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나물
꽃창포..창포꽃은 노란색.. 달하치 두가구..오지마을 답지 않게 번듯한 주택 ..달하치는 달아래 첫마을이란 뜻이라고.. 달하치 마을 2 가구중 한 가구 연화동은 오른쪽 달하치는 왼쪽으로 표시 옷을 벗고 풍욕을 즐기신다고 ..방송출연에서.. 두마리...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달하치 두가구..오지마을 답지 않게 번듯한 주택 ..달하치는 달아래 첫마을이란 뜻이라고.. 달하치 마을 2 가구중 한 가구 연화동은 오른쪽 달하치는 왼쪽으로 표시 옷을 벗고 풍욕을 즐기신다고 ..방송출연에서.. 두마리...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달하치 마을 2 가구중 한 가구 연화동은 오른쪽 달하치는 왼쪽으로 표시 옷을 벗고 풍욕을 즐기신다고 ..방송출연에서.. 두마리...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연화동은 오른쪽 달하치는 왼쪽으로 표시 옷을 벗고 풍욕을 즐기신다고 ..방송출연에서.. 두마리...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옷을 벗고 풍욕을 즐기신다고 ..방송출연에서.. 두마리...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두마리...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귀경길 비 그친 설악산 풍경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오지마을 연하동과 달하치(강원도 양양)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자리 잡은 이 곳은 아랫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는 산골마을 달하치(月下峙)와 연화동(蓮花洞), 지명부터가 뭔가 끌리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날엔 40여가구가 모여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가구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저 이름 없는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행정상으론 양양군 현북면 면옥치리에 속하지만, 아랫 마을인 장리가 더 가까워 주민들은 장리를 통해 주로 외부로의 나들이를 한다. 이 곳을 접하려면 면옥치쪽에선 지프를 이용하면 진입이 가능하지만 장리쪽에선 지프도 쉽지가 않다. 군데 군데 호박만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험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라도 온후면 7군데의 개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물이 불어 걸어서 조차도 갈 수가 없다. 아주 먼 옛날엔 산을 넘어 양양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길도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달 아랫 동네란 뜻의 달하치, 오지마을을 일컬어 하늘 아래 첫 동네란 말이 있다. 하늘과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실제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실감이 난다. 주변은 온통 1천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쳐있고, 오로지 마을로 통하는 작은 오솔길만이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는 작은 와폭에서 크게는 3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폭포 아래에는 검붉은 소(召)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는 버들치, 쉬리, 지름종쟁이(산메기) 등 물고기가 노닌다. 달하치계곡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봄이면 애기똥풀 금낭화 민들레 등 들꽃과 산벗꽃나무 고추나무 찔레꽃 향기가 온통 마을을 휘감고, 짝짓기에 바쁜 새들의 지져김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달하치의 유일한 주민인 김만기 할아버지는 올해 60세 정도의 연세로 고향은 바로 산 넘어 마을 면옥치다. 잠시 도회지 경험도 있지만 평생을 산골에서 살아오신 분으로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달하치를 떠나지 못한다는 할아버지의 직업(?)은 심마니. 깨끗하고 정갈한 외모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성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연화동은 옛날 관동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지름길로 100년 전 은광이 있었다는 벽실령 꼭대기 “은구뎅이”에 있던 기생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산꼭대기 주막집에 오가는 길손들을 위한 연못이 있었다 한다. 장사치들이 많이 지나던 곳이라 기생들도 있었고, 그 연못에선 조각배를 띄우고 기생놀이를 했다는데……재미있는 지명유래다. 연화동엔 서글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약 100년 전 은을 캐던 광산이 무너져 많은 인부들이 숨졌다고 한다. 인부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갈 때는 패랭이 모자를 밖에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광산이 무너진 후 사망자를 알 수가 없어 패랭이 모자를 세어보니 99개였다는 것, 그래서 99명이 숨진 것을 알았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펌글)..
첫댓글 강원도 오지 트레킹을 하셨군요지명부터가 오지중 오지임을 알 수 있겠구요 감성스런 지명입니다안개가 끼어서 더 운치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첫번째 사진 햐 넘 멋스럽네요 한번쯤 무거운짐 내려놓고 걸어보고픈 길 입니다
좁아 빠진 국토에 바둑판 처럼 고속도로와 도로가 깔리고 나니이젠 더 이상 오지라는 이름이 뻘쭘 합니다 ㅎㅎ
비오는 여름날의 아름다운 트레킹...걸어도 걸어도 마냥 즐거울 것만 같은 정겨움이 묻어납니다.넘겨지는 장면마다 멋스러움과 감성이 가득합니다.오랫만에 아름다운 작품 즐감합니다.
단풍 물들때 다시 한번 가면 좋겠습니다혼자 가면 적적하고 둘이 가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이런곳을 어떻게 알고 가시는지 부러울 따름입니다보기보단 쉽지않은 트레킹코스 같아요사진도 넘좋고요
넘 편한 임도길 입니다그것도 내리막으로요 ㅎㅎ
인적도 드문 비오는날의 오지산행 멋진 작품으로 보니 그곳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느낌이 축축합니다....인터넷으로 휴가 잘 다녀왔네요~~감사합니다.
산 타는 사람으로서는 뭔가 허전했는데 사진으로 다시 보니 그럴듯 합니다 ㅎㅎ사기치는것 같아서 송구 합니다 ㅎㅎ
안개비 촉촉히 내리는 날 멋진 곳을 트래킹하셨군요.정적 속을 함께 걷는 듯 참 좋습니다...ㅎ
안개비가 촉촉히 내리니 몽환적 이긴 합니다만한낮에 땡볕 내리 쬘때 다시 걸으라 하면 ..ㅎㅎ
들어보지 못한 오지인듯 그 지명에서.....하늘아래가 아닌 달아래 마을이래서 달하치 라구요오지의 산행길 그도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데 점심 먹는데 지장이 없었나요 ?오지 빗길에 우의입고 그렇게 속보산행 준족들 모임 부러버라....귀경길 비 그친 설악의 풍광이 멋진 한폭의 동양화네요
내리막 임도길이 대부분이라 걸음이 좀 빨랐나 봅니다 번듯한 팬션같은 집들이 있어 오지라기 보다는 ..이젠 남한에는 오지 다운 오지는 없을 듯 합니다 ㅎㅎ
우중 운무 트레킹이라~~멋집니다,,
훌륭하신 글과 사진 즐감하옵니다.
조용조용...잘 봤습니다. 잔잔한 감동 갖고 갑니다. 여리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분으로 느껴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하세요.
첫댓글 강원도 오지 트레킹을 하셨군요
지명부터가 오지중 오지임을 알 수 있겠구요 감성스런 지명입니다
안개가 끼어서 더 운치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첫번째 사진 햐 넘 멋스럽네요 한번쯤 무거운짐 내려놓고 걸어보고픈 길 입니다
좁아 빠진 국토에 바둑판 처럼 고속도로와 도로가 깔리고 나니
이젠 더 이상 오지라는 이름이 뻘쭘 합니다 ㅎㅎ
비오는 여름날의 아름다운 트레킹...
걸어도 걸어도 마냥 즐거울 것만 같은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넘겨지는 장면마다 멋스러움과 감성이 가득합니다.
오랫만에 아름다운 작품 즐감합니다.
단풍 물들때 다시 한번 가면 좋겠습니다
혼자 가면 적적하고 둘이 가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이런곳을 어떻게 알고 가시는지 부러울 따름입니다
보기보단 쉽지않은 트레킹코스 같아요
사진도 넘좋고요
넘 편한 임도길 입니다
그것도 내리막으로요 ㅎㅎ
인적도 드문 비오는날의 오지산행 멋진 작품으로 보니 그곳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느낌이 축축합니다....
인터넷으로 휴가 잘 다녀왔네요~~
감사합니다.
산 타는 사람으로서는 뭔가 허전했는데
사진으로 다시 보니 그럴듯 합니다 ㅎㅎ
사기치는것 같아서 송구 합니다 ㅎㅎ
안개비 촉촉히 내리는 날 멋진 곳을 트래킹하셨군요.
정적 속을 함께 걷는 듯 참 좋습니다...ㅎ
안개비가 촉촉히 내리니 몽환적 이긴 합니다만
한낮에 땡볕 내리 쬘때 다시 걸으라 하면 ..ㅎㅎ
들어보지 못한 오지인듯 그 지명에서.....
하늘아래가 아닌 달아래 마을이래서 달하치 라구요
오지의 산행길 그도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데
점심 먹는데 지장이 없었나요 ?
오지 빗길에 우의입고 그렇게 속보산행 준족들 모임 부러버라....
귀경길 비 그친 설악의 풍광이 멋진 한폭의 동양화네요
내리막 임도길이 대부분이라 걸음이 좀 빨랐나 봅니다
번듯한 팬션같은 집들이 있어 오지라기 보다는 ..
이젠 남한에는 오지 다운 오지는 없을 듯 합니다 ㅎㅎ
우중 운무 트레킹이라~~멋집니다,,
훌륭하신 글과 사진 즐감하옵니다.
조용조용...잘 봤습니다. 잔잔한 감동 갖고 갑니다. 여리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분으로 느껴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하세요.