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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문홍
〔김문홍의 아동문학통신 / 120〕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쓰는가?
-『아동문학평론』2015년 봄호 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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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정 「접시의 비밀」 손수자 「넌 누구니?」 강정훈 「내 이름은 사랑스런 」
김영호 「즐거운 나의 집」 소중애 「짜장면」 이정아 「창고 모탱이」 박재광 「현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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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전에 지켜야 할 기본 원칙
십 수 년 만에 다시 어설픈 평필을 든다. 필자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면서도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이다. 동화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으며 창작의 한 수를 배우고 익히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평자의 편협한 동화관에 얽매이어 인상적인 비평을 하다 보면 다소 오해를 살 수도 있어 조심스럽고 또한 위험하다. 그렇지만 작품의 선별과 비평은 오직 그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형식주의 비평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평자 나름으로는 떳떳한 일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지난 계절의 아동문학 전문 잡지에 실린 30여 편의 중단편을 읽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평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모든 동화작가들이 작품을 쓰기 전에 왜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를 겨냥해 작품을 쓰는가 등의 창작의 기본 원칙을 지키며 쓰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이 작품을 쓰는가는 아주 중요한 원칙의 하나이다. 부수적으로 누구를 겨냥해 작품을 쓰는가의 문제도 뒤따른다. 이런 원칙이 먼저 설정되어야 소재와 주제, 동화의 장르, 그리고 문체와 플롯 등의 창작의 구성 요소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독자 설정은 창작자의 영원한 화두이다. 창작자가 상정하는 독자가 어린아이들인가, 동심을 지닌 모든 이들인가, 아니면 함께 작품을 쓰는 동료 작가들인가에 따라 작품의 방향이나 목표, 그리고 성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화와 소년소설의 독자는 아동, 동심을 지닌 모든 사람, 그리고 동료 작가들 모두일 수 있다. 그러나 아동문학의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라면, 동화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어린이여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을 수도 있고, 동심을 지닌 어른들과 동료작가들이 동시에 즐겨 읽을 수 있게 쓴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아동문학의 창작은 누구나 쓸 수 있되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설령 어린이들은 전혀 읽지 않고 동료작가들만 읽는다 해도, 동화와 소설의 근원적인 독자는 어린이들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교차와 융합
동화와 소년소설은 엄격하게 구분되지만 동화에서는 다소의 혼선이 겹친다. 비현실적인 공상의 세계를 다룬 ‘순수동화’, 동식물을 화자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펼치는 ‘의인화 동화’, 그리고 생활동화인데 때때로 환상과 현실이 서로 교차하거나 융합하는 ‘생활동화’ 등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러나 순수동화와 생활동화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순수동화는 철저하게 비현실적인 공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생활동화는 소년소설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손수자의「넌 누구니?」와 공문정의「접시의 비밀」은 현실과 환상의 교차와 융합을 다룬 생활동화이고, 강정훈의「내 이름은, 사랑스런 」는 의인화 기법의 생활동화이다. 손수자와 공문정의 작품은 생활동화이지만 보다 순수동화에 가깝다고 불 수 있을 것이다.
손수자의「넌 누구니?」(《아동문학평론》2014년 겨울호)는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나’의 불안한 심리를 어둡지 않은 경쾌한 리듬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작가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집 앞 꽃밭에 버려진 동화책,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벌레, 꽃밭에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과 단풍잎 등의 오브제를 통해 현실과 환상이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한다.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노란 은행잎 한 장, 엄마가 내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는 은행잎, 그리고 노랑 아이가 그네를 타며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마지막 대목은 환상과 현실이 융합되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이 작품은 대화체를 많이 활용하고, 묘사보다는 서술을 많이 활용하여 리듬과 템포가 유연하고 속도감이 있다. 또한 ‘...요’체의 서술형 종결어미를 써서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있다. 짧은 작품이지만 환상과 현실의 자연스런 교차와 융합이라는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교차와 융합의 기법이 너무 고도의 테크닉을 부려 선뜻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흠이 있다.
공문정의「접시의 비밀」(《시와 동화》2014년 겨울호)은 유치원에 다니는 ‘나’의 예사롭지 않은 일상을 예사롭지 않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즉물적인 시각과 주위의 모든 사물들에도 영혼이 있다는 물활론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데, 이 작품의 ‘나’(유나) 역시 현실과 환상의 교차와 융합의 세계에 머물러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어른들의 시각으로는 너무 비현실적이어 다소 위태롭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 접시들을 보았어요. 병아리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가 동그랑땡 뒤로 가 숨었어요.
“유나야! 또 먹지 않고 멍하니 있......”
엄마가 잔소리를 하려다 말고는 유심히 식탁을 살폈어요.
“가만......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허리까지 숙이며 식탁 아래도 보고, 접시도 하나씩 들어 올리며 살폈지요.
나는 모른 척 하며 포크로 동그랑땡을 콕 찍어 먹었어요. 숨어 있던 병아리와 눈이 마주쳤지요.
나의 눈에는 접시에 그려진 그림 속의 병아리와 코알라 등은 분명히 움직이고. 또한 현실 속으로 걸어 나와 곁에 머물며 호흡하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엄마의 눈에는 그런 나의 행동과 사고가 마뜩찮다. 그런데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엄마의 그런 경직된 현실적 사고도 어느 새 나에 의해 전염되어 물활론적인 사고에 빠져드는 것이다. 엄마가 무엇이 지나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 내가 동그랑땡 밑에 있는 병아리 그림을 감췄다 보였다 하는 물리적 행동에 의한 착각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엄마의 현실적 행동이 ‘나’의 물활론적인 사고의 자장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강정훈의「내 이름은, 사랑스런 」(《열린 아동문학》2014년 겨울호)는 물고기의 시각으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의인화 동화이다.
사람세상은 내 이름이 갖는 아름다움, 소중함을 모른다. 사람세상에서의 중요한 이름들은 ‘사랑스런’이 아니다. 1등 누구......반장 누구......부자 아빠를 둔 누구......예쁜 얼굴 누구......늘 이런 이름들을 앞세워. 이름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아이들은 기가 죽는다.
처음에 낚시에 결려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사람세상의 손에 잡혀 있을 때는 정말 무서웠다. 이렇게 죽는구나.
이 작품은 물속 고기의 눈에 비친 물위 사람 사는 세상의 병폐와 부조리를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물위 세상 인간들의 탐욕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물속까지 오염되고 파괴되는 섬뜩함을 시종일관 부정적인 시각으로 고발하고 있다. 직접화법의 서술을 통해 주제가 너무 표면으로 드러나고, 물위와 물속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 자체를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의 흠으로 작용한다.
김영호의「즐거운 나의 집」(《열린 아동문학》2014년 겨울호) 역시 중증장애인 복지시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국화꽃의 시각으로,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임을 내세우는 의인화 동화이다. 이 작품은 ‘원장님’, ‘장한별’, ‘꽃’,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소제목의 네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 있는 행동에 의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으로 가꾸어지고 있다는 아동문학 본연의 교훈성에 충실하고 있다.
따뜻한 현실과 그리운 과거의 풍경
소중애의「짜장면」(《시와 동화》2014년 겨울호)은 ‘복성루’ 벽에 붙어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 걸이의 시각으로 그곳을 드나드는 손님들인 할아버지, 사진작가, 배낭을 맨 누나 등의 음식에 얽힌 개인사적 에피소드를 통해 현실의 따뜻함을 그리고 있는 의인화 소설이다.
그때,
“찰칵.‘
소리와 함께 전깃불이 나갔어요.
‘어머나!“
누나가 비명을 질렀어요.
“아, 죄송합니다. 차단기가 내려갔나 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둠 속에서 성복이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금방 전깃불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찰칵 소리를 내며 불이 다시 나갔어요.
“초, 촛불 켜.”
떨리는 목소리가 오자도 그림 쪽에서 들려왔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다시 차단기를 올려 전깃불을 켰어요. 그런데 금방 다시 전깃불이 나갔어요.
이 작품에서 전깃불과 촛불은 은유적인 오브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전깃불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상징하고 촛불은 과거로의 회귀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은 할아버지의 제안에 의해 각자의 자리에 켜져 있는 촛불을 한곳에 모아놓음으로써 각자 과거로 회귀해 음식에 얽혀 있는 개인사적 아련한 경험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촛불은 현실의 팍팍하고 신산스런 삶에서 아름답고 그리운 과거의 길목으로 안내하는 계기가 되어주게 된다. 이 작품은 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삶에 지친 ‘지금 이곳’의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그것을 버티고 극복하는 힘이 되어 준다. 입담 있는 대화와 탄력적이고 리듬 있는 서술의 힘으로 술술 잘 읽히게 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이정아의「창고 모탱이」(《시와 동화》2014년 겨울호)는 늦봄이라는 소녀가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그리고 엄마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 장항의 과거 풍경을 오늘에 되살림으로써 마음을 치유하는 중편 소년소설이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명자’는 현실의 나의 엄마로 밝혀지면서 엄마는 우울함을 떨쳐 내고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은 때로는 과거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정화 효과가 되기도 하고, 아울러 신산스런 현실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 소설처럼 정말 과거는 힘이 세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명자의 이야기가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는 다소 의문이다. 이러한 과거 회상의 복고적 소재가 요즘 어린이들의 심금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게 될지 자못 의심스럽다.
박재광의 소년소설「현태들」(《열린 아동문학》2014년 겨울호)과 미래 세계 어느 날의 불안한 하루를 통해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있는 SF 소설인 양경화의「열두 살의 잠수종」(《어린이문예》2014년 가을 겨울호)도 눈에 띄는 작품이다.「현태들」은 두 소년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으며,「열두 살의 잠수종」은 다른 세계에 대한 지향적 의지와 모성적 친화의 틈바구니에서 갈등과 불안을 겪는 성장통의 불안과 공포를 밀도 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첫댓글 공문정, 손수자, 강정훈, 영호,소중애, 이정아,박재광 작품에 한 평에 깊은 공감을 하며 원로작가의 비평 무척 반가우면서도 위험하며 조심스런 일에 도전하는 평론가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박수를 청해봅니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