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9-12-23)
< 딸에게서 퇴직금을 받다 >
문하 정영인
어제, 딸에게서 퇴직금을 받았습니다. 2019년 12월에 외손녀의 과외교사 교육이 끝나서입니다. 딸과 사위가 맞벌이라서 외손녀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과외교사를 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유치원 때는 주로 한글 떼기, 기초 연산, 그리고 동시 짓기와 한자를 가르쳤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독서산(讀書算)을, 중학교 때는 논술과 한자를 가르쳤습니다. 공통적으로 가르친 것은 글쓰기와 한자입니다. 초등학교 때 쓴 외손녀의 동시는 아마 동시집 한 권 분량이 넘습니다. 어느 신문에 일주일마다 게재하는 동시를 스크랩하고 감상케 한 후 동사를 쓰게 했습니다. 한자는 기초 한자를 터득한 후,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어, ‘신(新)’은 ‘立(설 립) + 木(나무 목) + 斤(도끼 근)’이니 ‘서 있는(立) 나무를(木) 도끼로(斤)로 쪼개고 다듬으니 새로운 것이 된다’ 라고 말입니다. 외손녀는 지금 한자 5급입니다.
별 일 없는 한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가서 가르쳤습니다. 부지런히 학습자료를 손수 만들어서……. 과외비를 특별히 따로 다달이 받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선물로 받았습니다. 환갑 때는 부부 동반 하와이 효도 여행, 칠순 때는 괌 여행과 중형차 한 대를 딸과 사위가 사주었습니다. 틈틈이 때마다 물건으로 과외비를 정산했습니다. 오늘 10년 과외에 대한 퇴직금을 받은 셈입니다.
서로가 참으로 서로가 무던합니다. 딸과 사위도, 외손녀도, 나도, 그리고 보조교사를 따라 다닌 집사람도. 10년이면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닌데 말입니다.
사실,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어서 잠시 방황했습니다. 주 6일을 출근하던 입장이 바뀌니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심한 불면증이 생겨 그 병을 고쳐준 것도 딸이지만요. 외손녀의 과외는 이틀 치의 소일거리가 생겼습니다. 하루는 직접 가르치는 날, 다른 하루는 전 날 교수학습 준비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12월 28일에 마감됩니다. 하기야 외손녀를 가르칠 자격은 충분합니다. 초등교사 40년 경력에 한자 1급 자격에 수필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고급 전문 인력입니다. 아무나 못 가르칩니다. 특히, 제 살붙이는 가르치기 쉽지 않습니다.
이젠 코흘리개 외손녀가 이젠 화장하기 바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김형석 교수가 쓴 수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친구 교수가 술회한 말입니다. ‘흑판을 바라보고 30년, 흑판을 등지고 30년, 사회생활 30년 하니 어느 덧 90이 되었다.’ 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흑판을 바라보고 20년, 흑판을 등지고 40년, 한국어 교사와 외손녀 과외교사 10년 하나 어느 덧 80에 다다릅니다.
사실, 나는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인 딸의 고2~3년 때는 우리 가정이 아들의 방황 때문에 정신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딸의 대입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자기 스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취직도 했습니다. 지금은 직장에서 커리어 우먼이 되어 전문가의 자질을 키웁니다. 대학 학비도 별로 대주지 안했습니다. 더구나 결혼 할 때는 우리가 단돈 10원 한 푼 대주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번 돈으로 갔습니다. 되레 시집을 가면서 우리 집과 시댁에 신형 김치냉장고 한 대 사 주고 갔습니다. 외손녀 과외비는 딸과 사위가 중형차 한 대로 선불로 주었습니다. 그걸 타고 다니면서 서울로 과외 시키러 갑니다.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외손녀를 가르쳐주는 것이었습니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은 두 종류의 자식이 있다. 한 자식은 전생에 업이 있어 빚을 갚으러 온 자식이 있고, 다른 자식은 전생에 업이 있어 빚을 받으러 온 자식이 있다.’ 그 말이 딱 맞습니다. 나는 남매를 두었지만, 아직도 빚을 갚는 자식과 빚을 받으러 오는 자식이 있습니다. 순우리말에 ‘안갚음’과 ‘안받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안갚음’은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일이고, ‘안받음’은 부모가 자식의 효도를 받아드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까마귀의 반포지효(反哺之孝)인 것입니다. 여기서 ‘안’은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마음, 마음속으로’ 라는 뜻이랍니다. ‘앙갚음’과는 정반대의 뜻입니다. 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빠, 아빠가 죽으면 나는 안 울 거야!”, “왜?” “너무나 아빠에게 잘하는 효녀이닌깐.” 하기야 우리 입장으로 보아서 그 처지에서 너무나 잘하는 딸이긴 합니다. 지난 10월이 내 생일이었습니다. 딸은 백화점에서 미리 봐두었던 고급 구스다운 잠바를 사 주었습니다. 나 때문에 집사람까지 곁다리로 얻어 입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없으면 하기 어렵습니다. 심부재 청이불문 시이불견(心不在 聽而不聞 視而不見)이라 했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오늘, 딸네 식구와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엊그제가 딸아이 생일이었기에 우리가 샀습니다. 거기서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딸아이가 전문적 실력을 인정받아 지주회사로 스카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사람 칠순 때는 괌으로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사위는 바빠서 못 가고 집사람과 나와 딸과 외손녀, 넷이 같이 갔습니다. 딸아 3개월 전부터 준비한 상품이라고 합니다. 항공편과 호텔, 음식점, 가볼 곳, 쇼핑 일체 등을 손수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자유여행입니다. 렌트카로 딸이 손수 운전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가보고 싶은 곳 가보고, 먹고 싶은 것 먹어보고…….
이번 가을에는 딸 부부와 우리 부부가 강원도 2박 3일 맛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런 맛기행은 두 번째입니다. 우리는 구경보다는 주로 먹는 것에 치중합니다. 강원도 양양 쪽으로 갔던 첫 번째 맛기행 2박 3일은 동치미 막국수, 자연송이 탕수육, 섭지국, 산초기름으로 부친 손두부, 전복해물탕, 홍게찜, 명태 냉면, 초당두부, 송어회, 속초에서 먹은 물회, 횡성 한우 등 한 끼도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맛기행의 총괄기획 일체는 사위가 세웁니다. 동해 앞바다가 탁 트인 커피하우스, 안흥 찐빵….
두 번째 맛기행은 모든 계획은 사위가 세웠습니다. 연수원에서 1박을 하고, 대관령 휴양림에서 1박을 했습니다. 해변가에 홀로 있는 카페를 비롯하여, 동치미 막국수, 문어 국밥, 진부령 황태찜, 매운 가오리찜, 산오징어와 가자미 물회, 50년 전통 순두부, 코스로 나오는 더덕요리, 대관령 휴양림에서 계곡 물소리와 함께 먹은 햇반에 간단한 고기구이 등.
올해는 남도 쪽으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물론 제3차 맛기행입니다. 거제도에 새로 생긴 열대 식물원을 보면서……. 이번 맛기행에는 내가 경비를 대려고 합니다. 고양이도 낯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더욱 더 건강하시고 멋진 시간 보내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오늘 갑곶성지를 @@@
오늘 강화에 있는 갑곶성지를 다녀왔습니다. 그곳 성당에서 주일미사도 참례했습니다.
그 성지에 이번에 '봉안당'이 설립되어 겸사겸사 갔습니다.
코로나가 안정이 되지 않고 있으니 야단입니다. 두루두루 건강하시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