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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로망스
바이올린 Tasmin Little
피아노 Piers Lane
이 곡 중간부분의
바이올린 중음주법 부분과
끝부분의 피아노
연주가 좋다.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첼로)
카르멘 피아찌니(피아노)
중후한 첼로음이 좋다.
나인스 게이트(The 9th Gate)
조선호텔 미슐랭 프렌치 레스토랑
나인스 게이트
웨스틴조선호텔 내
9th Gate
서울로 통과할 수 있는
9번째 문이란 뜻이다.
1924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양식당
팜코트(Palm Court)가
그 전신이라니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손탁호텔(1902-1917)은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
1902년 10월에 세워진
서양요리와 호텔식 커피숍 경영의
효시가 되었다.
앙투아네트 손탁
(독일어: Antoinette Sontag
안토아네트 존타크,
1854년 ~ 1922년)은
대한제국과
러시아 제국에서 활약한
독일인 통역사이며,
손탁호텔의 지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어 이름은 손탁(孫澤)이다.
한동안 조선 최초의
최고급 호텔로 알려졌지만,
제물포의
대불호텔(1888-1907)이
발굴되면서
‘조선 최초’라는
호칭을 잃었고,
조선호텔(1914-1945)이
개업하면서
‘최고급’이라는
수식어도 잃게 되었다.
조선호텔의 첫 이름은
경성철도호텔이었고,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주요 도시에 건설한
철도호텔 체인의 하나였다.
부산철도호텔(1912년 7월 15일)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고,
이어서 신의주
(1912년 8월 15일)와
경성(1914년 10월 10일),
금강산의 온정리
(1915년 8월 10일)와
장안사(1918년 7월 1일),
평양(1922년 10월 30일)에도
철도호텔이 세워졌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직접 운영했던
철도호텔들 중에서
경성철도호텔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1914년 2월 24일의
매일신보는
이 호텔이 완공되기도 전에
그 이름이 당국에 의해
조선호텔로
개칭되었다고 보도했다.
경성철도호텔이
조선호텔이 된 것은
그것이 조선 전체를 대표하는
호텔이 될 것이라는 암시였다.
1937년 2월 19일 오후
최승희가 조선호텔의
프랑스식 식당 팜코트의
선룸(Sun Room)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과연 조선호텔은 대지 6,750평,
건평 583평으로 건축됨으로써
약 1,200평의 대지에 세워졌던
손탁호텔보다 5배 이상
큰 호텔이 되었다.
조선호텔을 짓기 위해
대한제국이 출발을 선언했던
원구단의 일부를
헐어내기까지 했다.
또 손탁호텔은
지상 2층에 불과했으나
조선호텔은
지하1층 지상4층의 건물이었다.
객실 수에서도
손탁호텔은 귀빈용을 포함해
25개에 머물렀으나,
조선호텔은
2층부터 4층까지
69개의 객실을 구비해
최대 108명의 투숙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대였다.
도쿄 데이고쿠 호텔
도쿄 제국 호텔
조선 황실이 손탁호텔을
영빈관으로 사용했듯이
조선호텔은 총독부의
영빈관이었다.
이는 일본제국의 영빈관으로
사용되던 도쿄의
데이고쿠(帝國)호텔과
맞먹는 위상이었다.
조선호텔은
‘조선 최초’는 아니었지만,
‘최대’이자 ‘최고급’ 호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조선호텔의 1층에는
식당과 로비 라운지,
끽다점과 바,
당구실과 댄스홀,
연회실과 도서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 세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곳이
식당과 라운지였다.
일반인의 접근 가능성이
가장 높고 잦았기 때문이다.
1924년에 개업한
프랑스 식당 팜코트
(Palm Court)는
경성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다.
팜코트 식당에는
선룸(Sun Room)이라는
일광실이 있었다.
이는 호텔 건물 뒤편의
1층 베란다 부분을
유리로 둘러싸서
매우 밝고 따뜻하게
만든 곳이다.
선룸의 내부에는
야자나무 등의
열대 식물로 장식을 했으므로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풍겼다.
팜코트에서는
플랑베르 스테이크와
푸아그라, 달팽이 요리 등의
정통 프랑스 요리를
주문할 수 있었고,
캐비어와 샴페인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가장 즐겨한 팜코트의 메뉴는
프랑스식 ‘양파수프’와
‘커피’였다고 한다.
팜코트의 커피와
양파수프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경성에서 모던보이나
모던걸 대접을
받기 어려웠다고 한다.
환구단쪽에서 바라본
조선호텔 후면
호텔 1층의 유리창문이
즐비한 곳이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의 썬룸이다.
조선호텔이 양식당을 개설하면서
‘미국식’도
‘독일식’도
‘러시아식’도 아닌
‘프랑스식’ 식당을
개업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조선호텔을
최고급 호텔로 운영하려는
총독부 철도국의
의사결정권자들이
‘프랑스 요리’의
세계적 명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더해 손탁호텔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호텔이 개업할 무렵
손탁은 이미 조선을 떠났지만,
조선 황실과 한성빈관의
서양식 요리를 주도했던
손탁의 전공이 프랑스 요리였다.
손탁이 한성을 떠난 후
한성빈관을 인수한 사람은
프랑스인 보에르가
손탁호텔의 식당을
프랑스식 요리를 중심으로
이어갔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상류층 인사들과
경성 주재 외교관들은
손탁호텔의 프랑스식 요리에
친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팜코트 썬룸의 커피는
프랑스식 커피가 아니었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20년대 프랑스식 커피는
이미 에스프레소가 주류였다.
압착식으로 추출한 진한 커피를
작은 잔에 담아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의
로만 문화에서도 유사했다.
팜코트 썬룸의 커피 제조 방식은
압착식이 아니라 여과식이었다.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드립 커피’였던 것이다.
조선호텔(1914)이
문을 열었을 때나
팜코트(1924)가
개업했을 때까지도
일본이나 조선에는
압착식 커피 제조법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01년
밀라노의 루이지 베체라가 발명한
에스프레소 머신 설계도와
최초의 시제품
압착식 커피 제조기가
일반에 선보인 것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루이지 베체라(Luigi Bezzera)의
즉석커피 제조기(1901년)였다.
증기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이 기계는
1902년 특허를 얻었고,
1903년 데시데리오 파보니
(Desiderio Pavoni)에 의해
상품화되었다.
베체라와 파보니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고,
주문을 받아가며
1시간에 1천 잔 이상의
커피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에스프레소 머신은
1906년
밀라노 산업박람회에 출품되었고,
참가자들에게
즉석 '카페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나눠주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즉각 유럽에 확산됐지만,
미국에는 1925년에야 도착했고,
팜코트가 개업한
1924년까지도
도쿄나 경성에 전해지지 않았다.
최승희의 팜코트 썬룸
사진을 보면
그녀의 손에 들려진 커피 잔은
에스프레소 잔이 아니라
드립커피를 마시는
보통의 커피 잔이다.
1906년
밀라노 산업박람회에
선보인 베체라-파보니의
에스프레소 머신
최승희의 커피 사진 중에는
경부선 기차 아카츠키의
식당차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이 사진에서도
최승희의 커피 잔은
선룸 사진의 커피 잔과 같다.
당시 기차의 식당차와
조선호텔의 식당은
철도국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사용하던 식기가
모두 같았다.
팜코트가 1924년에
개업한 것은
경성 커피사에서도 중요하다.
이때부터 끽다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경성 다방 성쇠기
(청색지, 1938년 5월호)'는
후타미(1926)와
백합원(1926)과
금강산(1928),
나카무라(1928)와
메이지제과(1930) 등의
일본인 끽다점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고 했다.
조선인들도 카카듀(1928)와
멕시코(1929)와
낙랑파라(1931),
플라타누(1932)와
비너스(1932)와
제비(1933) 등을 개업했다.
1940년경
경성의 끽다점은
105개에 달했다.
주류를 파는 ‘바’와
여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287개를 더하면
경성에서 커피를 파는 집이
4백개에 달했다.
이들 소규모 민영 끽다점들은
조선호텔의 커피 서비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모방할 것은 모방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급열차 아카츠키의 식당차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최승희
조선호텔처럼
시내 끽다점들도
여과식으로 커피를 만들었고
아마도 조선호텔에 못지않은
양질의 커피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팜코트 썬룸은
실내에 야자나무를 배치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경성의 다른 끽다점들도
그 ‘이국성’을 모방했다.
카카듀는 간판대신
하와이식 바가지를
3개 걸었고,
멕시코는
옥외에 커다란 쇠 주전자를
걸었는가 하면,
비너스는 실내 한가운데에
밀로의 비너스 상을 세웠고,
낙랑파라는
실내의 널마루 위에
톱밥을 깔아 사막을 연출했었다.
한편 경성의 끽다점들은
조선호텔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제공했다.
음악과 지적 대화였다.
커피와 음악과 대화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은
글과 그림이 되었고,
노래와 영화가 되었다.
일제 당국은
경성의 끽다점들을
‘룸펜 집합소’로 몰아가곤 했다.
신문과 잡지도 끽다점을
‘직업 없는 젊은이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곳’
정도로 폄하했고,
하루종일 의자에 붙박여서
커피를 마셔대는
‘끽다족’을
벽에 걸린 ‘그림’이라거나
물만 먹는 ‘금붕어’라고
비아냥거렸다.
1937년 2월 18일의
조선일보는 ‘바’와
‘마작 구락부,’
‘당구장’과 함께
‘티룸’을
‘건전한 시민’이라면
가지 말아야할 곳으로 꼽았다.
조선호텔의 썬룸...
실내에 야자나무와
열대식물 화분을 배치해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끽다점을 배경으로 하여
태어난 문학과 예술은
암울한 식민지 시기의
증언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조선호텔의 25전짜리 커피대신
시내 끽다점의 10전짜리
커피를 마셔가며
글과 그림, 사진과 노래와
영화를 남겼다.
이 작품들에는
침략자에 대한 저항의 숨결과
생존을 위한 체념의 한숨이
함께 녹아들어 있었다.
그같은 체념과 저항의식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삶의 흔적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나인스 게이트
서울 중구 소공로 106 조선호텔 LF
런치: 11:30-15:00
(주말, 공휴일 15:30까지)
디너: 18:00-22:00
(주차 가능)
우선 들어가기전
예약한 시간이 조금 남아
환구단을 한번 둘러봤습니다.
그동안 조선호텔에
방문하면서 환구단을
가까이 본 적은 처음이네요.
환구단과 조선호텔의 모습.
나인스 게이트에서는
이 환구단이 바로 보입니다.
문화재를 가까이서 보며
식사를 한 건 처음인 거 같네요.
조선호텔은
정말 백만년만에 온거 같아요.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호텔 내부에요.
휴가를 호캉스로 오신 분들이
많아보였어요.
가족 단위로 놀러온 분들
부러웠어요!
포스가 느껴지는
나인스 게이트 입구에요.
촌스러운 체리색이 아니라
중후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8월말까지 트러플 메뉴를
운영한다고 하니
트러플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보시길...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불리는
귀한 재료로 꼽힌다.
강하면서도 독특한 향과
씹을 때의 질감이 매력이라는 설명.
땅속 30cm 이하 깊은 곳에서 자라는데
적당한 크기로 자라기까지는
7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1kg에 3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높아
‘땅속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트러플이 비싼 이유는
인공재배가 안되고
생산량이 적어
희소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부도 좌석이 꽤 있는데
금새 꽉 차더라고요!
가실 분은 필히 예약을 하셔야
할 거 같아요.
세팅된 자리에요!
마스크 넣을 봉투도
준비해주셨고,
가방과 짐을 별도로
올려둘 수 있게끔
마련해주셨어요.
메뉴에요!
디너 코스는 이렇게 3가지로
구성되어 있고요,
저희는 Heritage,
Black Truffle Delights
2가지를 주문했어요.
오늘은 나름의 기념일이니
스파클링 와인
그리고 까베르네 소비뇽 주문!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
까베르네 소비뇽
Marques de Casa Concha,
Cabernet Sauvignon
레드 와인, 2016년
플레지르 드 메를르, 까베르네 소비뇽
Plaisir de Merle,
Cabernet Sauvignon
레드 와인, 2003년
델리카토, 까베르네 소비뇽
Delicato, Cabernet Sauvignon
레드 와인, 2015년
식전빵은 매우 담백했어요.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더라고요.
맛있어서 델리 판매 여부 물어보니
유사한 빵은 있으나
똑같지는 않을 거라 하시네요.
Heritage
Black Truffle Delights
Heritage는
나인스 게이트 주방장 추천 수프로
호박 수프가 나왔어요.
평소 먹는 호박 수프처럼 단맛은
전혀 나지 않았고요.
제 입맛엔 담백했어요.
Black Truffle Delights 스프는
블랙 트러플을 곁들인
차가운 셀러리악&감자 수프
차가운 수프는 신선했어요.
호박 수프보다 더 부드럽고
진한 맛이었네요.
다음 Heritage 코스는
닭가슴살, 리코타치즈,
적양파로 버무린
그린 빈스 샐러드에요.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죠!
그린 빈스도 너무 신선했고,
좋아하는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잘 먹었어요.
Black Truffle Delights는
진한 풍미의 트러플 버터 소스와
파마산 치즈로
맛을 낸 탈리올리니.
탈리올리니는 2mm의
가느다란 파스타를
얘기하는 거라고 합니다.
면의 식감이 정말 독특했어요.
면이 어쩜 이렇게 탱글할 수 있지?
놀랐어요.
Heritage의 메인은
치폴레-그레비 소스의
안심 스테이크와
부드러운 브로컬리 퓌레에요.
스테이크 굽기는
미디움 웰던으로 주문했고요,
역시나 안심은 부드러움의 진리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개인적으로 와사비 곁들여 먹으니
더 맛있었어요!
Black Truffle Delights의 메인은
샤프론 아이올리와 피스타치오
등심 스테이크입니당!
등심은 겉바 속촉으로
너무 매력 있었고,
샤프론 아이올리는 감자 퓌레처럼
담백하니 부드럽고 고소했어요.
스테이크는 두 메뉴 모두 대만족!
커피도 주셨고,
디저트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에게 선물을 건넸지요.
역시 선물은 현금이 최고!
드디어 마지막 디저트!
이렇게 센스 있는 레터링의
망고케익까지 주셨어요.
너무너무 감동.
2시간 가까이 코스를
즐기는 동안
밤이 깊었네요.
창가의 풍경인데요.
바로 앞에 물이 있어서
빗방울 떨어지는 게
매우 잘 보이네요.
갑자기 스콜처럼
폭우가 쏟아졌어요.
그래도 이렇게
안에서 밖을 보면
평화로운데,
밖은 폭우에 습하고
전쟁터같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에 발길이
안 떨어졌어요.
조선호텔은 이곳만의
중후하고 고상한
분위기가 있어요.
나인스 게이트도
젊은 커플들보다는
연배 있으시거나 가족 모임을
주로 하시더라고요.
전 그런 분위기가 좋았어요.
요즘 트렌디한 호텔들이
많이 생겼지만,
전통과 기품이 느껴진달까요?
특별한 날 조용하게
식사하시고 싶다면
강추에요!
회사가 조선호텔 앞
소공동 서울센터빌딩에 있어서
1976년부터 2014년까지
38년간
독일, 영국, 벨기에,
프랑스, 스웨덴, 미국,
일본 등지에서
방문하는 회사 고객 외국인들을
주로 조선호텔
Business Class Room에
예약했다.
Beef Steak
필레미뇽(Filet Mignon,
연한 안심 스테이크)
텐더로인(Tenderloin,
안심 스테이크)
서로인(Sirloin,
등심 스테이크)
티본(T-Bone,
T자뼈 스테이크)
홍포도주(Red Wine)
바닷가재(Lobster)
백포도주(White Wine)
회사 고객들을
조선호텔의
프랑스식 나인스 게이트,
이태리식 베키아누보,
뷔페에 초대해서
식사를 했는데
보르도 또는부르고뉴 포도주를
곁들이고
마지막에
꼬냑으로 건배하면
두 사람이어도
500,000원을 상회한다.
그래서
주로 뷔페를 갔다.
프랑스에서는 푸아그라는 물론
달팽이와 식용 개구리 요리도 먹었으나
비위에 맞지 않았다.
살아 있는 굴에
레몬을 뿌려 몸을 움추리면
먹는다.
샤벳(Sherbat)으로
입가심 하고
메인 디쉬를 먹는다.
조선호텔에서는
우리 회사를
우수 고객이라고
점심 식사도 초대하고
판촉행사에도 초대했다.
1980년경 내 생일날에는
조선호텔에서
조식 포함 Standard Room
1박 무료 숙박권을 주어서
부부동반으로 하루 쉬고
조식 후 Counter에서 주는
생일 Cake를 들고서
Cable Car 타고
남산 Tower에 올라갔다.
The Westin Chosun
입회비, 연회비 없는
VIP 카드가 있어서
서울과 부산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식음료 10% 할인 혜택 받고
Point로
조선호텔 나이트 가운도
받았다.
1981년
200년 역사를 기진
독일 회사의
왕복항공권 포함
4박5일 독일 초청 시에는
보쿰, 뒤스버그,
벨기에 부뤼셀과 지방의
회사 방문
영국 회사 방문 시에는
김포 - 센프린시시코(2박3일) -
뉴욕
피츠버그 미국 본사 방문 후
히스로 공항에서
시계와 미제 파커 마년필
(Parker UL, 1981, Made in U.S.A.,
파커 51은 단종)과
파커 퀸크(Quink) 잉크 한 병도
샀다.
외국 회사와 교신하는
서신과 영수증에
서명하기 위해서이다.
도장은 쓰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도장을 쓰는 나라는
일본, 한국과 대만뿐이다.
1945년 9월 2일 아침,
동경만(灣)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U.S.S. ‘Missouri’, BB-63) 함상에는
92년 전
일본을 무력으로 개항 시킨
페리 제독의 기함에 걸렸던
바로 그 성조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미 태평양함대 미주리 함상에서
맥아더 장군이
일본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6개의 펜을 사용했다.
평소에 사용하던 만년필 외에
5개의 펜을 더 사용한 것인데,
이는 종전 문서에 서명한
펜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5개를 더 만든 것이다.
이중 2개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항복조인식에 초대된
조나단 웨인라이트
미 육군 중장과
아서 퍼시벌
영국 육군 중장에게
각각 1개씩 선물로 주어졌다.
1개는 아들에게 물려줬고,
1개는 웨스트포인트
미국육군사관학교에 보냈고,
마지막 1개는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 보냈다.
맥아더라는 인물의
치밀함과 동시에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이다.
여담의 여담으로
이 만년필은 모두
Parker사의 듀오폴드 만년필로,
이 때문에 파커사는
맥아더를 기리는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했다.
벨기에는
권총(안중근 의사가
일본 제국의 정치가이자
초대 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권총도 벨기에제 권총)
다이야몬드, 초콜렛이
유명하다.
벨기에 회사 방문 시
하와이 2박3일은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대한항공 연계호텔에
투숙했다.
L.A. Bonaventure Hotel
L.A. 2박 3일은
조선호텔에서
예약해 주었는데
Bonaventure Hotel
이었다.
파리 몽파르나스 호텔은
층수가 높을수록
객실료가 비쌌다.
56층 중 50층에 투숙했는데
저층의 두배 가끼이
비쌌다.
그후로 객실료를 확인하고
Check In했다.
뉴욕 2방3일은
35번가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파리에서 브뤼셀 구간은
쌍발 프로펠러기였다.
(그랜드 케년 관광은
단발 프로펠러기)
400년 역사를 가지고
세계 최초로 대포를 발명한
스웨덴 회사의
왕복 항공권 포함
4박5일 초청 시
벨기에 리에즈
스웨덴 스톡홀름,
프랑스 리옹 방문
벨기에 회사 방문 시
스위스 츄리히,
이태리 로마(직항 없음),
독일 베를린(직항 없음),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경유하여
브뤼셀
포항, 부산(김해공항), 울산,
광양(여수, 사천 공항), 대구,
독일, 영국, 미국, 벨기에, 프랑스,
스웨덴 등 출장으로
주로 대한항공(모닝캄 회원)
간혹 아시아나를
300회 이상 탑승하고
일본, 미국, 카나다, 호주, 뉴질렌드
중국, 태국, 캄보디아, 대만 등
해외 관광여행으로
대한항공 300,000
아시아나 50,000 가량
마일리지가 적립되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사용
인천 - 파리 - 인천: 60,000
인천 - 츄리히, 파리 - 인천:
60,000
파리 - 인천 보잉 747
2층 덱크 1등석 업그래이드: 30,000
인천 - 암스텔담, 파리 - 인천
부부동반: 120,000
국내선 Business 좌석
업그레이드 등
아시아나 마일리지 사용
인천 - 제주 - 인천 2회 등
양사 잔여 마일리지가
15,000 있는데
과거에 적립되어 유효기한이 없고
가족들도 사용할 수 있다.
가족들도 조선호텔 뷔페를
제일 좋아한다.
작은 아들 약혼식은
조선호텔 중식당에서 했고
내 회갑잔치는 하지 않고
북경, 백두산 관광을 갔지만
칠순잔치는
조선호텔 일식당에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