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방통대 다니는데 오늘 중간고사를 봤다.
지독히도 따라가기 싫었지만 아내의 눈빛이 무서워 실 쪼개면서 "당연히 따라가야지~~~"
하고 애들 둘을 데리고 수원으로 갔다.
아내가 시험을 치르는 약 두 시간 동안 아내가 급조한 주먹밥으로 대충 때우고,
아덜 딸애한테 허접한 공으로 축구랍시고 화성에서 공 몇번 차고,
그 마누라 시험치고 나오길래
"인자 집에 갈거지?" 난 "집에 가자"라고 단정하지 못 한다. 꼭 뭔가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 이렇게 물어 볼때 부터 아내의 얼굴빛에서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그건 휴일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절대적인 아내의 묵시적 메시지였다-을 느끼면서 선수를 쳤는지만,,,
아내는 내게,
"수원에 온김에 에버랜드나 갈까?"
하고 물었다. 분명 그것은 물음이다. 정말 물음이다. 물음인데 왜 나는 일방적인 통보로 느껴지는가...
답을 해야하는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다. 정해진 나의 답
"그러지 뭐"(속으론 닝기럴 여편네 니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먼저 긍정을 한다.
앞서 부정을 하였다가는 저녁에 대파로 머리를 맞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를 굴린다
내가 조심스레....
"근데, 연간회원권 안 챙겼는데....(히히히)"
아내의 대답은 간단하다.
"내 가방에 있어"(젠~장)
난 전혀 대꾸할 수 없다..단 지 아내가 미리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한 것에 그나마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해 한 마디 던진다.
"갈거면 미리 이야기 해주지"
아내의 답은 간단하다.
"주먹 밥 쌌잖아"
나:"어 아까 기다리면서 애들이랑 주먹 밥 먹었는데..."
아내:"뭐?"
나: "아니... 그래도 자기 시험끝나면 자기 먹으라고 좀 남겨 놨어"
아내:"그럼 됐어"
난 머리가 나빠서 주먹밥을 싸는 것과 에버랜드를 가야한다는 것을 연관시키지 못 한다. 그러나 아내는 어떤 논리 형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모르나 아내에겐 주먹밥과 에버랜드는 동일 선상의 원인과 결과 쯤인가보다.
수원을 감에도 오늘 아침까지만도 아내가 에버랜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내심 고마워 했었다.
애들은 신났다. 아내도 좋단다...
난... 이 놈의 신세... 언제 휴일 배깔고 누워 비디오를 보내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애버랜드에 들어 섰다.
애들은 좋단다... 아내도 좋단다. 나는.... 증말 싫단다.
난... 정말이지 철마다 때마다 에버랜드를 무슨 의무감처럼 오자고 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난 에버랜드가 제주도에 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부산이나 광주에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에서 길은 왜 이리 뻥뻥 뚫어 대는지....
옛날에는 집에서 한시간 반 걸리더니 이제는 우리집 아파트 현관에서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에버랜드에서 들어선 후에 발생했다.
애들이 처음을 먹는 것... 그건 츄러스다.
츄러스.... 이상한 밀가루 반죽을 길게 뽑아서 삶은 다음에 설탕을 발라놓은 정말 문방구에서 팔면 딱 불량식품이다.
애들은 내게 당연한 요구를 한다. 먼저 아들놈 "아빠! 츄러스".. 딸 "나도"
그러면 나는 쪼르르 달려가 무게를 잡고 "아가씨 츄러스 두개요"하고 4,000원을 주고 양손에 들고 딸과 아들에게 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평상시에는..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은근히 꼬소하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내가 뱉은 말이다.
"나 에버랜드 올지 몰라서 지갑을 집에 놓고 왔는데. 그냥 천원짜리 다섯개 들고 와서 아까 주차비 2,000원내고, 애들 토스트 사주고 돈 하나도 없는데... (흐흐흐흐, 니돈 쓰시지)"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니가 내게 사전 통보도 없이 내 휴일을 구겨버린 대가다...
아내의 당혹한 표정.... 그리고 뱉은 말..
"나 5,000원 밖에 없어"
(띠벌, 5,000원으로 유원지에서 무얼 할 수 있단말인가)
"자기는 돈도 없이 놀러 오냐?"
아내는 오히려 뭐 이런 놈이 있느냐는 듯이
"지갑은 왜 안들고 왔어?"
"난 올지 몰랐지."(웅얼 웅얼)
난 아내가 아침을 안먹은 것 같아 시험 끝나면 주려고 주먹밥도 애들만 먹이고 난 세개 밖에 안먹었는데.... 나도 배고픈데.... 지름이 3센티도 안되는 주먹밥 세 개 먹은 것이 오늘 먹은 식량의 전부인데.
난 배고픔을 참고 아내에게 천원짜리 네장을 받아 애들에게 츄러스 대신 그래도 커보이는 팝콘을 하나씩 사줬다. 애들은 팝콘도 좋단다....
놀이기구 2개 타고 나니 배가 고파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내도 찍소리 안한다.
아내에게 남은 주먹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피크닉 하우스에는 왜이리 인간들이 많은지.... 죄다 컵라면을 먹는 것 같다.
아.. 준비된 저 모습. 예전의 내 모습인데... 먹지 못 하는 라면이 더 맛있어 보였다.
우리는 도시락을 꺼냈다. 생각보단 많은 주먹 밥이 남아 있었다. 대략 열 한개 정도...
그래도 나. 아내, 딸, 아들 이렇게 4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애들아 먹자"
애들이 맛있게 먹는다. 이 놈들 정말 너무한다. 아까 주먹밥먹고, 토스트 먹고, 팝콘도 먹은 것들이 남은 주먹밥도 맛있단다.
아내와 나는 허탈해 하며 쳐다만 봤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찬물은 공짜다.. 근데 물은 배가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흠이다.
옆테이블의 컵라면 냄새가 나를 미치게 한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주먹밥을 먹고 놀이기구 2개 정도 더 타고. 아내에게 "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에버랜드에서 집에 가자는 나의 제안에 대해 아내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곧바로 채택해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집에와서 라면 다섯개를 삶아 네명이서 배터지 먹었다.
아,,,, 눈물 나는 에버랜드였다.
거지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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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만의 이야기
궁시렁 궁시렁
에버랜드.. 거지가 따로 없었다.
운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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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16 23:0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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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하하
얼마전 우리가족 모습이네요. 암튼 준비 잘해야 가족이 행복합니다.... 그래도 재미있죠~..!
ㅎㅎ 잼잇었겠네요..그래도 그것도 추억이죠..에벌랜드는...돈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