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코트를 달궜던 V-리그 2016~2017시즌이 이달 초 마무리됐다. 남녀부 13개 팀의 한 시즌 성적과 함께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 성적표도 매겨지는 시점이다. 다음 시즌에도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트라이아웃을 통해 새로운 선수를 택할 수도 있고, 미워도 다시 한 번 기존 선수와 재계약을 택할 수도 있다. 각 구단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속사정을 들여다 본다.
(대한항공 라이트 가스파리니)
남자부 눈치작전, 트라이아웃 신청자 살펴본다
트라이아웃 도입 후 첫 시즌을 치른 남자부는 여지없이 외국인 선수로 명과 암을 겪었다. 가스파리니와 함께 6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오른 대한항공은 빛을 본 경우다. 나이가 많아 부침을 겪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V-리그를 경험했던 선수이자 베테랑답게 좋은 활약을 펼쳤다. 가스파리니는 서브 1위를 제외하고는 득점이나 공격종합 후위공격 등 주요 공격지표에서 그리 높은 순위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팀 중심을 잡아주며 주변 동료들을 동반상승 시켰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우승을 함께 이룬 선수인 만큼 기량에 대한 의심은 없다. 인성도 좋은 선수라 팀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더 나은 선수를 찾기 보다는 재계약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스파리니는 재계약이 불발되더라도 트라이아웃에 재참가하지 않겠다며 구단에 신뢰와 애정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약에 우선순위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구단들도 있다. 삼성화재와 연을 맺은 타이스는 득점 1위를 비롯해 후위공격 등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아포짓 스파이커 박철우가 있는 팀 특성상 윙스파이커가 필요한데 외국인 선수로는 흔치 않은 날개공격수여서 재계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트라이아웃 신청자들 면면을 살펴보고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생각이다.
올 시즌 외국인 선수 중에 가장 키가 큰 우드리스를 선택했던 KB손해보험도 비슷한 상황이다. 구단 관계자는 “트라이아웃 참가선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재계약 여부를 확정하지는 않았다”라면서 “신장이 좋은 우드리스가 기대만큼 활약했다고 본다. 팀에 적응해있는 선수고 새 시즌을 준비하는데 유리한 면이 있는 만큼 무리수를 두지 않고 안정적인 재계약을 택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 사령탑 영입 등 팀 개편 상황에 따라 변수는 남아있다. 그러나 타이스와 우드리스는 그들이 보인 활약을 놓고 볼 때 이들이 트라이아웃에 다시 신청할 경우 다른 팀들이 탐을 낼 수도 있다.
(KB손해보험 라이트 우드리스)
외국인 선수로 인해 시즌 내내 고생했던 구단들은 한 시즌을 안정적으로 함께 할 선수를 찾으려는 데 온 신경이 몰려있다. 교체를 선택한 구단은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처지이다. 불미스러운 범죄와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두 번이나 외국인 선수를 교체해야 했던 OK저축은행은 세 번째 외국인 선수 모하메드와도 결별하기로 했다.
팀에 뒤늦게 합류한 모하메드는 오픈 공격성공률 52.57%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출전경기 수가 적었기 때문에 성공률에서 이득을 본 경우로 수치가 주는 의미는 크지 않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과 맞물려 전체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구단 관계자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시즌이었다”라면서 “이번에는 좋은 선수를 선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OK저축은행은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탓에 트라이아웃 확률추첨에서 유리하다.
외국인 선수 교체로 고민이 많았던 현대캐피탈도 시즌을 함께 마무리했던 대니와는 작별할 전망이다. 서브 리셉션과 공격을 두루 해줄 수 있는 윙스파이커가 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선수들 분전에 더 큰 힘을 실어줄 선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구단 관계자는 “대니에게는 미안하지만 트라이아웃을 통해 팀에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를 찾아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톤이 부진해 교체를 고려했을 당시 현대캐피탈은 새 선수를 찾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대니가 시즌 도중 합류해 파이팅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가 트라이아웃 당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선수였던 만큼 경기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카드도 파다르를 대신할 다른 외국인 선수에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다. “파다르가 아직 젊은 선수라 유럽 등지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는 한 우리카드 관계자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선수들도 살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다르가 서브 3위, 득점 2위 등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다소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는 것이 내부적인 평가다. 한국전력은 입장을 유보했다.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국전력은 지난 2005년 프로배구 출범과 함께 V-리그에 참가했는데 올 시즌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V-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른 생각은 모두 뒤로 미루고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했다. 외국인 선수인 바로티에 대한 내부 평가나 거취 여부 결정 등은 천천히 논의해보겠다는 설명이지만 교체 쪽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화재 레프트 타이스)
제도 완화된 여자부, 변화폭 적지 않을 듯
트라이아웃 도입 후 두 시즌째를 치른 여자부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트라이아웃 제도가 새 시즌부터 완화됐기 때문이다. 종전과는 달리 2017~2018시즌 트라이아웃은 교체선수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국적과 나이, 포지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과거 V-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몇몇 이름이 익숙한 선수들이 참가 신청서를 내기도 했다.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이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경우 현재 프로 경험이 적은 외국인 선수들을 교체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진다.
외국인 선수 문제로 남자부 OK저축은행만큼이나 고생했던 올 시즌 최하위 한국도로공사는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시크라와 재계약을 택했다가 부상으로 브라이언을 대체요원으로 수혈했지만 ‘왕따설’까지 불거지는 어려움을 겪은 뒤 헐리로 또 다시 교체했다. 그럼에도 성적 올리기에는 실패했다. 구단 관계자는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선수를 찾아보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봄 배구 희망을 이어가지 못한 GS칼텍스도 기존 외국인 선수인 알렉사를 대신할 선수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GS칼텍스 경우 시즌 도중 외국인 선수 교체는 없었지만 되레 사령탑이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진 만큼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도 바뀔 전망이다. 구단 관계자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제하면서 “팀 성적이 부진하게 끝났기 때문에 새로운 선수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알렉사는 득점 2위 공격종합 3위 시간차 1위 등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건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에밀리와 헤어져야 한다. 지난 시즌 리그 2위에 올라 챔피언 자리를 움켜 쥔 현대건설은 수비력이 좋은 윙스파이커 에밀리와 일찌감치 재계약 하기로 결정했었다. 에밀리는 수비와 리셉션에서 3위에 오르며 기대했던 수비 측면의 활약은 보여줬지만 공격에서는 큰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비슷한 역할을 맡은 IBK기업은행 리쉘에 견줘 득점력이나 공격력이 부족했다.
리쉘은 IBK기업은행에서도 거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공격종합과 오픈 1위, 후위 2위 등 공격지표는 물론이고 리셉션 4위, 수비 2위 등 수비력까지도 겸비했다. 윙스파이커가 필요한 현대건설 같은 구단에서는 탐낼만한 선수다. IBK기업은행 구단 관계자는 “리쉘이 굉장히 잘해줬다. 받고 때리는 윙스파이커 역할을 모두 잘해냈다”라면서도 “트라이아웃에 더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전했다. 이정철 감독이 키 크고 힘있는 스타일의 선수를 선호하는 만큼 변화를 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IBK기업은행 레프트 리쉘)
흥국생명은 러브와 함께 9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렸던 트라이아웃 당시 196cm 큰 키와 시원시원한 공격으로 눈길을 끌었던 것이 러브였다. 높이에 약점이 있었던 흥국생명에는 꼭 필요한 선수로 여겨졌다. 러브는 국내에 들어와 기량이 향상됐다. 퀵오픈 1위를 비롯해 득점과 공격종합 오픈에서 각각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한 부문에서 압도적이었다기 보다는 두루 좋은 성적을 낸 케이스다. 흥국생명 구단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박미희 감독과 더 상의를 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러브는 정규리그 우승을 함께 한 선수지 않나”라며 여운을 남겼다.
KGC인삼공사만큼은 재계약이 확실시 된다. 구단 측은 이미 알레나와 재계약을 결심했고 조기에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이었다. 알레나는 득점과 후위 1위, 공격종합과 오픈, 퀵오픈 각 2위 등 대부분 공격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올랐다. 특히 블로킹 5위에 오른 것이 눈길을 끄는데 외국인 선수로 10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알레나가 유일하다. 블로킹 1~4위 선수 포지션이 미들블로커인 것을 고려하면 알레나가 보인 활약은 더욱 눈길을 끈다. 서브 리셉션 부담을 동료들이 지는 대신 자신은 블로킹으로 수비에도 힘을 보탠 셈이다.
구단 관계자는 “선수에 대한 예의도 있는 것이라 재계약을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미스 오레곤 출신답게 코트에서 표정관리를 잘해서 그렇지 굉장히 승부욕이 강한 선수다. 경기에서 지면 분을 참지 못해 혼자 화장실에서 울고 나온다”라면서 “경기력으로 검증됐듯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팀에 확실한 다른 공격루트가 있었다면 알레나가 올 시즌 최고 외국인 선수가 됐을 것이다. 팀에 어울리고 필요한 선수”라고 말했다.
알레나가 펼친 분투가 동료들 승부욕까지 살려내며 인삼공사는 올 시즌 ‘꼴찌 팀’의 오명을 벗어냈다. 더구나 플레이오프전에서도 강한 인상을 보였다. 또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점은 알레나가 교체선수라는 점이다. 당초 인삼공사는 사만다 미들본을 선택했지만 그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조기 귀국하면서 알레나를 대체 요원으로 택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전화위복이 됐다. 인삼공사로서는 알레나와 다시 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KGC인삼공사 라이트 알레나)
트라이아웃, 도입 취지대로 가고 있나
새 시즌 남녀부 트라이아웃은 오는 5월 실시된다. 남녀 모두 국적과 나이, 포지션에 상관없이 트라이아웃에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여자부가 국적과 나이 등에 제한을 두면서 교체선수의 선택 폭이 좁았던 것에 대한 보완책으로 제한사항이 없어졌다. 각 팀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배구 팬 입장에서는 실력이 있고 몸값 높은 선수들이 사라져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 좋은 선수가 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로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시장가격과 맞지 않는 외국인 선수 연봉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몸값에 맞추다 보면 다른 제한요소를 없앤다 하더라도 수준 높은 선수가 트라이아웃에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남자부 경우 외국인 선수 연봉은 세금을 제하고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 여자부는 세금 포함 15만 달러(약 1억7,000만 원)가 상한선이다. 물론 대체선수를 선발해야 할 상황이라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늘어난다.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선수를 금액에 맞춰 영입하기보다 상한선을 조금 높여 맘에 드는 선수들이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도록 하자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사전에 구단과 선수가 접촉해 수입을 보장하고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만드는 편법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연봉 이외의 다른 편의제공을 제한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발생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트라이아웃 도입 취지 중에는 각 구단이 벌이는 선수영입 경쟁에 따른 과도한 금액지출 부담을 줄이자는 것과 더불어 외국인 선수에 들이는 금액을 유소년 선수 육성에 활용하자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취지는 의도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트라이아웃 덕분에 아낀 연간 지출비용은 그냥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은 돈으로 끝날 뿐 유소년 육성을 위한 투자로 이어질 개연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각 구단의 지역별 분포도 불균형한데다 유소년 팀들의 분포 현황도 프로팀 연고지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유소년 팀에 투자한다고 해서 그 팀에서 배출한 선수를 우선적으로 프로구단이 지명할 수 있는 등 제도적인 장치도 미비하다.
30대 선수들이 리그의 간판스타이자 각 팀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신인도 등장하지 않는 V-리그의 현실은 분명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선수를 키우겠다고 각 구단들이 아낀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구단이 자발적으로 유소년 육성에 나설 수 있는 유인책이나 제도적인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