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문제 : 다음은 최인훈의 '회색인'에서 발췌한 글로, 작중 인물의 상상(想像)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읽고 인류 공동체라는 이상(理想)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논술하시오.
<제시문>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좋을 것이다. 우선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식민지 관료로 내보낼 수 있으니, 젊은 세대의 초조와 불안이 훨씬 누그러지고 따라서 사회의 무우드가 유유(悠悠)해질 것이다. 집안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외지에 나가면 경쟁 의식이 훨씬 사그라지고 그 대신 현지의 문화 유적이나 살피면서 고상한 취미를 기를 것이다. 여야(與野)가 아무리 치고 받는 국회라 할지라도 문제가 식민지 통에 관한 한 쉬쉬하면서 아무래도 민족은 이해 공동체라는 모범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유부녀 외입만한 것이 없다고 타족(他族)을 조지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깨쏟아지는 재미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쟁의 안전 밸브가 생긴다. 심심하면 차 볼 수 있는 개 옆구리가 말이다. 가령 수도 서울에 어마어마한 화재가 생겨서 온통 생지옥이 벌어져서 민심이 흉흉할 때 '땃벌레', '백골단' 같은 애국 단체를 동원해서 '화재는 모(某)국인들의 계획적 소행이다' 하는 유언을 퍼뜨린다. 불같이 노한 군중은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당국의 치안 유지를 돕기 위해서 쇄도해 간다. 불난 집이 성한다는 옛말이 옳다는 것이 이렇게 밝혀진다. 노동자들도 인터내셔널이니 만국의 노동자니 하는 문구에 그다지 구미를 돋우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값싼 식민지 노동군(軍)의 '내지(內地)' 이동을 제한하라고 요구하는 온건한 파업을 할 것이다. 경제 사정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현지 농민의 무지와 법의 불비를 농간질하여 방대한 땅을 빼앗아서 본국(우리, 즉 한국 말이다) 농민을 이주시켜 정착시킨다. 식민지의 이권을 대폭 장악하는 조건에서는 웬만한 경영 수완이더라도 수지는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윤택하니 동물 애호 협회 같은 풍류인의 구락부가 생겨서 개장국집 앞에서 앉아서 버티기 데모를 하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할 것이다. 하물며 순경이 심빈의 머리카락이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생야단이 날 것이다. 대학에서는 국학(國學)의 연구가 성하고, 허균은 죠나단 스위프트의 대선배며 토마스 무어의 선생이라고 밝혀질 것이며, 이퇴계의 사상의 현대 핵물리학의 원리를 어떻게 선취(先取)했나를 밝혀낼 것이다. 우리들의 식민지를 가령 나빠유(NAPAJ)라고 부른다면 '정송강(鄭松江)과 나빠유를 바꾸지 않겠노라.' 이런 소리를 탕탕 할 것이다. 식민지가 얼을 찾아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곳 옛 지배층에게 뼈다귀를 던져 주어 지킴개로 부리며 지방별과 족보, 사주 같은 것을 부추겨 저희끼리 싸움질하게 부채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족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빚어 내지 않기 위하여 문치(文治) 비슷한 일을 물론 해야 한다. 불온한 청년들의 사명감을 꾀스럽게 돌려서 농촌 계몽으로 카타르시스시킨다. 한국 불교 조계종 분원(分院)을 두어 인생무상(人生無常)과 제법개공(諸法皆空)의 이(理)를 선전하여 '곤냐꾸' 정책을 쓴다. 고려자기를 왁자지껄 선전하여, 이런 예술을 낳은 국민이 치자(治者)가 되어 있는 현실은 골백번 공평한 역사의 보수임을 알려 준다. 하도 태평천하라 도대체 우리는 무얼 하란 말이냐고 투덜거리는 앵그리 젊은 맨들의 귀여운 투정이 문학계를 즐겁고 볼 만하게 할 것이다. 문학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교양 있는 독자는 늘어가고 염가판이 쏟아져 나오고 고전의 보급이 희한할 만큼 잘 돼 있고, 이런 기름진 밑거름 위에, 국민사(國民史)이면서 인간사일 수 있는 활달 정묘한 산문이 낭자하게 꽃 필 것이다. 한글의 역사가 낱낱이 캐지고, 방대한 국어 사전이 쏟아져 나오고, 한 문학가는 "한문 문학의 에스프리는 첫째로 멋, 둘째는 멋, 그리고 셋째가 멋"이라고, 익살을 부릴 것이다. 음악의 발달은 아주 기막혀서 비엔나를 가리켜 '오스티리아의 서울'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국악(國樂)의 저, 다 죽었는가 하면 문득 되살아나며, 넋의 어깨춤이 절로 나는 백 천 번 멋들어진 가락이 전세계의 음악 팬을 환장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제국주의를 대외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대내 정책으로 쓸 수 있었던 저 자유자재한, 행복한 시대는 영원히 가고 우리는 지금 국제 협조, 후진국 개발의 새 나팔이 야단스러운 새 유행 시대에 살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거름으로 써야 할 식민지를 부양 천지 어느 곳에서 손에 넣을 수 있으랴. 그러나 식민지 없는 민주주의는 크나큰 모험이다.
첫댓글 제가 이번주 목욜에 어떻게 해볼려 했는데 먼저 올려주신 분이 계셨네요. 20010688 이상혁 입니다. 010-2220-8268
20060104 최진영 입이다. 011-9523-4041
20060067 양햇살입니다. 010-3120-8682
20060078 이은경 입니다. 010-3050-2492
20030040 김효진 입니다. 011-9548-1013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