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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 프랑스 파리 어느 병원에서 한 세기를 떠들석하게 하던 존경받는 한 지성인이 급성 폐기종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이 병원에서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절규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신의 병명이 무었인가 곁에 서있는 아내에게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리를 지르고, 발악하고 괴로워하는 그 사람은 바로 자유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글을 남기고,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였습니다. 입원한지 한 달만에 사르트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프랑스의 신문들의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르트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본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대서특필했던 것입니다.
그 본 고향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르트르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살았기에 , 죽음이 두려웠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죽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에겐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현세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코린 15,19)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본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철저히 하며 살도록 다짐합시다. 현세가 아니라 하느님께 마음을 두는 삶을 통해,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천상에서 누릴 참된 행복을 꿈꿔봅시다.
11월 2일 위령의 날 강론 미국 사크라멘토 정혜 엘리사벳 한인성당 허춘도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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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아요. 그래서 신앙을 가진사람들은 크게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안는것 같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안음은 거짓이겠지만 하느님 계심을 진정알고 떠난다면 준비하는 그런모습이 보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본문 중에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본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는 부분에 마음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