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를 달라"…참다 참다 터진 여성들의 외침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IWD)이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정해진 이 날은 1977년 UN(국제연합)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세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됐다. 노동 환경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외쳤던 그때와 비교하면 여성의 지위는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성평등을 위한 과제는 남아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시작은 18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으로 방적기가 만들어지면서 섬유 산업이 세계적인 붐을 이뤘다. 1800년대 미국은 대규모 목화 농장을 만들고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큰 돈을 벌었다. 뉴욕에도 대규모 섬유 공장들이 자리잡았는데, 이 곳에서 일하는 흑인과 이민자, 여성들은 하루 12-14시간 넘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당시엔 성폭력, 성희롱 등도 서슴지 않게 벌어졌다고 한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참다 못해 들고 일어났다. 칼바람이 불던 1908년 3월 8일 일요일. 1만 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 맨하튼 남쪽의 로우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 모였다. 주로 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섬유 공장들이 있던 이 지역에서 행진을 하며 근로환경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했다. 이들은 이듬해 1909년 11월부터 1910년 2월에도 '뉴욕시 블라우스 노동자파업'을 진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도 2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몰렸다. 이들은 '메이드 인 뉴욕'을 달고 팔리는 옷들이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만들어 진다고 강조했다.
이듬해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 여성회의에서 독일 사회주의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17개국을 대표하는 100여명의 여성들이 참여해 기념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1911년 유럽 일부 국가에서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처음 열렸고, 점차 국제적인 운동으로 확대됐다.
1911년 3월 25일 뉴욕에서 발생한 화재로 여성 노동운동에 가속도가 붙었다. 뉴욕의 한 섬유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여성 노동자 145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였다. 비상구는 있었지만 노동자 관리를 이유로 대부분 잠겨있었고,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로 돼 있다는 게 알려졌다. 이 사고로 국제 사회에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유럽에서 먼저 여성 노동자를 위한 기념일 제정에 나섰다. 1911년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이 여성의 날을 지정했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 잇따라 기념일로 제정했다. 이후 1975년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를 진행했고, 1977년 유엔 총회에서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면서 전 세계적인 기념일이 됐다. 한국에선 1985년 부터 여성 대회가 열렸고, 2018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다.
현재 세계 여성의 날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기념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선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에서는 여성의 날에 공휴일을 적용하거나 여성 근로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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