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6. 니그로다미가(Nigrodhamiga) 본생 ⓸
‘자신을 의지처 삼으라’ 거듭 당부하신 부처님
“아라한 이루려면 결코 남 의지할 수 없다” 부단한 수행 강조
남 따르면 자신과 멀어질 뿐…부처, 의지함 없음으로부터 나와
선종으로도 계승…‘무소의 뿔처럼 가라’ 실천한 역사로 이어져
인도 아잔타 석굴 17굴에 조성돼 있는 부처님상은 설법인의 모습이다.
쿠마라카샤파 장로의 어머니 장로니(니는 여성명사어미)는 데바닷다의 승단(僧團)을 떠나 부처님께 의지함으로써 걸출한 아들을 낳을 수 있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모자(母子) 모두가 아라한(번뇌를 모두 없앤 분, 살적, 殺賊)이 되는 지복(至福)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던 이야기가 ‘법구경’ 160번 게송에 이어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도 아라한을 이룬 그들의 의지처가 되시는지요?”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비구들이여, 천상에 태어나거나 또는 아라한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남을 의지할 수 없느니라. 자신을 위한 일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나니, 자기 스스로 열성적이고 진지하게 노력해 나가야 한다.”
진정 자기야말로 자기의 의지처
어떻게 남을 자기 의지처로 삼으랴?
자기를 잘 단련시킴으로써만
자기를 의지처로 만들 수 있는 것
이는 실로 성취하기 어렵다.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이 성스러운 구절은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난 후 49일간의 칠처선정 기간 중 5주째의 반조(反照), 마지막 안거 후 비구 승단에 대한 당부의 말씀, 부처님의 열반송, 마지막 유훈 등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먼저 깨달은 뒤 5주째에 반조하신 내용을 보자.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 없이 살아가는 것은 괴로움이다. 내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하여 존중할 만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자 스스로 깨달으신 법을 존중하고 법에 의지하면서 지내리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비구승단에 대한 당부의 말씀은 바이샬리 근처의 벨루바 마을에서 행해진 마지막 안거 직후에 설해졌다. 그 안거 중에 부처님께서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혹독한 병을 앓으셨고 그 병을 정진으로 다스렸는데, 그 인내를 지켜본 아난존자가 여래의 반열반(완전한 열반) 후 비구 승가에 대한 당부를 묻는 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법문이다.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정진하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또 부처님은 열반송에서 다음과 같이 읊으셨다.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도다.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사유를 잘 안주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 유훈은 다음과 같이 남기셨다.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처음 깨달으신 때로부터 마지막 열반에 드실 때까지 전 인생을 통틀어 일관되게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자신의 등불을 밝혔고, 등불이 밝혀진 후에는 그 밝아진 법에 의지하셨던 것이며, 제자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셨다.
이러한 정신은 동아시아로 건너와서 선종(禪宗)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9세기 초 당나라의 동산양개 스님(807~869)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 읊은 오도송인 과수게(過水偈)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뜻을 잘 계승하고 있다.
절기수타멱 (切忌隨他覓 남을 따라서 찾지 말라)
초초여아소 (迢迢與我疎 점점 자신과 멀어질 뿐이다)
아금독자왕 (我今獨自往 나는 지금 홀로 가노니)
처처득봉거 (處處得逢渠 곳곳마다 그것을 만난다)
임제종을 창시한 당나라의 임제 스님(?~867)도 “오직 내 앞에서 법을 듣고 있는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도인(무의도인無依道人)이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부처는 의지함이 없음(무의 無依)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의지함이 없음을 깨달으면 부처도 또한 얻을 것이 없다(無得). 이와 같이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참되고 올바른 견해(진정견해 眞正見解)이다”라고 하였다.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스님도 십현담(十玄談, 열 가지 현묘한 말씀)의 네 번째 진이(塵異)편에서 “장부에게 원래부터 하늘을 찌르는 의지가 있으니 여래가 행한 곳을 행하지 않느니라(장부자유충천지丈夫自有衝天志 불향여래행처행不向如來行處行)”고 하였다.
이 구절은 고려시대 진각국사(1178 ~1234)가 편찬한 ‘선문염송(禪門拈頌)’ 894번에도 실려 있으며, 이러한 정신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가하여 계를 받으면 처음 배우는 교과서인 ‘치문경훈(緇門經訓)’의 서문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학인들의 공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중생들의 근기와 욕구와 성품이 모두 달라서 그것을 하나로써 논하려 한다면 그 뜻을 얻지 못할까 두렵다. 그러므로 장부에게 원래부터 하늘을 찌르는 의지가 있으니 여래가 행한 곳을 행하지 않느니라 한 것이 이것이며,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부처님의 행하신 바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이것이다(非佛之言不言 非佛之行不行 亦是也).”
이러한 면면들은 우리나라의 불교가 무소의 뿔처럼 가라는 부처님의 말씀과 뜻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온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1625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