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4. 니그로다미가(Nigrodhamiga) 본생 ②
암사슴은 임신 모르고 출가한 비구니의 전생
결혼 후 덕행으로 남편 설득해 출가했으나 뒤늦게 배불러
사부대중 함께 모여 출가일·임신일 대조한 후 청정성 인정
아들 쿠마라카사파 아라한과 이루고 본인도 최상의 성취
니그로다미가 본생담은 인도 아잔타석굴 17굴 벽화(왼쪽) 외에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석탑으로 손꼽히는 바르후트탑에 부조로 남아있다.
바로 앞 연재에서 니그로다미가(龍樹鹿) 본생이 한 여성 수행자의 전생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그 여성 수행자의 출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 여성수행자는 웅변제일이었던 쿠마라카사파의 어머니이다. 왕사성의 큰 부호의 딸로 태어난 그녀의 마음속에는 성자(聖者)로서의 힘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으므로 출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출가하지 못하자 결혼을 한 다음에 남편의 허락을 받아 출가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어진 아내가 되어 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왕사성의 축젯날이었지만 여느 여인들과 달리 향을 바르거나 화장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온 시민이 경축의 기분에 들떠 있는데 당신은 아무 화장도 하지 않았구려.”
그녀가 대답하였다.
“이 몸은 서른두 가지 더러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장식한들 무엇 하겠습니까? 이 몸은 천신(天神)의 화생(化生)도 아니요, 범천(梵天)의 화생도 아니며, 황금이나 진주로 된 것도 아니요, 푸른 전단(栴檀)으로 된 것도 아니며, 하양·빨강·파랑 연꽃을 태(胎)로 하여 난 것도 아니요, 죽지 않는 약으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러움 속에서 생(生)을 받아 부모에게 났으니 덧없어 부서질 것이요, 무너지고 나누어지며 흩어질 것, 무덤 수만 보탤 것, 욕정에 집착하는 것, 괴로움의 인연이요, 슬픔의 근본이며, 온갖 병이 깃드는 곳, 업력을 담은 그릇, 내부의 고름은 항상 밖으로 흘러나오고 온갖 벌레들의 사는 집, 무덤으로 가까이 가다가 끝내 죽고 마는 것, 이것이 눈앞에 일어나는 일체 세간의 현상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게송으로 읊었다.
이 몸은 뼈와 힘줄에 묶이었는데 가죽과 살은 그것을 쌌네.
이 몸은 가죽에 싸이어 그 참 모양 보이지 않네.
배 속에는 간장, 방광
심장, 폐장, 신장, 비장
가래, 침, 쓸개즙, 지방으로 가득하다.
아홉 구멍에서는 언제나 더러운 것 흘러나오나니
눈에서는 눈곱, 귀에서는 귀지,
코에서는 콧물,
입으로는 쓸개즙과 담을 뱉고
몸에서는 땀과 때가 스며 나오며
두개골에서는 머릿골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깨끗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무명(無明)에 덮인 사람
이 몸은 한없는 재앙으로 독수(毒樹)에 견줄 것이니
모든 병이 사는 집, 참으로 이것은 고통 덩어리네.
나쁜 냄새나는 더러운 이 몸은 문드러진 똥과 같네.
이 몸이란 지혜로운 이는 더럽게 보고 어리석은 이는 좋아하는 것이네.
이렇게 게송으로 읊은 뒤에 “이 몸을 장식한다는 것은 더러운 똥을 담는 그릇의 외부를 장식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하고 남편에게 되물었다.
남편이 말하기를 “왜 당신은 출가하지 않습니까?”
부인이 대답하기를 “오늘이라도 출가하겠습니다.”
남편은 부인을 위해 많은 보시를 하고 크게 공양한 뒤에 많은 시중꾼을 붙여주고는 데바닷다에 속한 비구니 승단으로 데리고 가서 출가시켰다. 그런데 그때 부인은 임신한 줄을 모르고 출가한 것이다. 태 안의 아이가 차츰 자라 그녀의 배가 차츰 불룩해지자 데바닷다는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여 그녀를 자신의 승단에서 내쫓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왕사성(라즈기르)에서 쉬라바스티까지 45유순(675km)의 길을 걸어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 앞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는 코살라국의 왕인 프라세나지트왕과 대급고독 장자, 소급고독 장자, 대신녀 비사카와 그밖의 저명한 장자들을 초빙하고 사부대중이 모였을 때 우팔리 대덕에게 이 젊은 비구니의 사건을 명백히 하도록 맡겼다.
우팔리 대덕은 왕 앞에서 대신녀 비사카에게 그 젊은 비구니의 임신일과 출가일을 대조하는 일을 맡겼다. 그 결과 출가 전에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우팔리 대덕은 그 비구니의 청정을 알렸다.
그녀는 연화상불(蓮華上佛, Padumuttara Buddha. paduma는 연꽃, uttara는 위쪽의. 석가모니불의 성불을 수기한 과거불 중 한 부처님. 이 부처님은 깨달은 뒤에 걸으실 때 발밑에 연꽃이 솟아올랐다고 한다.)의 발아래에 솟아오른 연꽃 같은 아들을 낳았는데, 프라세나지트왕의 명령으로 왕자의 신분으로 길러지게 된다. 이름을 쿠마라카사파라 하였고, 일곱 살에 자신의 어머니가 비구니인 줄 알게 되자 출가하였다. 20살이 되어 비구가 된 다음에는 숲속 정진을 통해 아라한도를 성취하였고 그대로 12년간 숲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웅변제일의 아라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어머니 비구니도 아라한이 된 아들의 도움으로 최상의 과보를 얻었다.
이 본생담에서 보이는 인상적인 점은 먼저 한 여인의 출가를 위한 노력과 결심이 단호할뿐더러 지혜로웠다는 점이다. 부모의 허락을 받을 수 없자 이를 거역하지 아니하고 결혼 후에 남편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결혼생활에서도 덕을 쌓고 공덕을 지음으로써 선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덕행은 출가의 토대를 쌓는 일이며, 출가 이후에도 출가생활을 돕는 양식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정에서 출가를 위한 변치 않는 결심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정신이 맑고 깨끗하며 정의로움으로 넘쳐흐르기 마련인 것이지만, 인생의 본격적인 과정이 진행되다 보면 푸르던 정신은 물들고 흐려져서 물이 흘러나온 첫 수원지는 아득하기만 한 것이다. 맑은 물은 흐려지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미 흐려진 물은 맑은 상태를 알 수 없다. 가느다랗던 물줄기도 커질 대로 커졌다. 어찌 되돌릴 것인가?
그리고 현재의 삶이 또 그럭저럭 살아갈 만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적응은 행복을 헌납한다. 또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루하루에 쫓겨 되돌아볼 틈도 없다. 이러한 물듦의 과정 속에서 그녀로 하여금 출가의 결심을 잊지 않게 한 것은 몸의 더러움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표출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몸의 더러움에 대한 인식을 수행법으로 발전시킨 것이 부정관(不淨觀)이다. 부정관은 탐심을 없애는 수행법으로서 32가지 명상주제, 백골관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되어 수행에 사용되었다. 탐심이야말로 중생심의 근본이다. 탐심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정진의 근본인 것이다.
[1621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