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와 존 마이클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
피터팬이 똑딱악어의 밥으로 던져버린 후크도 잊혀졌습니다.(피터팬은 자신이 죽인사람은 곧 잊는다고 합니다)
피터팬만이 영원한 젊음의 세계 네버랜드에 남아 소년의 마음으로 웬디를 찾아 가끔 우리의 세상에 내려올뿐입니다.
오랜만에 피터팬을 읽고 감명받아 쓴글입니다. 어릴때 읽었던 피터팬과 사뭇다르게 다가오네요.
셜리는 꿈을 꾸었다. 그건 잠들기 직전에 읽은 동화책의 내용으로, 영원한 나라 네버랜드와 피터팬의 이야기였다.
셜리의 창문을 타고 피터팬과 그의 그림자가 살그머니 들어왔다. 피터가 잠든 척 누워있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것이 느껴졌다.
"피터팬!"
셜리는 망설이지 않고 벌떡 일어나 피터팬을 소리쳐불렀다. 피터팬은 어리둥절한얼굴로 저멀리 엉덩방아를 찧었다.
셜리는 당장 달려가서 피터를 일으키려고 손을 쭉뻗었으나, 피터는 경계의 눈초리로 작은 단검을 뽑아들고 셜리의 손을 피했다. 셜리는 조급 섭섭했으나 피터가 무섭지는 않았다.
"피터 안녕! 난 해적도 인디언도 아니야. 그냥 앤 셜리 라고해."
"해적? 그게뭐지?"
피터는 심통난 듯이 물었다. 세상에! 피터가 해적을 모르다니! 정말 말도안되는 동화였다.
"해적을 모르다니!"
(이말을 하자 피터는 자존심이 상한것같았다. 셜리는 피터가 자존심이 세고 자신이 모르는걸 남이 아는것을 싫어하는 소년이란걸 기억하고 급히 말을 이었다.)
"네가 용맹하게 무찌른 후크선장과 그 패거리들 말이야.넌 웬디의 목숨을 구했잖니!"
피터는 자신이 용맹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듯 우쭐거리는 태도로 변했다.
"내가 용맹한건 사실이야. 하지만 난 후크선장이 누군지 몰라. 그보다 넌 나를 어떻게 아는거지? 혹시 너는 웬디의 딸이니?"
"아니야.. 우리 엄마아빠는 네버랜드와 아무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야."
네버랜드의 이름을 꺼내자 피터는 유연한 동작으로 허공에 떠오르더니 셜리 주위를 빙글빙글 날았다. 피터는 콧잔등을 찡그리고 셜리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썼다.
"피터, 어지러워!"
"나는 너를 몰라! 하지만 넌 나와 네버랜드까지 알고 있지. 나는 내가 죽인사람은 금방 잊지만, 넌 살아있잖아. 넌 대체 누구지?"
셜리는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쁜듯이 웃었다. 그 모습은 굉장히 사랑스러워서 피터마저도 잠시 도는걸 멈추었다.
"아, 피터! 너는 정말 동화책속의 그대로구나. 널 만나서 정말 기뻐. 넌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너의 이야기를 몇번이나 읽으며 널 만나기를 기다렸어."
"나의 이야기?"
"음..그렇지! 잠시만 기다려 피터!"
피터는 셜리가 침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다. 셜리는 폭신한 베게 뒤에서 무언가를 경건하게 꺼냈다. 셜리는 '피터팬' 이라고 검은 글자로 박힌 그림동화책을 소중히 껴안고 피터에게 달려왔다.
피터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뭐지?"
"피터, 너도 알다시피 이건책이야."
셜리는 부드럽게 웃었다. 피터는 기분이 좋아져서, 그래, 나도 알다시피 그건 책이지. 하고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셜리는 피터를 다루는법을 조금 알것같았다.
"여기에 너와 네버랜드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 있어. 난 이걸 매일 밤읽고 또 읽으며……"
"이건 이야기인거야? 그럼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줘!"
피터는 눈을 빛냈다. 셜리는 당황해서 눈만 깜박였다.
"..피터, 하지만 이건 너의 이야기인걸?"
"나의 이야기지만 난 몰라. 후크선장과 그 해적들을 내가 용맹하게무찌른 그 얘기를 해줘. 어서!"
피터가 하도 완강하게 말하는 덕분에,(거의 명령이었다)셜리는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피터는 후크를 죽이고, 그의 옷을 입고 후크의 파이프를 물고 어두침침한 선실에 앉아있었어요. 피터는 그날밤 악몽을 꾸었어요. 웬디는 피터를 꼭 안아주었답니다."
셜리는 항상 이부분을 읽을때마다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셜리는 시큰해져오는 코끝을 두손가락으로 한번 누르고는 애써 밝게 웃으며 피터를 바라보았다.
"피터! 여기까지가 해적모험의 끝.."
피터는 무릎을 세운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셜리의 책읽는 소리가 멈추자, 아주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갸냘픈소리가 들렸다. 그건 바로 피터가 흐느끼는 소리였다. 주의깊게 듣지않으면 자칫 파묻힐정도로 작고 여린소리, 피터는 그렇게 흐느끼고 있었다. 셜리는 잠시 입술을 깨물며 피터를 보고 있다가, 잠시 웬디처럼 피터를 안아주기로 결정했다. 셜리가 피터를 어르듯이 안자, 피터는 셜리의 어깨에 눈물로 젖은 얼굴을 기대왔다. 셜리는 피터의 살이 따뜻한데에 놀랐다. 당연한 사실에 왜놀랐는지는 놀란 자신도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지만, 피터의 피부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 피터는 허깨비나 이야기속인물이아니라 살아있는 소년이라는걸 깨달았다.
다음날 아침, 셜리는 쓸쓸한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토록 생생했던 꿈은 처음이었다. 껴안았던 피터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느껴지는것같았다. 셜리는 푹신한 베게뒤로 손을넣어 그림동화책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동화책이 없었다. 순간 셜리는 정신이 버쩍들었다. 피터가 꿈속에서 기대 눈물을 흘렸던 어깨부분의 잠옷이 축축한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이 피터에게 읽어준책은 자신의 스탠드 밑, 피터와 책을 읽은곳에 펼쳐져 있었다. 셜리는 붉어진 얼굴을 하고 어젯밤 피터팬이 들어온 창문으로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셜리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책이있는곳으로 걸어간 셜리는 두눈을 땡그랗게 떴다. 그림동화책의 피터와 후크가 싸우는 모습이 그려진 페이지가 찢겨나가고 없었다. 셜리는 두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꿈이 아니었어! 피터는 왔다간거야! 셜리는 경건하게 동화책을 원래있던곳인 베게 뒤에 넣었다. 셜리는 피터가 다시 오리란걸 확신할수 있었다. 피터는 날 잊지 않을것이다. 내 동화책의 일부를 가져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