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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
잠 23:20-25
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23:20-25 / 술이라면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과 고기라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말아라. 21) 술주정뱅이와 먹는 것을 탐내는 사람은 쪽박을 차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고 누더기를 걸치고 살 수밖에 없다. 22) 너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이르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늙으신 네 어머니를 우습게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 23) 진실을 사들여라. 절대로 팔아넘겨서는 안 된다. 지혜, 통찰력,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 24) 바르게 사는 자식을 보면 그 아비는 말할 수 없이 기쁠 것이요, 슬기롭게 사는 자식을 둔 아비는 한없이 흐뭇할 것이다. 25) 네 아비를 기쁘게 해드려라. 네 어미를 흐뭇하게 해드려라.
지혜자는 계속해서 사랑의 훈계를 합니다. 성도의 음주에 대해서,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도를 권합니다.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20-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경영할 수 없습니다. 방탕한 삶의 태도가 습관이 되면 가난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누구도 그런 사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는데 그것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 잠자거나 배가 불러서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탐식하며 게으른 자입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재산을 탕진함으로 “해어진 옷을 입을 것” 즉, 가난하게 됩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22-25)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십계명에 속하지만, 십계명 이전에 창조질서에 속한 것입니다. 즉 인간관계의 근본이며 시작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권위를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부모에 대한 태도가 가벼워집니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순종의 태도는 일생 동안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청종한다’는 것은 외적인 태도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며, ‘경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자가 모든 노력을 다해 얻어야 할 것이 진리입니다. 지혜, 훈계, 명철은 잠언에서 계속 강조되는 단어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헛된 것에 마음을 바치며 살아가는 자녀를 바라볼 때 부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녀는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줍니다. 재미있게도 성경은 ‘부모에 대한 순종’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놓았습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이 절대 팔지 말아야 될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자녀를 의인으로 묘사합니다(24).
적용: 자녀가 성인이 되어갈수록 부모는 쇠약해집니다. 어린 시절 당신을 위해 애태우며 말씀하셨던 부모님의 가르침은 무엇이 있었으며, 지금 당신은 그 가르침들을 경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에서 파견된 한 천사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의 눈에 맨 처음 아름답게 비친 것은 장미꽃이었습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밝은 아기의 미소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가지고 돌아가는 중에 또 다시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천국까지 가는 도중 장미꽃은 시들었고 아기의 미소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만은 영원히 변함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설 교 >
효도는 축복의 제일 원리입니다
잠 23:22-26 / 이종영 목사
< 복 받으려면 효도해야 합니다 >
우리가 생일을 맞으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나를 위해 파티를 열고, 나에게 생일선물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사실상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내 생일이 있게 하려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축하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일 때에는 오히려 부모님께 파티를 열어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이 우리가 태어날 때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때는 무신론자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우리는 부모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고놈! 아빠 엄마 쏙 빼 닮았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대학입시 칠 때에는 무뚝뚝한 아빠도 소리 없이 두 손을 모으고, 딸이 시집갈 때에는 쉰 살 넘어서 처음으로 눈물샘이 젖습니다. 표현 방법들은 다르고, 때로 잘못이 있어도 부모의 자식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된 존재가 되기를 원하면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고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꿈은 꾸지도 말아야 합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길이 열리는 법은 없고, 길이 열리는 것 같아도 그 길은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신의 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를 평가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복 받고 싶으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효도해 보십시오. 어느새 생각지 못한 곳에서 신비한 축복의 소식이 닥쳐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할 때 가장 신속하게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옛날에 왕이 한 지방을 방문했는데, 그 지방에 왕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한 노모가 있었습니다. 그 노모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한 효자가 노모를 업고 수십 리 길을 걸어서 왕의 행차를 보게 했습니다. 그때 왕은 노인을 업은 그 효자의 효성에 감복하여 후한 상을 내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불효자가 왕의 상을 노리고 원치 않는 노모를 업고 돌아오는 왕의 행차를 구경하는 척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에게도 후한 상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동네 관리들이 "그 자식은 평소에 불효자인데 상을 노리고 그렇게 흉내내는 것입니다. 상보다는 벌을 내리소서!"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상을 주니까 나중에 진짜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진짜 효도하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겠습니까? 십계명을 보면 사람에게 행하는 계명이 5번째 계명부터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엡 6:2). 그 말은 효도는 축복의 제일 원리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거꾸로 말하면 모든 불행의 원인은 부모 공경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복된 존재가 되려면 효도해야 합니다.
<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모님께 효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효도의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은 말합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효도의 기본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해드려도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커가면서 자기가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식과 상관없이 "부모의 말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잘 듣는 태도가 얼마나 지혜로운 태도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복이 없는 사람은 사오정입니다. 45세에 정년을 맞은 사람이 복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오정 시리즈에 나오는 들을 줄 모르는 사오정이 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사오정이 역사 시간에 자꾸 조니까 선생님이 야단쳤습니다. "사오정! 왜 그렇게 졸아!" "저 안 쫄았어요." "그럼 안중근 의사는 누가 죽였냐?" 그러자 사오정이 "제가 안 죽였어요." 하더랍니다. 속이 터졌지만 요새 함부로 때릴 수도 없어서 아버지 모시고 오라고 해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요새 사오정 군이 수업시간에 너무 조는데 집에 무슨 일 있나요? 안중근 의사를 누가 죽였냐고 하니까 자기가 안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오정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예! 걔가 요새 몸이 아파서 가끔 병원은 가지만, 절대 의사를 죽일 아이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잘 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고, 두 번째로 큰 축복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효도는 '잘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엄마에게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다니는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죽은 남편이 가해자로 몰려 이 가족은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헛간 일부를 빌려 가마니를 깔고, 백열등 한 개, 식탁과 책상을 겸한 사과 궤짝 한 개, 그리고 변변찮은 이불과 옷 몇 개를 가지고 세 가족이 함께 살았습니다.
이 엄마는 아침 여섯 시에 집을 나서서 빌딩 청소를 하고, 낮에는 학교 급식을 돕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고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니 집안 일은 자연히 초등학교 3학년 맏이 몫이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맏이가 엄마 말을 잘 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 엄마는 냄비에 콩을 잔뜩 안쳐 놓고 집을 나서면서 메모를 써 놓았습니다. "영호야. 냄비에 콩을 안쳐 놓았으니 이것을 조려서 오늘 저녁 반찬으로 해라. 콩이 물러지면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엄마가."
그날도 하루종일 일에 시달려 지친 어머니는 오늘은 꼭 죽겠다는 생각으로 수면제를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두 아이가 가마니 위에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잠들어 있었는데 맏이의 머리맡에 "엄마에게!"라고 쓰인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 오늘 엄마가 말해준 대로 콩이 물렁해졌을 때 간장을 부었는데 동생이 짜서 못 먹겠다고 투정해서 한 대 때렸더니 울다가 잠들어 버렸어요. 열심히 콩을 삶았는데,... 엄마. 용서해 주세요. 내일은 일 나가기 전에 저를 꼭 깨워서 콩 삶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엄마! 피곤하지요? 저희들 때문에 엄마가 고생하시는 것을 다 알아요. 꼭 건강하세요. 저 먼저 잘께요."
그 편지를 보고 어린것들이 엄마 말 잘 듣고 열심히 살려는 모습을 보고 수면제를 버리고, 맏이가 만든 콩자반을 눈물범벅이 된 채 먹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3년 전 한 잡지에 실렸던 글인데, 저는 지금 이 가정은 아주 다복한 가정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려고 하는 착한 자녀에게 반드시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2.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은 큰 효도입니다. 어떻게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난 3일간 말씀을 준비하면서 8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여행을 시켜 드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부모님을 업어드리는 것을 가장 큰 효도로 생각했습니다. 한자의 효(孝)자에는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습니다.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등에 업고 외출시켜 드리는 모습이 바로 효도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여행 시켜드리는 것도 필요하고, 놀러갈 때 같이 모시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용돈을 많이 드려야 합니다.
요새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 1순위로 꼽힌 것이 10만원 짜리 수표였다고 합니다. 백 마디의 말만 하지 말고 수표 1장이라도 더 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3) 밝은 웃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서 드리되 드릴 것이 별로 없으면 밝은 미소라도 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살기 힘드니까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에게는 밝은 웃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웃음을 드리면 신기하게 우리 자신에게도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웃음은 부모님에게 기쁨을 주고, 나 자신에게는 성공과 행복과 건강을 주는 귀한 축복의 도구입니다.
4) 자주 찾아 뵙고 전화해야 합니다.
가끔 할머니가 손자에게 잘해주면 자녀 버릇 나빠진다고 할머니와 떼어놓으려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버릇은 고쳐졌는지 몰라도 사람은 버려집니다. 연로하신 분들은 많이 외로워하시기 때문에 만남의 기회를 많이 드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고, 두 번째로 훌륭한 사람은 자주 부모님을 찾아 뵙는 사람이며, 세 번째로 훌륭한 사람은 자주 전화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왜 연로하신 분들이 치매에 걸립니까? 자식들이 너무 찾아와 주지 않고 자식들과의 대화가 너무 없으니까 스트레스 병, 홧병, 외로움 병으로 치매에 걸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식을 축복하시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부모님과의 대화를 하기 싫어하면 축복도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축복 받기를 원하면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고 말동무가 되어 드려야 합니다.
5) 형제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야 합니다.
돈이 많아서 아무리 부모님께 잘해드려도 형제끼리 싸우면 부모님의 속이 상합니다. 명절에 모여서 부모님 앞에서 "나는 조기 사 왔는데 너는 갈치 사왔냐?"고 싸우고, 나는 이만큼 드리는데 너는 왜 그만큼 드리느냐고 싸우면 큰 불효입니다. 부모님 칠순 잔치를 하면서 돈 문제로 자식들이 싸우니까 잔치 후에 부모님이 병들어 돌아가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관련이 있듯이 부모님 사랑도 형제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6)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모님께 잘 하려고 해도 부모님이 진짜 원하는 것이 따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문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 그 원하는 것을 채워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소문난 효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원님이 그 효자에게 상을 내리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효자가 오자 원님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마을의 유명한 효자라고 하던데 부모님 형편이 어떤가?" 효자가 대답했습니다. "예. 어머님은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지금 혼자 계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데, 혼자 사시니까 불편이 없이 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아버님을 모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효자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원님이 후한 상을 내리지는 않고 호통을 쳤습니다. "아주, 고얀 놈이구나! 여봐라! 이 놈을 당장 형틀에 묶고 곤장 세 대를 쳐라. 저는 마누라와 살면서 아버지가 15년 동안 혼자 사는데도 아버지 장가도 보내주지 않는 그런 고얀 놈이 무슨 효자란 말이냐?"
결국 그 효자는 곤장 세 대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그 아버지가 "이번에는 원님이 제대로 오셨구나!"고 하면서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자식은 자식이 원하는 방법으로 효도를 했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 원하는 것을 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7) 자녀가 건강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나쁜 음식에 손을 대는 것을 보면 부모들은 속이 상합니다. 자녀가 건강을 잃으면 부모에게 큰 불효가 되고,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가장 불효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는 것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8) 바르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큰 효도는 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운 것이니라." 부모님은 자녀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부모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자녀가 바르고 지혜로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최대의 효도이고, 특히 믿는 부모에게는 자녀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8가지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부모님을 슬프게 하면 우리의 삶에도 기쁨도 없고, 축복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모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 속에서 나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부모님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펼치신 길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이 말씀은 살면서 가끔 고통스런 환경도 펼쳐져도 하나님이 그 길을 펼쳐주셨다고 생각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가끔 속상한 일도 생길 것입니다. 매일 부모님께 불평하는 형에게는 조바심을 내며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지만 항상 이해하는 자신에게는 편하게 생각하시며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조치에 대해 변함없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만 배의 축복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허물이 보이면 눈을 감으십시오. 아비의 허물을 덮은 셈과 야벳은 자손 만대에 복을 받았지만 아비의 허물을 들춰내고 비웃었던 함은 자손 만대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리고, 부모님의 잘못을 용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삶은 용서하는 삶입니다. 용서만큼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치유하는 것을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는 얽힌 매듭을 푸는 가장 위대한 축복의 도구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부모님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모든 섭섭한 감정을 털고 부모님을 용서하고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변함없이 드리는 모습을 무엇보다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경 신명기 27장 16절에는 "부모를 경홀이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30장 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바다와 같은 사랑을 받고도 조그만 일로 부모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고 섭섭해하면 반드시 저주받게 될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가끔 "우리 나라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효자가 많다"고 말합니다. 명절 때가 되면 성묘한다고 교통이 막히고, 몇십만 원을 들여서 제사를 차립니다. 어떤 분은 1년에 10번까지 제사를 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굉장한 효자입니다. 그처럼 돌아가신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하는 것보다 살아 계신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곽선희 목사님 얘기입니다. 1950년 가을에 아버지가 총살되는 모습을 멀리 산에서 지켜보았는데, 총소리가 들리고 아버지와 함께 세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해가 진 후,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 보니 두 사람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갑자기 주검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놈아! 살아야 효자다! 얼른 이 자리를 피해라. 들키면 죽는다!" 그 음성을 듣고 산으로 다시 도망가서 얼마를 더 지내다가 9.28 수복 후에야 산에서 내려와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부모는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죽어서까지 자식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모 생각에 자식은 항상 철이 들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는 철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어떻게 효도할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부모님께 효도한 사람들이 큰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효자가 잘 되는 법은 없고, 효도한 사람이 못 되는 법도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면 우리 자녀도 우리에게 두 배로 효도하고, 우리가 부모님께 불효하면 우리 자녀도 우리에게 두 배로 불효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우리가 효도하면 반드시 축복 받습니다. 그런 축복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참효도
잠언 23:22~26 / 김유영 목사
독일 속담에는 "한 아버지 열 자녀 기를 수 있어도 열 아들은 한 아버지 모시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권효가 중에는 ’소가아파 누우며는 소침쟁이 찾아가나 /늙은부모 병들어도 예사로이 생각하네 / 열아들을 기른부모 하나같이 길렀건만/ 열형제 한부모를 어이하여 못섬기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십계명중 전반부 4계명 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는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사람에 대한 계명중 가장 먼저 복이 약속된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습니다.(출20:12) 장수의 복이 보장된 계명입니다. 부모 속 썩이면 장수 못한다.
그러기에 운동해서 건강을 얻어 오래 살려고 하지 마시고 효도하여 하나님이 보장하신 장수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독교는 효행을 모든 도적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고 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부모에게 효도할 점이 없는 자녀는 괴물이지 인간이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효자, 효녀, 효부들이 땅에서 잘 되고, 형통하며 복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부모에게 효도하는데 구원받은 성도는 갑절로 효도해야 합니다.
성도의 참 효도는?
1. 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3절에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의 순종은 신본주의적 효도관입니다.
예수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한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불신부모가 “애들아 내가 죽은 다음에 예수 믿어라”한다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잇는 첫 계명이니 라고 했는데 히브리말로 공경은 ‘카베드’라고 하는데 우리 몸에 간장을 ‘카베드’라고 합니다.
몸에서 가장 무겁고 귀중한 장기가 간장이라고 합니다. 이렇듯이 부모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최고로 소중히 여기고 받들어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정성을 다하여 최고로 여기는 공경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 헷셀 포드목사가 그리운 어머니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나의 어머니는 훌륭한 가재도구도 없었고, 사회의
명성도 없었지만, 놀라운 은혜의 도구를 가지고 계셨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가장 좋은 친구 예수님을 모시고 사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가지고 게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넷째, 항상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다섯째, 어머니는 사명을 갖고 항상 희망을 잃지 않고 사셨습니다.
2.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늙어갈수록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걱정 끼쳐 드리지 말고 평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것은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가족끼리 형제간에 화목한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은 건강해야 부모님에게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병들고 못살겠다고 하고 , 죽겠다고 하거나, 또 부모보다 먼저 죽어 근심이 되는 것도 불효입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 또한 효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부모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해드렸는가? 걱정과 근심을 끼쳐 드리지 않았는가?
오늘부터 진정 회개하고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하여 드리십시오. 내가 좋아 하는 것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으로 기쁘게 하려말고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 하고 좋아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으로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삭과 같이 순종하는 아들, 요셉과 같이 아버지 야곱을 기쁘게 하는 아들, 룻과 같이 어머니의 신앙따라 기쁘게 하는 며느리요, 믿음의 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살아 계셨을 때 효도해야 합니다.
송강 정철은 이런 시조를 남겼습니다. .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 하여도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이가 하노라.”
유교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많은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모님
살아계셨을 때에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 계셨을 때는 좋은 음식 해 드리지 못하더니 돌아가시면 제사상에 좋은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합니다. 그러면 차려놓은 음식을 혼령이 와서 먹고 간다고 합니다.
먹고 간다고 확신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여서라도 억지라도 먹고 가는 것처럼 여기고
믿고 위안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살아계셨을 때에 효도해야 합니다. 살아 계셨을 때나 효자지 죽고 난 다음에는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음식은 가족들이 먹을 것을 준비한 후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고인께서 생전에 부탁하신 말씀을 길이 생각하며 형제, 자매간에 우애하고 있는가를 반성하며 진정 고인들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가?
기도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식보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계셨을 때 순종하고 봉양을 잘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평일 장로님의 효도 10계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신앙을 갖도록 해드려라. : 신앙 생활을 잘하는 부모님에게는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효도요 , 만약 부모님께서 믿지 않으신다면 주님께 인도하여 예수 믿고 천국가게 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2)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드려라 3)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4)궁금증을 풀어드려라 5) 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정기적인 용돈을 드려라 .
6)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려라 7) 외모를 청결하고 아름답고 꾸며 드려라
8) 일자리를 찾아 드려라. 9)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려라. 10)등을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자주 깍아 드려라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주안에서 부모 공경 잘하면 잘되고, 장수하고, 형통하여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거역하고,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불효하면, 큰 벌을 받습니다.
노아의 자식 셈과 함과 야벳 중에 함이 포도주에 취해 잠들어 있는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그 형제 셈과 야벳에게 흉보았다. 셈과 야벳은 뒷 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 주었다. 이에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고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었다.
엘리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회막문에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고, 성전에 정결한 제사를 더럽혔고 결과적으로 저주를 받아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주 젊은 나이에 같은날 죽었고, 그 집안 가문에 노인이 없게 되었다. (삼상2:22~ ) 다 일찍 단명했다는 증거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권력과 명예에 눈 어두워 아버지를 배반하고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구테타를 일으켜 왕이 되려 했지만 일찍 죽었다.
말씀대로다. 부모공경 잘하면 잘되고, 장수하지만, 부모에게 불효하고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하면 저주를 받고, 단명하여 일찍 죽었습니다.
-잠언 30장 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였고,
-출애굽기21:15절에는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27:16에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부모님께 참 효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 불효했다면 진정 회개하고, 부모님께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항상 기쁘시게 해 드리고 살아 계셨을 때 공경할 줄 아는 참효도 성도가 되어 장수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글학자 양주동 선생이 작사, 이홍렬 작곡의 “어머니 마음”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다같이 한번 불러 봅시다. (합창)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니의 그의 사랑 가이없어라."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
청종하고 경히 여기지 말라
잠언 23:22 / 배 혁 목사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오늘날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SNS)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스마트폰에 연락처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홍보 및 인간관계 전문가로 활동하는 리웨이 원이 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 (Find the 7 Most Important Persons in Your Life) 라는 책이 있습니다. 리웨이 원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지만, 너무 많은 사람에게 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자신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일곱 부류의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관계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니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대신 자신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이에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친구나 직장 동료 등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좋을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만 내가 선택해서 관계를 맺을 분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맺는 관계입니다. 친구가 없다면 친구와의 관계가 없고, 직장생활을 다니지 않는다면 직장동료와의 관계, 결혼하지 않았다면 배우자와의 관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는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선택해야 할 관계가 아니라, 주어진 관계를 제대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영향력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커서, 태어나면서부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면서 때로 부모님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여길 때도 있지만, 여전히 부모의 영향력은 살아계시든, 돌아가시든지 여전히 큽니다.
성경 말씀은 이러한 부모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청종하고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했을 때에 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부모님을 어떤 존재로 자녀에게 주셨으며,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어떻게 대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부모님을 당신의 대리자로 자녀들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아비를 소개할 때에, 너를 낳은 아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해산하며 직접 낳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낳아서 생명을 이 땅에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에 생명을 주실 때에 부모님을 통해서 있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통해서 사랑으로 양육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자신이 낳은 자녀를 이웃 사람대하듯이 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같이 여기며, 어떨 때는 자기의 생명보다 더 아끼며 사랑하게 됩니다.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님을 통해서 흘러가도록 부모님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자녀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은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에게 청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가르침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의 말씀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듣고 순종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부모의 말씀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을 요청하신 것은, 바로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청종해야 할 부모의 말씀은 어디에서 오냐하면, 바로 하나님에게서 오도록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6-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열심히 일하셔서 번돈으로 자녀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에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부모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것은 세상적인 지혜나 부모의 생각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단순히 아이들의 육신적인 성장과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도록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자녀에게 권위자의 모습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교사나, 목회자가 그러한 일들을 하도록 맡기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가정에서 부모님들을 통해서 가르쳐지도록 하나님은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부모는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시는 분으로 두셨기에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는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녀입니다.
보통 자녀들이 부모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때로 형제들끼리 부모님의 사랑을 시기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자식인데 왜 나는 차별하냐” 며 불평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이 자녀들에게 전달되어지고 실천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장성하게 되면, 부모님들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부모에게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기는 좋아하면서, 부모의 교훈과 말씀은 받기를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녀입니다. 부모님께 자신의 문제를 의논하고, 부모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녀가 하나님께 복받을 자녀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의 말씀을 청종하여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백세때 낳은 늦둥이 아들입니다. 늦둥이를 낳으신 부모님들을 보면, 그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에 다니던 교회에서 늦둥이를 본 40대의 집사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막둥이가 어머니와 대학생 형들에게 끔찍한 사랑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백세때에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았을지는 보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그런데 이삭에게 있어서 아버지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어느날 자기에게 오시더니 하나님께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가자며 한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생긴 일입니다.
아버지가 자을 데리고서 삼일길 걸리는 먼 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같이 같던 종들은 산 밑에 있으라고 하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짊어지고 산에 오르게 합니다. 이삭은 제사를 드리러 가던 도중에 이상한것이 있어서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어디 있나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뜻 모를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제단을 쌓은 다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를 원하는 제물은 너다.” “하나님께서 너를 제물로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이 말씀은 아들 이삭이 듣기에 끔찍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 동안 그토록 자신을 사랑해주셨던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니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명령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욱 이해가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제사드리고자 결단했음을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이삭은 잘 알았습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을 청종합니다. 단순히 아버지의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제단 위에 올려진 장작위에 눕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사지를 묶습니다.
이러한 일은 이삭이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에 이삭은 아브라함이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었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어깨에 매고 산을 오를 정도로 왕성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삭의 나이를 25-37세 사이로 추정됩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10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이삭이 원한다면 아버지로부터 쉽게 도망할 수도 있었고, 도리어 아버지를 대적해서 아버지를 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스스로 그 제단에 올랐습니다.
이삭의 순종은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청종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보셨지만, 또한 이삭이 하나님과 아버지의 말씀을 경외하며 청종하는 것도 보셨던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청종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가정안에서 주된 말의 근원은 부모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에 부모님께 의견을 구하십시오. 그분들로 하여금 말씀하도록 자녀들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부모님으로 말씀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경히 여기지 않는 자녀입니다.
자녀가 어릴 때에, 곧 부모님들이 젊었을 때에, 부모님들은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모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그분들의 존재는 아주 중요하고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이 그렇게 대단한 분은 아니시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저는 아버지와 자주 팔씨름을 하곤했습니다. 어렸을 때에 아버지는 저에게 너무 강한 상대였습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내가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수퍼맨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때 어느날 아버지와 팔씨름을 하는데 제가 아버지를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다지 기쁘지 않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부모님께서 저를 이길 만한 힘이 있으셔서, 그리고 저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이라는 자체로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 중요한 분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부모가 늙으셨을 때에 자녀들에게 경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에 자녀의 삶까지 책임지던 부모님께서 연세가 드시면, 자신의 몸 조차도 가누기 힘들어 하실 정도로 연약해 지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연세드신분들이 아무 쓸데 없다고 경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님일 수도록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경히 여기다라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 무시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가장 어리석을 때에 자녀들을 경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우리 아이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속에서, 잘 가르치려고 애쓰셨습니다. 자녀가 힘이 없다고 자녀를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자녀를 도와 주고, 더욱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자녀가 약하고 병들면 부모님의 사랑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데 때로 자녀들은 부모님이 연노하시면 짐된 존재로 여기기 쉽습니다. 스마트폰의 기능을 가르쳐 드려도 자꾸 잊어버리고 다시 묻는 부모에게 타박을 주기 십상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도와 줄 생각은 안하고, 그렇게 하다가 다치면 큰일난다고 가만히 계시라고 타박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이 늙으셔도 자녀에게 만큼은 경히 여김을 받지 말아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을 중요하게 여기며 공경하기를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비록 연로하신 부모님은 과거처럼 자녀를 돕고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수 있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그 자녀를 하나님이 부모님을 대신해서 복주시고 잘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잘 공양하고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후원을 받는 복된 일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신명기 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하나님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서로가 택할 수 없는 관계로 우리에게 설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반대로 부모와의 관계를 잘 이루지 못하면 그것이 화가 됩니다.
마태복음 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하셨습니다.
부모는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대리자와도 같으신 분들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통해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부모도 자녀들이 자신을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의 통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대로 자녀를 양육하는 역할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관계
잠 23장 22~25절, 골 3:18-21 / 이정익 목사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다음은 가족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제시한 정의입니다.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었습니다. 신명기에 나타난 가정신학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하나님 다음은 가정이고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이 가정을 말씀하고 가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 가족, 고향, 고국은 같은 정서가 머문 곳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이 똑같이 다가오는 대상들입니다. 가족을 떠난 사람, 가정을 떠난 사람, 고국을 떠난 사람, 고향을 떠난 사람의 그리움의 심정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아주 불행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소중한 가족들이 서로 원수가 되는 시대이고 더 나아가 그토록 소중한 가정이 흩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느혜미야는 바벨론에서 고국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금식하며 기도를 합니다.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왕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내 고국이 불타고 폐허가 되고 내 백성이 탄식하고 있는데 내 어찌 배불리 먹고 잠을 잘 수 있겠느냐고 대답합니다. 그때 왕은 “내가 어떻게 도와주랴”고 묻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받은 느헤미야는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동안 적들에게 백성들의 자녀들과 아내들이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적들은 계속해서 위협하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는 백성들에게 한손에 망치를 들고 또 한손에 검을 들고 일하라고 독려합니다. 그리고 “너희는 너의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가정을 위하여 싸우라(4:14)고 하였고 “우리가 싸우면 하나님이 도우시리라”(20)고 격려하였습니다.
오늘은 가정이 해체되는 시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에 사명을 가지고 이 가정을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소중한 가족들이 갈등하고 흩어지는 이 세상을 건강하게 지탱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건강해야 병들어가는 이 세상을 건강한 세상으로 치유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데 네 구성원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5장-6장과 골 3장에 똑같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모든 가정에는 이 네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해야 가정이 건강해집니다.
부부
본문은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엡 5장-6장에서도 똑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부부는 서로 헌신하는 관계, 섬기는 관계, 사랑하는 관계, 뜻을 같이 하는 관계란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알아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결혼할 때 먼저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자는 뜻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종하라 사랑하라는 이 뜻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가정 건강한 부부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는 대부분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참 위험한 발상입니다. 조건은 어느 순간 사라지기 쉬운 것입니다. 돈, 잘생김, 멋있음 이것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그 조건이 상실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부부관계에 치명적으로 위험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자 하는 뜻을 세워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유사시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부부는 서로 헌신하는 관계이고 이해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완벽하게 마음이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이해하고 헌신하는 관계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는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내들이 남편을 이해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남자를 지으실 때 남자는 말 없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들이 말이 적다고 불평하는데 그것은 남자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남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자는 말이 많은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말을 많이 하여야 건강해 집니다. 여성이 말을 안 하면 병듭니다. 말 많은 남편 말없는 아내 이것은 잘못된 만남입니다. 말 없는 남편과 말 많은 아내가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둘이 함께 살면 적당히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오늘 이 시대는 부부를 사정없이 갈라놓는 풍조들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표적으로 3가지입니다. 하나는 재정문제입니다. 금전이 아무리 소중해도 부부관계 이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금전이 부부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 부부들은 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돈을 상실하게 되면 곧 바로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부부들은 돈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독신 풍조입니다. 오늘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독신생활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가정을 이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여성들도 여차하면 독신 삶을 선언하고 나가버립니다. 오늘은 이상한 풍조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무서운 풍조입니다.
세 번째는 황혼이혼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4년 미만 결혼자들의 이혼율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20년차 이상 된 황혼 이혼이 4년차 이혼률을 추월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모두 3만 건이었는데 전체 이혼건수에 26.4%를 황혼 이혼이 차지하였습니다. 결혼 30년차 된 부부도 지난해 8.8% 8,600건으로 작년보다 2.4배 증가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왜 이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을까요. 그것도 재정문제 때문입니다. 남편의 월급통장을 아내가 관리하다가 남편이 퇴직한 후 연금과 퇴직금을 들켜 쥐고 용도 폐기된 남편을 내 보내는 것입니다. 최신 정보에 의하면 지금 많은 아내들이 남편 퇴직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스갯소리로 이사할 때 조심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이사 갈 때 강아지를 꼭 안고 있으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아내는 절대로 강아지는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은 장롱 속에 들어가 있으라고 합니다. 아내는 절대로 장롱은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남편이 장롱을 차에 싣자 장롱 속에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제 가는구나 하고 안심했는데 얼마 후 차가 멈추어 도착했나 싶어 장롱 문을 열고 나와 보니까 헌가구점 앞이더라고 합니다. 오늘은 남편들에게 위기의 시대입니다.
오늘 남편들이 유념할 말이 있습니다. 오늘 아내들이 모이면 옛날에는 시어머니 이야기가 단골 메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 이야기가 주류라고 합니다. 그중 남편들이 알아야 할 대화 내용이 있습니다. 퇴직한 남편을 집에 두고 오면 근심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 혼자 보내면 걱정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수 덩어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재정문제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물질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매사를 물질로 기준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재정 능력을 상실하면 이런 위기가 옵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먼저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자 하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삶에는 분명하고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어떤 풍조가 와서 그 좋던 조건들이 다 상실되어도 부부의 관계가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그 말씀은 부부는 서로 봉사하는 관계이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고 서로 헌신하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이 숭고한 관계에 조건이 앞선다는 것은 모독입니다. 가정마다 부부가 건실해야 가정이 든든해지고 신앙생활이 든든해지고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부모들아
본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낙심할까 하노라”(21)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자녀 양육이 힘든 시대이고 부모 노릇하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양육권을 부모에게 맡기셨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다 돌볼 시간이 없어서 부모들에게 양육권 맡기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부모들이 아 자녀들의 돌봄에 너무 소홀합니다. 양육은 돌봄인데 오늘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새벽이 일 나가고 아이들이 잠자는 밤늦게 돌아옵니다. 얼굴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중에 무지한 아버지들은 매일 술 마시고 돌아와 행패를 부리고 술주정을 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자라난 아이들은 나는 이다음에 자라서 술은 절대로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아이가 자라서 그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따른다는 일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영어로 Husband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라틴어 하우스 밴드(House band)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즉 하우스 밴드는 가족을 묶는 근이라는 뜻입니다. 가족 중 특히 아버지는 가족을 든든하게 묶는 끈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21세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테러입니까. 재해입니까. 지진이나 폭동이나 전쟁입니까. 아니면 핵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가정 파괴입니다. 가정 파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면 이 끈이 풀어지거나 느슨해지거나 파괴되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끈이 풀어져서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고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본문을 보면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20)고 말씀합니다. 엡 5장 6장에서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면 받는 복을 말씀하고 동시에 불효법도 제정하였습니다. 부모를 치는 자나 저주하는 자는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무섭게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무섭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미래에 나타날 극단의 풍조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을 보십시오. 오늘이 그때 입니다. 오늘 노부모들이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구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노부모를 학대하는 대상이 유감스럽게도 아들들이 53.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어느 딸이 늙은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구타하여 어머니가 견디다 못해 경찰에 고발하여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레위기 19장을 보면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는 경외하여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권입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할 때 그 삶이 가장 바른 생활입니다. 그 바른 생활실천에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생명권입니다. 모든 생명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권의 일부를 하나님은 부모들을 통해서 이루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식과정을 보십시오. 아이들을 아들과 딸을 구별하는 결정권은 아버지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잉태시킬 때 아버지가 X 염색체를 주면 딸이 태어나고 Y 염색체를 주면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엄마는 자녀의 성별을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자녀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때로 아버지들이 아내에게 딸만 낳았다고 구박하고 아들만 낳았다고 타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웃지 못 할 난센스이고 참으로 무지한 행동입니다. 자기가 씨앗을 뿌려놓고 불평하고 투덜대는 꼴입니다.
그렇게 자녀를 낳게 되면 엄마는 아이들을 자신의 몸을 깎아 양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공경 받아야 할 부모들이 수난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노부모들이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어느 골프장에서 앞 팀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어 알아보니 4형제가 내기 골프를 치는데 서로 너무 신중하게 치기 때문에 진행이 느렸다고 합니다. 그 날 내기는 돈이 아니고 지는 사람이 노부모를 모시기로 해서 그렇게 신중하게 치다 보니까 진행이 느렸다고 합니다. 신명기서는 하나님이 명령과 계명과 규율을 부여하신 성경입니다. 신명기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6, 27:16). 신명기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내 부모만 일컫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축소해석입니다. 신명기의 효개념은 내 부모도 네 부모도 모든 노인도 다 해당합니다. 구약성경에는 보상의 법칙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복입니다. 또 하나는 부모를 공경할 때 주어지는 복입니다. 그것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복입니다. 이 두 법칙을 더 적극적으로 다룬 법이 탈무드입니다. 탈무드에서는 유대인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하면 자식은 부모의 요구를 다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강조합니다. 만일 금화가 가득 차 있는 지갑을 바다에 던지라 하면 자식은 그 부모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좀 무리한 에이기는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부모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부모는 누구입니까. 있음만으로도 복된 존재가 부모입니다. 떠나신 후에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가를 알게 됩니다. 신경숙이 쓴 엄마를 부탁해 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들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려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엄마가 서울역에서 남편 손을 놓치는 바람에 실종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엄마는 집을 찾지 못하고 서울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전단지를 뿌리며 찾아다니느라 헤맵니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닐 엄마를 생각하면 눈앞에 캄캄합니다. 엄마를 잃은 자녀들은 처음으로 엄마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합니다. 9개월 동안 찾아 헤맸지만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그때 자녀들이 허탈감에 빠져서 절절히 느끼는 마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번만이라도 엄마의 얼굴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 소중함을 발견합니다. 이 이야기고 소중한 것을 잃고 나소 비로소 소중한 것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부모는 누구입니까. 부모는 생존하심 그 자체만으로도 복이고 은혜인 존재입니다. 여러분, 부모를 열심히 공경하고 사랑하고 자주 찾아가 보십시오. 임종을 눈앞에 둔 어느 할머니가 장례식을 위해 목사님께 두 가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내 유골을 백화점 명품관에 뿌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내 며느리 내 딸이 나를 매주 보러 올 것이 아니냐는 대답이었습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성경은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이유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이유이고 그것이 이 세상을 건강하게 치유하는 이유입니다.
효
잠 23장 22~26절 / 장경동 목사
사람은 사람을 곧잘 오해합니다. 사람은 많은 오해 속에서 산다는 것을 제가 살아가면서 느낍니다. 여름철 7,8월에 전기를 어느 한도 이상 쓰면, 전기료를 굉장히 많이 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나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운동 삼아 걸어서 올라가자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제가 그렇게 말해 놓고도, 그것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가끔, 가방을 서 너개씩 짊어지고 3층까지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너무 힘들어서 그냥 확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갑니다. 이때, 아무도 안보면 괜찮은데 교인들이 꼭 봅니다. 이것이 오해입니다.
또한, 목회자의 심정으로, 식당을 이용할 때 웬만하면 교인이 경영하는 식당을 팔아주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교인집이 아닌데도, 마음속에 꼭 전도하고 싶은 집이 있어, 가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이럴 때도 오해가 생길수가 있습니다.
연합집회를 끝내고 왔을 때, 거의 99%가 은혜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제가 강사이기도 하고,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설교도 잘했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을 좀 위축시켰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이런 것이 참 어렵습니다. 사람은 이같이 실수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아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말세가 되면 세상 사람은 자기만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말세가 되어도 남을 사랑할 줄 알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부모공경 즉, 효도에 대하여 과연 뭐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을까요? 과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말하는 효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이것을 통해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효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는 것입니다. 청종은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쫒음”을 뜻합니다. 효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잘 청종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까 고민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그것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아버지의 삶은 본받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가르침만큼은 따르십시오. 저희 아버지가 맨날 하신 말씀 ‘경동아, 너는 공부해서 애비처럼 이러고 살지 마라.’ 그래서 아버지의 삶은 본받을게 없어도 아버지의 가르침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훌륭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부모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잘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한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저는 이삭을 말하고 싶습니다. 신학자들은 추정하기를, 이삭이 번제로 드려질 때, 이삭의 나이가 17에서 20살 정도는 됬을거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그 한참 청소년 대표선수 같은 아들을 결박할 때에 결박할 수 있도록 순종해 주는 이삭, 그게 훌륭한 것입니다. 조금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 해도 반항하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까? 이삭은 신앙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너는 하나님이 보내준 아이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이야. 너는 하나님의 거야”라고 계속 가르침을 받은 것 입니다. 그리하여 그 신앙 교육 속에서 순종이 나왔습니다. 참된 신앙에는 하
나님 사랑과, 아버지 사랑과, 자식사랑과,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효는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젊고 능력이 있을 때는 꼼짝 못하고 잘하고 공경하다가,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늙으시고 힘이 없어지고 가진 것이 없어지면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나누어주고 푸대접 받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는 삶의 곤고함과 자식들에게서 느끼는 배신감 때문에 못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 어머니 모시면서 느낀 것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신 것처럼 내가 우리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병들고 힘없고 돈없고 그런 부모가 계시다면 우리 중문 교인들은 꼭 모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 효는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23: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다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한편, 신기한 것은 부모가 잘못 할때, 때로는 부모를 하나님이 징계하지 아니하고 자식을 징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예로, 함이 저주 받아야 되는데, 그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부모를 축복하고 싶을 때 하나님은 부모를 축복하지 아니하고 자식을 축복한다는 사실입니다.
네 번째, 효는 부모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부모에게 잘 해드리는 것입니다.
잠언 23:26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 할지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부모가 무엇을 즐거워 하는가를 알아서 즐겁게 해주라는 뜻 입니다.그냥 무턱대고 잘 해 주는게 아니고 아버지의 기쁨이 어디 있는가 어머니의 기쁨이 어디 있는가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훌륭할 수 있었던 것은 한나 같은 훌륭한 어머니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어머니가 중요한 이유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자식을 키우기 때문이요,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에게 아가페적 사랑으로 접근해 오기 때문입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남자가 삐져서 밥을 안 먹습니다. 이때 아내는 그냥 상을 내갑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돈을 줘서, 달래서 어떻게든 밥을 먹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어버이를 즐겁게하라
잠 23장 22~26절 / 엄기호 목사
5월의 신록이 깊어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계절의 여왕이요, 꿈과 희망의 계절이며, 또한 가정의 달이기도 한 이 5월에 우리는 그 동안 효도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부모님을 생각할 때 가슴이 저려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분들은 살아생전에 불효한 것, 마음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속썩여 드린 일만 생각이 날 것이고,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해도 이 세상의 생존경쟁 속에 바쁘게 사느라 제대로 효도하지 못하고, 또 삶 속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실패와 어려움 때문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걱정 끼쳐드린 것 등 잘 해드리지 못한 것만이 생각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다시 한번, 우리에게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려라’, ‘너희 어버이에게 효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어버이의 사랑, 어버이의 희생, 어버이의 정성과 헌신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을 낳아 키우시기 위해 눈물과 땀과 정성을 쏟으신 인자하고도 자상하신 어버이를 기억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부모님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적인 부모가 계십니다. 육신적으로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먹여주시고 교육시켜주신 부모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것은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적인 부모님이 계십니다. 작은 의미로는 영적으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시며 영의 양식을 먹여주시는 주의 종들을 말하고, 큰 의미로는 오늘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고 중생의 체험을 하고 영육간에 만족한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요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이 두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경하며 기쁘게 해드리고 즐겁게 해드리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리를 믿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거친 광야의 길을 지나 가나안 복지로 가게 하시는 중에 광야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두 돌비에 새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주신 계명은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도리는 하나님의 계명적 진리요, 피조물인 우리가 거역할 수도 없고 거역해서도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 중심생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손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과 부모님과 조상의 교훈을 다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원망과 불평을 일삼아, 마침내 광야에서 20세 이상은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때 사람으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 같이 부모를 즐겁게 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참한 운명에 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한 죄, 부모를 거역하고 불신하던 죄, 부모님을 업신여기고 훼방한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는 것만이 길과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며 부모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까요?
천륜이요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영리한 개나 황새와 같은 짐승도 부모의 은혜를 갚습니다. 황새나 까마귀는 어미가 늙어 활동을 못하면, 죽을 때까지 자기 둥지에 놓고, 먹이를 물어다가 바칠 뿐 아니라, 장소를 옮길 때는 날개에 업고 다닌다고 합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되기를 포기하는 망동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효는 모든 종교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교는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다’라며 그 중요성에 대해 일찍이 강조했습니다. 머리와 손톱, 발톱 등 모든 육체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기 때문에 육체를 해하지 않는 것이 효라고 하였고, 노부모를 모신 사람은 노부모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십리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돌아가신 뒤에는 삼 년 동안 묘를 지키면서 효를 실천했습니다. 불교도 유교못지 않게 효를 강조하고 있고,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되었다는 함무라비 법전에도, 부모를 구타한 자는 그 손을 잘라 버리고, 방탕한 자는 상속을 빼앗고, 재차 범죄한 자는 외국으로 추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효와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효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기독교의 효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해서 배척을 하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더 철저하게 효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야웨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본문 25절).
하지만 하나님은 불효하는 자에 대해서는 아주 강경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효를 아주 중요하게 언급하신 만큼 불효하는 자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비와 어미를 향하여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5),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신 27:16), “아비나 어미를 저주한 자의 피가 자기에게 돌아갈 것이다”(레 20:9).부모를 저주하고 훼방하는 것, 부모의 명예를 훼손하고 부모의 인격을 업신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께 불효하는 죄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형벌 또한 용서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자식이 되어야 한다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본문 24절)라고 했습니다.
레니 에로우스미스는 지혜로운 어머니를 성가신 어머니로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성가신 어머니다. 다른 애들은 사탕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나에게는 달걀과 토스트를 먹으라고 하셨다. 다른 애들은 컵케익과 콜라로 점심을 먹는데 나는 샌드위치와 당근 과자를 먹으라고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노는 곳과 사귀는 친구들에 관해서도 말이 많으셨다. 선생님께 자주 가시고 사친회에 결석을 안 하셨다. 성적이 나쁘면 9시간 전에 못 자게 하셨다. 잔일도 시키셨다. 접시 닦기, 빨래 널기, 잔디 깎기, 내 방 정리, 특히 주일날은 어떤 핑계도 안 통하시고 난 교회에 가야했다. 그러나 지금 내 생각은 다르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날 사랑해 주신 우리 어머니이시다.”
지혜란 상하 선후를 잘 알아 질서를 지키고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끊을 줄 아는 것인데 하나님은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잠 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식은 부모를 잘 모십니다. 부모님을 잘 모신다는 말씀은 늘 기쁘게 해드리고,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 권위를 세워드리고, 물질로 대접을 잘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듯, 부모님께 십일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자랑하는 자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훌륭한 점이나, 좋은 점들을 드러내놓고 자랑하십시오. 이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드려 부모님을 공경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네게 주며”(본문 26절). 마음은, 사랑과 정서의 원천이 되는 심장부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가식적, 외식적, 형식적, 공경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부모님을 버리고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합시다. 부모님을 공경합시다. 공경한다는 것은 존경한다는 것이요, 사랑을 한다는 뜻입니다. 우러러보며 마음으로 높이고, 마음으로 존경하는 높은 사랑이 공경입니다.
부모님의 지혜를 높이고, 부모님의 명예를 인정하고, 부모님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부모님의 인격을 아주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곧 효도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분은 남자의 경우에는 장인장모님께 효도하시고, 여자인 경우에는 시부모님께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없을 때 ; 이웃의 노인들에게 부모님께 하듯 공경하십시오.
오늘뿐만 아니라 1년 365일 동안,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공경하는 효자 성도가 됩시다. 그래서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
잠 23장 22~26절 / 황광민 목사
“비둘기에게는 3지의 예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반포의 효가 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을 때 어미새보다 3단 아래에 있는 가지에 앉아 예를 표하고, 까마귀는 늙은 어미 까마귀를 음식을 날라 공양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미물도 효도할 줄 아는데 인간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짐승보다 낫다고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효도는 인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서구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상업주의, 현실주의, 실리주의 등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효도하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피해보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얼마나 편안한가를 따집니다. 그런데 부모를 모시면 편안할 리가 없지요, 부모님을 모시지 않고 단둘이 사는 것을 선호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실리를 많이 따집니다. 부모를 모실 때에도 실리가 있어야 모십니다. 부모가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면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좋을 대로 삽니다. 부모님도 안중에 없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회개할 일입니다. 많이 잘못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아 봉독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본문은 노인 어르신들을 존중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본문은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제 말씀에 경청하여 생명의 말씀을 삼고 부모님께 효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A.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에배소서 6장 1절에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 아닙니다. 효도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성도는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사람들이 효도하기를 싫어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보면 말세의 현상으로 불효를 거론하였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개인주의 또는 이기주의, 돈을 사랑하는 실리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하고 불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는 말세의 현상입니다.
성도는 효도를 하되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효 운동가 김범일장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가나안농군학교를 창설한 고 김용기장로의 아들입니다. 그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수없이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새벽4시에 일어나 밤11시까지 일하며 꽁보리밥과 고구마로 끼니를 이어가는 삶이 지겨웠습니다. 그는 수많은 갈등으로 울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 악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일본 사람들이 나를 꺾지 못했는데 네가 내 뜻을 꺾으려고 하느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하려고 하는데 아들인 네가 이해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염려가 되게 하려느냐? ... 교회에 가서 설교도 하고 남을 가르쳐야 하는데 내 자식이 따르지 않으니 권위도 없고 가르칠 자격도 없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돌아와서 같이 값있게 살자꾸나.”
그는 이 편지를 받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갈등은 여전했습니다. 집에 가서 꽁보리밥을 먹으며 하루 종일 일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고, 가지 않으려니 아버지의 가슴에 불효의 못을 박으니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 3일 동안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자식의 도리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그는 부모의 뜻에 순종하며 효도하려고 노력하였고 지금은 효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B. 노인 어르신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22절에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2절에도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여 아비에게 하듯 하며...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을 공경해야 합니다. 노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입니다. 노인들이 힘이 없고 돈을 벌지 못해도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자로 孝는 노인 어르신 老와 아들 子를 합친 것입니다. 늙은 부모를 젊은 자식이 떠받드는 것이 효도입니다. 노인이 되면 힘도 없고 마음도 약해지고 몸도 쇠약해집니다. 그래서 자식이 바쳐드리고 버팀목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키워 놓으니 혼자 잘난 척 하고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녀는 회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젊어 보이는데요’라는 말을 듣고 좋아하면 노년에 들어섰다는 징조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이를 더 먹으면 바지의 지퍼를 올리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또 나이를 더 먹으면 지퍼 내리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정말 한심한 때가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인을 공경하라고 합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서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노인의 수가 적었으므로 살아남아주면 그것이 특권이 되어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들이 오래 살다보니 사회의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전에는 노인 어르신들이 경륜과 지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급변하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뒤쳐지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하나님이 말씀에 따라 노인을 공경해야 합니다.
C. 마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25-26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라고 하였습니다. 의식주 문제만 해결해 드리면 효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효도의 방법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①마음의 효, ②정성의 효, ③물질의 효, 그리고 ④삶의 효가 그것입니다. 마음의 효는 효도의 뿌리입니다. 성도들은 진정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한다’는 히브리어 ‘키베드’는 원래 무겁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생각해보면 부모님을 생각하는 비중이 무거워야 진정한 효도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부모를 생각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혹시 부모님이 ‘안중에도 없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옛날 조선 영조 때 이양필이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의 집은 너무나 가난하여 부모가 남의 집에 가서 품을 팔아 근근이 살았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는 서당에도 못가고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여섯 살 난 이양필은 웃옷을 벗고 마당 한가운데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괴이한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선비는 하도 신기하여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양필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제 아버님과 어머님이 남의 집에 가서 땀을 흘리시며 일을 하고 계신데 어떻게 저 혼자 서늘한 그늘에서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같이 땀을 흘리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듯 하여 웃옷도 업지 않고 마당에서 글을 읽고 있습니다.” 이 말에 선비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고 합니다.
D. 바르게 사는 것이 효도입니다.
효도의 4가지 방법 중에는 ‘삶의 효’가 있습니다. 바르게 살므로 효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자식이 출세하면 효도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세도 좋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2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아멘. 의롭고 바르게 살면 효도가 되어 부모가 즐거워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아먹는 사람도 많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는 사들이되 팔지 맙시다. 희생과 손해의 값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사야 합니다. 고난이라는 값을 치르더라도 진리는 사들여야 합니다. 그러고 천만금을 준다해도 진리를 팔아먹지 맙시다.
「예기」에서는 효를 3가지로 논하였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여 힘든 줄 모르고 봉양하는 것이 소효, 인의의 원리에 따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중효(中孝), 그리고 널리 국민에게 은혜와 혜택을 베풀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 대효(大孝)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입신대도(入身大道)입니다. 그런데 입신에만 관심이 있고 도를 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진리를 통해 바르게 사는 것이 효도임을 기억하십시다.
이제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르신들을 공경합시다. 이것은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효도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할렐루야
C. H 존스는 「유럽문명의 황혼」이라는 책에서 경친 효도의 의식이 강한 문화로서 한국을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부모와 조상을 위해 바치는 것을 좋게 평가하였습니다. 이 좋은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특별히 돌아가신 조상을 섬기기보다 살아계실 때 잘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효도하시고, 또 효도하셔서 자손대대로 효도하는 가정이 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근본을 생각하는 믿음
잠 23:22~26 / 이필재 목사
어머니, 아버지 속에 조명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하자는 의미로 이렇게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동안 자녀들로부터 감사와 좋은 선물들을 받으셨습니까? 저는 어버이날이 되면 잊어버리지 않고 떠오르는 게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옛날에 안이섭 씨가 그린 ‘두꺼비’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한 초등학생이 어버이날 자기 방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하는 겁니다. ‘아! 오늘이 어버이 날이구나! 하늘같은 부모님의 은혜를 오늘 내가 무엇으로 표현을 하고 갚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2개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하나씩 주면서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거 하나씩 잡수세요.” 아버지, 어머니가 “와! 고맙다.” 그런데 돌아서면서 아들이 혼잣말을 하고 나갑니다. 뭐라고 말을 하느냐? “에이! 어린이날 빚 갚았다. 더러워서!”
성경에는 공자의 효 사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 사상이 율법으로 주워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얼마큼 강력한 효 사상이 있는가? 불효자라고 판명된 사람은 이유를 묻지 않고 끌어다가 죽였습니다. 신명기 27장 16절에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이 1~4번까지 나와 있습니다. 5~10번까지가 인간관계의 계명인데 첫 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효 사상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지향하는 부모 공경에 대해 오해를 많이 했습니다. “기독교는 부모 공경을 거부한다.” 왜 그런 오해가 나왔느냐 하면 제사 지내는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제사 지내는 것을 우상 숭배로 해석했기 때문에 이런 여론이 생긴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정준 박사의 논문에는 “한국 교회가 부모제사를 우상숭배로 지적한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이것을 놓고 찬반 토론이 많이 생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기독교는 효도의 개념에 있어서는 세계 어떤 종교보다도 강한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역사가 토인비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제도는 한국에 있다고 극찬의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온 세계가 아름답게 보는 한국의가족제도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요즘에 가끔 뉴스에 노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이 나올 정도입니다.
성경에 말하는 부모 공경의 이유는 몇 가지 정리할 수 있습니다. 부모라는 위치는 생명 창조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역자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가장 가까운 두 가지 일 가운데 하나는 아기 낳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농사짓는 일입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자연 법칙 안에서 인간이 곡식을 생산합니다. 수고해서 농사를 지었지만 우리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내려주신 곡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협조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아기 낳는 것도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후로는 인간이 인간을 생산하도록 우리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하는 창조적 사역이 농사짓는 일이요 아기를 생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모님입니다. 또,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굽니까? 자녀들입니다. 누구든지 다 똑같습니다. 제일 슬픈 일이 뭔가? 자녀의 고난입니다. 가장 기쁜 일이 뭔가? 자녀들의 훌륭한 모습입니다. 간혹 우리 주변에 나쁜 부모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 때 재혼의 걸림돌이 된다고 두 어린아이를 강물에 던져 죽인 여인이 재판받는 것을 보았고, 아들을 방에 가두고 불에 질러서 태워 죽이려 하다가 아들이 살아난 일도 있었습니다. 마귀가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마귀가 시켜서 한 것입니다. 절대 다수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의 그림자 역할을 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동역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모는 어느 시대나 어디에서나 공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머니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듯 한 출산의 위험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공경해야 됩니다. 또,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녀가 아닌데도 기르는 부모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부모들은 낳아서 기르는 부모보다 더욱 공경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사생아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인도 어머니로써 똑같이 존경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위치라는 것은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한국남자로 태어난 것이 참 감사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중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중국이나 미국은 여자 위주의 가정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절대로 여자의 거부하지 못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 선교를 하기 위해서 중국 종교 국장을 미국으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관광을 시켜주고 선물도 사드렸습니다. 함께 쇼핑센터를 갔는데 앞치마가 너무 예쁘다고 다섯 개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야! 아내 주려고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말했습니다. “아내 드리면 참 좋아하시겠네요.” “오우! NO! 제가 쓸 겁니다.” 중국에서 그렇게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도 부엌일을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합니다. 70~80퍼센트 정도는 다 남자들이 밥하고 요리합니다. 여러분, 중국 요리사 중에 여자 보셨습니까? 다 남자들이 합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 남자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미국 남자들은 부인에게 멀쩡하게 따귀 얻어맞습니다. 절대로 맞때렸다가는 원시인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에 멀쩡하게 맞아야 합니다. 요즘에 일본 남자 노인들은 이혼 당할까봐 벌벌 떱니다. 그러니 한국 남자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으셨으니 오늘 감사헌금을 많이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국 여자들은 어떤가? 여러분, 한국 여자 된 거 감사하세요. 선진국들 다 잘 살지만 65세까지는 다 사회에 나가서 일해야 삽니다. 수십 명씩 대낮에 이리 저리 몰려다니면서 사우나 하고 먹으러 다니고 골프 치는 풍경은 한국 밖에 없습니다. 다녀보세요. 부모는 하나님의 생명 창조 사역에 동참자로서 마땅히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율법에서 이 문화는 영원한 것이다. 만약 이 법을 깨뜨리는 자가 있으면 죽여서 없애버려라.”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왜 첫 계명입니까? 십계명의 다섯 번째가 인간관계의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약속을 주셨는가?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히브리 민족의 교육 철학은 전승 교육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것을 그대로 하는 전승하는 것인데, 이러한 교육의 특징이 무엇인가? 근본을 생각하는 겁니다. 나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근본은 할아버지입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로 가는 아버지, 어머니! 그래서 하나님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신부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니, 신부님은 아기를 낳은 적도 없는데 왜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연결하는 영적인 의미로 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겁니다. 나이 많은 젊은 신부를 보고도 아버지라고 합니다. 저는 앞으로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이 지금 아시아로 오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들보다 훨씬 예수 잘 믿고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유는 중국인들은 부모 공경의 교육이 문화적으로 오래 전에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부모 공경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도 잘 믿을 수 있고 가정의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우주의 아버지가 계시니 그가 곧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하는 근본적인 연결이 중국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그러면 왜 안했는가? 공산당 때문에 못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죽으니까 못했습니다. 이제 열려지기 시작하는 기하급수적 선교가 지금 중국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늙은 아버지, 어머니를 즐겁게 하는 가정은 평화가 있고 장래가 약속됩니다. 하나님이 약속 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지 말고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하십시오. 그러면 약속이 그냥 주어집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렇게 되지 성경에 시키는 대로 해보세요. 한 교인 가정에서 아들이 속을 무척 썩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골치가 아픕니다. 늘 경찰서에 잡혀가서 “부모 오시오!” 목사한테 “뭐 써오시오!” 1년에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했습니다. 너무나 말썽꾸러기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 아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한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부부가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지 우리가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새벽기도를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어머니, 아버지! 내가 얼마나 효자입니까? 엄마, 아빠를 새벽기도 교인 만드는 것이 접니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들에게 이런 날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합니다. 제가 휴스턴 텍사스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일어난 일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휴스턴에 엘리스 존슨 중학교라고 있습니다. 완다라고 하는 여인의 딸이 그곳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웃 학부형에게 늘 열등감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남자들은 라이벌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 분야에서만 느낍니다. 정치인은 정치인끼리, 사업가는 사업가끼리, 또 예술가는 예술가끼리, 저 같은 목사는 목사들끼리 그렇게 자기 분야에서만 라이벌 의식을 갖지 정치하는 사람이 사업하는 사람에게 돈 많이 벌기 위해 라이벌 의식을 갖는다든가 그렇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여인들은 다릅니다. 여인들은 온 세상 여인들에게 다 라이벌 의식을 느낍니다. 이런 것이 남자, 여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다른 사람에게 열등의식이 많았습니다. 학벌도 좋지 않고 재정 능력도 없고 미모성에 있어서 남을 따라갈 수가 없고, 모든 면에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그것이 분노의 에너지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하게 나타나면 행동의 통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죄짓는 겁니다. 그래서 범죄하는 겁니다. 성경에도 말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미남 청년 요셉을 좋아해서 유혹하지 않았습니까? 될 줄 알고 했습니다. 자기 집 종이니 자기 같은 귀부인이 유혹하면 어쩔 수 없이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요셉이 뿌리쳤습니다. 이 여인은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 겁니다. ‘네가 감히 내 요구를 뿌리쳐?’ 그때 그 모욕감의 에너지가 분노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고 욕심을 내던 사람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자리로 내몰아서 ‘죽이던가 아니면 평생 감옥에서 고통을 받아라!’ 그래서 거짓말해서 일을 꾸밉니다. 미국 문화에서는 학교의 학생 중에서 치어리더를 뽑는데 농구, 배구 등의 운동 경기를 한다고 하면 몇 명의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면서 경기를 잘하도록 용기를 주고 흥을 돋우어줍니다. 그런데 치어리더 출신들이 다 예쁘기 때문에 TV 같은 매스컴에 계속 나가므로 영화배우가 되기도 하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자기 딸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도 치어리더를 뽑는데 옆집의 딸과 경쟁이 붙어서 누구 하나가 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어머니는 심각한 질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남의 딸에게 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자기 딸과 라이벌이 된 옆집의 여학생을 청부 살인해서 죽여 버렸습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는 것을 질투라고 말하고, 부러움이 미움으로 변하는 것을 질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소유할 수 없는 허탈감의 에너지를 미움의 탈출구로 바꿀 때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죽음의 문제로까지 비화시키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의 불안정이 이렇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의 대한 관점을 두 가지로 볼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적 불행이 생깁니다. 보십시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우리도 좀 차를 사야지!’ 그래서 소나타라고 하는 차를 샀습니다. 그것이 처음 생기는 날 얼마나 좋고 기쁜지 “야! 우리도 차가 있으니 놀러가자!” 베토벤의 ‘운명’을 틀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청평 유원지에가 가서 딱 섰는데 바로 옆에 누가 번쩍번쩍 하는 벤츠를 갔다 세운단 말입니다. 그 순간 상대적 불행이 ‘아니, 나는 왜 저런 차를 못타고 이런 차를 타야 돼?’ 이것이 나를 불행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열등감과 분노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저는 재벌가인 사람을 심방 한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카스텔라와 콜라 한 병만 먹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식도암으로 먹는 것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겁니까?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상대적 감사를 가지고 사람을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이 없는데 나는 이렇게 건강하고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훨씬 더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라고 감사하며 영적 권위를 가져야 하는데, 상대적 불행을 자꾸만 승화시켜 나가니까 사람이 못 견디게 되는 것입니다. 범죄인이 되던가 아니면 자살해서 죽든가 날마다 불행하게 되든가 이렇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특별히 엄마들이 이렇게 생각됩니다. 저는 장애인 목회를 했었습니다. “우리 애가 이번에 일등을 해야 하는데,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에 시험을 잘 봐야 하는데….” 보통 엄마들이 이런 걱정을 합니다. 제가 있었던 교회가 장애인들이 많았는데 주일날 교회에 교인들이 나옵니다. 어떤 엄마들은 예배드리기 위해 자기 자녀들을 휠체어에 태워서 오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오거든요? 아이들이 다 지체장애인, 정신지체인 입니다. 그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는 순간 ‘저 엄마도 저렇게 웃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저는 장애인 목회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약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에 한국에 와서 쓴 한 외국 선교사의 논문에 보면 “조선의 아버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우리 아버지들을 보세요. ‘나 때문에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우리 갈보리교회에도 젊은 기러기 아빠들이 수십 명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데 ‘내가 좀 외롭게 살아도….’ 그리고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갑니까? 뼈 빠지게 일해서 학비를 다 보내면서 외로움을 참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희생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조선의 아버지다.’, ‘조선의 어머니는 남편의 출세와 자식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몸을 불태운다. 이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환경에서 오천년이나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은 조선의 아버지, 어머니의 헌신적 삶의 철학 때문이다. 위대하다.’ 사실 그렇습니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의 수필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초등학교 때 무엇을 잘못하면 어머니께 종아리를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때릴 때는 한 번도 도망가거나 울지 않았답니다. 20대 청년이 되어서도 계속 때리셨답니다. “너 20살이 된 청년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리 와!” 그러면 그때도 변함없이 어머니께 종아리를 맞았는데 어린 시절에 매 맞을 때도 한 번도 울지 아니하던 아들이 20대 청년이 되었는데 막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우는 겁니다. 어머니가 때리다가 이상해 진 겁니다. “야! 너는 초등학교 때 그렇게 아프게 때려도 울지 않던 얘가 매가 아파서 우는 거냐?” 아들의 대답은 “아닙니다. 너무 안 아파서 우는 겁니다. 전에는 어머니의 매가 따갑고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맞아도 아픈 느낌이 없는 것을 보니까 어머니가 늙어 팔에 힘이 다 빠진 것이 슬퍼서 웁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아버지같이, 어머니같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것보다 더 가까운 사랑이 있다면 그것을 오늘과 같이 주일로 지키라 했을 텐데 아버지, 어머니 사랑만큼 당할 것이 없기 때문에 ‘어버이주일’이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조명한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통한 사랑의 양육을 받은 것을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공경하듯 우리 부모님을 공경하며 또한 우리도 훌륭한 부모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과 같은 날 하나님과 자녀, 나 자신, 또 부모와 자녀, 하나님, 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에 대한 율법을 그렇게 강하게 인간들에게 명령하셨는가에 대한 영적 깨달음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우리들 가정에 평화가 사라지고 불후한 역사가 있다면 성령님께서 모두의 가정에 평화를 약속해 주시고 새로움의 역사를 향할 수 있는 믿음의 영적 능력이 주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
잠 23장 22~26절 / 성홍모 목사
오늘의 가정 문제는 첫째가 부부문제이고, 다음은 자녀교육의 문제이고, 다음은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는 효의 문제입니다. 먼저 부부관계가 원만하고 부부가 사랑하면 자녀교육이나 부모 모시는 것도 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불협화음이 일어나니 자녀교육도 엉망이 되고, 어른들을 모시는 문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분명 각각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인 것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절반으로 만족하려고 해야 두 개의 절반이 모여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시128:3)라고 하셨습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가을에 포도원에 가 보세요. 결실한 포도나무를 보면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포도는 이른봄에 결실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하자마자 아름다운 포도나무 같이 결실하는 가정이 없습니다. 봄철을 보내고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될 때에 결실하는 법입니다.
잠언19:14에는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슬기로운 아내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남편을 주시고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즈음 세상에 아내를 얻어 장가드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내는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18:22)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나 아내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은 자여야 아내를 얻는 것입니다. 전도서 9:9에는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이 말은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아내가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는 몫이요, 할당이요 분깃이라는 것입니다.
잠5:18-19에는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즈음 이혼의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습니다만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라고 하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2:16)고 하셨습니다.
한국의 이혼율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자료를 검색해보면 2001년도의 하루에 877쌍이 혼인하여 일년동안 32만 쌍이 혼인하였으며, 이혼한 가정은 한해에 135천 쌍으로 하루에 370쌍이 이혼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통계는 한 해 결혼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은 새 사람들이 결혼하지만, 이혼이란 것은 기성 부부들에게 다 해당하기 때문에 혼인 3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하였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혼인은 줄어들고 이혼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혼 시에 가진 자녀는 2명인 경우가 34.6%로 가장 많았고, 1명의 경우 32.5%로 다음이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경우는 17.7% 이었습니다. 자식이 없다면 후유증은 조금 덜하겠는데, 자식이 1명이나 2명이 있는데 이혼한 것이 67%가 되니 문제 부부 밑에서 자란 자녀들의 문제는 실로 심각한 것입니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의 양반집 안채에는 주로 백인당(百忍堂)이라는 명패를 붙이고 불렀는데, 우리 집은 "백 번이라도 참는 집"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적은 자존심도 죽이고, 교만한 마음을 아예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어른들 보아서 참고, 자식의 앞날을 생각하고 참고, 앞으로 좋은 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아야 하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정말 존경받는 부모가 되려고 하면 부부관계를 바로 세우고,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운명에 따르는 것이지, 이 세상에는 존경할만한 어른도 많고, 좋은 가정도 많은데, 날마다 부부싸움이요, 자식들에게 나가 죽으라고 고함치는 그런 가정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선택권 없는 지옥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사랑하는 부모님과 교육적으로 본이 되는 좋은 환경에서 자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교육은 누구나 힘든 일입니다. 요즈음에 너는 내 자식이니 무조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고 먹이고 입히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의 가치관으로 보면 받은 것이 있어야 줄 것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두 분이 서로 싸우는 날이 많았고, 아버지는 밖으로 나다니시느라고 볼 수 없었고,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문전 박대하였는데, 받을 것도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생명을 제공하였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면서 양육하여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관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육의 기초는 권위와 종속의 관계에서 출발하는데,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식을 양육해야 합니다.
종교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아무리 설명해봐도 잘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실로 희생적인 사랑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정말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면서 받아들인 사람들인데, 그것은 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고, 부모님을 존경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식을 양육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통하여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바르게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자녀들은 참으로 귀하다고 봅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집에 얹혀 살아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년 부모 모시는 가정을 시상하는데, 해마다 줄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70 가정 정도 되었는데, 지금 50 가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연로하신 분들이 돌아가시기도 하고, 자녀들이 분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일해서 노후를 잘 마련해야만 합니다. 할머니들이 조그만 리어커를 끌고 다니면서 신문이나 박스를 수집하여 돈을 버시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소일 삼아 하는 일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먹고 살 수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늙어서 자기 집을 지니고 살고 조금 모아놓은 돈도 있다고 한다면, 왜 자식들이 그런 부모님을 제주도에 버리고, 여행가서 떼어놓고 올 것입니까? 방 한 칸 가진 것 없어 자식들에게 얹혀 살려고 하니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버리고 떼어놓고 오는 자식인데, 다시 자존심 구기면서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무료 시설을 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젊어서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 집 지니고, 자식들이 놀러올 때마다 조금씩 나누어주고 싸서 보내면 자주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 자녀된 사람들은 늙으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들어간 명령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하셨습니다. 같은 십계명을 말씀하는 중에 신명기5:16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 가정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으로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살리고, 경계를 살리고 환경을 살린다고 하지만, 먼저는 가정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네 가정이 살아날 때에 경제도 살아나고 사회도 성숙해지고 나라는 부강해지는 법입니다. 우리들 가정이 이기주의로 치닫고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어 사회는 불안한 것입니다.
우리네 가정에서 어머니는 정말 우리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자랑스럽고 성공한 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들을 보면 왼손으로 아래를 바치고 왼쪽 가슴에 얼굴을 대게 하여 안아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느 심리학자가 연구하였는데, 어머니의 80% 이상이 왼쪽 가슴에 안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머니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어머니의 심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든 사랑의 첫사랑이요, 영원한 애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처음 주택은 어머니의 품이었고, 처음 잠을 누린 침대는 어머니의 팔이었고, 우리가 뛰어 놀던 놀이터는 어머니의 무릎이었습니다.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다가 감옥에 들어갔던 상지대 총장이신 김찬국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마음이 찡한 그 무엇이 다가옵니다. 그가 교도소라는 곳에 처음 들어갔는데 가슴이 찢어질 정도 애절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는데 "어머니"라는 외마디의 절규였다고 합니다.
어느 방에서 들려오는지는 모르나 "어머니"라고 외치는 한 마디는 모든 수감자들에게 어머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교도소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도 어머니를 부른다고 합니다. 많은 범죄자들이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 길로 나가다가 마침내 감옥 생활에 들어왔으며 이제는 어머니에게 효도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잠23:22-26을 보면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1)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훌륭한 사람들은 늙은 어머니를 잘 모셨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십시다.
2) 부모님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현대 감각이 없고 구식을 고집하고, 신식을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어머니를 이해해야 합니다. 어머니를 경히 여기는 것은 "나는 못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3) 부모 공경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잘 모시는 이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진리란 영원히 나의 것으로 간직해야지, 그런 케케묵은 진리는 팔아버렸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는 것이 삶의 지혜요, 훈계요, 명철입니다. 어른들은 달관의 지혜가 있고, 명철이 있습니다.
4)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 자녀된 사람들이 영원한 진리 안에 살아갈 때에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으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갈 때 자부심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팔아버리고, 세상의 쾌락 때문에 구원받은 감격을 포기한다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88세의 권사님이 계신데, 지금도 여전히 총기가 많으시고 건강하신 전영패 권사님이 계십니다. 전 권사님은 오직 아들 한 분 두셨는데, 아들을 교회의 장로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전권사님을 정말 잘 모시고 사는 이옥순 집사님에게 어버이에 어머니에게 보내는 짧은 글을 부탁하였습니다.
"어머님께 올립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와의 만남이 벌써 2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막내로 태어나서 버릇이 없고, 고집도 좀 있는, 부족한 것 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도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철들게 되었고 언제나 겸손하시고, 희생하시는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깊으신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어머니와 첫 만남은 왜 그렇게도 무섭고 떨리던지, 저는 마음 속으로 몇 년만 잘 모시면 될 거야, 연세가 있으시니까 돌아가시겠지, 그렇게도 못되고 얄팍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한 해 또 한 해 지나다 보니 지금까지도 강건하게 살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한 때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용서를 구합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오래 오래 사셔야해요.
어머님, 큰 손주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마음 아파 혼자 흐느끼면서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렇게도 아끼시며 예뻐하시던 어머니셨는데, 먼저 보내야 하는 그 심정은 어떠하셨습니까. 어머니는 저의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위로하여 주셨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연약한 손을 붙들어주셨습니다. 그 언젠가 대전에서 어머니가 너무 아프셔서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저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지금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그동안 잘못한 것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면 하나님 앞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하나님, 저의 어머니를 1년만이라도 더 살려주시면 정말 잘 모시겠습니다' 옛날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신 하나님은 어머니를 1년이 아니라, 15년도 넘게 연장하시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어머님, 이희연 집사가 공군대위로 있을 때 저에게 십일조를 가르쳐 주셨고,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에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님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고 계셨습니다. 어머님, 이희연 집사와 저, 그리고 사랑하는 손주 태성이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시는 애절한 모습을 수 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며 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시는 그 신앙을 이제는 제가 물려받고 싶습니다. 어머니, 이제 우리 집에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어머니, 강건하게 오래 오래 사셔야해요. 저의 두 사람은 정말 마음 편하게 잘 모시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정말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의 사랑하는 자부가 이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은 부모 되신 사람들에게 자식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행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부모님 모시는 이들은 다 잘 살고 존경받으면서 살아가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 모시는 것을 귀한 것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신앙의 길, 정직한 의의 길을 따라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고, 잘 봉양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은총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잠 23장 22~26절 / 김장환 목사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
♡♡♡♡ 삼천 만원? / 오천 만원? / 일억원?
어머니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모르는 게 없어요. "애들이 물어보면 다 알어!"
그러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했어요.
어머니는 간호삽니다. 애들이 아프면은 간호사 의사 노릇을 다 하십니다.
어머니는 현명한 투자가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관상쟁이요, 모든 어머니는 십자가에 달린 순교자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밑에 섰던 어머니 「마리아」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머니는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숨지도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형틀에 달린 아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하는 그 모든 일에 대해서, 만약 사람을 사서 어머니 대신 하도록 한다면 돈을 얼마 줘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저귀 갈아야지요, 목욕시켜야지요, 먹여야지요, 옷 입혀야지요, 노래도 잘 해야 됩니다. 재우기 위해서는 자장가도 잘 해야되지요? 그 담에 춤도 잘 춰야 되고, 울고, 앓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쉼 없이 보살펴 줘야 하는 것이 엄마의 책임입니다. 또 놀아 주고, 책 읽어주고, 위험에서 예방하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 또한 엄마의 책임입니다.
이 모든 일에 만일 돈을 주고 사람을 쓴다면은,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 최소한 매 주일, 80만원은 들어갈 겁니다.
어머니 직업을 쓰라고 하면은 대부분 애들은 '무직'이라고 씁니다.
그러나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 양육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는 것이 집안 일이라고 합니다. 밥 짓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다림질 하고, 유리창 닦기, 화초 돌보기, 고양이 밥 주고, 개 밥 주는 일까지 엄마가 다 해야 되는데, 우리 집 사람은 이 남편 밥 주는 거 보다, 고양이한테 '며르치(멸치)' 주는데 굉장히 열을 올리더라고(웃음)-
이 모든 일에 일일이 보수를 따져 지불해야 한다면, 어머니가 받아야 할 연봉이 1년에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삼천만원?
오천만원?
일억?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어머니 하시는 일의 가치인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 아내를 더 / 사랑하게 / 될까 /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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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의 시인 「괴테」는 "내가 얻은 명성은 순전히 어머니의 덕분이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괴테의 어머니를 만나본 후에 그 인물됨에 탄복을 하고, "괴테의 어머니를 만나보니 비로소 괴테가 위대한 인물이 된 원인을 알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아들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위대한 어머니가 되어야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동생이 형보다 낫다.'고 하면 안색이 변하지만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다.'고 하면은 기뻐합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세상에는 효자, 효부상도 있고, 효도 관광 등, 상술로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른들을 봉양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들이 하여야 할 도리요, 의무라고 알아야 됩니다.
이따금씩 신문에 보면, 택시 운전 기사가 손님이 놓고 간 핸드백이나 돈 뭉치를 파출소에 갖다 주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내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돌려줘야 되는 것은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고 얼마나 악했으면은 신문에 냅니까? 또 우리가 얼마나 효도를 하지 않으면 효자상, 효부상이 있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들은 부모를 즐겁게 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 중에 첫째로,
왜 부모님을 즐겁게 해야 되는가를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잠언 15장 20절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왜 우리가 부모님을 즐겁게 해야 됩니까?
왜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 됩니까?
그것은 인간의 도리인 까닭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질서의 기초이기 때문에 우리는 질서의 기초, 도덕의 기초를 위해서라도 부모를 즐겁게 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카네기」는 "결혼을 하게 되면 어머니보다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될까 두려워 독신으로서 어머니를 모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아들이었습니까? 결혼까지 포기를 하면서 자기 부모를 모셨다고 하는 카네기-,
♡♡♡♡ 인간 관계 / 여섯 가지 / 계명 중 /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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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디 한번 물어봅시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에게 100프로 효도한다고 믿는 부모님들 계시면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
"100프로는 안되고 90프로는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
"중앙교회 교인들 다 엉터리들만 모였어!"(웃음)
오늘 회개하고 부모님을 즐겁게 하시고 부모님에게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강원도 정선군에서 사람들이 개를 잡아먹고 그 뼈를 버렸는데, 그 개의 새끼 강아지가 그 뼈를 물어다가 앞 발로 산기슭을 파고 묻은 후에 그 강아지도 나중에 그 옆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강아지의 지성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그 자리에 '효·구·총(孝拘塚)'이라고 하는 비석을 세워서 기념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개 미개한 동물도 제 어미를 기억하거든,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이, 자기 부모를 즐겁게 할 줄 모르고, 효를 행할 줄 모른다고 할거 같으면은, 어찌 그러한 사람들을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왜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되고, 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효도해야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에 십계명이 나옵니다.
열 가지 계명 중에서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뒷부분의 여섯 가지는 인간 관계에 관한 계명인데, 그 인간 관계의 계명 중 첫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귀담아 들어야 되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명령인 까닭에 우리는 부모님에 대한 효를 해야 되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자식의 도린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소를 몰고 / 지붕에 / 오르는 /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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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로새서3장 20절)』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은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반드시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야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릭슨(Erikson)」이 말하기를 "부모님에게 대한 신뢰와 존경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대해 순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골에 두 노인네가, 누구네 집 아들이 더 효자일까, 내기를 했더랍니다.
그래서 한 노인네가 먼저 자기 아들을 불러다 놓고, "너 외양간의 소를 몰고 지붕으로 몰고 올라가라!"고 하자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니 아버지! 소가 어떻게 지붕으로 올라갑니까?" 하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 노인은 체면을 잃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노인이 자기 아들에게 똑같은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은 주저하지 않고 공손히 대답을 하고,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고 나와서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 놓은 다음 "이랴! 이랴! 이랴!" 하면서 그 소를 지붕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소가 지붕을 어떻게 올라갑니까? 소를 몰고 지붕에 못 오를 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의 명령이니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려던 그 노인네 집은 대대로 성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순종하는 그 사람, 귀한 아들입니다.
두 번째로 부모를 즐겁게 못하는 것이 불효의 죄라 했습니다.
'맹자'는 불효를 다섯 가지로 말 했습니다. 수족을 게을리하여 부모를 살아서 섬기지 못한 것이 죄요, 도박과 음주를 즐기면서 부모를 섬기지 못한 것도 죄고, 재물 욕심과 제 처자만 알면서 부모를 섬기지 못한 것도 죄고, 듣는대로 보는대로 지껄여 부모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도 죄고, 부모의 신변에 위험을 끼치는 행동도 죄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장 1~3절)』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요, 성공의 비결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고, 효도하는 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이란 어떤 곳입니까?
세상 근심은 밖으로 문을 잠그고,
평화와 위로는 안으로 잠긴 곳이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실수와 허물은 가려지고,
사랑과 만족이 꽃피는 곳이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아빠에겐 천국, 엄마에게는 온 세상,
아이들이겐 「패러다이스」가 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대가 최고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
그대를 알아주고 용서해 주는 곳,
그대의 편들이 그대를 도우려고 기다리는 곳이 가정이고,
그곳은 작은 천국, 우리의 가정인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할지어다, 이것이 옳으니라!"
효도는 노력에서 오는 것이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효도는 아름답습니다. 효도는 그 가정의 장래를 보장해 준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장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이 고린도전서 13장을 '며느리의 사랑 장'으로 한번 바꿔서 적어 봤습니다.
며느리 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며느리된 사람들…,
아니, 시어머니 있는 사람들 다 며느리 됐어! 나이가 80이 되어도 자기 며느리 됐어~, 한번 손 들어봐요, 지금 현재 시어머니들도 손 들어보세요,
예, 지금 손드신 여러분들을 위한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 며느리가 / 부르는 / 시어머니 /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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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교 있는 말로 시어머니에게 가끔 전화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시어머니를 위하여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 드리고 생신에 다소의 돈을 드린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시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당신의 아들 생각만 할지라도 오래 참고,
사랑은 시어머니가 심한 말을 하고 눈을 흘길지라도 온유하게 대하며,
남편이 시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릴지라도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의 젊음을 시어머니에게 자랑하지 아니하며,
많이 배웠다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현대 여성이라는 점을 내세워 시어머니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가 번 돈이라고 내 유익만 구치 아니하며,
시어머니가 신경을 건드려도 성내지 아니하며,
시중들기 힘겨울지라도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세상의 학설이나 평가 기준은 사라지고 변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드린 사랑은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으리라
사랑이 부족할 때는 시어머니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밖에 모르지만,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대할 때 비로소 알게 되리라.
내 사랑이 모자랄 때는 시어머니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온전한 사랑을 품으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마주보듯이 완전하게 보일 것이며,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잘 아시는 것같이 내가 시어머니를 잘 알게 될 것이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웃는 낯보다 / 아름다운 / 예술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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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한 마디 보다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대의 즐거운 음성과 흥겨운 이야기는 아내에게는 기쁨이 되고, 남편에게는 휴식이 되고, 그대의 이야기는 아들딸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고 직장에 오아시스를 만듭니다.
"이야기 하라!"
"이야기 하라!"
"찌푸리지 말라! 웃는 낯보다 아름다운 예술품은 없느니라!"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경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그대에게 정말 무관심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채찍은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는 정말 깊고 깊은 사연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계시면 효도하십시오.
즐겁게 해 드리십시오. 얼마 오래 못 사십니다. 가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 상 차려 놓고 효도한다고 법석 떨지 말고, 살아 계실 때 따뜻한 말, 살아 계실 때 즐겁게 해 드리십시오. 살아 계실 때 효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인생의 자서전
잠 23장 22~26절 / 양인순 목사
저희 성지교회 홈페이지에 1004님이 올린 “어머니와 나무” 라는 글이 너무 좋아서 먼저 소개를 합니다.
바구니를 건네며 어머니는 말씀하셨지요.
"매끈하고 단단한 씨앗을 골라라.
이왕이면 열매가 열리는 것이 좋겠구나.
어떤걸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아라.
고르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물건을 살 때는 아무에게나 가격을 묻고
덥석 물건을 집어 들지 말고,
먼저 장안을 둘러보고 사람을 찾아보렴.
입성이 남루한 노인도 좋고, 작고 초라한 가게도 좋을 것이야.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물건을 집어 들고
공손히 돈을 내밀어라.
오는 길에 네 짐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는 길이 불편하다면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게지.
또 오늘 산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는 말아라.
사람들은 지나간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하지.
씨앗을 심을 때는 다시 옮겨 심지 않도록
나무가 가장 커졌을 때를 생각하고 심을 곳을 찾으렴.
위로 향하는 것일수록 넓은 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하는 거란다.
준비가 부실한 사람은 평생 동안
어려움을 감당하느라 세월을 보내는 법이지.
모양을 만들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지 말아라.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선 더 많은 잎들이 필요한 법이란다.
타고난 본성대로 자랄 수 있을 때,
모든 것은 그대로의 순함을 유지할 수가 있단다.
낙엽을 쓸지 말고, 주위에 피는 풀을 뽑지 말고,
열매가 적게 열렸다고 탓하기보다
하루에 한 번 나무를 쓰다듬어 주었는지 기억해 보렴.
세상의 모든 생각은 말없이 서로에게 넘나드는 거란다.
우리는 바람과 태양에 상관없이 숨을 쉬며
주변에 아랑곳없이 살고 있지만,
나무는 공기가 움직여야 숨을 쉴 수가 있단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과 나무가 움직여
바람을 만드는 것은 같은 것이지.
열매가 가장 많이 열렸을 때 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며칠 더 풍성함을 두고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
열매 하나하나가 한꺼번에 익는 순간은 없는 거란다.
어제 가장 좋았던 것은 오늘이면 시들고,
오늘 부족한 것은 내일이면 더 영글 수 있지.
그리고 열매를 따면 네가 먹을 것만 남기고 나눠 주렴.
무엇이 찾아오고 떠나가는지,
창가의 공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렴.
나무를 키운다는 건 오래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야.
그리고 조금씩 다가오는 작별에 관해서도 생각해야 한단다.
태풍이 분다고, 가뭄이 든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매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면 나무는 말라 죽는 법이지.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란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고 흔들린다는 걸 명심하렴..."
어머니가 주었던 씨앗 하나...
마당에 심어 이제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떠난 지금도...
그래서 웃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내 존재의 씨앗입니다. 어머니는 지금의 나를 어엿한 나무로 성장시키려고 모든 것을 쏟으신 분입니다. 오직 자식하나 올곧은 나무로 세우시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매년 5월이면 맞이하는 주일이지만 어버이 주일이 되면 왠지 가슴이 찡해집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미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셔서 카아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살아실제 더 잘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죄송함이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살아계셔도 맘 먹은데로 효성을 다하지 못하는 미련함도 있습니다.
저도 87세 된 어머님이 계십니다. 몸이 불편하셨던 아버님을 돌보시면서 6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아버님은 막내아들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만 보고 죽으면 원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대학교 입학식 하는 것을 보시고 며칠 후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저에게는 생전에 보시던 손 때 묻은 성경을 유산으로 물려주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재물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6남매 모두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가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큰 누님은 목사님이 되셔서 군산에서 목회를 하시고, 둘째 누님은 서울에 있는 남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막내 누님은 목회자 사모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큰 형님은 사업을 하시다가 늦게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시고 작년에 목사 안수를 받아 대전에서 개척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형님은 청주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은 축복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님은 6남매를 위해서 매일 새벽마다 4시간 이상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성전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제는 뇌졸중이 두 번이나 오셔서 성전 출입이 어려우십니다. 전보다 총기도 떨어지시고, 거동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 5월 5일 날이 마침 어머님 생신이어서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식사를 하시면서도 자녀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6남매가 있지만 살아계신 어머님을 더 편안하게 모시지 못하는 아쉬움과 부족함 때문에 죄송함이 앞섰습니다.
식사 후에 계단이 있어서 제가 어머님을 등에 업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순간 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자식을 위해 등이 휘고, 손과 발이 다 닳도록 모든 것을 쏟으신 그 어머님이 너무 가벼워서 제가 속으로 울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25절).”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자식의 도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는 중요한 계명임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 순종할 때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케 되는 비결은 바로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웰 비잉(well-being)의 삶을 사는 것 역시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효도하며 잘 모실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첫째로, 부모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합니다.(22절)
하나님은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에게 당신의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십계명에 보면 1계명에서 4명까지는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인간관계의 삶 속에서 지켜야할 윤리와 도덕규범을 말씀하십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 뒤를 이어 6계명에 “살인하지 말라”, 7계명에 “간음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살인한 자와 간음한 자는 성경에 죽이라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이 앞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살인죄보다 간음죄보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를 더 크게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1장 15절과 17절에 보면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21장 18-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모든 성읍 사람들 앞에서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30장 7절에서도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부모님을 조롱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까마귀에게 눈이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힘을 당하는 불행이 있음을 지혜자는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해서 부모님의 가슴이 아프다면 그건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그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눈물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느끼게 되고, 어머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가장 먼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아직 사랑을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사랑을 알게 하셨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전달자로 우리의 부모님을 예비하셨고, 부모님을 통해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바로 부모님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해드려도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불효입니다. 불순종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청개구리처럼 행동합니다. 돌아가신 후 울어보고 후회한 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둘째로, 부모님을 존중해야 합니다.(22절)
본문 22절 말씀에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원래 공경한다는 말의 어원은 신체의 ‘간장’ 이란 뜻입니다. 몸이 모든 장기들이 중요하지만 특히 간은 해독작용을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간을 소중하게 돌보듯 그렇게 부모님을 대하라는 뜻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대요리문답"에 보면 성경적으로 네 가지 부모를 말합니다.
첫째, 나를 낳아주신 육신의 부모입니다.
둘째, 영적인 부모가 있습니다. 교회의 목회자를 말합니다. 카톨릭에서는 교역자를 신부라고 합니다. 영적인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Father(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예전에 신부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교우들을 대할 때 자녀를 대하듯 말을 낮추어 "하게"를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영적 아버지 역할인 목사와의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사의 부담입니다. 제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기에 행여 저의 실수나 부족함으로 여러분 가운데 상처받는 분들이 계실까 두렵습니다. 제가 받은 상처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저 때문에 상처를 받은 분들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성도는 언제나 사랑의 관계, 섬김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부족해도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보십시오.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본 가나안의 아비가 된 함은 두 형제에게 가서 아버지의 행동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행여 아버지의 벗을 몸을 보고 누가 될까봐 뒷걸음쳐 들어가 하체를 덮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취중에 실수를 했지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가려줍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함에게 말합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5). 그러나 아비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로, 하나님이 창대케 하시는 백성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함이 아닌 셈과 야벳의 복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셋째, 나에게 지식을 공급해 주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스승을 말합니다. 그래서 스승을 사부라고 부릅니다.
넷째, 왕을 아버지라고 루터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왕이나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합니다. 국가의 원수를 존경할 수 없는 백성은 불행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대통령이나 국가의 지도자를 대하는 호칭이나 태도가 너무 심한 것을 봅니다. 무슨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합니다. 먼저 어른 된 우리들이 정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의 기강이 생기고,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생깁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4가지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 영의 아버지, 삶의 지혜를 전하는 스승,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인한테 꼼짝 못하는 애처가 남편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양을 떨며 묻습니다. "여보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소중해? 물론 색시가 제일 소중하지. 두 번째는? 우리 아들이지. 그러면 세 번째는? 아아 그야 당신을 낳아주신 장모님이지? 네 번째는? 우리집 복스러운 강아지. 그럼 다섯 번째는? 우리 아버지지." 이 소리를 문 밖에서 들은 아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메모지 한 장을 냉장고에 붙여 놓고 나가셨습니다. "1번 보아라. 5번 경로당 간다."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어버이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요즘 종종 자녀들이 부모님들에게 불평, 불만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해준게 뭐가 있냐며 부모를 구타하거나 현대판 고려장으로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말세가 되면 부모를 거역하는 자들이 나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의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한 의원이 배우지도 못한 무식한 대통령을 모시게 돼서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구두를 벗어들고 이 구두 역시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때 링컨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어깨너머로 배우 기술이 있으니 당신 구두 수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고쳐주겠소”링컨은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무슨 일을 하셨든지 간에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부모님의 직업과 삶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못다 이루신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식의 모습이 바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걸 자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 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셋째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25절)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명하십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염려와 근심거리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행복하게 믿음 안에서 잘 사는 것이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말 벗이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드시면 힘이 입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은 말벗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형식적인 문안을 여쭙습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와 함께 말해주기를 원합니다.
손주들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시니까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이 드신 부모님들은 하루 종일 TV만 보십니다. 부모님과 같이 사시면 하루에 일정시간을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잘 들어주시는 것이 효도하는 지름길입니다. 언젠가는 힘이 없으셔서 말하지 못할 때가옵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말하실 수 있을 때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돈을 좀 넉넉히 드리십시오. 밥 해드리고, 옷 사드리고, 다 해드리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르신들이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바로 ‘용돈’입니다. 사람이 수중에 돈이 있으면 안심이 되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얼마나 어버이를 잘 섬겼느냐가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듯이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하는 부모 밑에 효성스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효를 하면 우리도 늙어서 똑같이 불효를 받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계신 부모님을 잘 섬기고,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라는 시를 읽어 드립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요.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어머니
사랑 합니다! 어머니
부모님의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인생의 자서전입니다. 흰 머리카락은 나를 위한 고생의 여정입니다. 갈라진 손과 발은 나를 위한 영광의 흔적입니다. 오늘 나라는 씨앗을 심으시고 온 정성을 다해 어엿한 나무로 장성하게 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며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잘 공경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절대로 팔면 안 될 것들
잠 23장 23절 / 김홍도 목사
요한복음 6장 70-71절
북한의 저희 고향 선천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하고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던 곳인데 왜 북한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점령당하고 그 끔찍한 6.25전쟁으로 이 나라가 황폐해지고 수백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는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신령한 종들은 하나같이 그 이유를 주의 종들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고 진노하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일본 사람들이 교회를 탄압하고 핍박하니까 목사님들이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다”라고 우상 앞에서 신앙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받게 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들이 떼를 지어 가서 머리 숙여 신사참배를 한 해가 1938년이므로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70년 하고 하나님이 고국으로 귀환시킨 것과 같이 새로운 선민 한국도 2008년이 되면 하나님의 전권적인 능력으로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평신도도 아닌 주의 종들이 신앙을 팔아먹고 우상숭배한 죄가 6.25의 참극을 불러 수백만이 죽고 이 땅이 폐허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핍박을 받고 죽음의 위협이 와도 꽉 붙잡고 팔아먹어선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잠언 23장 23절에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량에 팔아먹고 지옥으로 떨어진 기사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70~7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고 한 서글픈 말씀이 있습니다. 차라리 주기철 목사님처럼 순교를 할지언정 팔아먹으면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에서는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고 천추의 한을 남겼고 가룟 유다는 재리에 눈이 어두워 은 30량에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팔아먹고 영원히 지옥에서 후회하며 고통을 당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결코 팔아먹어선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1. 진리의 말씀을 팔아선 안 됩니다
본문에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진리의 말씀, 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영원한 말씀이므로 한 번 붙잡으면 꽉 붙들고 팔아먹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일시적인 세상의 향락이나 육신의 쾌락 때문에 영생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사야 55장 1~2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한 이 말씀에서 먼저 포도주는 성령의 은혜를 의미하고(행2:13) 젖은 영의 양식,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데 “돈 없이, 값 없이 먹되 사서 먹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사라”는 말씀은 “내 것”으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값없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쉽게 바꿔먹거나 팔아먹어선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마귀의 돈 몇 푼 받아먹고 영원한 운명을 망치는 사람들이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준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믿음을 팔면 안 됩니다
신자에게 믿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환난과 핍박을 못 이겨 믿음을 팔아먹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요1:12,요3:16). 사탄은 어찌하든지 핍박과 위협을 가하거나 달콤한 유혹을 가지고 와서 믿음을 저버리게 합니다.
북한 공산 치하에서 학교 다닐 때 많은 학생들이 예수님을 믿다가 핍박에 못 이겨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말세에 믿음을 찾아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말세에는 적그리스도의 종들이 나타나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며 택하신 자라도 미혹할 터이니 흔들리지 말고 든든히 서서 믿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 장 26절에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변선환 교수는 종교 다원주의자인데 모든 종교에 다 그리스도가 있고 예수님을 안 믿어도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홍정수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주창자인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도 안 믿고 부활도 안 믿는 사람입니다. 말세에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8절에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믿음을 무너뜨리는 자들이요, 사탄의 종들입니다. 어떤 핍박이나 미혹을 받아도 믿음을 팔아먹지 말고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3. 양심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창문에 흙탕물이 묻으면 밖이 잘 보이지 않고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같이 우리의 양심이 더러워지고 마비가 되면 하늘의 신령한 빛이 들어올 수가 없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으면 배가 파선한 것같이 그 믿음이 파괴된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을 속이거나 팔아먹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
유명한 부흥사 이성봉 목사님이 만주에서 사역할 때 한 교회 영수님이 아편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고, 교회 영수가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야 되겠느냐고 했더니 “아들이 꼭 하나 있는데 그놈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이 장사를 하고 그만두겠다”라고 하더랍니다. 몇 해 후에 만났더니 아들이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여전히 아편 장사를 하더랍니다. 왜 아직도 그 일을 계속 하느냐고 했더니 “한 밑천 잡고 그만두겠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다음에 또 만났더니 통곡을 하면서 그 외아들이 헌병대에 있다가 아편중독자가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결국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과 아들을 바꾼 격이 되었습니다. 영혼과 양심은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하여 양심을 팔아먹어선 안 됩니다.
4. 성결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보다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성결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결하다는 말은 “구별되다” 혹은 “깨끗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중심이 바르고 깨끗하고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려면 거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삼손은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이며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힘이 천하장사였는데 그 힘이 올무가 되어서 술 마시고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거룩함을 잃고 능력도 상실하고 두 눈도 뽑히고 비참하게 조롱을 당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도”란 말은 “거룩한 무리”란 말인데 아직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장해 주십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어떤 죄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을 수가 있습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 영생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최후 소망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도 우리에게 죽음을 해결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불신자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핍박과 고난이 있어도 싸워 이기고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의 확신, 영생의 복음을 팔아먹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것 다 잃어버려도 영생, 천국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한 주님의 말씀은 영생, 천국을 발견했으면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어느 교회에 집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만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아들을 보려고 몰래 첩을 얻었습니다. 그 사실이 드러나고 온 교회에 알려지자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옥동자를 보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쥐면 꺼질세라 놓으면 날아갈세라 귀중하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열이 나면서 앓다가 며칠 후 죽었습니다. 그때라도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교회에 다녔으면 구원받았을 터인데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근심하고 고민하다가 눈이 갑자기 안 보이더니 소경이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날 지팡이를 짚고 낯선 길을 걸어가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아들 하나 보려다가 신앙 다 팔아먹고 아들도 죽고 영생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저희 모친은 아들이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저버리지 않았던 간증이 있습니다. 일정 때 저희 부친이 평남 양덕이란 곳으로 공무원 발령을 받아 이사를 갔는데 그 곳에는 교회는 없고 무당만 들끓고 산신령한테 제사하는 일만 많이 하더랍니다. 그때 저희 부보님은 첫딸 낳아 돌 만에 죽고, 둘째 딸 낳아서 두 돌 만에 죽고 나서 셋째로 저의 형님(김선도 목사)을 낳아서 네댓 살 났을 때인데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여기서는 해마다 황소를 잡아서 산신령한테 제사를 드리곤 하는데 마침 제사하는 날이 가까웠으니 황소 살 돈을 거두러 왔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우상에게 절하거나 귀신한테 절하고 굿하는 것은 제1계명, 제2계명을 범하는 제일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인데 저의 모친이 허락할 리가 있습니까? “다른 돈을 거두러 오면 내겠지만 산신령한테 제사하는 일은 못합니다” 하고 거절했더니 “이 집이 큰일 나겠다. 소 잡아 제사 안 하면 집안 식구가 죽어나고, 이 동네도 큰 화를 입는다” 하면서 빨리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모친은 완강히 거절하면서 “화를 당해도 우리가 당할테니 걱정 말라”고 했더니 온갖 악담과 저주를 하면서 이 집 큰일 났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딸 둘 죽고 처음 낳은 그 아들이 갑자기 열이 한 40도 오르고 헛소리를 하며 죽게 앓더랍니다. 다음날 아침 일본 사람, 의사를 불렀더니 진찰을 해보고 나서 “급성 폐렴인데 죽을 시간이 다 되서 손 쓸 수가 없다” 하며 가더랍니다. 동네 사람들은 한방 가득히 둘러서 “그것 보세요. 아들 살리고 싶으면 이제라도 무당 데려다가 경 읽고 굿해야 삽니다” 하고 아우성치는데 죽어가던 꼬마 아 들이 헛소리 하면서 그 동네의 제일 유명한 남자 무당 이름을 부르며 “엄마, 박복술 데려다 굿해줘”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은 “그것 보라. 어서 박복술 데려다 굿하라”고 하니 믿음이 약한 저희 부친은 “여보, 딱 한 번만 굿 해봅시다” 할 때, “여보, 정신 나갔어” 하며 큰소리로 “아들은 죽어도 내 믿음은 죽을 수 없고, 아들은 잃어도 예수님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다들 돌아가시오” 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무슨 예수쟁이가 저렇게 지독하냐” 하고 혀를 차며 가더랍니다. 저희 모친은 손발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코 언저리가 새파랗게 되는 걸 아랫목으로 밀어놓고 산에 가서 기도하는데 아들 살려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아들은 죽어도 예수님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마지막으로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사오니 이 아들 살려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났는데 옛날 노인한테 들은 찜질하는 법이 생각나서 그 풀을 뜯어다가 뜨거운 물수건으로 기도하면서 찜질을 했더니 한 30분만에 살아나서 물 달라고 하고 밥 달라고 하더랍니다. 동네 사람들이 “선도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훌륭한 목사가 되고 덤으로 둘째 김홍도 목사, 셋째 김국도 목사, 넷째 김건도 목사를 주셨습니다. 모두 부흥사요, 세계적인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