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안거 결제 첫날입니다. 앞으로 삼 개월 동안은 꼼짝 못하고 수행정진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평소에도 열심히 정진해야겠습니다만 이 결제일에는 더욱 더 간절하면서도 당찬 의지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결제(結制)란 묶어 둔다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정진을 했다고 한다면 오늘부터 90일 동안은 수행 이외의 다른 생각은 모두 접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재가분들께 직장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쓸데없는 술자리나 외출을 자제하고 기존에 하고 계시던 수행을 임하는데 있어 좀 더 결연한 자세를 가져달라는 말입니다.
선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결제 중에 돌아다니다가 맞아죽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모든 사람이 몸과 마음을 오로지 수행 정진하는 쏟아 붓는데 자기 혼자 공부 안 하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망상만 피워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공부는 뒷전에 둔 채 나돌아 다니는 수행인을 때려도 죄가 안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신라의 의상 스님은 결제를 기해서 화엄경 강설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제 하면 참선만 하는 줄 아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간경기도든 화엄경 대 법회든, 참선이든, 염불이든 서원을 굳게 세우고 정진하는 게 결제입니다. 학업을 하는 사람도, 농업을 하는 사람도, 기업을 하는 사람도, 평소에 하던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만큼은 뭔가 좀 확실한 기업을 하고, 농업을 하고, 사업을 하고, 학업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어도 결제입니다.
의상 스님은 한 해에 90일 동안 화엄경 대 강설법회를 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아끼는 제자, 훗날 큰 스님이 된 진정 스님과 연관이 있습니다. 진정 스님은 본래 서라벌 분인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매일 같이 땔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팔아서 그 돈으로 두 분이 살았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집안에는 논밭 한마지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먹을 쌀과 보리는 물론 곡식 한 알 없었습니다. 굳이 재산이라고 한다면 솥 하나였습니다. 어디가서 좁쌀 한 톨이라도 얻어오면 지어 먹어야 하니 솥 하나는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경 스님이 품팔이를 하러 나간 즈음에 한 스님이 집에 들어서서 시주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홀로 남았던 어머니는 “스님에게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며 “솥 하나 밖에 없습니다.”하고는 그 솥을 시주했습니다. 솥 하나 있어도 가난하고 없어도 가난하긴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신라의 대승이라는 거부도 이와 비슷합니다. 대승도 아주 가난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한 스님이 큰 법회를 여니 시주를 좀 하라고 하자 머슴살이해서 마련한 논 두어 마지기 시주 해버렸습니다. 논 두어 마지기 있으나 없으나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훗날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진정 스님이 돌아와 보니 솥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사연을 들은 진정 스님은 화를 내기는커녕 “어머니, 참 잘 하셨습니다”하고는 “멋 훗날 저도 출가를 하고 싶습니다.”했습니다. 어머니의 다음 한만디가 대단합니다. “무엇을 오래 기다리느냐? 당장 출가해라.”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나를 먹여 살린다고 출가할 마음이 있어도 말을 못했었구나. 부처님의 진리는 참으로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찰나 간에 지나가는데 언제 때를 기다려서 가느냐. 지금 당장 가라 이 말입니다.
진정 스님도 놀랐습니다. 평소 꿈꿔온 출가인데 이렇게 어머님이 선뜻 허락해 주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가 출가해야 하는데도 출가하지 못한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가 깨달음을 성취해서 나를 제도해라.”
위대한 성자가 탄생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불심이 대단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진정 스님이 출가한 지 3년 만에 그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부고를 접한 진정 스님은 고요하게 앉아 일주일간 추모 정진을 합니다. 참선 하는 스님은 부고를 접해도 따로 할 일이 없습니다. 참선 하는 사람은 추모의 정진을 하면 그 뿐입니다. 기도하는 스님 역시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면 됩니다. 간경 하는 스님은 부모님을 위해 경전 한 구절을 독경하면 되는 겁니다.
진정 스님은 어머니의 일을 스승인 의상 스님께 전했습니다. 그러자 의상 스님은 모든 제자를 데리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설했습니다. 이것이 결제입니다.
불가에서 국태민안을 위해서 일주일 동안 기도하는 불사를 많이 합니다. 전몰장병을 위한 천도재도 올립니다. 3일이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간절한 마음을 하지 않습니까? 이 모두가 결제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사업하는 사람이나, 학업 하는 사람이나, 기업 하는 사람도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는 마음으로 결제 하듯 임해야 합니다.
평소에 편안하게 사업한 기업인도 일 년에 두 번 씩은 기간을 정해놓고 처음 마음 낸 당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사업할 때 돈 100만원만 준다 해도 밤 12시에 뛰어나가던 그 심정으로 일을 하면 그 사업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이번 동안거 동안에는 여러분이 하시던 공부를 계속 이어나가시면 됩니다. 간경하시던 분은 간경을, 참선 하시던 사람은 참선을, 염불하시던 사람은 열불을 하십시오.
도인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겨드랑이 밑에 날개가 하나 턱 나와서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기를 바라겠습니까?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해 자유롭게 천하를 누비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오직 마땅히 검은 머리 있을 때, 청춘일 때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마땅히 열심히 정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천하를 자유롭게 노닐 수 있습니다. 날개가 없어도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삼매에만 들어가면 그것이 큰 수행입니다. 기도를 하든지, 경전을 열심히 읽든지, 참선을 하든지 간절히만 하면 삼매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본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제 중에는 바로 그러한 심정,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이 해가 가기 전에 한 시간이라도 더 간경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참선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기도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생은 순간이요, 찰나 간에 지나갑니다. 엊그제가 봄날 같았었는데 이제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는 모두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반환점을 지나 이미 내리막길입니다. 아무리 머리카락을 검게 하려 해도 속에서는 하얀 머리카락이 계속 나옵니다.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오늘은 결제 첫날입니다. 1년 365일이 힘들면 이 삼개월 동안에만이라도 간절하고 간절하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