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늘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 세트장 준공식 기사의 일부부터 올립니다.
재미-교훈 다 잡았다…공영성 강한 드라마
‘대왕의 꿈’은 일차적으로 역사기록에 의거하지만, 기록 속 행간의 의미를 현재적으로 새롭게 해석해 더 사실적인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청자들에게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하고, 성인 시청층의 역사의식에도 어필할 수 있는 공영성 강한 드라마를 추구한다.
신라가 주도했던 삼국통일이 사대주의적이고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진 시청자들에게 신라의 진정한 힘과 의미를 되새겨준다. 신라가 거대한 당제국과 싸우는 과정에서 고구려, 백제유민들과 통합의식을 만들어내고 고구려유민들의 치열한 대당투쟁을 적극 지원, 발해 건국의 숨은 역할을 했다는 점 등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김유신을 비롯한 당시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영웅들의 삶과 죽음속에 깃들어진 대의명분과 비전, 충정과 의리,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보여준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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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안에 짙게 표시한 부분이 이 사극에 나온다 합니다. 신라가 '통일'을 했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역사문 이전 글들을 검색해봐도 이 점은 명백합니다) 최근 서영교 선생의 '나당전쟁사'나 노태돈 선생의 '삼국통일전쟁사' 등의 책에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고자 하기도 하지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통일'신라라는 기괴한 용어가 버젓이 왕조 이름으로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한 왕조의 이름 앞에 '통일'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하다죠? 물론 저도 당시 신라 입장에서 살아남기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오늘날까지 그걸 터무니없이 미화할 필요가 있느냐하는거죠. 역사에서 잘한것이든 못한것이든 다 교훈이 있게 마련인데 남북이 분단되고 자꾸 북한을 고구려, 남한을 신라에 대입하려는 일부 인간들때문에 역사가 왜곡된다는 기분이 듭니다.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제가 역사문 여러분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과연 신라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철저한 '통일플랜'을 가지고 당나라를 가지고 놀며 '통일'을 완수했느냐는 겁니다. 실제 기록을 보면 오히려 당이 신라를 이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중에 신라까지 집어삼키려고 하자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신라가 필사적으로 이를 막고 국제적인 정세도 운이 따라줘서 간신히 대동강 이남의 땅을 보존한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까웠던 것이 아닌가요? 과연 신라가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그렇게 김춘추의 도박외교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대담하고 치밀히 진행했을까요? 게다가 결과적으로 발해 멸망 이후 5백여년이 지나서야 한국사의 무대가 겨우 오늘날 한반도의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이 따지고 보면 다 신라 덕택(?)이 아니었을까요? 더구나 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포용하기는 커녕 당나라와의 싸움이 끝나자 곧바로 이용가치가 끝난 이들 유민들을 차별해 나중에 '후삼국'을 이끌어낸 신라의 정책을 과연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과연 '민족문화의 형성' 어쩌구만으로 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 신라의 삼국'통일'인데 위의 기사처럼 신라를 무슨 전지전능한 시점으로 국영방송의 대하드라마에서 묘사할 것 같아 개인적으로 좀 씁쓸한 점이 없지 않네요.
첫댓글 저도 통일이라는 단어는 좀 이상하더군요. 그렇다고 신라의 고,백 멸망을 비화하는건 아닙니다. 분명 신라는 대단한 일을 해냈죠. 그러나 통일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대단하게 할려고 한 의지도 없었고, 실제로도 없었죠. 7세기 동북아 세력재편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아닌 신라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회오리속에서도 살아남아서 영토를 넓힌 당시 신라 지도자층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신라의 입장에선 분명 영토를 넓혔지만 그 과정에서 아찔한 순간도 많았죠. 오히려 김춘추의 그 잘난 '외교'때문에 한민족 자체가 없어질뻔했으니...사실 그 넓힌 영토도 진흥왕 수준을 회복한데 그쳤지만 말이죠. 여담입니다만 '대왕의 길' 제작발표회 사진을 보니 때깔이 확실히 근초고왕이나 광개토태왕때와는 틀리더군요. 우스갯소리로 현 정권을 쥔 영남패권주의자들이 신라사극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앞선 두 사극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말까지 돌 지경이니 원...ㅋ 그럼에도 신라를 한국의 미래 모델로 삼자는 말까지 하는 작자들도 적지 않죠. 정말 제정신인지...진정한 한민족의 통합은 아무래도 '신라'가 아닌 '고려'가 이룬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후에 한 행동을 보면 삼국-좁게 보면 백제 지역이지만-의 영토와 유민을 신라 체제 안으로 편입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영토는 줄어들 수도 늘 수도 있는 거고,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또 너무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라가 한반도 정치체를 통합하지 않았더라면, 고려가 후백제나 신라를 통일의 대상으로 보았을까요? 신라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논의가 조금씩 치우치는 점이 아쉽습니다.
......또 요새는 지역감정 놀이에 편승해서 경상도 흉노족 드립을 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그런거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주지하다시피 신라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국사에서 민족통합의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또다시 신라처럼 강대국에 지나치게 굽신거리고 위험천만한 과정을 거쳐 결국 본전도 못찾는(오늘날 한민족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당시 신라의 입장에선 뭐 결과적으로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했겠죠 ㅋ) 그런 역사를 되풀이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신라가 발해한테 대한 태도만 보더라도 고구려를 포용한다는 정책도 위선임이 드러났구요. 대표적인게 제2차 나당연합군에 참가해 발해의 남쪽을 치다가 패배한 행위가 있지요.
저는 신라의 '통일'이 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고려는 자신이 목표로 했던 '삼한일통'의 영토적 통일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그것 하나만 봐도 고구려땅을 거의 다 날려먹은 신라와는 비교할 수 없죠. ㅋ 그것에 대한 근거는 역사문 지난글에도 쌓여있으니 한번 검색해보시구요...님은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전제하에 글을 전개하시네요. 그러면 우리의 토론은 평행선을 달릴뿐이니 제 글에 댓글 그만 다셨으면 합니다. 시간낭비 논쟁은 피차 피곤해질뿐이니깐요. 그리고 김유신이 쌀배달한게 무슨 자랑입니까?
신라의 통일에 대해서는 늘 이야기가 오갈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기준을 보면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보느냐, 혹은 그 당시 과거의 관점에서 보느냐에서 주로 차이가 나더군요. 현재의 입장은 이후의 전개과정도 다 알기 때문에 미리 답안이 나와있다면, 그 당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답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답을 찾아가느냐에 초점을 맞추니깐요. 다만 신라의 통일은 누구나도 인정하듯이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된 것은 사실이며, 고려는 적극적인 통일을 원하고 시행 조건이 더 나았다는 점 또한 사실이겠지요.
터무니없는 부정이 터무니없는 미화보다 나은건 뭘까요?
검색을 해 보니 첫방송이 9월 8일이던데...대선이 12월 19일이고....참 어이가 없네..방영되는 기간도 직간접적으로 홍보용사극 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더러,,제작의도 또한 너무 노골적이넹.. 거참 묘하네....
성과를 낸 국가의 성과를 단순히 '운' 이라는 식으로 상황논리로 몰고 가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긴 대 전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획적' 으로 (발생한 예는 있어도) 진행된 예는 없으며, 또한 운만으로 성과를 낸 국가도 없습니다. 신라의 경우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것에서 당나라의 역할만 강조하고 신라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그러면 왜 신라의 도움이 없었던 그 이전에는 당나라가 백제나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못했는가' 에 대해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신라가 가세함으로써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다면 고구려, 백제 멸망에 있어 신라의 비중이 작았다 말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나아가 여기서 말이 나오진 않았지만,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목표를 달성한 것에 대해서도 토번의 영향을 너무 강조하는 견해도 있는데 우리 역사를 보면 상황이 유리한데 막상 행동하지 않아서 기회를 놓친 예들이 많이 보입니다. 상황이라는 건 이와 같아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이를 이용할 주체적 역량과 의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좋은 기회가 있었다면, 기회 덕분일 뿐 그 자가 잘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보다는 그 자가 기회를 적극적으로 잘 이용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왕건의 고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후백제가 내분을 겪어서 쉬운 상대인 것처럼 말하는 건 적절한 지적이 아닙니다.
후백제가 내분을 겪은 건 주로 후백제 멸망 직전의 예외적인 이야기일 뿐, 그 이전의 후백제는 오히려 고려를 압도하는 상대였습니다. 몇 번이나 고려가 크게 위험해지거나 심지어 왕건이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지요. 고려를 정벌하여 평양성에 활을 걸고 대동강의 물을 말에게 먹이겠다는 견훤의 말은 허언이 아니라 그만한 역량을 갖춘 발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후백제의 기세높은 시절을 견뎌 내었기에 왕건이 끝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나 국가들 중 무가치하게 운빨 하나로만 성과를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역사가 운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들 하십니까?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했다는 비난이 일어나기는 하나 '쪼가리 통일'이나마 역사적 공로는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더 비난 받아야할 일은 고구려 영토의 회복의지라든지 북방으로의 진출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려는 명실에 맞는 통일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독자의 힘을 바탕으로...고려는 거란 등 외침이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만주지역이 고구려 영토임을 내세우고 그 회복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고려는 고구려를 정통성으로 내세우고 끊임없이 북방진출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교훈이 크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시기에는 '한민족'이라는 의식자체가 없었습니다. 신라 입장에선 백제나 고구려나 '타국'이었을 뿐이었죠. 그리고 신라가 당제국을 끌어들여서 불완전하게 통일했다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 당시 신라는 백제 의자왕의 맹공으로 낙동강 이서 40여 성을 잃고 길목인 대야성까지 함락당했다가 겨우 찾는 등 말 그대로 '풍전등화'였던 상황이었던 만큼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당과 손을 잡았지 말입니다. 현대 시점에서야 고구려의 영토를 일부 흡수한 것이 아쉽겠지만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적국'을 멸망시켰던 만큼 현대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건 위함하다고 봅니다.
당시에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민족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고 하시는데,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말씀 하시는지요?
저는 고대 부터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보고 있거든요.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현재 한국어라 부르는 이 언어를 각 지역마다 특유의 방언은 있었겠지만 모두 사용 했다고 보구요 여기에 이견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어가 같다는 건 같은 한 범주 라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고 봅니다.
또한 백제의 건국이 고구려 주몽의 여인 소서노 아들 비류,온조라고 그들이 여긴 걸 보면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또한 자신의 혈통적 집단을 형성 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민족이라는 이런 혈통적 집단 개념이 저는 그 당시 뿐만 아니라 기록이 되지 않아 우리가 현재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 인간 시대에도 저는 민족이라는 혈통적 집단 개념이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역사를 공부 하시는 분들 중에는 거의 없는데, 어떤 분들은 도대체 어디서 들은 건지, 민족이라는 개념은 최근 19세기에 만들어진 거다라고 가끔 인터넷에 쓰시는 분들도 있던데. 역사가 기록 되어진 이후 2천여년간의 기록만 보더라도 많은 인간 생활과 전쟁등의 이유가 민족이라는 개념과 직결 되어 있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보고 이런 걸 쓰시는지 가끔 궁금 하기도 합니다.
여행가자// 밑에 그리운 길님에게 단 답글이 있는데, 읽어보시면 의문이 해결될 겁니다.
그리고 고구려 땅에 30년 뒤에 다시 발해가 들어서 버렸으니 신라가 정복할 수 없었을 뿐더러 이 때쯤 되면 신라도 두배로 늘어난 영토*땅을 정비해야 했으니 그럴 여력이 있을 린 없겠죠. 끝으로 저도 통일신라라는 명칭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것이 통일이란 낱말 의미가 '원래 하나였다가 다시 뭉쳤다'란 뜻인데 삼국통일 과정을 보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자 건국되었으니 틀렸고 발해를 한국사로 간주하는 한국학계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윗쪽에 겨레의 국가가 있는데 웃기지 말입니다. 그래서 전 통일(병합?!) 후 신라를 '대신라'로 부르자는 주장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 했다...역사기록엔 이렇죠...
하지만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소국이 대국을 끌여들였다...과연 이럴 수 있을까요...대국이 소국을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끌여들였다는게 옳은 표현이죠.. 일시적으로 속여서 또는 외교를 잘해서 이용 할 수는 있어도 어떤 큰 사건에 대해선 소국이 대국을 끌여들였다는 표현은 너무 국수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신라가 당나라의 행동에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입니다
신라의 입장에선 굳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었습니다..단지..김춘추 그 일당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행동이
반드시 필요했겠지만..신라의 입장에선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고대엔 연좌제가 있던 시대였고..김춘추 입장에선 부왕인 진지왕이 폐위되었고, 그의 사위가 개인적인 부덕으로 중요한 성을 잃었으니..연좌제 입장에서 김춘추는 그야말로 하루목숨이었고..그걸 모면하고 신라에서 주도적인 입장을 갖기 위해선 당에 그의 나라를 팔아먹는 행동을 취해야 했죠..당의 입장에선 꿩먹고 알먹는 건데 왜 피하겠습니까...단지 김춘추가 진심인지 거짓인지만 판단할 사항이었겠죠..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땅을 병합한 사건을 통일신라. 대신라 라고 하는건 언어도단입니다.
신라는 병합을 원했고..그 이상의 제도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는데..통일신라, 대신라 라뇨....굳이 구분해서 부르고 싶다면..전기신라, 후기신라라고 불러야 하겠죠...
신라가 백제,고구려유민을 통합해서 당나라를 몰아내었고..발해의 건국에 숨은역활을 하였다.
이건 그야말로 개그죠..
신라가 병합하고 백제, 고구려유민들을 위한 어떠한 시스템정비도 없었는데...보덕국은 그야말로..이용의 극치였죠..그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하였고. 신라와 고구려유민들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나라가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망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걸 신라는 이용만 했을 뿐입니다..그걸 대당투쟁에 적극지원이라뇨..뭘 지원했다는건지..
민족개념이 없었다..??....보이지 않은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죠....우리 일상생활에서 수학의 숫자와 공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수학의 개념조차 부정할 수는 없는 거죠...이와 마찬가지로..역사에서 민족 이라는 개념없이 말할수는 없죠..
신라,가야가 비록 흉노제국 후손중에 한나라, 낙랑을 거쳐 앞선 선진기술, 선진행정을 가진 후손들이 신라의 지배세력으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신라와 가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고조선 후손이었다는 점을 부인해선 안되죠..
지금도 민족개념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공동체의식입니다..그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도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공동체의식은 존재하였다는 건 사서들에 흐릅니다
중국의 역사인식이 잘못되었다..왜 잘못 되었는지요..단지 역사는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동체의식이니 중국의 역사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수 있는지요......중국은 소수민족을 아우리는 공통된 공동체의 개념이고..너희들이 말하는대로 계승적인 측면에서 그걸 계승하겠다고 하면.......뭐라 할 수 있는지요.
저의 생각으론 우리가 고조선 이라는 민족의식이 존재하였고 ..다만 기록에 존재하지 않았다 라고 하지 않은 이상 지금의 현 논리로선 중국의 논리에 밀립니다...헉....왜 이 글이 여기에 있지....ㅎㅎㅎ..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보고...그에 답변글을 생각하다가 ...어디에 적을지 몰라서...그냥 여기에 적어봅니다..ㅎㅎㅎ
외교라는건 give and take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어야 하는겁니다. 김춘추는 당과의 동맹을 끌어내기 위해 당의 연호, 복식을 사용한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자진해서 자신의 아들 문왕을 숙위로 삼아달라 간청했죠(말이 숙위지 인질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당과의 동맹을 이끌어냈고,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면 대동강 이남의 땅과 백제땅은 신라가 갖겠다고 동맹서약을 맺었으나,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죠? 백제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고 동맹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당의 배신이었죠. 그러함에도 김춘추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런 김춘추가 과연 뛰어난 영웅이요, 삼한일통의 영웅이라 할 수 있을까요?
당에게 퍼주기식 외교만 하고 정작 신라가 얻은게 없는 외교를 한 김춘추가 왜그리 미화되고, 추앙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책없는 아비의 뒷수습을 훌륭히 처리하고, 삼한일통을 완성한 문무대왕이야 말로 뛰어난 인물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문무대왕이 김춘추를 능가한다고 봅니다. 김춘추요? 주기만 하고 얻은건 없는 외교를 한 인사입니다. 이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운운하지만 결국은 고구려가 이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6세기 중원고구려비에서 고구려는 스스로를 고려라 칭했는데 왕건이 세운 고려 때 Corea, Cauli, Caule 등으로 알려졌고 지금은 Korea로 되었으니 그 시원은 고구려였던 거지요. 그리고 신라의 소위 통일 후 북쪽에는 발해가 들어섰으니 차라리 남국 신라 북국 발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을 긍적적으로 보고 안 보고 이런 거는 역사인가요? 정치 인가요?
현재 한반도만의 국가를 건설 할 수 있었다는 측면을 강조 해서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분들
이 한반도 땅 밖에 못 가진 국가를 건설 했다는 측면을 강조 해서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분들
역사 사건들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이다는 등의 평가의 기준은 현재의 정치 입장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건 역사가 아니라 차라리 현재정치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가 전공이든 취미든 역사학을 하면서 예를 들면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았다, 몽고가 고려를 침공 했다는 등의 역사에 우리가 일일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등의 말을 갖다 놓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그 당시에 어떠한 중요한 일들이 있었고 그러한 일들이 왜 어떠한 인물,세력에 의해 일어 났는지 연구 하고 평가는 그일로 인해 어떠한 영향이 어느 누구, 세력, 영역에 미쳤다하는 정도의 평가가 역사이지 이를 넘어서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 등의 현재 입장에서 재판과 같은 평가는 현재의 정치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 역사 즉 한국사에서 유독 어쩌면 유일 하게 긍정적이네 부정적이네 하는 잣대를 신라 당나라 연합의 백제, 고구려 멸망의 역사에 왜 들이대는지 그것이 의문입니다.
역사에서 논쟁이 되는 것은 어떠한 일들이 진짜 있었냐 아니냐 하는 것이나( 가령 4세기에서 6세기 경 왜가 한반도 남부에 진출 해서 그들의 영역으로 했는가 하는 문제) 자료의 진위 문제 ( 가령 화랑세기의 진위 문제)등이 논쟁이 되는 것이지.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는 역사학의 논쟁이 아니라 이건 그냥 현재 정치적 논쟁이라고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