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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메인홀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직장 환경은 서울 광화문 주변이다. 점심을 먹고 덕수궁 돌담길을 산책하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예술을 감상해도 되고, 옛 경희궁 뒤편 숲길을 한 바퀴 돌아내려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역사의 향기에 취해 볼 수도 있다. 경복궁, 덕수궁, 가회동, 삼청동과 같은 유서 깊은 장소는 다른 사람들에게 작정해야 하는 휴일 나들이지만 광화문 주변의 직장인에겐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일상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추가되어야만 광화문 주변이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지성의 공간으로 완결된다. 바로 교보문고다.
대한민국 지식산업의 한 축인 교보문고가 지난 6월 1일 개점 30주년을 맞았다. 평소 출퇴근길에 라디오를 즐겨 듣는 사람들은 2010년 1월부터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라디오 광고를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시 쓰는 정호승입니다. 30년 전 귀한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서점이란 정말 꿈같은 곳이었죠. 교보문고에 빚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시인 정호승)
“아닙니다. 교보문고의 고객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빛을 밝히고 계시니까요. 교보문고 30년 당신께 고맙습니다. 꿈을 키우는 세상 교보문고.”(교보문고 여성직원)
일반인은 헷갈릴 수가 있다. 사정은 이렇다. 교보문고가 설립된 것은 1980년 12월. 그러니까 2010년은 교보문고 설립 30주년이다. 회사를 설립한 다음해인 1981년 6월 1일 교보문고를 개점했다. 올해는 교보문고 개점 30주년이다.
교보문고 30주년은 설립자인 고 신용호 회장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설립자의 철학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입구는 세 곳이다. 광화문 지하도와 연결된 문 외벽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고 신용호 회장이 쓴 문장이다. 이 문장만큼 책과 사람의 관계, 책과 정신문명의 함수관계를 알기 쉽게 쓴 글은 찾기 힘들다.
교보문고의 탄생에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깔려있다. 우리나라는 1977년 12월부터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서 출판물이 증가하고 서점 수가 급증했다. 당시 광화문 부근에는 중앙도서전시관·숭문서점, 종로에는 종로서적·양우당·동화서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종각 부근에 있는 종로서적은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 종로서적의 위상은 교보문고가 탄생한 1980년대 중반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심장에 자리를 잡다
1980년 중반, 광화문 교차로에 교보생명빌딩 건립이 막바지 공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교보생명빌딩의 주소는 서울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한민국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광화문 지하보도와 연결된 교보생명빌딩 지하는 모두가 탐내는 공간이었다. 교보생명 임직원들은 지하 공간을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활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신용호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신 회장은 이렇게 임직원들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의 창립 이념이 무엇입니까? 국민교육진흥 아닙니까?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해 멍석을 깔아주면 어떻겠습니까? 여기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고,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고,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 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 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좋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발산하는 열기로 이 사옥은 뜨겁게 달궈질 겁니다. 여기에서 책을 읽고 자란 청소년들이 장차 훌륭한 작가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사업가가 되고, 노벨상을 타고,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식회사 교보문고는 이렇게 해서 1980년 12월 24일 창립됐다. 처음에는 ‘문고(文庫)’라는 이름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초대 이도선 대표가 “문고는 ‘문화의 곳간’이라는 뜻으로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위대한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신용호 창립자가 이도선 대표의 손을 들어줘 교보문고가 탄생했다.
1980년 12월 교보문고의 창립 당시 직원은 모두 12명. 1981년 6월 1일 개점할 때는 직원이 60여명으로 늘었다. 교보문고가 2호점을 내는 데는 오랜 진통기(期)가 필요했다. 교보문고가 지역에 들어오면 중소서점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94년 대전에 2호점이 문을 열었다. 현재 오프라인 매장은 전국에 16곳. 14곳은 모두 2000년 이후에 생겼다.
1981년 교보문고에서 팔린 책은 약 93만3000권. 2010년 판매 도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합쳐 약 3636만1000권. 30년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 도서량은 총 4억500만권이 넘는다. 도서 한 권당 두께 20㎜로 계산해 이를 차곡차곡 쌓으면 8097㎞. 히말라야 에베레스트(해발 8848m) 높이의 915배가 넘는다.
대도시 성인남녀 중에서 교보문고 북클럽 회원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다. 교보문고 북클럽은 1993년 3월 최초 3000명으로 발족했다. 2011년 5월 말 현재 1000만명을 넘어섰다. 단순계산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이 교보문고 북클럽 회원이라는 뜻이다.
30주년 기념 다양한 행사
- ▲ 개점 당시 신용호 회장(왼쪽)이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photo 교보문고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은 책을 산 독자는 누구일까? 교보문고 측은 안타깝게도 이와 관련된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홍보실 진영균씨는 “기업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도 개인 이름으로 하기 때문에 통계를 잡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교보문고에 창립 멤버는 모두 네 명이 남아 있다. 현 김성룡(58) 대표는 외국어대 졸업 후인 1981년 교보문고 창립멤버로 입사해 경영지원본부 이사, 마케팅총괄담당 전문 등을 거쳐 2008년부터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3명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교보문고 물류팀에서 근무 중이다. 박봉수 물류팀 부장, 김순미 센터매니저(차장), 유경숙 센터장(차장)이다.
유경숙 센터장은 1981년 4월 13일에 입사했다. 경리과, 물류팀, 통신판매를 거쳐 현재 20년 넘게 물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당시는 물류창고가 따로 있지 않아서 광화문점으로 출근했다. 2003년부터 파주 교보문고 물류센터로 출퇴근을 한다. 유경숙 센터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내 직장이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정신을 살찌우게 곳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문화의 첨단에 서 있다는 사명감이 나를 30년 동안 버티게 했다. 내가 교보문고에 다닌다고 명함을 건네면 사람들은 책의 이미지를 나에게 투영해서 보았다. 30년 근무가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진다.”
교보문고는 30주년 기념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다. 교보문고는 지난 5월 4일부터 15일까지 2만명이 참가하는 ‘대한민국이 읽은 대작가’ 설문 투표를 실시했다. ‘대한민국이 읽은 대작가’는 30년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3위 내에 포함된 국내 작가들을 대상으로 독자가 다시 만나고 싶은 작가 10인을 최종 선정했다. 10인의 작가는 공지영·권비영·김진명·신경숙·유홍준·이문열·이외수·이해인·조창인·최인호. 교보문고는 이들 10인의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한민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말하다’(유홍준, 6월 18일), ‘대한민국의 찬란한 역사를 말하다’(권비영·김진명, 7월 2일),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말하다’(공지영·이해인, 8월 27일) 등이다.
교보문고 측은 또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출간 종수와 판매권 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김훈·조정래·황석영 3인을 선정했다. 아울러 교보문고는 독자여론조사를 통해 ‘지난 30년을 이끌어온 대표작가’ 15명을 선정했다. 고은·공지영·김진명·김용택·도종환·신경숙·이문열·이외수·이해인·은희경·정호승·조정래·최인호·황석영(가나다 순)이 그들이다. 또한 ‘앞으로 30년을 이끌 기대 작가’ 7인으로 김경주·김별아·김연수·김영하·박민규·정유정·정이현을 선정했다. 그리고 이들의 대표작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 한눈에
- ▲ 창립멤버 4인 중 한 명인 김성룡 대표. photo 교보문고
“작가라는 직업의 비밀은, 어디서 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영감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에 있습니다. 저는 터키 속담의 ‘바늘로 우물 파기’라는 멋진 표현이 작가들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오르한 파무크, 2006년 노벨문학상 수락연설 중)
“당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당신을 아무리 높게 평가할지라도 스스로에게 늘 용기있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이반 파블로프, 1904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연설 중)
한국을 여러 차례 찾은 적이 있는 르 클레지오의 노벨상 수락연설을 보면 책의 존재 이유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문화는 인류 모두의 공동 자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동일한 수단이 모두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긴 했으나, 이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도구가 바로 책입니다.”
서점을 오고가는 길에 잠시라도 노벨상 수상자들의 생애를 일별하노라면 누구라도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문(自問)하게 된다. 일부 총명한 학생들은 ‘나도 한번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 저 공간에 이름을 올려놓고야 말겠다’는 꿈을 가질 수도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30년 동안 두 차례(1991·2010년) 대대적인 환경개선공사를 벌였다. 1991년 개점 10주년 때는 1년간 문을 닫고 리노베이션을 했고, 지난해는 5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
노벨상 역대 수상자 전시는 1992년 5월 30일 문을 열 때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 노벨상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던 신용호 창립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주요 수상자들의 얼굴을 흑백 초상화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하나의 공간을 비워두면서 ‘대한민국 수상자’라고 했었다.
2010년 리노베이션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전시를 디지털화했다. 모든 분야의 수상자를 다 보여주면서 주요 수상자의 어록이나 수상소감까지 소개해 행인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교보문고 30년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엄청난 영업 손실을 감수하고 환경개선공사를 벌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두 번째 환경개선공사를 앞두고 문을 닫을 때 출판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보문고가 문을 닫으면 출판사의 매출이 확 떨어진다는 게 빤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개별 출판사가 이런 판인데, 교보문고 측은 왜 막대한 영업 손실을 감수하기로 했을까. 1991년 1년 동안 문을 닫고 환경개선공사를 할 때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1년 후에는 서점이 아닌 돈을 잘 버는 다른 업종이 들어설 것이다 등등. 2010년 리노베이션과 관련, 김성룡 대표는 서면 답변을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에는 30살을 맞은 교보문고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지, 다가오는 디지털시대에는 독자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가 늘 제 머릿속에서 고민을 해오던 사안이었다. 지식의 통섭과 융복합이 일어나는 미래사회에서 교보문고는 ‘소통하는 미래형 서점’으로 그 역할을 찾는 것이다. 이는 미래시대를 앞장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담자는 것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곳곳에서 독자들은 소통과 미래를 구현하는 공간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복합지식문화공간 명성
- ▲ 교보문고를 찾았던 노벨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photo 조선일보DB
사람들은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강남점을 흔히 비교하곤 한다. 물론 매장 면적은 강남점이 10% 이상 넓다. 하지만 매출에서는 광화문점이 차지하는 위상을 따라오지 못한다. 지난해 교보문고 온·오프라인 전체 매출은 5003억원. 광화문점은 교보문고 16개 영업점 전체 매출의 13%를 차지한다. 소설, 아동, 인문사회 서적이 골고루 팔리는 곳이 광화문점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복합지식문화공간으로 명성을 구축했다. 출판평론가 이구용씨(케이엘 매니지먼트대표)는 “출판산업 종사자들은 물론 수많은 독자들의 친밀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며 지식문화 전파를 위해 한 세대를 걸어온 교보문고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자존심”이라고 평가했다. 이구용 대표는 또 “앞으로 교보문고가 한국 독자들은 물론 한국 출판산업계와 보다 긴밀히 호흡하는 가운데 그 위상과 자존심을 더욱 높여가길 바라며, 특히 그 영역을 글로벌시장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길 간절히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가 한국을 방문해 교보문고를 찾아 사인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교보문고를 찾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는 월레 소잉카, 오르한 파무크, 가오싱젠, 오에 겐자부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헤르타 뮐러가 있었다. 그외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앨빈 토플러 등이 교보문고에 들러 교보문고의 명성을 올려주었다. 앨빈 토플러는 2007년 6월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았다. 토플러는 서점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서점을 넘어선 공간 같다.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지식의 힘이 이곳에 모두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아 놀랍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2005년 2월에 광화문점을 찾았다. 클린턴은 “특정 국가를 방문하면 그 나라의 미래를 알아볼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교보문고가 그러하다. 교보문고를 보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첫댓글 감동적인 기사 입니다. 인간에게서 문화적인 요소를 빼고나면 동물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가진 창업자의 의지가 우러러 보입니다. 경영방침 또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데, 종로서점이 세상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폐업한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유교수, 오랫만이오, 우리 모두 여기서나 거기서나 건투해 봅시다. 이제 엽전 사상 잊어 버리고 한민족의 장점들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정)인데, 그래도 우리 한반도 (그 반쪽은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이만큼하는 것 보면 참 기특하다 생각이 됩니다. 난 아직도 우리들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는 우리들만의 저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요. 그저 운이라고 보기에는 세계사에서 그런 예들이 별로 없으니. 귀국하면 연락하기오. 어제는 캐나다의 이수욱교수 부부와 서울에서 아주 모처럼의 해후를 했습니다. 한 가족 더하고.
요즘은 세상이 계통 유지만 하고 있지, 선발을 통한 개량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완성된 품종도 계속 나쁜 것을 제거하며 계통의 특성을 유지 해 줘야 되는데, 지금은 자구 나쁜 것이 섞여가며 우수한 품종의 특성이 나쁜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나쁜 성향의 물이 자꾸 찐하게 배는 게 아닌가 하여 염려됩니다.
박효근 교수님 우리 카페 품격을 높여주는 글을 계속 올려 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와 30년 세월이 정말 대단하군요. 나는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많이 걱정하였는데 4억 5천만권을 팔았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희망이 있군요. 하기야 저도 서울 부산의 4군데 교보문고에 수없이 드나들었으니까요.
이동철 선배님,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난 요새 큰 재미 중에 하나가 강남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는 것입니다. 며칠전에도 가서 한참 있다 왔습니다. 세계의 식량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가 걱정이 돼서 가서 찾아 보았는데 10권 이상의 이 분야 전문 서적이 있더군요. 물론 그전에 구입한 것도 있고 해서 두권만 추가로 샀지만. 거기에 의자가 있어 세번째 책은 살 가치가 있나 없나 거의 30분을 흩어 보았답니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곳이 그곳이 교보문고입니다. 캐나다의 이수욱 부부 어제 서울서 만났습니다. 김혜영선배 부부와 같이 정말 아주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서울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여전히 수고가 많습니다
아니 그러면 컴밖모임이라도 개최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수욱 동문 스케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동철 선배님 저희는 다음주 22일에 돌아갑니다. 그렇지 않아두 운몽을 통해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제 아내 고교 50주년 행사에 빈대붙어 온 몸인지라 도무지 시간을 못냈읍니다. 마음에 가책이 되여 몰래 몰래 숨기다 돌아 가려 했는데 그만 효근행님이 들통을....죄송합니다먄 잠시 얼굴 보는것 보다 여기 카페에서의 끝없는 만남이 더 좋은것 아닙니까 ?
박선배님 안녕 하신지요? 드디어 이수욱 박사와 최은숙 교수님과 함께 만나셨군요.
나도 지난 6월9일 LA 에 서울대미주 동창회 총회에 갓다가 14일 밤에 돌아 왔습니다.
그곳에서 Symphony Orchestra 와 하모니카 협연도 했구요!!!!
좋은 자료 올리셨군요! 요즈음 박효근 박사님의 활약이 대단 하십니다.
이회장님(왕회장에다 전회장님), 그래요 수욱교수 내외 만났습니다. 정말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이교수 내외는 어떠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궁금한데. 정말 대단한 분은 내가 아니라 우리 왕회장님입니다. 이번 하모니카 협연은 언제 띄우시나요? 더 건강하시고 더 많은 일 하시도록. 전 그냥 다른 곳 들렀다가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올기는 정도인데요. 언제가는 나도 내 글 올리는 날이 있기르 바랍니다.
아니 동철 지기님, 이거 허락없이 이수욱교수 내외 몰래 만난것이 되 버렸네요. 저도 겨우 어제 만났습니다. 이교수 없더라도 서울오시면 제가 몇 사람 모이라고 하겠습니다. 서울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미국 두경기가 7월초에 부산에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 겸사 겸사 부산 구경갈까 생각 중입니다.
효근행님 ! 한국오면 몰래 있다 달아나면 재미없다고 하셔서 만났지만 김혜영 선배님(우리 집사람이 목매여 기다리던) 부부를 같이 뵙게 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노후를 여유있게 계획하시고 신나게 사시는 이광우 교수님을 만나게 되여 또 얼마나 다행이였는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효근행님이 은퇴후에도 쌩쌩하게 사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 답니다.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만 간다고 느껴지는 조국에 한 줄기 희망과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좋은 기사입니다. 돈 버는 일 보다 한국의 미래를 내다 본 교보문고 설립자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의 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