움이 닥치면, 불신자들, 즉 정부와 방역당국의 말에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오히려 걸려듭니다.
5:14절)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성경에서 재미가 있고, 자기에게 유익한 말씀만 믿고, 어린아이 수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과 싸워서 많은 연단(鍊丹)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부딪치면, 패배(敗北)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시련(試鍊)들로 인해 연단(鍊丹)을 받게 되고, 담대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결국 연단(鍊丹)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고난(苦難)이 오고, 시련(試鍊)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각(知覺)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적용하며, 수시로 하나님의 영감(靈感)이 임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검(劍)이기 때문에 우리 손에 쥐어지기만 하면,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 누구도 이런 칼을 가진 사람은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손에 잡히는 순간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 들어가서 영(靈)과 혼(魂)과 관절(關節)과 골수(骨髓)를 쪼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환난(患難)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난(患難)이 오면, 이 검(劍)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機會)가 되기 때문입니다.
Ⅱ.실패한 신앙
히브리서는 우리에게“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하면서 그 예를 들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6:1-3절)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 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 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우리는 대개 기초(基礎)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즉 운동(運動)도, 음악(淫樂)도, 공부(工夫)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초(基礎)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기초(基礎)에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훌륭한 전문가(專門家)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초(基礎)를 튼튼하게 닦은 후에는 실전(實戰)에서 더 고난(苦難)도의 훈련(訓練)을 받아야 좋은 선수가 되고, 좋은 연주(演奏)자가 되고, 좋은 학자(學者)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죽은 행실의 회개도 중요한 것 같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중요한 것 같고, 세례나, 안수나, 죽은 자의 부활이나, 영원한 심판이 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회개(悔改)를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말고, 세례나 안수도 자꾸 할 필요가 없고, 죽은 자에 대해서도 자꾸 무덤을 옮기거나,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현실에 부딪혀서 말씀을 가지고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現實)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 중에는 신앙에 완전히 실패(失敗)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4-6절)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은혜를 받았고, 회개(悔改)의 눈물도 펑펑 흘리고, 성령의 은사(恩師)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보고, 내세도 맛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욕망(慾望)과 야망(野望)과 정욕(情慾)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상습적(常習的)인 성폭력(暴力)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야망(野望)을 실현하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유명해졌지만, 돈이 우상(偶像)이 되어 포기하지 못하고, 명예(名譽)를 버리지 못했을 때 그런 사람들은 다시 회개(悔改)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나쁜 길을 걸었고, 많은 사람을 구덩이에 빠지게 했으며, 그의 양심(良心)은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종으로 영혼(靈魂)을 사랑하지 않고, 돈과 명예만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罪)인 줄 자신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계속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고,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말은 나오지만,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마7:21절)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신앙의 종교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Ⅲ.성숙한 신앙이 되기 위하여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수십 배,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즉 프로 배구선수가 되어서 펄펄 날면서 스파이크를 하고,
영국의 프로 축구팀에 들어가서 초스피드로 달려서 골인을 시키는 유명한 선수가 되고,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연주회(演奏會)를 하려고 하면, 다른 모든 일을 포기하고, 자기가 목표(目標)삼았던 것을 죽으라고 연습(鍊習)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인(達人)이 되어야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저자(著者)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달인(達人)이 되었던지,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성경 말씀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흔히 알기 어려운 욥기라든지, 잠언같은 데서 많이 인용(引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감옥(監獄)에 있으면서 성경(聖經)을 수도 없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 마음이 땅이라고 한다면, 이 땅을 단단하게 그냥 두면 안 되고, 비를 흡수하여 부드럽게 하고, 수시로 갈아엎어서 좋은 땅 옥토(沃土)로 만들어서 채소를 길러내어야 합니다.
6:7-8절)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 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땅이 비를 흡수하면, 아주 부드러운 습기 있는 흙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그대로 두면, 잡초(雜草)가 가득 생기든지, 그야말로 가시나 엉겅퀴들만 자라서 아무 채소도 거둘 수 없습니다.
식물(植物)의 놀라운 것은 습도(濕度)와 온도(溫度)가 잘 맞으면, 우후죽순처럼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농부(農夫)들이 비가 오고 난 후에 흙을 뒤집고, 씨를 뿌리게 되면, 채소가 잘 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듣고, 채우면, 폭발적인 심령부흥(心靈復興)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밭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를 흡수(吸收)해서 땅(옥토)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돌(石)은 다 집어내고, 거기에 채소(菜蔬)를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갈아엎지 않고, 그냥 두고, 세상을 따라가면, 어느 순간에 불신앙(不信仰)의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하게 되는데, 그러면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는 것입니다.
6:11절)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우리에게는 풍성한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 마음을 갈아엎어서 농사(農事)를 짓고, 자기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는 풍성한 축복의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풍성한 소망(所望)은 자기 자신의 정욕(情慾)과 야망(野望)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慾望)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얼마나 아프고, 답답하겠습니까?
<쿼바디스〉에 보면, 베드로가 로마에 박해(迫害)가 온 것을 보고, 피하여 도망을 가는데, 환상(幻想)중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에게“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으니까“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스스로 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꾸만 현실과 부딪치면서 싸운다면, 이론(異論)으로 믿는 신앙과는 완전히 다른 신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자유자재로 하나님 말씀의 검(劍)을 휘두를 때, 우리에게는 풍성한 소망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장성(長成)한 사람이 되고, 예수님의 실력(實力)을 배우게 되고, 사탄(詐誕)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부지런히 말씀을 배우고, 이 세상과 싸워서 사탄(詐誕)을 이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단단한 양식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제 1회 모집(새신자 정착)
목적 : 균형잡힌 신앙과 아름다운 가정을 위해
기간 : 5월 1일부터(26주)
☐ 필수 과목(mentor / Counslihg)
그리스도인의 신앙 출발과 성숙
차 례
제1편 그리스도인과 기독교 이해
제1과 왜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가?
제2과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제3과 성경이란 무슨 책인가?
제4과 예배란 무엇인가?
제5과 죄 란 무엇인가?
제6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제7과 믿음이란 무엇인가?
제8과 거듭난 생활이란 무엇인가?
제2편 그리스도인과 기독교 교리 이해
제 9과 천국과 지옥
제10과 교회의 의미와 본질
제11과 율법과 은혜의 차이점
제12과 구원을 위한 순서
제13과 구원의 확신
제14과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제15과 성례전이란 무엇인가?
제16과 성화란 무엇인가?
제17과 최후의 심판과 믿는 자들의 영광
제3편 그리스도인과 성숙된 신앙생활
제18과 기도와 성경공부의 생활화
제19과 성도의 교제
제20과 그리스도인의 전도
제21과 그리스도인의 성령총만한 생활
제22과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제23과 성령의 은사발견과 봉사활동
제24과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인의 삶
제25과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제26과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가정
2-3명으로 구성된 각 예배 공동체 cell 리더 1명을 추천하여 거주지와 성명, 스마트폰(카톡)으로 신청하십시요
010-8772-0191으로 문의하면 자세히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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