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마그리트 (외 2편)
김혜선
당신이 번지점프를 하는 동안
범고래가 적도의 바다를 헤엄치는 동안
새로 발견된 행성에 마그리트라는 이름을 붙이는 식물학자도 있다
역설과 전복을 꿈꾸던 당신은 거꾸로 매달린 채
턱을 괴고 저녁 메뉴를 고르듯 별자리를 고르고
전갈좌인 당신은 공포와 환상을 눈 없이 바라보고
오늘 밤에도 술집 마그리트에는
실패한 혁명가들이 모여
유리창에 붙은 해를 깨뜨리고
밤을 낮이라 명명하고 싶지만
머리가 잘린 줄도 모르고
모자를 어디에 씌워야 할지 당황하다
서로를 버린다
이름 없이 떨어지는 별들이 왁자한 적도 밖으로
범고래는 사라지고
너는 네 자신에게 묻겠지
*내가 옳을까……, 내가 틀릴까?
아주 오래전
당신이 도망치다 붙잡힌 잔지바르 골목에서
노예들이 뛰어내린다
행성 마그리트가 주유소 간판처럼 흔들린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 「생애 단 한 번(Once in a lifetime)」.
왜 오늘 밤은 내일 밤과 다른가요
달을 한 바퀴 돌릴 때마다
차가운 귀 한쪽이 생기지
입김을 불어넣어 봐
건기가 지난 후에 꺼낼 수 있게
불길한 연애 같아, 출구도 없이
봄눈이 어린 유령의 발가락을 얼리네
잠이 온다고 말해야 하는데
신발이 신겨지지 않았어
손발이 묶여 식탁에 앉은 애인과
하얀 드레스에 피를 튀기며
서로의 표정을 뜯어먹었어
금방 썩어 버릴 비린내를
할짝할짝 혀로 핥았어
슬프거나 짓무른 밤의 포즈를
빨대로 힘껏 빨아먹었어
꽃처럼, 모가지를 뚝뚝 부러뜨리며 끝낼 수 없이 연애가 계속되었고
*잔다는 것과 잠든다는 것은 정반대의 열정이었어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쇼핑백과 공휴일
스웨터를 뒤집어 입은 여자는
사랑할 때 맥박 수를 알아
속눈썹을 숨 가쁘게 밀어 올리고
무의식적 욕망에 저항하는 척하지
뒤집힌 우산 아래서 헤어져 봤어?
금이 가는 말들로 건강에 해로운 엄마를 버티지만
지긋지긋한 상징 뒤에는 실재가 있다는 것도
사랑 다음은 썩은 고깃덩어리라는 것도 난 알아 엄마
엄마는 무척 개방적이야 핑거 스냅으로 지지를 표하지
우린 알람에 맞춰 사랑하면서, 딱딱 소리로 가득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엄마는 오벨리스크에 콘돔을 씌워
얼굴 없는 꽃들의 관능을 뒤집어 공포를 조장해
꽃다발을 들고 날아오른 애인의 생일날
현실은 환상이라는 것도 난 아는데
스웨터를 뒤집어 입은 불안한 엄마는
쇼핑백 속에 오늘도 고깃덩이를 낳고 있어
작은 지옥이 사회적 통념을 견디고 있잖아
엄마가 조장한 공포를 쇼핑백이 포장하잖아
랄라 즐거운 공휴일이 오면 날아올라
죽은 엄마에게 지긋지긋한 콘돔을 씌워야겠어
⸻시집 『왜 오늘 밤은 내일 밤과 다른가요』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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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선 / 거문도에서 태어나고 통영에서 성장. 2009년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왜 오늘 밤은 내일 밤과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