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에 대한 학대, 사람들에 대한 학대 이러한 말은 서로 다른 것일까?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사람, 인류는 어떻게 이 자연에 생존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좀더 얘기하자면 사람이라는 종은 어떻게 현재의 삶의 현태를 갖추어왔을까?
더 우월한 어떤 커다란 하늘의 계시로 그렇게 되었을까? 아니면 환경적으로 좀더 다른 존재보다 좀더 다르게 발달해 왔을까?
나는 후자의 경우라고 생각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살면서 느낀 것이 인간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하늘의 점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종과 다르게 발달해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라는 TV에서 별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우주안의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과학의 신비에 집중적으로 이해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그 프로에서 인간 생명의 존재란 다른 존재와 다를 뿐이지 우월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단지 지능이라는 지구 생존 생명의 독특성에 대한 우주내의 보편화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자꾸 의문으로 남지만, 나는 우주의 모든 만물의 존재 법칙안에 포함되리라는 생각이 깊게 신뢰가 갔다. 그러니까 우주안에 존재하기 위한 어러가지의 방법,형태의 하나이다는 것이다. 우주에 다른 존재들 그러니까 별들의 생성과 소멸까지 포함해서 모두다 어떤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그 법칙에 의해 형태를 갖추고 변화해 간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인간 중심의 모든 사고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생각케하는 것이다.
단지 자기 보호본능과 자존의 본능에 의해 우리 자신의 존재를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아끼고 발달기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좀더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사고와 인식 그리고 보고 느끼는 존재, 상상이라는 사고의 존재에서 확장되고 발전되는 그 지향을 더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이 사고라는 지능의 존재형태는 우리만 소유하고 누리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우주의 만물 법칙안에 있는 존재의 형태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안에서 좀더 이상적인 아름다운 존재형태이기를 지향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또한 우주의 만물 존재 형태안에 포함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그 신비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주의 그 본질, 우주를 통해 우주를 만든 창조주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보면 우주를 만든 하느님을 보는 것이며 내가 곧 우주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말겠지만 나라는 존재의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는 생명이고, 소중하며, 사랑이요 은총이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모든 것을 저 우주안에서 생각해보면 먹는 것, 입는 것, 사용하며 쓰는 것 모두다 하나이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이다는 생각이다.
요즘 고래잡이에 대한 논란이 자꾸 언론에 회자된다.
멸종해가는 고래를 보호하자는 얘기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생명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사고와 존재의 영역을 좀더 넓혀주고 있는 생명체중에 하나가 아닌가? 그 고래라는 존재에 의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생명으로서 뿐만아니라 존재의 의미로서도 인간이라는 존재와 다를게 없다.
우주에 있는 돌맹이하나 먼지하나도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좀더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인간의 사고 영역이 아름답게 존재하기 위해서 공존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고래가 1년에 360~370마리 된다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하루에 한 마리씩 걸린다는 건데…."
서울 강남에서 고래고기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혼획(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만 잡는 것)이 전부'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밍크고래가 제일 맛이 좋은데 혼획으로 잡히는 것은 커 봤자 8㎙정도"라며 "(유통되는 고래 중에는 20㎙가 넘는 고래도 많은데) 큰 고래는 절대로 그물로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혼획만으로는 고래고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사실상 포획이 꽤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죽은 새끼를 자기 등에 업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어미고래의 모정, 파도에 의해 죽은새끼가 자꾸 자기 등에서 쓸려내려가면 다시 등에 업고 다시등에 업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애미고래의 모습은 사람의 모성과 다를바 없다.
↑ 어시장에서 그물에 걸린 고래를 해체해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고래연구소 제공오영애 울산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도 "해양경찰청에서 집계한 연간 불법 포획 건수는 10여 건 정도"라며 "식당에서 유통되는 양과 비교해보면 상당량은 작살을 사용한 불법 포획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포경은 고래고기 판매에서 시작된다. 현재 상업적 포획은 금지돼 있지만, 상업적 유통과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고래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울산에만 70~80곳. 인근 부산, 포항 등 해안도시에도 꽤 밀집해 있고 서울에도 강남 일대에 10여 곳이 있다. 이들은 지방에 내려가 고래고기를 직접 사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울산에 고래고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삶아서 얼음 통에 담아 배달해 주는 식이다.
고래고기 가격은 비싼 편이다. 요리는 부위별 수육과 모듬 수육이 대부분인데 모듬 수육은은 울산 현지에서 2~3인분 한 접시에 최고 10만원 정도다. 서울로 보면 가격이 배 이상 뛴다. 특히 지방이 많아 1㎏을 삶으면 기름기가 빠져나가 양이 40~50%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값은 비쌀 수 밖에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다 보니 더러 속이기도 한다. 한 식당주인은 "모두가 밍크고래라고 판매를 하지만 실제론 상괭이, 곱시기 같은 돌고래 종류를 섞어 팔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고래는 한 번 잡으면 크기에 따라 수입이 수천 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된다. 그러다 보니 어민들 사이에선 고래가 '바다의 로또'라고 불린다. 그물에 걸리면 그야말로 횡재이지만, 값이 높은 만큼 불법포획에 대한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획과 불법포획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설령 불법포획을 했더라도 해경에 혼획을 했다고 신고한 뒤 작살사용여부를 확인하는 금속탐지기와 외관검사를 통과하면 혼획으로 인정받아 유통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오 실장은 "그물에 걸린 고래를 발견하면 풀어주지 않고 (질식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과연 작살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혼획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며 "2005년 고래 관광 가능성 조사를 나갔을 때는 작살을 장착한 포경선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가입 이후 27년간 모든 고래의 포획을 금지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 실장은 "작살로 잡아 아예 선상에서 해체해 몰래 유통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규제하고 금지시켜도 불법포경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만큼 고래고기 식습관의 역사가 길기 때문이다. 국보 제 285호인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바다동물 75마리 가운데 고래가 절반 이상인 것만 봐도 고래 식습관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손호선 고래연구소 연구관은 "이 지역에서 배를 이용한 수렵어로위주의 식생활이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려 고종 때인 1215년 몽고 사신이 고래 기름을 가져갔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고래수염을 진상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대적 의미의 포경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 러시아가 울산, 청진, 장전에 포경해부기지를 세우면서부터였다. 울산 지역 포경의 역사가 사실상 100년도 더 된 셈이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모든 포경기지 운영권은 일본으로 넘어갔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1946년 4월16일 장생포에서 한국인에 의한 포경이 시작됐다.
지금도 고래고기를 즐긴다는 장생포 주민 김 모씨는 "1970년대에는 고래고기가 소ㆍ돼지고기보다 저렴해 살코기로 불고기를 해 먹었다"며 "장생포에 고래가 들어오면 해부장(고래 해체하는 사람)이 청룡도 같은 칼로 고래를 자르는 광경이 굉장한 볼거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울산 자체가 공업화되고 외지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서도 고래고기 식습관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한국일보20120721이성기기자 이지영인턴기자(이화여대언론정보학과3)==
<인터넷한국신문에서 퍼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