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 버리나이다.”(시편90,10)
"주여, 당신은 대대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었나이다."(시편90,1)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은은한 밤꽃 향기에 젖어드는 마음입니다. 근래 보기드문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달, 5월 성모성월은 물론이고 아드님의 달, 6월 예수성심성월중 어제의 날씨도 참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수도원을 사랑하여 결성된 모임인 예수성심자매회 자매들의 달이기도 하네요. 또 이번주 금요일은 요즘 계속된 대축일을 마감짓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이자 사제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날씨가 참 예뻐요!” 어제 수도원을 방문하여 성사를 보던 수녀님의 표현이 흡사 하느님이 예쁘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저절로 시편 성구를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하늘에 초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산과 들이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하신 일을 알려주도다.”(시편19.2)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라고 눈들면 한눈 가득 들어오는 하늘입니다. 누가 저보고 취미가 뭐냐고 묻는 다면, 저는 지체없이 “하늘보며 하느님 사랑을 관상하는 것”이라 대답하겠습니다. 다음 시편의 고백은 제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 밖에 없습니다.”(시편16,2)
6월은 예수성심성월입니다. 6월 들어 고백성사를 본 분들에게 보속의 ‘처방전 말씀’으로는 한결같이 다음 시편말씀을 써드리고 어린이를 안고 있는 그림에 “사랑해요”라는 말마디가 새겨진 붉은 스탬프를 찍어 드렸습니다. “저의 힘이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18,2)
문화영성대학원에서 전례를 강의하는 원장수사의 강의 소재가 참 재미있고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궁금해서 물어 봤더니 한번은 “개두포, 장백의, 띠, 중백의, 영대”였고, 다음에는 “주교관, 반지, 지팡이, 가슴 십자가”였고, 어제 물었더니 “전례 색깔”이라 했고 이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색깔의 신비도 무궁하군요! 모든 색깔의 깊이에는 신비의 하느님이 계시겠군요. 색깔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네요.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싶네요. 좌우간 수고많습니다.”
이런 시간과 공간을 성화하는 전례 상징들에 대한 아름다운 강의들 또한 하느님 사랑, 교회 사랑의 표현이 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이요,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이 하느님을 체험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6월 예수성심성월, 예수님 성심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굿뉴스 인터넷을 여는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성구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22,37)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하느님 사랑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하는 맛으로, 기쁨으로, 재미로 산다면 저절로 찬미와 감사요 기쁨과 평화요 행복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큰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참 난해한 질문입니다만 예수님은 천상지혜로 참 자유롭게 통과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말마디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정말 이런 예수 스승님의 진가(眞價)를,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입증하는 다음 문답입니다. 예수님의 천상지혜로 빛나는 통쾌한 장면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양자택일의 문제요, 어떻게 대답하든 이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바치라 하면 민족반역자로, 또 바치지 말라하면 국사범으로 몰릴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예수님의 역공의 질문으로 답변합니다. 이어 황제의 초상이 있는 데나리온을 달라하여 받은후 답변이 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립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섬김안에 있는 참 자유(the true freedom in services)'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모든 것을 말했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제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합니다. 하느님 중심만 확고하다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유롭게 결정할 일입니다. 황제는 물론 세상 모두가 하느님께 속해있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느님 앞에 모두는 상대적 가치만 지닐뿐입니다. 그러니 세금을 낸다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이렇게 말할 수는 없고 각자 판단할 수 뿐이 없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바둑용어가 생각납니다. 명분에 집착하다 큰 것을 잃는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병자호란시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의 어리석음도 주전파들의 주장에 휩쓸린 탓입니다. 후에 주화파의 최명길의 분별의 지혜와 용기덕분에 살아난 인조요 조선입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지론인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의 절묘한 조화와 균형의 지혜가 필수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하닮의 여정’에 충실할 때 올바른 분별의 지혜요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다음 옛 어른의 지혜에 따른 삶이라면 그대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세상을 지키는 존재는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소중히 일상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다.”<다산>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속이지 않으며, 실패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다.”<채근담>
오늘로서 제1독서 베드로 후서는 끝납니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 귀한 위로와 격려의 가르침이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길다 싶지만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없고 흠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서 나설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2베드3,15ㄱ.17-18참조)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께 대한 앎을 날로 키워주시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잘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제와 영원히 주님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4,17).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